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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 전쟁? 조용한 기름값! 미국이 뒤에 있다
[3인3색 통계사용 설명서] #1. EIA - 에너지 통계가 주는 시사점
신재생에너지 시대 이끄는 美, 기술혁신으로 21세기 산유대국 지위도
재정 악화 사우디-러시아, 미국 견제 '오일 전쟁' 불가능
한국 원유수입국 중동 비중 급감, 대신 미국 수입비중은 18%로 상승
적자 한전 + 미국산 값싼 석유의 유혹... '2050년 탄소중립 한국'은?
흔히 숫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우리가 일상에서 숫자를 중요한 판단의 근거로 삼는 것은 이 때문이다. 정부가 통계를 법으로 엄격히 관리하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다. 하지만 또 숫자는 자주 거짓말에 동원된다. 고도화된 자본주의로 세상을 쉽게 이해하기 어려워진 지금은 더 그렇다. 그래서 필요한 게 ‘통계 사용 설명서’다. 적어도 누군가의 거짓말을 스스로 판별할 수 있어야 한다. 숫자와 친해지면 내 눈으로 세상을 해석하는 것도 가능해진다. 물론 숫자와 노는 건 즐겁지 않다. 그래서 쉽고, 재밌게 풀어보려 한다. 첫번째로 미국의 에너지 가격 변화 추세와 중동 정세의 상관관계에 대해 알아본다. [편집자 주]
미국과 석유.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다. 손꼽히는 ‘기름밭’인 중동도 마찬가지다. 중동은 석유라는 칼로 국제정세를 뒤흔들 수 있다. 중동을 손에 쥐고 있으려는 미국의 욕망은, 그래서 노골적이면서도 은밀했다. / 사진=셔터스톡
중동 전쟁 후 오히려 잠시 내려간 유가, 도대체 왜?
미국과 석유.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다. 지구의 패권을 쥔 미국이, 지구인의 생사(生死)를 쥐고 흔들 수 있는 석유를 가만둘 리 없다. 손꼽히는 ‘기름밭’인 중동도 마찬가지다. 중동은 석유라는 칼로 국제정세를 뒤흔들 수 있다. 피로 점철된 중동의 근대 역사는, 종교와 석유 두 축으로 쓰였다. 중동을 손에 쥐고 있으려는 미국의 욕망은, 그래서 노골적이면서도 은밀했다.
갑자기 웬 석유 타령이냐고? 세상이 변하고 있다는 걸 숫자가 보여주기 때문이다. 기름밭 중동에서 전쟁이 터졌다.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인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기습한 게 서막이었다. 그로부터 100일이 넘는 시간이 흘렀다. 미사일이 오가는 물리적인 공간은 중동 전역으로 확산하는 모습이다. 이 때문에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홍해 바닷길도 막혔다.
그런데 이상하다. 중동에서 전쟁이 난 것 치고는 기름값이 너무 조용하다. 2023년 9월 27일 중동산 두바이유의 가격은 배럴당 95달러였다. 전쟁은 10월에 터졌다. 이후 두바이유 가격은 오히려 70달러대까지 미끄러졌다. 확산 일로를 걷던 전쟁을 비웃기라도 하듯 말이다. 물론 맏형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해 중동 산유국은 전쟁에서 멀찌감치 떨어져 있다. 그래도 유가가 내려가는 건 이상하지 않나. 최근에야 조금 반등해서 배럴당 80달러 선으로 올라서긴 했지만.
결론은 이렇다. 거대한 변화가 이미 일어났다. 조각조각으로 우리에게 알려졌던 저 숫자 너머에서 말이다.
10년 새 미국 석유 증산 규모, 4등 산유국 하나 생긴 꼴
지난해 12월 국내 한 경제 일간지에 ‘제2의 아메리칸 오일붐’이란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12월 초 미국의 일일 원유 생산량이 역대 최고 기록을 갈아치웠다는 내용이었다. 실제로 지난달 미국은 하루 평균 1,330만 배럴의 원유를 뽑아냈다. 팬데믹 직전에 세웠던 기록을 가뿐히 넘어선 수치다. 그렇다. 유가의 상승 압력을 찍어 누른 건 바로 미국의 ‘예상치 못했던’ 증산이었다.
자, 이제부터 중요한 수치가 등장한다. 미국 에너지정보청(EIA)에 가면 쉽게 찾을 수 있는 숫자다. 변곡점을 차근차근 따라가 보자.
