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콤한 태양광발전
- 장홍제 광운대학교 화학과 교수
문화 강국이 된 현재, 대한민국을 상징하는 것은 수없이 많다. 음악, 예술, 게임 등 다양한 측면에서 공고한 정체성을 만들어왔지만, 그 이전부터 세계화를 위해 많은 노력이 투입되어 온 것은 역시나 음식이다. 비록 이제는 김치를 시작으로 비빔밥이나 불고기, 막걸리와 같은 대중적인 음식이 보급되고 인정받고 있지만, 그보다 강렬한 이미지로 남겨진 것들도 있다. 영화 <올드보이>에 등장하며 서구권에서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혐오식품으로 일종의 밈(meme) 화가 이루어진 산낙지나, 나라마다 서로 손가락질하며 질겁하는 곤충류 식품 중 대표주자인 번데기가 있다. 그리고 하나 추가하자면, ‘왜 한국 음식은 다 새빨갛고 매운 것인가?’라는 질문에서처럼 고추의 매운맛을 빼놓을 수 없다.
고추와 캡사이신
우리가 가장 즐겨 먹는 매운맛의 채소는 고추다. 한반도에 고추가 어느 시기에 유입되었는지, 또 어떤 역사가 있는지는 많은 논쟁이 되는 주제이기도 하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현대 식문화는 맵고 자극적인 맛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치닫고 있는 만큼, 고추가 빠지는 음식을 찾아보기 어렵다. 물론 모두가 매운맛을 즐기는 것은 아니다. 매운맛은 수용체에 의한 미각이 아닌 통각의 일종인 만큼 온전한 맛을 즐기는 것보다는 자극에 매료된 것일 수도 있다.
고추가 매운맛을 갖는 것은 캡사이신이라는 화학 분자에 의한 결과다. 식물들이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니코틴(nicotine)이나 카페인(caffeine)을 생산하던 것처럼, 캡사이신 역시 보호와 번식을 위한 기발한 결정이었다. 고추 열매를 파먹고 배설을 통해 씨를 넓은 곳에 퍼뜨리기 좋은 조류는 캡사이신 수용체가 없다. 매운맛을 느끼지 못하니 새들에게는 단순히 먹음직스러운 열매 중 하나일 뿐이다. 하지만 고추 입장에서 그다지 매력적이지 못한 전달자이자 탐욕스러운 폭식가들일지 모를 포유류는 기피 대상이었다. 자연스레 포유류가 뜨거운 열감과 통증을 느끼도록 만드는 수용체를 대상으로 캡사이신이 선택적 자기방어 목적으로 탄생한 셈이다.
한국인이 즐겨 먹는 고추 중 청양고추는 평균적으로 10,000 스코빌 지수(Scovillescale)라 한다. 스코빌 지수는 윌버 스코빌이 창안한 매운맛 관능 검사로, 더 이상 뜨거운 열감이 혀에서 느껴지지 않을 만큼의 희석도를 수치로 표현해 비교하는 방식이다. 계속해서 더욱 매운 고추들이 품종개량을 통해 만들어지고 있지만, 한계는 명확하다. 순수한 캡사이신의 스코빌 지수인 16,000,000이 최대치일 테니 말이다. 극단적으로 매운맛을 소량의 재료로 만들어내기 위해 캡사이신을 주원료로 사용한 핫소스 등도 하나씩 출시되고 있다. 물론 점점 더 매운 극단을 향해서.
캡사이신의 몰랐던 효능
니코틴과 카페인, 아스파탐에 이어 가장 자주 들어서 친숙해진 캡사이신이지만 궁금증은 여전하다. 하나씩 진실을 이야기해보자면, 먼저 순수한 캡사이신은 우리 생각처럼 새빨갛지 않다. 오히려 높은 순도로 정제되어 하얀 가루의 모습을 갖는다. 이러한 캡사이신은 고추류 채소에서 추출하는 것보다 더욱 높은 가격대를 형성하고 있다. 화학 실험용 캡사이신의 경우 최근 소비자가 기준으로 단 50 mg의 소량에도 16만 원에 달하는 가격대를 보이고 있다. 높은 순도의 물질은 원래 비쌀 수밖에 없다고 넘겨버리긴 쉽지 않다. 실험용 은(Ag) 시약인 질산 은(AgNO3)은 25 g을 구입해도 10만 원이 채 넘지 않으며, 금(Au) 시약인 염화 금(HAuCl4) 또한 무려 1 g을 구입해야 20만 원을 조금 넘는 정도이기 때문이다. 앞으로 매운 음식이 사실은 비싼 통증 유발 물질이라 생각한다면 묘한 기분이 들지도 모르겠다.
