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푸른 피의 에이스' 배영수. 누가 뭐래도 그는 삼성의 에이스였고, 앞으로도 에이스로 남을 것이다. 그것이 바로 삼성의 역.사다(사진=스포츠춘추 박동희 기자) |
시계를 돌려보자. 때는 2006년 10월 25일. 시선을 돌려보자. 장소는 대전 한밭구장. 당시 그곳에선 삼성과 한화의 한국시리즈 3차전이 열리고 있었다.
9회부터 시작한 두 팀의 ‘3-3’ 팽팽한 균형이 연장 12회 초 삼성 박진만의 적시타로 순식간에 깨진다. 12회 말 한화가 반격을 준비할 즈음. 삼성의 새로운 구원투수가 불펜에서 몸을 푼 뒤 마운드에 오를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때였다. 3루 관중석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그도 그럴 게 그 투수는 사흘 전 6이닝을 던지고 바로 내일 선발투수로 내정됐던 이였다. 이윽고.
등번호 25번의 삼성 투수가 힘차게 마운드를 향해 올랐다. 바로 ‘푸른 피의 에이스’ 배영수(29)였다.
수술대에 누운 ‘푸른 피의 에이스’
당시 배영수는 12회 말 마무리투수로 나서 1이닝을 깔끔하게 막으며 세이브를 기록했다. 언론에선 “4차전 선발로 내정됐던 배영수가 3차전 마무리로 나온 건 뜻밖”이라며 이를 두고 “선동열 삼성 감독이 초강수를 둔 것”이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선 감독의 초강수는 3차전이 끝이 아니었다. 선 감독은 배영수를 4, 5, 6차전에 내리 구원투수로 등판시켰다. 그때마다 배영수는 시속 150km 초·중반대의 강속구와 폭포수처럼 ‘뚝’ 떨어지는 포크볼을 앞세워 한화 타자들을 제압했다.
그의 구위가 얼마나 뛰어났으면 당시 한국시리즈를 취재하던 <요미우리신문> 기자는 “당장 일본프로야구에서 뛰어도 10승은 무난한 투수”라며 감탄사를 연발했다.
그해 한국시리즈에서 배영수는 5경기에 출전해 10⅓이닝을 던져 2승1세이브 1홀드 평균자책 0.87을 기록했다. 공·수에서 맹활약을 펼친 유격수 박진만이 없었다면 한국시리즈 MVP는 단연 배영수의 몫이었다.
2005년에 이어 2006년 한국시리즈에서도 팀을 우승으로 이끈 배영수는 2007년엔 더 뛰어난 투수가 될 것만 같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1월 1일 훈련을 시작해 12월 31일엔 더 나은 선수가 되는 게 유일한 목표였던 배영수의 전진에 제동이 걸렸다. 시속 150km의 강속구를 ‘펑펑’ 뿌리던 그의 팔꿈치가 알고 보니 만신창이 상태였다는 게 밝혀진 것이다.
사실 배영수가 한국시리즈 3차전 마무리로 등판한 것도 선 감독의 초강수라기보단 팔꿈치가 아파 선발등판이 어려운 그의 사정을 고려한 선 감독의 고육지책이었다.
![]() 2006년 2년 연속 한국시리즈 우승에 성공한 삼성 선수들이 서로를 부둥켜 안고 있다. 배영수도 양일환 투수코치(현 2군 코치)를 안으며 환호하고 있다(사진=삼성) |
결국, 2년 연속 한국시리즈 우승의 감격이 채 가시기도 전인 그해 11월 배영수는 미국으로 떠났다. 그리고 이듬해인 2007년 1월 LA의 컬란조브외과병원에서 손상된 팔꿈치 척골 인대를 들어내고 팔뚝 힘줄 이부를 잘라 이식하는 이른바 ‘토미 존 수술’을 받았다.
강속구 투수, 강속구를 잃다
“하늘에 ‘둥둥’ 떠다니는 기분입니다.” 지난 2월 일본 오키나와 스프링캠프에서 만난 배영수는 “속구 구속이 얼마나 나오느냐?”라는 이순철 MBC ESPN 해설위원의 질문에 그렇게 답했다. 그즈음 배영수의 속구 구속은 시속 140km를 넘지 못했다.
