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비스 프레슬리
로큰롤의 제왕 King Of Rock 'N' Roll
대중음악의 태동기인 50년대에 로큰롤을 주류로 이끈 최초의 록스타
빌보드 Hot100 1위 17곡 보유로 역대 3위, UK차트 1위 21곡 보유로 역대 1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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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7년 6월 25일 공연 모습. 두 달 후 세상을 떠난다.
엘비스 아론 프레슬리(Elvis Aaron Presley 1935.01.08.~1977.08.16.)는 미국의 배우이자 가수로, 그의 음악은 미국과 영국을 중심으로 세계적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으며 로큰롤의 제왕이라는 평을 갖고 있다. 그는 비주류 장르였던 로큰롤을 가요계 주류로 끌어올린 최초의 록 아이콘으로 흑인음악과 백인음악을 주 장르로 불렀으며, 로큰롤, 가스펠, 록 음악, 펑크(Funk), 발라드, 팝 등의 장르에서 모두 정상급에 올랐다. 그는 전세계적으로 프랭크 시나트라, 비틀즈와 마이클 잭슨과 함께 대중음악에서 전 세계적으로 가장 큰 인기를 끈 시대적 아이콘으로 평가받는다.
자수성가한 입지전적 인물로도 평가된다. 이는 몇몇 음악책에는 그가 성공 후 이야기한 그냥 어머님께 선물로 드릴 레코드를 한장 발매하려고 레코드 회사를 찾았다가 하루아침에 스타가 된 트럭운전수 젊은이를 정설로 받아들이기 때문인데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엘비스는 1950년대 초반부터 기타를 배우면서 가수의 꿈을 키우고 있었고 그와 함께 음악적 교류를 하던 사람들이 브루넷츠 형제(이들은 후에 조니 브루넷 트리오로 이어진다)였고, 사실 엘비스는 여러가지 밴드나 가수 경연대회에 수차례 응모했다 떨어진 전적이 있으며, 새 멤버를 구하는 기성 밴드들의 오디션에 응모했다가 떨어진 일도 비일비재했다. 즉, 밑바닥부터 기어올라간 자수성가형은 사실이나 트럭 운전수 일을 하며 꾸준히 오디션에 참가했으며 어머니를 위해 제작한 판은 어머니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다는 심리적인 압박을 견디지 못해 하다못해 자작판이라도 만들어 선물하자는 결심으로 제작한 것이라고 한다.
서독 주둔 미군에서 군 생활을 해서 독일 민요 Muss i denn, muss i denn zum Städtele hinaus(노래는 즐겁다)를 'Wooden Heart(목석같은 마음)' 라는 곡으로 개사해 부른 게 유명하다. 이 곡은 엘비스가 출연한 영화 G.I.블루스에 삽입되었다.
공식적인 데뷔 후 미국에선 보수적인 세대들에게 혐오를 받았으나 젊은 층에게 인기는 대단했다.
70년대에도 엘비스의 인기는 여전했으며, 1973년 하와이 콘서트는 세계 최초로 인공위성으로 생중계된 공연이 되기도 하였다.
하지만 엘비스는 나이가 듬에 따라 체중이 늘기 시작했고, 약물 치료 등을 해 보았지만 별다른 효과를 보지 못했다. 그래서 1977년 1월 그의 몸무게는 100킬로그램이 넘었을 정도였다고 한다. 결국 1977년 8월 16일, 엘비스는 미국 테네시 주의 멤피스에서 자택의 욕조에서 쓰러진 채로 발견돼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향년 42세의 나이에 심장마비로 별세했다. 일설에 의하면 변기 위에서 반쯤 바지를 벗은 채로 약을 맞다가 사망했다는 소문이 있었으며 별로 곱게 생을 마감했다는 이야기가 아닌지라 이 이야기는 카더라 취급을 받는다. 이런 사례때문에 망가진 록스타의 전형으로 까이기도 한다. 그 밖에도 살빼기위하여 손 댄 게 마약이라는 소문도 있다. 그래서인지 로보캅 2를 보면 그의 사진과 그를 연상케하는 말라빠진 미이라가 잠깐 나오기도 한다. 마약밀매범들이 쾌락과 마약으로 죽은 가수라고 찬양하는 이미지. 그덕에 타블로이드 저널리즘의 대표적인 희생양이기도 하다. 우리나라는 그에 대한 관심이 적어 보도되지 않지만 아직도 많은 미국과 영국의 타블로이드들이 그의 사생활에 대해 근거없는 루머를 생산 중이다.