미국의 하루 평균 원유 생산량은 2010년대에 접어들면서 가파르게 상승한다. 2014년 12월 미국의 원유 생산량은 일평균 956만 배럴. 팬데믹으로 원유 생산량이 급감하긴 하지만, 증가세를 꺾지 못했다. 그렇게 해서 미국 역사상 가장 많은 원유를 생산하게 되는 역사적 시점에 도달하게 된다. / 자료=미국 에너지정보청(https://www.eia.gov/dnav/pet/hist/LeafHandler.ashx?n=pet&s=mcrfpus2&f=m)
2000년대만 하더라도 미국의 하루 평균 원유 생산량은 평균 500만 배럴 수준이었다. 오일쇼크로 미친 듯이 유전을 개발할 때인 1970~1980년대에 비하면 50% 수준에 불과했다. 그러다 2010년대에 접어들면서 생산량이 가파르게 상승한다. 이른바 ‘셰일 혁명’이다. 2014년 12월 미국의 원유 생산량은 일평균 956만 배럴. 이전 고점이었던 1970년 11월(1,004만 배럴)에 가까운 수치다.
2015년 무렵 한차례 뒷걸음질 치는 모습을 보이지만 이후 원유 생산량은 다시 크게 늘었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지구를 습격하기 전까지 말이다. 팬데믹으로 다시 한번 원유 생산량이 급감하지만, 그래도 증가세를 꺾지 못했다. 그렇게 해서 미국 역사상 가장 많은 원유를 생산하게 되는 역사적 시점에 도달하게 된다.
10년 새 미국이 늘린 원유 생산량은 일평균 기준으로 대략 500만 배럴이다. 이게 어느 정도냐고? 지난해 9월 기준 산유국 서열 4위인 캐나다의 생산량이 480만 배럴이었다. 그다음 순위인 이라크는 430만 배럴, 중국은 400만 배럴이다. 10년 새 빅3(미국, 러시아, 사우디) 다음 가는 산유국이 하나 더 생긴 거다.
예상치 못했던 유가 안정세는 이 때문이다. 전쟁 때문에 불확실성이 높아졌음에도 거대 투기자본이 원유가 오르는 데 베팅하지 않는다? 기름이 많이 쏟아져 나오는 걸 그들도 알고 있는 것이다.
물론 미국만 증산하고 있는 건 아니다. 산유국 서열 7위인 브라질도 지난해 일평균 40만 배럴을 더 생산했다. 브라질은 2029년 세계 5대 산유국에 이름을 올리겠다는 야심 찬 계획을 세워놨다. 대규모 유전을 개발하고 있는 가이아나에서도 전년 대비 하루 10만 배럴의 원유가 더 나왔다.
대략 셈을 해보자. 미국이 2023년에 전년 대비 더 뽑아낸 원유가 일평균 130만 배럴이다. 브라질과 가이아나의 증산량을 더하면 180만 배럴. 석유수출국기구(OPEC+)가 2022년 10월 감산에 합의한 일평균 200만 배럴에 맞먹는 규모다(아무도 모를 수 있지만, 여전히 감산 중이다). 이러니 유가가 안정세를 보일 수밖에. 더욱이 전 세계를 뜨겁게 달구던 인플레이션이 식을 만큼 경기가 좋지 않다. 석유 수요가 많이 줄었단 얘기다.
유정은 줄어드는데, 원유 생산량은 더 늘었다?
그런데 이상하다. 미국은 신재생에너지의 선두 주자 중 하나다. 단순히 태양광이나 풍력발전소를 많이 짓는 게 다가 아니다. 최근 몇 년 동안 자본시장의 돈이 석유산업으로 흘러가지 않았다. 석유 개발 프로젝트가 허가를 따기는 바늘구멍. 특히 바이든 행정부에선 더 도드라졌다. 자연스레 그 돈은 신재생에너지 시장으로 돌아갔고, 이게 우리가 아는 에너지 전환이다.
이는 통계에도 명확히 드러난다. 미국의 원유 및 천연가스 활동 유정 굴착장치(rigs) 수의 연도별 추이를 보자(역시 미국 EIA가 친절하게 정리를 해놨다. 새삼 느끼지만, 미국이란 나라는 숫자의 위대함을 너무도 잘 알고 있다. 우리나라와 달리).