한때 최고구속 시속 156km를 기록하며 한국 최고의 강속구 투수로 불렸던 배영수가 자신의 공을 ‘하늘에 둥둥 떠다닌다’고 표현한 것도 무리는 아니었던 셈이다. 문제는 배영수의 잃어버린 구속이 언제 돌아올지 모른다는 것이었다.
‘토미 존 수술’을 받으면 구속이 증가한다고 믿는 이가 많다. 실제로 류현진(한화), 오승환(삼성)은 ‘토미 존 수술’을 받고 구속이 더 늘었다. 하지만, 현직 트레이너들은 한결같이 “수술 때문이라기보단 재활 과정에서 선수 스스로 열심히 운동한 까닭에 몸 상태가 이전보다 나아졌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 2007년 1월 '토미 존 수술' 이후 재활에 매달렸던 배영수. 그는 누구보다 열심히 재활을 열심히 했다(사진=삼성) |
그렇다면 누구보다 열심히 재활했던 배영수는 어째서 구속이 회복되는 건 고사하고 되레 줄어든 것일까.
‘토미 존 수술’ 당시 배영수의 팔꿈치는 최악이었다. 수년 동안 커다란 뼛조각 두 개가 인대를 긁은 통에 팔꿈치 인대는 미역처럼 흐물흐물한 상태였다. 그래서 1시간이면 끝날 수술을 4시간이 넘게나 받았다. 담당의는 수술 뒤 “완치 확률이 70% 이하”라고 경고했다. 통상 이 수술은 완치율이 90%에 가깝다.
모 구단의 트레이너는 “(배영수의) 인대 상태가 최악이기도 했겠지만, 과도한 진통제 사용으로 인대뿐만 아니라 주변 근육과 뼈도 손상됐을 가능성이 크다”며 “그러면 수술을 해도 예전 같은 구속을 회복하기 어렵다”라고 설명했다.
야구계에선 배영수의 복귀가 다소 빨랐다고 평하기도 한다. ‘토미 존 수술’의 재활기간은 선수 특성에 따라 다르지만 통상 야수는 6개월, 투수는 10~12개월 사이로 알려졌다. 여기서 '충분히'란 단어가 불으려면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나 배영수는 2007년 1월 수술을 받고 이듬해 곧바로 풀타임(27경기 등판, 선발 23경기)출전을 강행했다. 주변에선 그의 복귀를 두고 ‘기적’이라고 했다.
2008년 9승8패 평균자책 4.55를 기록하며 기적이 맞나 싶었다. 구속도 시속 140km 후반대로 어느 정도 회복된 듯했다. 하지만, 공 끝은 무뎌 있었고, 제구도 ‘썩’ 만족스럽지 못했다. 무엇보다 타자들에게 더는 위압감을 주지 못했다.
배영수는 “내가 봐도 성급한 복귀였다”고 말한다. 좀 더 몸을 만들고 마운드에 올랐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수도 없이 했단다.
그러나 늦은 후회였다. 몸이 완전하지 않았던 까닭이었을까. 몸의 균형이 조금씩 무너지기 시작하면서 2005년에 다쳤던 왼쪽 발목이 다시 아프기 시작했다.
2009시즌, 배영수는 위기를 맞았다. 아니 자신의 야구 인생 가운데 최악의 시즌을 보냈다. 23경기(선발 12경기)에 출전해 1승12패 평균자책 7.26을 기록한 것이다. 리그 다승왕이자 승률왕이었던 투수가 5년 만에 리그 선발투수 가운데 최저승과 최저승률을 기록하는 순간이었다.
![]() 1년의 공백을 극복하고 2008년부터 삼성 선발진의 한 축을 담당한 배영수. 타구단의 관계자는 "당시 배영수가 투구하고 나면 '팔이 퉁퉁 붓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면서 "그런데도 계속 등판하는 걸 보면서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사진=삼성) |
문제는 이뿐이 아니었다. 2008년만 해도 시속 140km 중·후반대를 유지했던 속구가 아예 시속 140km 초반대로 떨어졌다. 그럼에도, 타자들은 배영수의 공에 헛스윙을 연발했다. 하지만, 이유는 다른 데 있었다. “예전 강속구를 생각해 빠르게 스윙했는데 아직 공이 저만치서 오고 있었다”는 게 타자들이 농담조로 털어놓은 이유다.