그런데 근래에 들어 새로운 사망설이 제기된다. 바로 변비로 인한 죽음이다. 실제로 엘비스 사망 후 부검에서 엄청난 양의 대변이 발견됐고 몸무게가 갑작스럽게 불어난 이유를 근거로 신빙성이 떨어진다곤 할 수 없다. 이 사망설에 의하면 엘비스 프레슬리는 대변을 보지 못해 힘겨워했고 항상 대변이 마려운 그 상태가 멈추지 않은 상태로 살아야 하는 고통을 느꼈다고 한다. 그래서 주치의는 항문이식수술을 권유했으나 엘비스 프레슬리는 연예인이라는 신분에 대한 중압감을 견디지 못해 차마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다가 몸에 계속 쌓여서 결국 중독되어 죽었다고 한다.
평가
북미 음악계에서 그의 위치는 아직도 확고해서 'King of Rock 'n' Roll' 은 그의 별칭이기도 하다. 영국에선 아직도 생존 가수들보다 더 많은 앨범 판매고를 올리는 등 영국과 아메리카 지역에서는 큰 인기를 누리는 중이다. 하지만 유럽은 현재 어떤 지 잘 모르니 잘 아는 사람들 추가바람.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50대 이상들은 엘비스 프레슬리가 누군 지 거의 다 알 만큼 유명했고 기성세대들에게는 인기가 많았지만 현재 젊은 이들은 엘비스 프레슬리가 누군 지 모르는 사람이 매우 많다. 알더라도 패러디된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아는 사람들도 많고.. 아마도 미국과 동양 간의 음악 취향 차이 때문인 듯.
비틀즈는 엘비스를 보며 로큰롤 뮤지션으로서의 꿈을 키웠다. 존 레논과 폴 매카트니 역시 60년대 초반까지 척 베리, 리틀 리처드, 버디 홀리와 함께 자신들에게 영향을 준 뮤지션으로 엘비스 프레슬리를 늘 언급했다. 밥 딜런도 자신은 엘비스 프레슬리가 되고 싶다고 말했었고 여기서 엘비스 프레슬리의 위대함이 드러난다. 사람들이 흔히 작곡이나 프로듀싱 능력을 최우선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대중음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결국은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냐인 것이다. 60년대의 전설적인 록 스타들이 당시 가장 핫한 로큰롤 스타인 엘비스 프레슬리를 보면 록 스타로서의 꿈을 꿨고 엘비스 프레슬리가 록앤롤 역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가지게 된 것은 자신에게 음악을 알려준 후배들의 우상에 대한 경배이기도 하다.
마이클 잭슨이 본격적으로 보는 음악의 시대를 열었는 데 그 전에 보는 음악이 성공할 수 있을 지 가능성을 보여준 게 엘비스라는 말도 있다. 당시로서는 기성 세대들에게는 폄훼를 받은 다리 떨기 등으로 큰 이슈를 끌었으니까 .. 한편, 마이클 잭슨은 엘비스에게서 받은 영향력은 하나도 없다고 말했다.
후일에 록 음악으로 불리게 될 장르 자체이자 조상이기도 한 로큰롤의 열풍을 불어넣은 주인공이지만 정작 그가 작사, 작곡한 곡은 없다. 그나마 초기 히트곡 중 하나인 Heartbreak Hotel만이 그가 공동작곡자 명단에 올라와 있을 뿐이다.
엘비스가 '위대하다'고 평가되는 이유 중 가장 큰 것은... 그의 음악은 흑인음악이라는 점. 한마디로 "백인이 흑인음악으로 세계적인 사랑을 받았다". 지금은 상상할수도 없을 정도로 흑/백 차별이 심하던 시대에 인종의 크로스오버를, 그것도 성공적으로 이루었다는 점.