미국의 원유 및 천연가스 활동 유정 굴착장치(rigs) 수의 연도별 추이. / 자료=미국 에너지정보청(https://www.eia.gov/dnav/ng/hist/e_ertrr0_xr0_nus_cm.htm)
오일쇼크가 미국을 강타한 직후 1980년대를 보면, 기름을 찾아 땅을 파는 굴착 장비가 4,000개가 넘는다. 이후 급감해서 1,000개 수준으로 떨어졌다. 셰일 붐이 일기 시작한 2,000년대 후반 들어 다시 2,000개 수준으로 늘었고. 이후에는 계속 감소 추세다. 심지어 역사적 기록을 세웠다는 지난해엔 619개로 전년 12월 대비 20%나 줄었다.
원유 생산량과 겹쳐보자. 10년 전인 2014년 활동 유정수는 2,000개가량이다. 원유 생산량은 일평균 800만 배럴 정도. 지금은 유정 수가 619개로 줄었지만, 원유 생산량은 1,330만 배럴까지 늘었다. 유정 숫자는 4분의 1토막이 났는데, 4등짜리 산유국이 하나 더 생겼다니. 그 사이 우리도 모르게 미국이 어마어마한 유전을 개발했던 것일까. 정말 ‘갓 블레스 아메리카(God Bless America)’인가. 숫자로만 보면 믿기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수치에 나오지 않는 맥락을 알아야 한다(맥락까지 찾아낼 수 있어야 진정한 통계 사용 설명법!).
다 쓴 유정 ‘재탕’했더니, 생산량이 두 배
미국에서 유정이 줄어드는 이유는 간단하다. 시대가 바뀌었다. 석유 시대가 저물어 가고, 신재생에너지 시대가 열리고 있다. 환경단체는 '석유산업 투자는 지구를 죽이는 일'이란 무시무시한 딱지를 붙인다. 셰일 업체가 살아남는 방법은 하나다. 바로 생산성을 극단적으로 높이는 거다.
셰일 오일은 생산량 측면만 놓고 보면 아주 비효율적인 개발법이다. 원래 유전 개발은 땅속 깊은 곳에 ‘고여 있는’ 원유를 뽑아내는 것이다. 돈도 많이 들고, 개발 기간도 오래 걸리지만, 찾아내기만 하면 거의 100%를 뽑아 쓸 수 있다.
셰일은 아니다. 지하 암반층에 ‘젖어(wet)’ 들어간 원유나 천연가스를 캐는 게 바로 셰일 프로젝트다. 기껏해야 매장량의 10% 정도를 뽑아 쓸 수 있을 뿐이다. 다만 개발에 걸리는 시간도 짧고, 돈도 적게 든다. 이른바 가성비가 좋은 개발법이다. 그래서 딱 10%를 뽑아 쓰고 유정을 닫았다.
그런데 시대가 바뀌었다. 새 유정 개발은 허가가 나지 않는다. 그래서 최대한 뽑아 쓰는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공법이 바로 '재수압파쇄법'(refracturing)이다.
셰일 혁명에 불을 붙인 건 '수평시추'와 '수압파쇄법'(fracking)이다. 전통적인 공법은 수직 시추였다. 기름이 고여있는 유정에 빨대처럼 시추관을 꽂는 방법이다. 이 방법으로는 셰일 오일을 뽑아내기 어렵다. 기름이 한 곳에 고여 있지 않아서다. 그래서 수평 시추관을 셰일 암반층에 밀어 넣고, 거기에 고압의 물을 쏴 암반층에 균열을 냈다. 그 균열로 원유와 천연가스가 흘러나왔다. 균열을 오랫동안 유지하는 것까지가 수압파쇄법이다.
재수압파쇄법은 여기서 딱 한 걸음 더 나아간 공법이다. 닫았던 유정을 다시 열었다. 그리고 파쇄를 더 촘촘히, 그리고 멀리까지 균열을 낼 수 있도록 기술을 개선했다. 쉽게 말하면 ‘재탕’이다. 당연하게도 기름이 더 많이 흘러나올 수밖에 없다. 10%만 뽑아 썼으니까. 유정 하나당 생산량이 두 배, 세 배까지 늘어났다.
물론 이게 다는 아니다. 미국 에너지 컨설팅업체 라이스타드에 따르면 지난해 9월까지 미국에선 8,900여 건의 파쇄가 있었다. 이 중에 재수압파쇄는 고작 200건에 불과했다.