그즈음 배영수는 야구장에 올 때면 고개를 ‘푹’ 숙였단다. 누가 자길 알아볼까 싶어서였다. “창피해서 죽고 싶었다.” 배영수의 진심이다.
나는 왜 부활해야 하는가
강속구를 잃어버린 투수는 암환자와 비슷한 과정을 겪는다. 1단계가 부정이다. 암환자가 ‘난 절대 죽지 않는다’고 믿는 것처럼 강속구 투수도 ‘내 구속은 절대 줄지 않는다’고 확신한다. 배영수가 그랬다. ‘토미 존 수술’ 이후 구속이 회복되리라 확신했고, 2009년 속구 구속이 시속 140km 초반대로 떨어졌어도 자신의 현재 구속을 인정하지 않았다.
2단계는 분노다. ‘왜 하필 나인가’다. 배영수는 2008년 컴백 이후 내림세를 타자, 한때 주변을 원망했다. 팀을 2년 연속 한국시리즈 우승으로 이끈 자신만 왜 부상을 당하고,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하는지 납득할 수 없었다.
3단계는 타협이다. ‘눈에 보이는 현실을 인정한다’다. 암환자가 비로소 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인정하듯 배영수도 속구 평균구속 130km 후반대의 현실을 인정하기 시작했다. 지난 2월 일본 오키나와 스프링캠프에서 배영수는 “강속구에 집착하지 않겠다”고 했다. 하지만, 이 단계는 상황을 조건부로 받아들인다. 배영수도 예외는 아니었다. “집착하진 않겠다”고 했지만 “언제가 됐든 꼭 시속 150km의 강속구를 되찾겠다”고 다짐했다.
마지막 4단계는 수용이다. 더는 과거에 집착하지 않고 차분해지는 단계다. 4월 14일 잠실구장에서 배영수를 만났을 때 그는 2007년 1월 이후 가장 밝고 차분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전날 LG 타선을 7이닝 무실점으로 막아 시즌 2승을 기록했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 올 시즌 배영수는 잃어버린 자신감과 잊었던 웃음을 찾았다(사진=삼성) |
배영수는 승리를 축하한다는 덕담에 “마음을 비우고 또 비웠다”며 “승리보다 경기에 출전하고 마운드 위에서 즐길 수 있다는 게 무엇보다 기쁘다”라고 겸손해했다. 그의 말대로 마음을 비운 까닭일까. 그와 대화를 나누는 동안 어디에서도 구속에 대한 스트레스는 느껴지지 않았다. 그도 이제 수용 단계에 접어든 듯했다.
이날까지 배영수는 3경기에 선발출전해 2승 평균자책 0.47을 기록 중이었다. 이닝당 출루허용률(WHIP)은 0.79에 불과했다. 리그 최고였다.
그즈음 많은 이가 “전해 1승12패를 했던 그 배영수가 지금의 배영수냐?”라고 물었다. 그에게 같은 질문을 했다. “그 배영수가 지금의 당신이 맞느냐?”라고.
배영수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지난해는 정말 공 던지기가 무서웠다”라고 털어놨다. 무슨 공을 던지든 타자에게 맞을 것 같았단다. “마운드 위에서 내가 가장 자신 있는 공을 던져야 하는데 타자가 가장 못 칠 것 같은 공을 던졌다. 이미 난 타자와의 기 싸움에서 진 상태였다.”
이때 그의 손을 잡은 이가 있다. 누나 배현정 씨다. 배영수는 어렸을 때부터 어려운 환경에서 야구를 해왔다. 그를 돌봐주던 할머니가 돌아가시자 누나가 그의 뒷바라지를 도맡아 했다. 누나 현정 씨는 자포자기하려는 배영수에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마라”고 응원했다. “네가 아니라 널 응원하던 이들을 위해서라도 반드시 재기하라”고 당부했다.
따지고 보면 그도 모르는 게 아니었다. 대구구장을 포함해 어느 구장을 가도 자신의 등번호가 새겨진 유니폼을 입고 ‘목청이 터져라.’ 응원하는 팬이 있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순간, 배영수는 자신이 어째서 재기해야 하는지 깨달았다.
그때부터 배영수는 자신의 문제점을 세밀하게 분석했다. 첫 번째 찾은 부진의 이유는 왼쪽 발목이었다.