은근히 까도 많은 편이여서, 평가 절하하는 사람도 의외로 많으며 70년대 펑크 록 뮤지션들이 엄청나게 씹어댔다. 이들은 이전 세대인 히피문화부터 구닥다리 로큰롤까지 모두 척살 대상으로 삼았다. 심지어 더 클래쉬는 그들의 노래 "1977"에서 No Elvis, Beatles or Rolling Stones in 1977이라고 노래했다. 그런데 클래쉬가 위에 언급된 뮤지션들을 싫어했는지는 알 수 없다. 애초에 그들의 앨범 London Calling의 커버 자체가 엘비스 프레슬리의 'Elvis Presley' 앨범에 대한 오마주였으니까. 특히 흑인 음악 쪽에서는 '흑인의 음악을 훔쳐와 적당히 흑인 색을 탈색시킨뒤 백인들의 인기를 얻었다'며 싫어하기도 한다(이런 시각은 특히 힙합 쪽에서 찾아볼수 있는데 모스 데프 1집의 'Rock & Roll'이나 퍼블릭 에너미를 들어보면 알 수 있다.). 커트 코베인은 자신의 기타 케이스에 엘비스의 욕을 적어놓기도 하였다.
아무래도 문제는 그가 이후의 록 아티스트와는 달리 창작곡이 없던데다가 대다수 히트곡이 (라기보단 전부) 흑인 작곡가, 싱어가 버젓히 있는 원곡이 있었다. 인종 차별로 흑인 싱어의 음악은 방송금지 되었고 오로지 메이저 채널에서는 엘비스의 음악만을 들을 수 있었던 시대적 배경을 보면 흑인들 입장에서 열이 안 받을 수가 없다. 이런 현실은 영화 드림걸즈에서 잘 표현된다. 이에 빡쳐서 흑인들이 메이저에 진출하려고 만든 제작사가 바로 스티비 원더, 마빈 게이, 마이클 잭슨 등등을 배출한 모타운이다. 게다가 저작권 법이 잘 잡혀지지 않았던 시절이라곤 하지만 엘비스는 죽을 때까지 흑인 작곡가들에게 단 1페니도 지불하지 않았다. 참고로 엘비스는 자기 운전수에게 캐딜락(미국에서 제일 비싼 차)도 펑펑 선물하던 사람이다. 그래서 엘비스 프레슬리가 위대한 가수(Singer)이기는 해도 예술적으로는 별 볼 것이 없다는 의견도 많다.
이런 사실들과 말년에는 약물 문제로 인해 죽었다는 점에서 당대에는 평론가들에게도 대차게 까이기도 했지만, 엘비스가 대중들에게 아주 큰 인기를 끌었다는 점과 그가 남긴 영향력은 지속 돼 현재는 평론가들도 모두 인정한다. 평가는 계속 변하는 것.
여담으로, 한국의 가수 남진이 엘비스 프레슬리를 반쯤 벤치마킹한 사실도 유명하다.
일본의 미남배우 오키 마사야가 그를 굉장히 존경했다고 한다. 하지만 말년에 엘비스가 비만이 된 모습에 충격을 받아, 채식을 고집하는 모습을 보였다.
가족
아버지가 교도소에 있을 당시 집이 없어서 컨테이너를 개조한 집들이 모인 곳에서 살아야 했다. 하지만 어머니는 가난 속에서도 그를 무척 아꼈기에 어머니를 무척 좋아했다. 상술한대로 성공한 엘비스는 활동 초기의 음반들은 어머니의 생일을 위해 조그마한 싱글 레코드나 한장 만들어서 선물할까 하는 생각에 레코드 회사를 찾아가서 만든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엘비스의 어머니는 1958년, 40대 나이로 어머니가 급사하는 통에 그를 절망시켰다. 게다가 당시 군복무 중이라 제대로 임종을 지키지 못하여 죽을 때까지 후회했다고 한다.
