2024 | 떡 몇 개나 있는지 가서 보라 말씀/ 마가복음 6:30-56 요절/ 마가복음 6:38 | 2024. 5. 26 | |
마가복음 제 10 강 |
“이르시되 너희에게 떡 몇 개나 있는지 가서 보라 하시니 알아보고 이르되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가 있더이다 하거늘”
가정에서 아버지의 위치는 매우 중요합니다. 가정을 대표하고 가정을 이끌어가는 가장이기 때문입니다. 어느 집단이든 리더가 있고 리더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리더십이요 책임감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을 배우는데서 끝나지 않고 배운 바를 가르쳐야 하는 사도들로 위상이 달라졌습니다. 그들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백성들에 대한 책임감이었습니다. 오늘 말씀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책임감 있는 목자가 되라고 하십니다. 우리 주변에는 목자 없는 양 같아서 배고프고 목마른 사람들이 많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면 이런 사람들을 먹이고 행복하게 할 수 있을까요?
제자들은 전도여행을 마치고 와서 예수님께 자기들이 행한 것과 가르친 것을 낱낱이 보고 했습니다. 여기서 제자들은 사도들로 호칭이 바뀌고 있습니다. 제자들의 위상이 달라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제자들은 배우는 데 초점이 있고 사도들은 배운 바를 전하고 가르치는 데 초점이 있습니다. 사도들의 권위는 그들을 보내신 예수님께로부터 옵니다. 그들은 전도를 통해 일어난 놀라운 역사들을 예수님께 보고할 때 흥분이 되었습니다. 스피릿이 충만했고 기쁨이 넘쳤습니다. 자기가 경험한 전도역사도 놀라웠지만 다른 사람들을 통해 일어난 구원역사도 가슴을 뜨겁게 하였습니다. 그들은 보고모임을 통해 예수님의 이름 권세를 다시 한 번 가슴 깊이 새길 수 있었고, 서로 배우며 제자팀으로서 한 마음 한 뜻이 될 수 있었습니다.
보고를 받으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쉼을 주고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따로 한적한 곳에 가서 잠깐 쉬어라.” 제자들에게 쉼이 필요한 이유는 오고 가는 사람들이 많아 제자들이 음식 먹을 겨를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은 어디 가나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었습니다. 밥 먹을 시간도 없을 만큼 바빴습니다. 일만 하고 쉬지 않으면 어떻게 됩니까? 지치고 탈진하게 됩니다. 충전하기 위해서는 휴식이 필요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무리들과 일로부터 분리시키고자 휴가를 명하셨습니다. 쉼을 갖기 위해서는 무리를 떠나 따로 시간 갖는 것이 필요합니다. 또한 한적한 곳이 필요합니다. 시끄러운 장소에서는 마음도 시끄럽게 될 수 있기에 조용한 장소로 갈 필요가 있습니다. 또한 너무 오래 휴가를 가지면 휴가의 의미가 퇴색될 수 있습니다. 지친 몸과 마음을 힐링하기 위해서는 잠깐 쉬는 것이 필요합니다.
현대인들은 일중독에 빠져 있습니다. 일주일 내내 쉬지 않고 일하면 많은 일을 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일의 능률은 떨어지고 몸이 망가지고 병들게 됩니다. 마음도 지치고 피폐해집니다. 하나님은 일주일에 하루는 쉬도록 안식일을 제정하셨습니다. 요즈음 직장은 주5일제입니다. 5일은 일터에서 열심히 일하고 1일은 평상시 하지 못한 가사 일과 자녀들 돌보는 일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그리고 1일은 충전을 위해서 휴가를 갖는 것이 좋습니다. 일을 놓고 쉬는 것도 필요하지만 영혼의 쉼은 더욱 필요합니다. 영육간에 쉼을 가질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는 주일을 특별한 날로 만들어 주셨습니다. 우리 청년 대학생들이 주일의 의미를 알고 주일예배를 절대적으로 드림으로 참 쉼을 얻고 새 한 주간을 활기차게 살아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제자들은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는 주님의 말씀에 감동이 되어 배타고 한적한 곳으로 갔습니다. 그런데 이런 제자들을 알아보고 많은 사람들이 도보로 목적지에 먼저 갔습니다. 휴가에 차질 생긴 제자들은 ‘너무해’ 하는 소리가 절로 나왔을 겁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큰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왜 불쌍히 여기셨습니까? 목자 없는 양 같았기 때문입니다. 목자 없는 양은 살아가기 어렵습니다. 양에게는 목자가 필요합니다. 목자가 앞서 가며 양들을 푸른 초장과 물가로 인도합니다. 사나운 짐승으로부터 보호해 줍니다. 하지만 목자 없는 양은 길 잃고 헤메게 되고 독초를 먹고 죽을 수 있습니다. 물을 마시지 못해 갈증의 고통을 느낍니다. 이리의 먹이감이 될 수 있습니다. 구약 성경을 보면 하나님은 목자이시고 우리는 그의 양입니다. 하나님의 보호와 인도하심을 받은 사람들은 생명을 얻고 풍성한 삶을 살게 됩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떠난 사람들은 길을 잃고 죄와 어둠에 잡혀 비참하게 됩니다.