“2005년 7월 제주 경기 때 공을 던지다 왼쪽 발목을 심하게 다쳤다. 평소에도 발목이 좋지 않았는데 그날 이후로 계속 발목이 불편했다. 지난해는 원체 아프다 보니 와인드업 한 다음 왼발을 땅에 닿는 것조차 고통스러웠다. 당연히 공에 힘이 붙지 않을 수밖에. 지난해까지 고질적인 부상으로 알았는데 삼성트레이닝센터(STC)에 입소하고서 충분히 회복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 "배영수의 구속저하와 제구 난조는 팔꿈치보다는 왼쪽 발목 부상에서 이유를 찾아야 한다"는 게 재활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왼쪽 발목 재활에 성공한 배영수는 이제 공에 힘을 실을 줄 안다(사진=삼성) |
지난 시즌이 끝나고 나서 배영수는 두 번이나 STC에 입소했다. STC 센터장인 안병철 박사의 권유 때문이었다. 안 박사는 배영수의 부진을 ‘토미 존 수술’ 때문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되레 왼쪽 발목 부상으로 축이 되는 왼쪽 다리가 확실히 지면과 밀착하지 않으면서 전체적인 신체 밸런스가 무너지고 이 때문에 구속 저하와 제구 난조가 찾아왔다고 분석했다.
안 박사는 배영수에 “STC의 최첨단 장비와 일급 트레이너들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왼쪽 발목을 완쾌시킬 수 있다”며 자신감을 심어줬다. 사실 틀린 말도 아니었다.
STC는 ‘태릉선수촌을 능가한다’는 평을 들을 만큼 국내 최고의 재활시설과 숙련도를 자랑한다. 전문의학기구로 분류될 수 있는 40여 종의 재활기구를 완비했을 뿐만 아니라 2개의 수영장 레인과 최첨단 ‘아쿠아 마사지’ 시스템을 갖췄다.
![]() ‘아쿠아 마사지’는 초기 재활치료에 꼭 필요한 기구로 꼽힌다. 특히나 야구선수들의 근력강화 및 재활을 돕는 매우 효과적인 최첨단 장비로 정평이 나 있다. 일본프로야구에서도 ‘아쿠라 마사지’ 시스템을 갖춘 곳은 한신 타이거스가 유일하다(사진=스포츠춘추 박동희 기자) |
10년 이상 축적된 데이터도 STC의 자랑이다. 방대한 데이터 덕분에 개개인의 각종 신체 기능과 부상 정도를 고려한 ‘맞춤형 재활’이 가능하다. 배영수는 STC에서 지긋지긋했던 왼쪽 발목 부상에서 벗어났다. 그리고 잃어버렸던 투구 밸런스 역시 찾을 수 있었다.
‘기존의 나’를 버린 배영수
왼쪽 발목이 아프지 않자 배영수 특유의 짧고 경쾌한 투구폼이 돌아왔다. 그래도 아직 구속엔 변함이 없었다. 지난 시즌이 끝난 뒤부터 선동열 감독은 배영수에 “변화해야 한다. 기존의 나를 버리지 않으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기자들을 만나도 같은 이야기를 되풀이했다. 선 감독이 이같이 주장한 이유는 “(배영수가) 예전의 강속구를 다신 던지긴 어려울 것”이라는 예상 때문이었다.
그런 연유로 선 감독은 배영수에 “구속에 집착하기보다 몸의 밸런스를 좋게 만들어 속구의 공 끝을 살리는 방안을 연구해야 한다”면서 “다양한 변화구로 타자들을 속일 줄도 알아야 한다”라고 조언했다.
![]() 삼성 선동열 감독과 배영수. 두 이 모두 한국프로야구를 대표하는 강속구 투수였다. 그래서일까. 선 감독은 "배영수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안다"라고 말한다(사진=삼성) |
선 감독은 과거 주니치 드래건스 시절 ‘기존의 나’를 버린 기억이 있다. 선 감독의 말을 들어보자.
“한국에서 ‘국보급 투수’라고 불렸지만 일본 데뷔 첫해는 그야말로 실망 그 자체였다. 2군으로 강등되고서 차분히 자신을 돌아봤다. 무엇이 문제인지,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지 곰곰이 생각했다. 그때 내린 결론이 ‘나를 버려야 한다’는 것이었다. 투구폼부터 시작해 새로운 변화구 습득 등 조금의 가능성만 보여도 무엇이든 연구하고 개발했다. 당시 포크불, 체인지업 등 배우지 않은 변화구가 없을 정도다.”
