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시 ; 2023. 5. 7(주일) - 부활절 다섯째 주일, 어린이주일 - (2023년 19주)
제목;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 자녀”
성경; 삿 13:2-14 (p.384) (시 127:3-5, 453<506>, 559<305>, 1)
<예배의 부름>(시 127:3-5) “보라 자식들은 여호와의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 젊은 자의 자식은 장사의 수중의 화살 같으니, 이것이 그의 화살통에 가득한 자는 복되도다 그들이 성문에서 그들의 원수와 담판할 때에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리로다”
I.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계절의 여왕, 가정의 달 5월 첫째 주일 어린이주일을 맞이하며 우리 주님의 은혜와 평강이 충만하시길 기원합니다.
가정의 달 5월, 어린이주일인데, 그래서 오늘은 편안하게 최근 미국 백악관에 울려 퍼진 어린이합창단의 노래를 들으면서 시작하려고 합니다. (☞ ‘아리랑’ 동영상 보고)
제가 몇 년 전에 말씀드렸는데, 10여년 전 우리 민요 “아리랑”이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곡 1위에 선정됐습니다. 영국, 미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작곡가들로 구성된 선정대회에서 82%라는 높은 지지율로 단연 1위에 올랐습니다. 특히 선정단에는 단 한 명의 한국인도 없어 더욱 놀라게 했습니다. 우리 모두 긍지를 가져도 되겠다 하는 생각을 가지게 됩니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리도 못 가서 발병 난다”
그런데 혹시 “아리랑”의 참뜻을 알고 있는지요?
우리는 아리랑의 뜻에 대해 외국인이 물으면 한국인 임에도 불구하고 그 뜻과 의미를 제대로 답하지 못했는데 이제는 확실하게 알고 있고 대답해 주시길 바랍니다.
“아리랑”은 어떤 노래이며, 그 의미는 무엇일까요?
“아리랑”은 작가 미상의 우리나라 민요로써 남녀노소 누구나 잘 알고 부르는 노래로, 우리는 아리랑을 흔히 사랑에 버림받은 어느 한 맺힌 여인의 슬픔을 표현한 노래로 대충 그리 알고 생각하는데, 아리랑이라는 민요 속에 담긴 큰 뜻이 있습니다.
원래 참뜻은, ‘참 나를 깨달아 인간 완성에 이르는 기쁨을 노래한 깨달음’의 노래입니다.
“아”(我)는 ‘참된 나(眞我)’를 의미하고, “리”(理)는 ‘알다, 다스리다, 통한다’는 뜻이며, “랑”(朗)은 ‘즐겁다, 다스리다’란 뜻입니다.
그래서 “아리랑”(我理朗)은 ‘참된 나(眞我)를 찾는 즐거움’이라는 뜻입니다.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는 것은 ‘나를 찾기 위해 깨달음의 언덕을 넘어간다’는 의미이고, “고개를 넘어간다”는 것은 곧 ‘피안의 언덕을 넘어간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리도 못 가서 발병 난다”의 뜻은 ‘진리를 외면하는 자는 얼마 못가서 고통을 받는다’는 뜻으로, ‘진리를 외면하고 오욕락(五慾樂)을 쫓아 생활하는 자는 그 과보(果報)로 얼마 못 가서 고통에 빠진다’는 뜻입니다.
이러한 아리랑의 이치(理致)와 도리(道理)를 알고 나면 아리랑은 ‘한(限)의 노래’나 ‘저급한 노래’가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깊은 뜻이 담겨 있는 아리랑은 우리의 민요, 아니 이제 전 세계인의 노래가 되었음을 축하하고 기쁘게 생각해야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어린이주일입니다. 어린이들이 미국과 세계를 감동시키는 아리랑을 들으며 자부심이 들지요. 우리는 흔히 ‘농사 중 가장 중요한 농사가 자식 농사인데, 잘 안된다.’고 말합니다. 오늘 어린이주일을 맞이하며, 우리에게 주어진 자녀들을 어떻게 양육하면 잘 지은 농사가 되는지 살펴보며 은혜를 나눌 수 있기를 바랍니다.
II.