청년대학생들은 자기 길을 당당하게 잘 가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떠난 그들은 열심히 살아도 허무하고 공허한 인생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인생의 목적을 모르고 또한 잘못된 목적을 가지고 살기 때문에 불행할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은 목자 없는 양과 같은 인생들을 불쌍히 여기십니다. 불쌍히 여긴다는 것은 창자가 끊어지는 아픔을 느낀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으로 여기십니다. 불쌍히 여기는 마음 때문에 예수님은 우리를 영접하시고 돌보십니다.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없이는 불쌍한 사람들을 도울 수 없습니다.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없는 부모는 자녀들을 방치합니다. 우리가 양들을 돌보기 위해서는 불쌍히 여기는 마음, 목자의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불쌍히 여기사 무엇을 하셨습니까? 그들의 현실문제를 바로 해결해 주셨습니까? 아닙니다. 예수님은 여러 가지로 가르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데 집중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만이 인생의 길을 찾게 해주고, 공허함을 채워주고 하나님 나라로 인도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은혜로운 말씀은 계속 흘러나왔고 백성들은 지루해하지 않고 아멘 아멘 하며 잘 들었습니다. 때가 저물어가매 제자들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예수님께 나아와 한 가지 제안을 했습니다. “이곳은 빈들이요 날도 저물어가니 무리를 보내어 두루 촌과 마을로 가서 무엇을 사 먹게 하옵소서” 그것은 날이 저물어 저녁밥 먹을 시간이 되었는데, 이곳은 빈들이라 식당도 없고 어떤 대책도 세울 수 없으니 빨리 마을로 가서 각자 해결하도록 하자는 것이었습니다. 제자들은 상황 판단을 정확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매우 합리적인 제안을 했습니다. 그들은 양들의 배고픔을 생각했고 그것을 해결할 수 있는 방안도 내놓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어떤 방향을 주십니까? 37a절을 보십시오.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하시니”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무리들을 책임지라고 하셨습니다. 제자들에게 돈도 없고 능력도 없다는 것을 잘 아신 예수님께서 왜 제자들이 무리들을 먹야 한다고 하십니까? 예수님은 이번 기회에 제자들을 목자로 세우고자 마음 먹었기 때문입니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는 것은 너희가 목자가 되라는 말입니다. 이는 너희가 목자로서 책임감을 가지고 양들의 먹는 문제를 해결하라는 것입니다. 목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책임감입니다. 부모가 자녀에 대한 책임감이 없다면 좋은 부모가 될 수 없듯이 목자가 양에 대한 책임감이 없다면 좋은 목자가 될 수 없습니다. 책임감이 있는 목자는 어떤 상황에 처하더라도 양들을 방치하지 않습니다. 어찌하든지 방법을 찾아내고 무엇이든 시도하고 도전하고 해결책을 찾아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많은 경험을 쌓도록 배움과 훈련의 기회를 주셨습니다. 이제는 그들을 목자로 세우셔서 그들의 역량을 키워주고자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방향을 받고 제자들은 양들을 먹이는 데 드는 돈을 계산해보니 이백 데나리온이 필요했습니다. 이백 데나리온은 노동자의 200일에 해당되는 품삯입니다. 그런 큰 돈이 제자들에게는 없었습니다. 그러기에 오천 명이나 되는 사람들을 먹인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제자들은 먹이고는 싶지만 돈이 없고 능력도 없으니 무리들을 먹이는 데 부정적이 되었고 무력감을 느꼈습니다. 우리의 형편을 잘 아시는 예수님께서 왜 이렇게 힘든 숙제를 내주시는지 원망스러웠습니다.