선 감독은 지난 시즌 이후 ‘딱’ 한번 배영수에 ‘변화’를 언급했다. 지난 2월 오키나와 스프링캠프 때 목욕탕에서 우연히 만난 그에게 “영수야, 변하지 않으면 도태된다”고 말한 게 그것이다.
배영수는 선 감독의 조언을 적극적으로 수용했다. 구속에 집착하지 않는 대신 제구에 신경 썼다. 비록 시속 130km 후반대의 속구를 던져도 최대한 낮게 제구하려고 애썼다. 여기다 지난 시즌부터 본격적으로 던졌던 서클체인지업과 투심패스트볼의 완성도를 더 높였다. 대신 포크볼 구사는 ‘확’ 줄였다. 이유가 있다.
삼성 허삼영 전력분석팀장은 SK 김정준 배터리 코치와 함께 국내 최고의 전력분석가로 꼽힌다. 허 팀장은 “시속 140km 초반대의 속구로 효과를 보려면 그보다 구속 차이가 큰 시속 120km대의 서클체인지업을 던지는 게 유리하다”며 “여기다 시속 130km 초반대의 슬라이더를 섞어 던지면 구종간 구속 차이가 시속 10km 정도 나는 까닭에 타자들이 타이밍을 맞추기 무척 어렵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니까 구속의 가감 차이를 이용해 타자를 공략할 요량으로 서클체인지업을 구사한다는 뜻이다.
실제로 LG의 모 타자는 “(배)영수 형의 평균 구속이 130m 후반인 게 맞느냐?"라며 "체감 구속은 시속 140km 중·후반대”라고 밝혔다. 시속 120km대의 서클체인지업이 바깥쪽으로 들어오고서 시속 130km 후반대의 속구가 몸쪽으로 들어오면 타자들은 스피드건에 찍히는 구속보다 많게는 시속 10km까지 빠르게 느낀다.
![]() 넥센에서 삼성으로 이적한 장원삼(사진 가운데)과 배영수(사진 오른쪽)가 담소를 나누고 있다(사진=삼성) |
서클체인지업이 타자의 타이밍을 뺐기 위해서라면 투심패스트볼은 몸쪽 공략용이다. 선 감독은 ‘몸쪽 공을 던지지 못하는 투수는 단명한다’고 믿는다. 그래서 다시 현역으로 돌아가면 “싱커를 배우고 싶다”라고 말한다. 그래야 “투구수를 줄여 롱런할 수 있기 때문"이란다. 따지고 보면 몸쪽 공을 잘 치는 타자는 드물다. 투심패스트볼은 우타자 기준으로 몸쪽으로 빠르게 꺾이는 구종이다. 땅볼 유도에 더없이 좋다. 이는 투구수 절약과 직결된다.
4월 7일 목동 넥센 전에서 배영수는 7이닝 동안 6피안타 볼넷 하나로 무실점 호투를 펼치며 시즌 첫 승리를 따냈다. 이때 기록한 투구수는 84개. 13일 잠실 LG전에서도 7이닝을 무실점으로 막는 동안 투구수는 역시 84개에 불과했다. 투심패스트볼로 상대 타자를 땅볼 아웃 처리한 덕에 투구수를 많이 줄일 수 있었다.
최근 선 감독은 “(배)영수가 ‘칠 테면 쳐보라’는 식으로 과감하게 몸쪽 승부를 한다”며 “웬만한 자신감이 아니면 그렇게 던지기 어렵다”는 말로 ‘돌아온 에이스’의 호투를 칭찬했다.
나는 영원한 강속구 투수다.
4월 18일 문학 SK 전은 배영수엔 여러 가지 의미가 있었다. 먼저 강팀과의 만남이었다는 데 있다. 3월 31일 대구 KIA전 이후 배영수는 넥센, LG전에 나섰다. 그러나 두 팀은 강팀과는 거리가 있었다. 반면 SK는 이 경기 전까지 4연승을 달리며 1위 두산을 위협하는 강팀 가운데 강팀이었다.