당연하게도 다른 공법의 개선도 있었다. 셰일 오일 수평 시추관의 길이는 1.5~1.6km 정도였다. 한데 이 길이를 3km까지 늘였다. 또 수직 시추관 하나에 보통 6개가량의 수평 시추관을 이었는데 이 숫자도 늘렸다. 이런 기술 개선이 모이고 모여 혁명적인 생산성 향상을 불러온 것이다.
미국 EIA도 이런 기술 개선이 깜짝 놀랄 만한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했다. 2022년 무렵 EIA가 예상했던 2023년 미국의 원유 생산량은 일평균 1,250만 배럴이었다. 한데 80만 배럴이 더 나온 것이다. 80만 배럴은 베네수엘라의 일평균 원유 생산량이다.
미국 증산, 사우디도 못 막는다
이럴 때 등장하는 악당이 있었다. 바로 사우디와 OPEC. 이미 사우디는 미국과 2014년 무렵 ‘오일전쟁’을 벌였다. 당시 미국의 활동 유정 수가 1년 새 5분의 1토막 나고, 원유 생산량도 급감했다. 당시 사우디가 OPEC을 총동원해 미국 셰일 업체를 공격했다. 수단은 증산이었다. 이른바 ‘홍수 전략(flooding strategy)’. 당시 미국 셰일 업체의 손익분기 유가(Break-even price)는 배럴당 50달러 수준. 유가를 그 밑으로 떨어뜨리는 게 목표였다.
당시의 분위기를 아주 잘 보여주는 장면이 있다. 2014년 11월 OPEC 회의. 당시 OPEC 회원국의 불만이 터져 나왔다. 담합으로 유가를 너무 내려 앉혀서 국가부도 코앞까지 간 나라도 있었다. 알리 알 나이미 사우디 석유장관은 이들 회원국에 이렇게 얘기했다. "OPEC 회원국은 미국 셰일 오일 붐에 맞서 싸워야 하고, 미국 셰일 업체를 죽이려면 계속 증산해야 한다." 결국 사우디의 뜻대로 흘러갔다. 국제유가를 30달러대로 끌어 내리자 미국 셰일 업체는 연쇄 도산했다.
이번이라고 그러지 말란 법은 없다. 그런데 너무 조용하다. 되레 1년 넘게 감산 중이다. 감산을 풀 기미도 안 보인다. 다른 숫자를 봐도 쉽게 나설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국제통화기금(IMF)의 계산에 따르면 사우디의 균형재정 유가는 2023년 기준 배럴당 85달러다. 그 정도 값은 주고 팔아야 재정적자가 안 쌓인단 얘기다. 더욱이 무함마드 빈살만 사우디 왕세자는 천문학적인 돈이 들어가는 ‘비전 2030’을 추진 중이다. 미국이랑 싸울 여력이 없단 얘기다.
사우디의 균형재정 유가는 2023년 기준 배럴당 85달러다. 그 정도 값은 주고 팔아야 재정적자가 안 쌓인단 얘기다. / 자료=FRED(https://fred.stlouisfed.org/series/SAUPZPIOILBEGUSD)
OPEC+의 다른 축인 러시아도 마찬가지다. 우크라이나 전쟁 때문에 나라 곳간이 녹록지 않다. 유럽에 내다 팔던 파이프라인 천연가스의 돈줄도 끊겼다.
과거처럼 밀어내기 전략이 어려워진 이유는 또 있다. 미국 셰일업체의 생산성 혁명으로 손익분기 유가가 더 내린 것이다. 미국 이글포드 지역의 ‘기존’ 유정의 손익분기 유가는 배럴당 평균 28달러 수준이다. 30달러까지 유가를 끌어내리면, 버티지 못하는 건 오히려 사우디나 러시아가 될 수 있단 얘기다.
석유·천연가스 둘 다 거머쥔 역사상 초유의 산유국 탄생
이런 변화가 맞물리면서 미국은 석유와 천연가스라는 화석연료 시대를 지탱하는 두 기둥을 모두 장악한 역사상 초유의 산유국이 됐다. 미국이 그간 중동 정세에 노심초사했던 건 바로 원유 수급 때문이었다. 미국도 어마어마한 산유국이지만, 캐내는 것보다 쓰는 게 항상 많았다. 그래서 기름줄이 끊기면 안 됐다. 한데 셰일 오일의 생산성 혁명으로 드디어 쓰는 만큼 국내에서 원유를 생산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게 이미 2020년의 일이다. 심지어 남아서 해외에 파는 원유 순수출국이 됐다.