양들을 먹이는 데 부정적이 된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또 어떤 방향을 주셨습니까? 38절을 보십시오. “이르시되 너희에게 떡 몇 개나 있는지 가서 보라 하시니 알아보고 이르되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가 있더이다 하거늘” 그것은 “너희에게 떡 몇 개나 있는지 가서 보라”는 것입니다. 제자들이 가서 찾아보니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가 있었습니다. 제자들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했는데, 가서 찾아보니 오병이어가 있었습니다. 오병이어는 한 아이의 도시락이었습니다. 오천 명이 넘는 사람들이 먹기에는 너무 작고 하찮은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 작은 것을 찾아서 예수님께 가져오라고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오병이어를 무시하지 않으시고 받으십니다.
예수님은 또 한 번 제자들에게 방향을 주십니다. 그것은 그 모든 사람으로 떼를 지어 푸른 잔디 위에 앉게 하는 것입니다. 이는 식사하기 위한 환경을 만드는 것이요 질서를 세우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무리들을 백 명씩 또는 오십 명씩 앉게 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무리들을 섬기며 목자의 직분이 어떤 것인가를 배우도록 제자들을 섬세하게 도우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사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셨습니다. 축사하셨다는 것은 감사기도를 드렸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오병이어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그 오병이어로 오천 명이 넘는 사람들을 다 배불리 먹여달라고 기도하셨습니다. 그리고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어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게 하시고 또 물고기 두 마리도 모든 사람에게 나누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통해서 양들을 먹이셨습니다. 남자만 오천 명이 배불리 먹었습니다. 여자들과 아이들까지 합하면 만 명이 넘었을 겁니다. 남은 떡 조각과 물고기가 열 두 바구니나 되었습니다. 열두 제자들은 한 바구니씩 거두며 예수님 안에 풍성함이 있다는 것을 실감했습니다.
오병이어로 오천 명을 배불리 먹이는 예수님은 창조주 하나님이시오 선한 목자이시오 생명의 떡이십니다. 예수님 안에 생명이 있고 풍성함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은 우리에게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입니다. 선한 목자 예수님을 만나 예수님을 따르는 삶을 사는 사람들은 다윗의 고백과 같이 부족함이 없고 참으로 행복합니다. 우리는 2024년 믿음 생명 여름수양회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번 천국잔치를 통해 예수님을 믿고 생명을 얻고 삶이 풍성해지는 성령의 역사가 활발히 일어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많이 받기 위해서는 우리의 오병이어를 찾아서 주님께 드려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없는 것을 생각하면 부정적이 되고 무력감에 빠지게 됩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떡 몇 개나 있는지 가서 보라” 하십니다. 나에게 무엇이 있는지 우리 가정에 무엇이 있는지 우리 공동체에 무엇이 있는지 찾아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 가져오라는 것입니다. 있는 것들을 찾아보면 하나 둘 보이기 시작합니다. 학생들에게는 시간이 있습니다. 학사들에게는 돈이 있습니다. 목자들에게는 말씀이 있고 기도가 있고 심정과 책임감이 있고 은사가 있습니다. 신다니엘 목자님은 음악의 은사가 있습니다. 김베드로 목자님은 성경을 잘 가르치는 은사가 있습니다. 강찬솔 목자님과 정페이스 목자님은 캠퍼스에 대한 책임감을 가지고 전도함으로 양을 얻게 되었고 매주 신실하게 양을 먹이고 있습니다. 김마가 베키 목자님은 새벽기도의 오병이어를 드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언제 어디서나 기도할 수 있습니다. 성경을 함께 읽을 수 있고 간단한 인생소감을 나눌 수 있습니다. 주님은 우리가 드리는 오병이어를 소중하게 여기고 하나님의 구원역사에 귀히 쓰십니다. 오병이어를 주님께 드릴 때 우리의 인생은 행복해집니다. 더 나아가 우리의 양떼들과 자녀들에게 그리고 캠퍼스와 세상으로 하나님의 복이 흘러가게 됩니다.