아버지와는 어릴 적에 여러가지로 서먹서먹했지만 그래도 가수로서 대박을 거두면서 아버지를 위해주었고 아버지도 어릴적 가난 속에 절망으로 술과 여러가지로 아들을 못살게 굴던 것을 후회하며 아꼈다. 그래서 아들이 갑자기 죽자 아버지도 충격 속에 죽은 아들을 부여안고 통곡하면서 떨어지지 않았다고 한다. 엘비스의 장례식에서 아버지 버너드는 종일 이렇게 중얼거렸다고 한다. "엄마를 만나러 간거니? 그래... 너를 꾸짖지 않으마. 이 애비도 곧 가서 우리 식구 다 같이 영원히 오붓하게 살자꾸나." 그리고 제대로 먹지 못하고 아들의 사진을 쥐고 멍하게 지내다가 결국 1979년 아버지도 66살 나이로 아들과 아내를 따라갔다.
리사 마리 프레슬리 - 딸
1968년생. 명성이 어마어마한 아버지를 둔 관계로 본인의 실력이나 의지와 상관없이 데뷔 전부터 스타행. 때문에 미국 언론의 지속적인 관심을 받아왔는데, 특히 마이클 잭슨과 결혼하며 엄청난 화제가 되었다.
네 번 결혼하였는데, 첫 번째 남편은 Danny Keough라는 뮤지션으로 88년에 결혼하여 94년에 이혼하였다. 그와의 관계에서 두명의 자녀를 얻었는데, 아래에 나올 라일리 키오가 포함되어 있다. 이혼 이후로도 여전히 친구로 지내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두 번째 남편은 다들 알다시피 마이클 잭슨. 자세한 내용은 항목을 참조할 것. 리사 마리가 첫남편과 이혼하자마자 마이클 잭슨과 결혼하였다. 이로 인해 일부에서 마이클 잭슨이 언론플레이를 위해 리사 마리와 계약 결혼한 것이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되기도 하였다. 두 사람 사이에 자녀는 없었으며 2년 뒤인 96년에 이혼하였다. 그러나 이후로도 친구로 지냈다고 한다.
세 번째 남편은 니콜라스 케이지. 2002년 결혼했으나 100일 만에 이혼 발표. 이유에 대해선 공개되지 않았다.
네 번째 남편으로 기타리스트인 마이클 락우드와 2006년 결혼하여 2015년 현재까지도 부부로 함께 하고 있다. 2008년 쌍둥이 자녀를 출산하였다. 이후 영국으로 이주했는데, 2012년에는 길거리 음식을 파는 트럭에서 알바 중이라는 사실이 화제가 되었다. 160억 짜리 저택에서 사는 여인인 관계로 돈 벌려고 한 것이 아니라 친구 가게에서 심심풀이 삼아 해봤다는 것.
여기까지라면 그냥 유명한 아버지와 유명한 전남편들로 유명한 여인에 지나지 않을 것이나, 니콜라스 케이지와의 이혼 이후 뜬금없이 가수로 데뷔하였다. 2010년대 이후로도 꾸준히 활동 중. 데뷔 당시는 '갑자기 뭐하는 짓?' 정도의 평가였으나, 이후 아버지 빨을 받은 백만장자의 취미생활은 아닌 것으로 인정받았다.
1998년에 스웨덴에 사는 리사 요한센이 '나, 리사 마리 : 엘비스 프레슬리의 진짜 딸 이야기'라는 자서전을 발표했다. 자사전에는 전세계가 엘비스 프레슬리의 딸로 믿고 있는 리사 마리 프레슬리는 가짜라는 내용이 담겨져있었다. 그녀의 주장에 따르면 그녀는 1968년 2월 1일 엘비스 아론 프레슬리와 프리실라 앤 불리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어린 시절 멤피스에 위치한 엘비스 프레슬리의 저택인 그레이스랜드에서 보냈는데, 아버지의 유산을 물려받을 성인이 될 때까지 당분간 피신해 있어야 한다는 엄마에 말에 이름도 세리 로젠퀴스트로 바꾸고 유럽에서 숨어 살았다고 한다. 이유는 요한센이 DNA 검사를 거부했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2011년에 소송을 제기한다. 이 부분은 2015년 9월 6일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에서 다루었다.