두 번째는 상대투수가 SK 에이스 김광현이었다는 것이다. 최근 3년 동안 김광현은 삼성을 상대로 3승3패 평균자책 2.68을 기록하며 강한 면모를 보였다. 세 번째는 삼성이 4연패를 기록 중이었다는 것. 배영수가 다시 ‘에이스’ 소릴 들으려면 반드시 팀의 연패를 끊어줘야만 했다. 막중한 책임감으로 마운드에 오른 배영수. 힘껏 공을 던지지만.
![]() 4월 18일 문학 SK 전에서 배영수가 1회 6점을 내준 뒤 땀을 식히고 있다(사진=삼성) |
제구가 되지 않았다. 전체적으로 공은 높았고, 볼과 스트라이크의 차이가 컸다. 여기다 SK 타자들은 유인구에 속지 않았다. 다음 공을 미리 알기라도 하듯 정확히 기다렸다가 타격했다. 야수들도 별 도움이 되지 못했다. 1회 내준 6점 가운데 자책점은 4점이었다.
한편에서 “그러면 그렇지”라는 말이 들렸다. “배영수의 공이 타자들의 눈에 익혔다”라는 분석이 나왔다. “앞선 3경기에서 반짝했을 뿐 이제는 본 실력을 찾을 것”이라는 악담도 새어나왔다.
그러나 배영수는 1회를 제외한 5회까지 1점도 추가실점하지 않았다. 시즌 평균자책도 1.88로 여전히 뛰어나다. 이용철 KBS 해설위원은 배영수의 SK 전 패배를 "숙제를 남긴 경기"로 표현했다.
이 위원은 "변화구를 더 가다듬고 제구에 신경 쓰지 않으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 배영수 스스로 잘 알았을 것"이라며 "강속구 투수는 별다른 연구 없이 힘으로 윽박지르면 그만이지만, 기교파 투수는 항상 연구를 거듭해야 한다"라고 조언했다.
선 감독은 배영수에 많은 걸 바라지 않는다. 다만, 시속 110km대의 커브를 던졌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그러면 구종간의 구속 차이가 더 나, 더욱 효과적인 투구를 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 누가 아니겠는가. 어쩌면 그것이 기교파 투수가 사는 유일한 길일지 모르리라. 그때였다.
“누가 기교파 투수입니까?” 배영수가 눈을 크게 떴다. 그리고.
“저는 기교파 투수가 아닙니다"하며” 팔을 내저었다. 고갤 끄덕이는 기자에게 배영수는 그라운드를 보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지금 구속이 전부는 아닙니다.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더 나아질 겁니다. 설령 더 좋아지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괜찮다라, 진심일까.
“정말입니다. 왜냐? 스피드건에 찍히는 구속보다 제가 스스로 납득할 수 있는 구속이 더 중요하니까요. 진짜 강속구는”
진짜 강속구는?
“자신 있게 던지는 공입니다. 전 요즘 어느 때보다 제가 원하는 곳에, 원하는 공으로 자신 있게 투구하고 있습니다. 전 그래서…”
그래서…?
“아직 기교파 투수가 아닙니다.”
배영수는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인 시속 150km 강속구를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선 감독도 말은 “제구에 집중하라”고 하지만, 내심 강속구를 되찾길 바란다.
“야구든 인생이든 꿈이 없으면 안 됩니다. (배)영수도 마찬가집니다. ‘언젠가 다시 시속 150km 강속구를 던지겠다’는 꿈을 목표로 잡고 하루하루 노력하다보면 좋은 날이 올 겁니다. 날이 따뜻해지면 지금보다 시속 3~5km는 늘지 않을까 싶어요.”
설령 배영수가 다시 강속구를 던지지 못한다고 해도 낙담할 필요는 없을지 싶다. 그가 원하는 곳에, 원하는 공으로 자신 있게 투구하는 이상. 배영수는 영원한 강속구 투수이기 때문이다. -박동희 기자-
항상 노력해주길 바랍니다....팬으로서 누가뭐래도 넌 영원한 삼성의 에이스다!! ( 싸인 무시하지마라~~ 계속 생각나네 ㅠ ㅋㅋ )
첫댓글 성민씨 그날의 충격이 아직도 가시질 않나보네요...ㅋㅋㅋ
형님 보셨자나요.....렉서스 450 타고 본체만체 가는거 ㅡㅡ;;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담아두시긴...ㅋㅋ
기교라도 좀 부렸으면 좋겠다..ㅡㅡ; 올해 적응안되서 언제 추락할까.. 불안해서 영수투구를 보지를 못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