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흥군 여행] 소록대교, 거금대교.거금휴게소...........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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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록대교 (달리면서 자동으로 찍은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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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고흥 소록대교,거금대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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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정원에서 나온 유랑자는 이제 고흥이 자랑하는 거금도를 가기 위해서 소록대교를 찾아 올라선
다, 소록대교는 거금대교와 맞물려 가는 코스이기 때문에 또 다른 멋을 자랑하는 다리로 알려져 있다.
본시 녹동항은 벌교-고흥-녹동간 국도 27호선 4차로가 개통되었고 2009년 소록대교 개통으로 거금
도까지 다리가 연결된 덕분에 이제는 철부선이나 여객선을 타지 않아도 갈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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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1만 5천의 조용하고 풍요로움이 가득한 전형적인 항구 도시 녹동항을 벗어나 달리는 소록대교
의 멋스러움은 가히 환상적이다. 마치 용궁으로 들어가는 관문같다라는 생각에 유랑자는 창문을 열
고 천천히 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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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록대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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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록대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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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록도 대교는 거금도 연륙교라고도 불린다. 길이 1,160m, 왕복 2차로의 다리로 연결 도로를 포함하
면 3,460m에 이른다. 전라남도가 연결도로 공사비를 합해 1652억원을 투입해 2001년 6월 착공해 200
8년 6월 완공하였으나 섬 안의 연결도로 공사가 지연되어 2009년 3월에야 완전 개통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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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정 모노케이블 현수교로, 12개 교각이 있고 중앙부분에 주탑 2개가 케이블로 연결되어 있다. 교량
상판을 매단 케이블을 지탱하는 높이 87.5m의 주탑 2개는 두 손을 모으고 있는 형상이다. 통영에서부
터 출발한 길 이순신 대교를 비롯 팔영대교까지 그동안 대여섯개의 대교를 거처 지나왔다. 각각의 예
술성과 풍광을 자랑하며 유랑자의 눈을 늘겁게 해준 대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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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록대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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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교 아래로는 20여년전에 관광차 방문했던 소록도가 아스라이 펼처진다. 소록도는 여의도의 1.5배
정도로 섬 전체가 국립소록도 병원으로 지정되어 있고 한센병 환자와 병원 직원, 자원봉사자 등 600
여 명의 주민이 살고 있으며 한 해 30만 명의 관광객이 찾고 있는 섬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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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소록대교의 개통으로 녹동항까지의 소요시간이 20분에서 5분으로 단축되어 주민의 왕래가 편
리해졌으며 관광객 증가에도 일조하고 있다. 본시 소록대교는 소록도 주민들의 보다 자유로운 육지
왕래와 소록도를 활용한 관광객 유치를 위해 만들었다는 게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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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록대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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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금대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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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록도 남쪽 해안에 익금, 금장, 서쪽 해안에 연소, 고라금 해수욕장이 자리하고 있어 여름철 피서객
들이 즐겨 찾는 섬으로 고흥군의 대표적인 관광지로 자리 잡은지 오래다, 소록대교에 이어 바로 이어
지는 거금대교!. 거금도로 들어가는 관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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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교는 바다를 배경으로 아름다운 곡선미를 자랑하며 마치 한폭의 그림같은 거금대교가 눈앞에 펼처
진다. 소록대교가 용궁으로 들어가는 관문이라면 거금대교는 하늘나라로 통하는 천상의 다리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해무사이로 바다와 숲길을 가르며 곡선미를 자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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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금대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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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금대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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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금대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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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금대교는 현대건설이 지난 2002년 12월 착공한 거금대교가 9년 간의 갖은 난관을 뚫고 드디어 201
1년 12월 말 완공되었다. 거금대교는 국내 섬 중 열 번째로 큰 거금도와 소록도를 잇는 연도교(連島