라일리 키오 - 외손녀
1986년생. 모델 겸 배우. 2010년에 데뷔하였으나, 이후 출연작 중 한국에서 흥행한 작품은 없었던 관계로 한국에는 잘 알려지지 않아왔다.
그러나 2015년 개봉된 매드 맥스: 분노의 도로에서 케이퍼블 역으로 출연, 이 영화가 전세계적으로 좋은 결과를 낳은 덕분에 한국에서도 제법 인지도를 얻게 되었다. 한편, 매드 맥스 촬영 중 알게 된 스턴트맨과 2014년에 결혼하였다.
생존설
생전 높은 인기 때문에 '죽었다고 했으나 실은 살아있다'란 음모론의 원조격이기도 하다. 21세기가 된 지금도 여전히 심심하면 생존설이 튀어나온다. 사실 죽기 전까지 행방이 묘연한데, 이를 두고 많은 음모론이 일어났으나, 통설은 그가 도넛을 너무 좋아하여 지나치게 살이 찐 나머지 소속사에서 감추었다고 한다.
요런 마케팅용 훼이크까지 나왔다.
엘비스 생존설을 채용한 작품
음모론을 모티브로 한 어드벤쳐 게임 '왕을 찾아서'는 아예 엘비스를 찾는 내용이다.
소설 멋진 징조들에서는 한 찌라시가 교황에게 '엘비스를 보았냐'고 인터뷰를 했다. 그리고 기아가 운영하는 패스트푸드점에서 햄버거를 굽고 있다. 흥이 나면 자신의 노래를 흥얼거리는 듯. 죽음은 그에게 손가락 댄 적도 없다고 한다.
소설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에서는 포드 프리펙트가 소설 5권에서 지구로 귀환하던 중 레스토랑에서 술집 가수로 일하고 있었다.
영화 맨 인 블랙에서는 K가 엘비스는 자신의 고향 별로 돌아갔다고 언급한다.
영화 죽어야 사는 여자에서는 불로불사를 얻는 대신 사회적으로 사망해야 하는데, 이 규칙을 가끔 어기고 있다고.
겁스 무한세계에서는 무한경비대 특무부에 평행세계의 엘비스중 하나가 소속되어 있다고 한다.
겁스 판타지에서는 유르스에서 음유시인일을 하고 있다.
샬레인 해리스의 로맨스 소설 수키 스택하우스 시리즈에서 영안실로 실려온 엘비스 프레슬리를 본 뱀파이어가 팬심을 이기지 못하고 뱀파이어로 되살리고 만다. 엄청난 유명인이기 때문에 루이지애나의 뱀파이어들 모두가 그를 숨기고 '부바'라고 부른다.(소설 내에서 본명은 한번도 나오지 않으나 묘사는 틀림없이 엘비스이다.) 부활할 때 뇌세포가 파괴되어 지능이 낮아지고 고양이피만 마시게 되었다.(안습)
부바호-텝이라는 영화에서는 우리가 알고 있던 엘비스가 사실은 그를 따라 하던 모창 가수였으며, 진짜 엘비스는 삶에 회의를 느껴 모창 가수와 바꿔치기 한 뒤 홀연히 자취를 감추게 된다. 세월이 흘러 거동이 불편해진 지금은 노인 요양원에서 과거 여자와 마약에 찌들어 가족을 소홀히 했던 자신을 후회하며 살아가고 있었으나, 노인들의 영혼을 빨아먹기 위해 나타난 고대 이집트의 미이라가 나타나자 홀연히 그와 맞서 싸운다. 배우는 브루스 캠벨. 여담으로 본작에서는 케네디 대통령도 생존해 있는 채로 같은 요양원에 입원해 있다.
컨츄리꼬꼬의 노래 '명옥씨 엘비스는 죽지 않았어요'도 해당 설을 차용한 바 있었다.
티미의 못말리는 수호천사의 몇몇 에피소드에서도 등장한다. 뚱뚱한 엘비스이며 해변의 모래사장 밑 지하에 살고 있었다. 도넛을 좋아했다는 이야기에 걸맞게 도넛을 씹어먹는 모습으로 나타났으며, 지하세계에 로큰롤 왕국을 세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