오천 명을 먹이신 예수님은 제자들을 재촉하여 배타고 먼저 건너가게 하셨습니다. 제자들에게 빨리 떠나라고 하신 것은 제자들이 기적에 매몰되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기적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중요합니다. 기적에서 벗어나 예수님을 붙들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무리들도 보내시고 기도하러 산으로 가셨습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에도 불구하고 제자들과 무리들의 영적 눈이 아직 떠지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여전히 빵 문제에 매여 있었고 예수님을 정치적 경제적 메시아로 보고 현실문제를 해결받고자 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 나아가 그들의 영적 눈이 열려서 예수님을 바르게 알고 믿고 따르는 참 제자가 되도록 기도하셨습니다. 제자들이 탄 배는 바다 가운데 있었고 바람이 거스르므로 제자들은 힘겹게 노를 저어야 했습니다. 오병이어 사건으로 많은 은혜를 받았지만 그 은혜는 오래가지 못했고 다시 풍랑으로 힘든 시간을 보내야 했습니다. 예수님은 육지에 홀로 계시다가 제자들이 어려움에 처해 있는 것을 감지하시고 밤 사경쯤에 바다 위로 걸어서 그들에게 오셨습니다. 그리고 지나가려고 하셨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을 알아보는지 시험하고자 하신 것입니다.
제자들은 그가 바다 위로 걸어오심을 보고 유령인가 하여 소리 질렀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유령으로 착각했고 두려움에 빠졌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하지 말라.” ‘내니’라는 말은 구약에서 하나님이 자신을 계시할 때 사용하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이시오 메시아로 나타내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배에 올라 그들에게 가시니 바람이 그쳤습니다. 풍랑으로 인해 제자들이 심히 놀란 것은 그 떡 떼시던 일을 깨닫지 못하고 도리어 그 마음이 둔하여졌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은 오병이어 사건의 의미를 깨닫지 못했고 예수님이 누구신지 알지 못했습니다. 인생의 풍랑이 몰아칠 때 예수님이 나와 함께 하시고 나를 돕고 계신다는 것을 굳게 믿어야 합니다. 마음이 둔해지면 어려움이 닥칠 때 흔들리고 낙심하게 됩니다. 우리의 마음에 예수님이 계셔야 합니다. 우리 삶의 첫 자리에 예수님이 계셔야 합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마음이 둔해지고 헤메게 됩니다. 예수님처럼 기도에 힘써야 합니다. 기도의 시간을 확보해야 합니다. 매 주일마다 우리의 삶과 문제를 안고 또한 감사제목을 가지고 예배의 자리에 나아가야 합니다.
예수님이 게네사렛 땅에 도착하자 사람들은 예수님을 알아보고 사방에서 몰려들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또 언제 만날지 알 수 없기에 병든 자를 침상째로 메고 나아왔습니다. 그리고 병자를 시장에 두고 예수님께 그의 옷가에라도 손을 대게 하시기를 간구하였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 손을 대는 자는 다 성함을 받았습니다. 간절한 심정으로 그리고 믿음으로 간구할 때 놀라운 치유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어떤 장소든지 회당이든지 가정이든지 길거리든지 시장이든지 예수님의 치유역사는 제한이 없습니다. 아무리 좋은 환경이라도 간절함과 믿음이 없으면 치유역사는 일어나지 않습니다. 우리의 주변에 육체의 질병으로 고통하는 사람들, 마음의 병으로 누워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가 간절함과 믿음으로 이들을 주님 앞에 데리고 나옴으로 그들이 치유되고 건강한 삶으로 회복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주님께서 맡기신 양들을 먹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내가 나를 먹이는 것도 벅차고 나의 가족들을 먹이는 것만도 버거운데, 피 한 방울 섞이지 않는 완전타인을 먹인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로 보입니다. 하지만 주님은 우리에게 할 수 없는 일을 하라고 하신 것이 아닙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떡 몇 개나 있는지 가서 보라고 하십니다. 우리에게 없는 것을 생각하고 부정적이 되면 양을 먹일 수 없지만 있는 것을 찾아보고 그것을 주님께 드릴 때 양을 먹일 수 있습니다. 실제 양을 먹이시는 분은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오병이어를 받으사 축사하시고 양들을 풍성히 먹여 주십니다. 우리에게 있는 오병이어를 주님께 드림으로 생명구원역사를 힘 있게 이루어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