橋)로 총 사업비 2732억원을 투입해 2002년 12월에 착공하여 2011년 12월 16일에 완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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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중 해상교랑(사장교) 구간은 1.116km, 접속교 구간은 912m를포함 2.028km를 차지한다. 대한민국
처음으로 자전거·보행자 도로와 차도를 구분한 복층 교량으로 만들어 진게 특이한 점이다. 주탑과 교
량 상판을 케이블로 비스듬히 연결한 사장교((斜張橋)인 거금대교는 거금도 육상도로 3.174km, 소록
도 육상도로 1.467km 등 총 6.67km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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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게소에서 바라본 거금대교의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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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금대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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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금대교 차도 아래 인도교,(사장교중 대민국 최초로 복층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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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금대교의 건립 배경에는 고흥군에서 1994년 국도 제27호선 기점을 도양읍 봉암리에서 금산면 오천
리로 연장시킬 것을 건의해 건설부(지금의 국토교통부)에서 이를 수용하여 국도로 승격시키면서 다
리의 필요성이 제기되었고, 이에 따라 전라남도에서 섬지역 도로망 확충계획에 따라 이 다리를 건설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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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다리를 통해 연결된 거금도는 대한민국의 섬 중에서 10번째로 크고, 5000여 명이 살고 있지만 이 다
리가 건설되기 전에는 도양읍의 녹동항에서 여객선을 이용해 20~30분 동안 가야 닿을 수 있었으나 2
011년 이 다리가 개통되어 사실상 육지가 되었으며 자동차를 이용해 약 5분이면 녹동까지 갈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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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금대교 차도 아래 인도교,(사장교중 대민국 최초로 복층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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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금도 둘레길(42.2㎞), 적대봉(592m), 고흥의 10경 중 7경인 금산 해안경관 등과 함께 프로레슬러 김일 선수의
고향으로 잘 알려진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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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다리를 건너면 바로 거금휴게소가 나온다. 거금도는 잊혀진 역사가 된 조선시대의 절이도 해전으
로 유명하다, 먼저 휴게소에는 하늘을 향해 손을 내민 동상이 서 있다. 나로호 우주발사기지를 형상
화한 작품이다. 여기에서 주차를 하고 거금대교의 조망을 비롯하여 아름다운 해상의 풍광을 조망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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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금휴게소는 금산면 신촌리 일대 4,377㎡의 부지에 지상 2층, 연면적 892㎡ 규모로 총 사업비 21억
2천만 원을 투자하여 2013년 7월 착공, 2014년 3월에 준공되었고, 내부에 한우직판장, 농수특산물 판
매장, 전복판매점, 낚시점, 편의점 등 각종 편의시설이 갖춰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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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게라고는 전망 좋은 카페 하나와 편의점이 전부이니, 소박한 휴게소가 맞다. 하지만 주차장 옆으로
넓게 펼쳐진 잔디밭과 거금대교 중간쯤에서부터 보일 만큼 거대한 ‘꿈을 품은 거인’ 조형물과 고즈넉
한 정자까지 있으니 여느 휴게소 못지않은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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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휴게소 북쪽으로 광활한 남해가 앞마당처럼 펼쳐져 있으니, 뷰게소를 찾으라 한다면 이곳
을 빼놓을 수 없다. 또한 바닷가로 몇 발자국을 걸어가니 '절이도 해전승전탑'이 있었다. 유랑자도 처
음 들어본 해전이라 즉석에서 핸폰으로 찾아보니 그럴만한 연유가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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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1598년 7월 24일에 있었던 절이도 해전에 대해 이순신이 조정에 보고한 <선조실록 103>의 내
용이다. 자료를 살펴보면 절이도 해전은 녹도만호 송여종이 이끈 현지 수군의 독자적인 전승이었다.
위 승첩은 명량해전 이후 왜군의 보복 공세가 남해안 지역에 휘몰아친 상황에서 적에게 타격을 주었
고, 서남해안이 평정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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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해전의 결과는 당일 고금도에 보고되었고 운주당에서 주연을 베풀고 있었던 통제사 와 진린에게
보고됐다. 이 보고를 들은 진린은 명군이 활약하지 못한 것에 격분해 술잔을 내던졌다. 이에 통제사
이순신은 진린과 계금에게 각각 40급과 5급의 수급을 취하게 하며 이들을 달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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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게소는 주변의 아름다운 풍광과 함께 거금대교 광장에 "꿈을 품은 거인" 상징조형물(높이 20m)과 숲과 바다가 어우러진
힐링 공간인 거금 생태숲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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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은 조명연합군이 형성되고 첫 번째로 치러진 전투에 명 수군의 체면을 세워주려고 했고, 이 보
고서는 그대로 공식화됐다. 임진왜란, 정유재란 당시 전투력에 크게 기여한 고흥수군 이야기도 있는
데....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당시 전라좌수영은 5관 5포로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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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관은 순천도호부(여수), 보성, 낙안, 흥양(고흥), 광양현이었고, 5포는 흥양의 사도진, 발포진, 여도
