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부터 요즘은 생기가 돌고 살 맛이 난다. 그녀가 나타나고부터다. 그녀의 강의를 듣는 시간은 내내 즐겁고 신이 나며 힘이 넘친다. 그 여운이 일주일은 거뜬히 지속한다. 여러 가지 일과 운동을 해봤지만 사람이 사람에게 기를 받는다는 것을 처음으로 실감해 본다.
노인복지관 건강증진 프로그램에서 몇 번 그녀를 만났다. 책임 교수로 몇 번 강의실을 찾은 것이 인연 전부였다. 지적이고 고상한 분위기에 호감을 느껴 그녀가 권유하는 다른 프로그램도 듣게 되었다.
그 프로그램은 학기 초 남자 강사가 수업을 진행했다. 그녀의 제자라는 것을 빼고는 마음에 드는 구석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그 남자. 건방지고, 성실하지도 않은데다 강의도 시원치 않았다. 늘 연체동물처럼 늘어져 흐느적거리며 게으름이 뚝뚝 떨어졌다. 그 남자와 같이 있으면 기가 빠져나갈 것만 같았다.
아무리 그녀가 권한 과목이지만, 계속 수강을 해야 할지를 심각하게 고민하던 중에 강사의 개인 사정으로 휴강한다는 문자를 받았다. 다른 강사가 나타났지만, 그 강사도 일정상 여의치 않은 모양이었다. 우선 하루만 긴급 투입되었다고 했다. 남자 강사는 사고로 장기 요양이 필요한 모양인데 마땅한 강사를 구하지 못했다. 이러다 영영 강사를 구하지 못하고 폐강해야 할 처지가 될 수도 있겠다 싶었다.
다음 주 검정 체육복에 흰 운동화를 신은 생기발랄한 아가씨가 등장했다. 수강생 전체가 눈이 똥글똥글해 쳐다보다가 일어서서 손뼉을 치며 환호했다. "마땅한 강사를 구하지 못해 당분간 제가 직접 강의하도록 하겠습니다"라는 것으로 보아 책임 교수인 모양이다. 내가 알고 있었던 투피스를 입은 지적인 교수님의 모습과는 전혀 달랐다. 하지만 출석을 부를 때 어색하게 웃으며 슬그머니 돋보기안경을 꺼내어 끼는 것을 보니 그녀인 것 같기도 했다.
변신한 그녀의 움직임은 연신 생기를 뿜어낸다. 발걸음에서도, 말소리에서도, 손동작이나 몸의 움직임 하나하나에서조차 기가 쏟아진다. 그냥 보기만 해도 생기가 넘친다. 음악에 맞추어 율동을 할 때는 삶이 이렇게 아름답고 행복하게 느껴질 수도 있구나 싶었다. 체육이 이렇게 본인과 남에게까지 좋은 일을 할 수가 있다는 것을 느끼자 추억이 떠오른다.
고등학교 3학년 때 담임 선생님은 체육 교사였다. 담임이지만 그 수업을 들은 적은 거의 없었다. 물론 시간표에는 일주일에 한두 번씩 체육이 있었지만, 그 시간은 영어나 수학 수업으로 대체했다. 진로를 결정하는 문제로 담임 선생과 면담을 했을 때 선생님은 느닷없이 체육교육학과를 지원하라고 했다. 체육 교사는 평생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최고의 직업이라고 말했다. 담임 선생님이 나에게 농담으로 하는 말이지 싶어 피식 웃었다. 그러자 선생님은 더는 권유하지 않았다. 당시 학생들은 영어나 수학 교사는 지적이고, 체육 교사는 지적이지 못하다는 생각하는 터였다.
한번은 체육 이론 수업을 하는 날이었다. 건강을 흑판에 한자로 쓰다 잘 생각이 나지 않는지 머뭇거렸다. 한참을 생각하다 느닷없이 누가 담배를 가지고 있으면 한 개비 달라고 말했다. 담배를 가지고 있을 턱도 없지만 설사 있다고 여기 있다고 하고 내어놓을 천치는 없을 것이 뻔한데도….
선생님은 교무실로 가서 담배를 물고 교실로 들어와서는 흑판에다 健康이라고 쓰고는 멋쩍게 웃으며 담배를 피워야 생각이 잘 난다는 시늉을 했다. 아무도 무슨 말도 하지 않았지만, 아마 교무실에서 담배만 가지고 오지 않았다고 여겼을 것이다.
체육을 담당하는 선생님은 아주 편했다. 국어 영어 수학 등의 주요 입시 과목은 물론이고 수능에 관련된 과목의 선생님은 업무가 무척이나 바쁘고 애를 많이 쓴다. 그에 비하면 체육 선생은 운동장에 공 몇 개 던져놓고 신나게 놀기만 하면 되었다. 같은 봉급을 받으면서도 쉽고 편하고 재미있게 살 수 있겠다는 생각은 했지만, 그래도 체육 교사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만약 그때 선생님의 권고에 따라 체육 교사가 되었더라면 나도 그녀처럼 살지 않았을까 싶다.
세상에서 제일 좋은 직업은 내가 건강하고 행복하여 남에게까지 그 기운을 나누어줄 수 있는 직업이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