미국도 어마어마한 산유국이지만, 캐내는 것보다 쓰는 게 항상 많았다. 한데 셰일 오일의 생산성 혁명으로 드디어 쓰는 만큼 국내에서 원유를 생산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게 이미 2020년의 일이다. / 자료=미국 에너지정보청(https://www.eia.gov/energyexplained/oil-and-petroleum-products/imports-and-exports.php)
천연가스도 마찬가지. 2022년 미국의 천연가스 수출량은 1,870억입방미터(㎥)로, 러시아를 멀찌감치 제친 1위였다. 특히나 LNG 수출 물량은 5년 새 다섯 배나 늘었다. 러시아가 빠져나간 유럽 시장을 아주 손쉽게 장악했다. 앞으로도 천연가스 수출은 더 늘 것이다. 수출을 위한 LNG 수출 터미널을 계속 짓고 있으니까.
관건은 지속가능 여부다. 미래를 누가 장담하겠냐마는, 미국의 증산 속도는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EIA도 2024년에도, 2025년에도 일평균 20만 배럴씩 원유 생산량이 추가될 것으로 내다봤다.
이 장면도 눈여겨 볼만하다. 지난 6월 엑손모빌 최고경영자(CEO)가 이렇게 말했다. "프래킹 공법(수압파쇄법)이 오래전부터 있었지만, 우리가 잘 이해하지 못했다. 앞으로는 더 정밀하게 파쇄하고, 그 균열을 더 오랫동안 열어두는 방법을 연구하겠다." 그렇게 셰일 오일 생산량을 2배 늘리겠다는 것이다.
엑손모빌은 이후 600억 달러(78조 원)를 들여 파이오니어내추럴리소시즈(PXD)라는 셰일 업체를 인수했다(그리고 미국 대선에선 화석연료를 좋아하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당선 가능성이 커지고 있기도 하다).
그리고 세계의 공장으로 불렸던 중국은 가라앉고 있다. 언제 다시 부상할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다. 여기에 유럽도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즉 화석연료의 수요가 구조적으로 줄고 있는 것이다.
늘어나는 미국산 원유, 우리는 이제 안심해도 될까
에너지 통계의 시사점은 이렇다. 미국의 오일 파워가 커지면, 카르텔인 OPEC의 힘은 줄어든다. 산유국의 담합을 덜 걱정해도 된다는 얘기다. 더욱이 미국은 우리나라의 최우방국이다. 실제로 우리나라가 사다 쓰는 미국산 원유의 비중도 꾸준히 커지고 있다. 10년 전만 해도 중동산이 85%였다. 미국산은 전무했고. 최근엔 중동산이 60% 수준으로 낮아졌고, 미국산은 전체의 18%까지 덩치를 키운 것으로 추정된다(역시 이런 추세는 EIA 통계로 확인할 수 있다. 아니 도대체 왜 우리나라 통계로는 찾을 수 없는 건지).
우리나라가 사다 쓰는 미국산 원유의 비중은 꾸준히 커지고 있다. 2013년 10월 기준 10만 배럴에 미치지 못했지만 2023년 10월 기준 2천만 배럴을 상회한다. / 자료=미국 에너지정보청(https://www.eia.gov/dnav/pet/hist/LeafHandler.ashx?n=PET&s=MTTEXKS1&f=M)
다만 이런 숙제는 있다. 탈탄소 시대다. 우리나라의 석유 의존도는 매우 높다. 그럼에도 에너지 비용은 매우 싸다. 에너지 전환에 따른 고통이 클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걸 감내하겠다는 국민은 없다. 한전의 적자 사태만 봐도 알 수 있는 일이다. 그런데 2050년 탄소중립을 달성하겠다고 국제적으로 약속도 해놨다. 과연 석유를 안정적으로, 그러니까 싸게 쓸 수 있는 게 우리에게 좋은 일일까.
글쓴이 김상훈은
유튜브 채널 언더스탠딩의 취재기자다. 2011년 서울경제신문에 입사한 뒤 기획재정부와 한국은행, 산업통상자원부, 금융위 등 경제 부처를 두루 출입했다. 2021년 언더스탠딩으로 자리를 옮겨, 경제 전반에 대한 취재와 방송을 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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