진, 녹도진과 돌산 방답진으로 이루어졌다. 이순신이 지휘한 조선수군이 연전연승할 수 있었던 배경
에는 흥양지역 1관 4포 수군부대의 전투력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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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군편제상 전라도 연해지역은 해상 전투의 근거지일 수밖에 없었고, 실제 이 지역에서 동원된 인력
과 물자들이 해전의 승리를 가져다주었다. 즉, 군비 일체가 이 지역에서 마련되었을 뿐만 아니라 전
선의 격군, 사부 등 실전을 수행한 병사들 역시 현지의 고흥사람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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뿐만 아니다. 개전 당시 경상도수군이 패주한 상태에서 영남의 바닷길 사정에 어두운 전라좌수군으로
서는 쉽게 진군할 수가 없었다. 때문에 이순신 휘하 장수들 대부분이 경상도 지역으로 출전하는 데 부
정적이었다. 이때 녹도만호 정운이 이순신에게 자신의 뜻을 주장했다.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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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금도는 조선시대에 절이도(折爾島)라 불렀다. 그 후 강진군에 편입되었다가 광무 원년(1897년)에
돌산군 관하의 금산면(일명 居金)으로 개칭되었으며 일제강점기 시절인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시
에 고흥군 금산면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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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전에 의하면 거금도에 큰 금맥이 있어 거금도(居金島)라 불렀다고 한다. 조선 중기의 문헌에는 속
칭 "거억금도(巨億今島)"라고 기록되어 왔다. 적대봉의 산록에 형성된 마을 중 진막금, 전막금, 욱금,
청석금, 고라금 등 "ㄱ(받침)+금"으로 된 지명이 많아 거금도(거억금)와 같은 형태를 이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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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튼 거금도 휴게소는 바다를 전망하도록 만들어놓은 데크에 앉아 일 나가는 고깃배며 관광하는 유
람선이 오가는 것도 보고, 구름과 숨바꼭질하느라 나왔다 들어갔다를 반복하는 해가 물 위에 쏟아내
는 빛이 반짝이는 것도 보고, 바람이 오가며 흔들어대는 물결도 볼수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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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저 멀리 소록도까지 휘어져 돌아가며 이어지는 거금대교도 바라보면, 어느새 넉넉하고 평온
해진 마음에 ‘이게 휴가지’ 싶은 생각이 절로 들게 된다. 그리고 거금휴게소의 백미, 걸어서 거금대교
건너기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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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게소 아래쪽으로 조금만 걸어가면 거금대교 입구다. 2층 형식으로 이뤄진 거금대교는 위층은 차에
게, 아래층은 사람에게 내준다. 소록도까지 2㎞ 정도 거리인데, 바다와 하늘과 바람을 느끼며 천천히
걸으면 한시간쯤이면 왕복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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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야경이 아름답다는 것은 두말하면 입 아플 정도다. 해가 지고 달이 뜨는 시간이 되면 하늘과 바
다의 반짝이는 푸른빛이 사라지는 대신 노랗고 빨간 불이 거금대교를 수놓는다. 암흑 속 빛나는 거금
대교와 바다가 반사해내는 알록달록한 불빛들이 어우러진 풍경은 가히 절경이다. 이 야경을 보려고
일부러 이곳을 찾겠구나, 고개가 절로 끄덕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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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게소의 존재 이유는 먹거리’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라면 거금휴게소가 부실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
다. 하지만 지레 실망할 필요는 없다. 휴게소 내부는 아니지만 차로 5분 거리인 면소재지에 가면 먹거
리를 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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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고흥 9미 중 하나로 꼽히는 장어로 만든 장어두루치기를 파는 식당이 있다. 소금구이한 장어를
철판에 올리고 부추와 양파·고추를 함께 내놓는 이 생소한 음식은 담백하고 고소한 맛이 일품이다.
찬으로 나오는 남도김치까지 곁들이면 남쪽 끝까지 ‘뷰게소’ 찾아올 성 싶을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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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으로 거금도에는 거금도 둘레길(42.2㎞), 최고점은 적대봉(592m)이며 400m 내외의 산지와 더불어
문화재로는 대흥리에 있는 조개더미가 대표적이며 송광암, 금산리성지, 상하리 고인돌군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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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문화로는 당산제, 월포농악 등 민속놀이가 있으며. 고흥의 10경 중 7경인 금산 해안경관 등과 함
께 프로레슬러 김일 선수의 고향으로 잘 알려진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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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이도 해전 승전탑: 거금대교 휴게소 인근에 세워진 "절이도 해전승전탑" 모습. 절이도해전은 조선수군에게 복수하려던
왜군의 기세를 꺾어버린 해전이었다. 명량해전에서 이순신에게 참패한 왜군은 이순신에게 복수하기 위해 절이도 인근까지
왔다가 참패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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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랑자 여행기 이어보기
https://cafe.daum.net/b2345/9toB/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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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금도 휴게소
전남 고흥군 금산면 거금로 720
(지번)금산면 신촌리 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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