매운 음식을 먹으면 스트레스가 풀린다고 말하기도 한다. 물론 사실이다. 매운맛으로 유발되는 통증으로부터 뒤이은 도파민 분비가 기분을 전환해주니 기분이 좋아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조금 더 전문적인 결과도 확인됐다. 우울증이 유발된 쥐를 물에 띄우면 별다른 움직임 없이 한 곳에 가만히 떠 있는 모습이 관찰된다. 그런데 캡사이신을 체내에 주입한 경우, 활동량이 확연히 증가하는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심지어 그 정도는 대표적인 우울증 완화 약물인 아미트립틸린(amitriptyline)을 주사한 경우에 비견되었으며, 아미트립틸린과 캡사이신을 함께 투여한 경우 더 적은 양으로도 확연한 우울증 완화가 확인된다. 매운 음식을 먹고 기분이 좋아지는 것은 근거가 있는 해석인 셈이다. 하나 더 나아가 ‘이열치열’이라는 유명한 사자성어를 매운맛 측면에서 재해석하는 것도 가능하다. 캡사이신이 작용하는 과도수용체 전위 바닐로이드 수용체 1, 줄여서 ‘TRPV1’이라는 수용체는 뜨거운 열감과 관련돼 있다. 캡사이신 분자가 수용체에 결합하면 통로가 열리며 칼슘 이온들이 세포 내부를 향해 빠르게 유입된다. 그 결과 신경 자극과 생체 반응이 시작되며 피부로는 뜨거움과 매운맛의 통증을, 신체에서는 다양한 반응이 시작된다. 그중 통증에 대한 국소 마취 효과가 주목받았다.
캡사이신은 방향족 고리 부분과 긴 사슬 형태의 탄화수소가 아마이드(amide) 결합으로 연결된 구조적 특징을 갖는다. 명료하게 구분되는 구조는 화학적으로 접근해 다양한 유사체를 설계하고 합성할 수 있다는 것과 같다. 캡사이신의 매운맛, 즉 자극과 열감은 감소시키되 마취 효과는 유지되는 화학구조에 대한 스크리닝에서 실제로 마취제로 사용 가능한 물질들이 탄생하고 있다. 매운 음식은 스트레스 해소, 마취/진통 효과, 그리고 열감에 대한 감각 둔화로 이어지는 만큼, 매운 것으로 뜨거운 것을 잡는다고 연결 짓는다면 이열치열은 매우 과학적인 표현이 아닐 수 없다.
캡사이신을 친환경 에너지로
가장 흥미로운 캡사이신의 효능은 2021년 처음 보고된 연구 결과에서 등장한 태양광 발전 효율 상승이다. 점차 신재생 에너지의 개발 수요가 증가하며 태양광발전은 가장 손쉽게 적용할 수 있는 현실적인 친환경 발전 방식으로 주목받고 있다. 더 저렴한 비용과 적은 환경부담으로 더욱 높은 효율의 발전이 가능하도록 개량하는 것은 현재 과학기술 분야의 커다란 과제 중 하나다. 실리콘 태양전지, 유기태양전지, 염료감응 태양전지 등 제각기 장단점을 갖는 신소재를 이용한 태양광발전이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다. 그중에서도 혜성처럼 등장해 내구성은 조금 부족할지언정 효율 측면에서 빠르게 치고 나가는 중인 페로브스카이트(perovskite) 태양전지도 흥미롭다.
재미있게도, 잘 조리된 음식에 먹음직스러운 고춧가루를 살짝 뿌리듯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에 캡사이신을 넣으니 갑작스레 발전 효율이 증가했다면 믿어지는가? 메틸 암모늄과 납(Pb), 그리고 아이오딘(I)으로 이루어진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의 초기 효율은 19.1%로 측정되었는데, 캡사이신을 첨가한 경우 무려 21.88%로 향상되었다. 단 1%의 효율을 높이기 위해 수없이 많은 방법이 시도되는 것을 감안한다면, 매운맛 추가로 2.78%p의 효율이 증가했다는 것은 경이로운 결과다. 심지어 안정성마저 높아 800시간의 구동 이후에도 초기 효율의 90% 이상으로 유지되었다.
물론 매운 음식을 먹다 우연히 캡사이신이 튀어 들어갔다거나, 요리하는 기분으로 재미 삼아 넣어본 것은 아닐 것이다. 예상되는 원리와 시뮬레이션에 적합하며, 친환경적이고 확보하기 쉬운 물질이 우연히 캡사이신이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캡사이신은 페로브스카이트 결정들을 팽창시켜 전기를 더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때문이라고 해석된다. 태양전지 표면의 자유전자 수를 증가시키고, 열에 의한 손실을 감소시키는 중요한 역할이 캡사이신에 의해 이루어진다. 물론 모든 원리가 완전히 밝혀진 것은 아니며, 캡사이신이 완전한 답인 것도 아니다. 하지만 생물체에서 유래한 일상적인 화학물질이 무기물만으로 이루어진 가장 첨단 분야에 융합되어 완전히 새로운 결과를 만들어내는 장면은 짜릿하다. 캡사이신은 그 매운맛만큼이나 화끈하게 흥미로운 분자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