오늘 우리의 본문 말씀(삿 13:2-14)은 사사기의 12번째 사사이자, 마지막 사사인 삼손의 출생에 관한 기록입니다. 오늘 본문은 세 부분으로 되어 있습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마노아의 아내에게 삼손의 출생에 관해 알리는 2-5절, 마노아의 아내가 남편 마노아에게 이 사실을 알리는 6-7절, 마노아와 여호와의 사자의 대화를 기록한 8-14절로 나눌 수 있습니다.
오늘은 어린이주일입니다. 어린이주일이 되면 교회에서 아이들을 위한 많은 행사를 진행합니다. 과거에는 어른들이 아이들에 대하여 무심한 것에 대한 반성의 의미로 어린이날을 만들어 어린이를 독립적인 인격체로 대우하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최근 어린이날은 아이들이 얼마나 귀중한 존재인지를 새롭게 깨닫자는 의미가 큽니다. 예전 드라마에는 서슴지 않고 낙태를 종용하는 내용이 종종 방영되기도 하였습니다만 최근에는 보기 드뭅니다. 가정에서도 아이가 한두 명인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모든 식구가 집중하여 아이를 돌보며 사랑을 주고 있습니다. 이런 집중적인 관심과 사랑이 과연 올바른 교육인지에 대해서는 쉽게 판단을 내릴 수가 없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자녀를 원하지만 낳을 수 없었던 가정에 하나님께서 자녀를 선물로 주시면서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지를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이 우리에게 주는 자녀 양육과 교육에 대한 메시지는 무엇입니까?
1. 자녀는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은 마노아의 아내가 임신하지 못하므로 출산하지 못한다는 내용으로 시작합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서 반복해서 강조되는 표현이 “임신하지 못하므로 출산하지 못하였다.”(2,3)라는 표현입니다. 이는 인간의 능력으로는 출산하지 못하는 상황이었음을 반복해서 강조하는 표현입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마노아의 가정이 아이를 갖는다는 것은 절망적 상황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절망적 상황에서 여호와의 사자가 마노아의 아내에게 나타나 반복해서 강조한 표현이 “이제 네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리라.”(3,5)는 표현입니다. 이것은 자녀의 출산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뜻에 달려 있고, 하나님의 섭리 아래 마노아와 그의 아내가 아들을 낳게 되었음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가 절망적 상황에 처해 있을 때에 찾아오십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도무지 아이를 낳을 수 없는 절망적 상황,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마노아의 가정에 아들을 낳을 것이라고 말씀해 줍니다. 이것이 무엇입니까? 이것은 바로 우리에게 주어진 자녀가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임을 가르쳐줍니다. 자녀는 내가 노력해서 얻어지는 존재, 내가 구입해서 소유하게 되는 존재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자녀를 우리의 소유물이나 부모의 뜻을 이루어주는 존재 정도로 생각해서는 결코 안됩니다. 자녀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하나님께서 보내신 은혜의 선물입니다.
여기서 “임신하지 못하므로”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아카라’(עקרה)는 ‘뽑아내다’라는 뜻의 동사‘아카르’(עקר)에서 파생된 형용사로, 신명기 7:14(“네가 복을 받음이 만민보다 훨씬 더하여 너희 중의 남녀와 너희의 짐승의 암수에 생육하지 못함이 없을 것이며”)에 의하면 율법을 지키는 자가 받는 복에 반대되는 표현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여기에 “출산하지 못하더니”라는 표현이 더해져 자녀를 낳을 수 없는 마노아의 아내의 절망적 상황을 강조합니다. 이런 절망적인 상황에서 여호와의 사자가 찾아와서 아들을 주겠다는 복음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가 절망적 상황에 처해 있을 때 찾아오셔서 ‘선물’을 주십니다.‘선물’이라는 말은 내가 노력해서 얻어지는 존재, 내가 구입해서 소유하게 되는 존재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꼭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자녀는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신 선물’입니다. 귀한 하나님의 선물을 내 마음대로 고쳐 쓰지 않기를 바랍니다. 귀한 하나님의 선물을 내가 원하는 방식대로 만들지 않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주신 그 뜻에 맞게 사용되고 존재하도록 하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도리입니다
2. 부모는 자녀를 잘 양육하고 교육하기 위해 끊임없이 기도하며 배워야 합니다.
여기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한 가지가 있습니다. 우리는 선물을 받았습니다. 그렇다면 그 선물을 주신 의미가 무엇인지를 물어보아야 합니다. 선물 자체가 본질은 아니기 때문입니다.하나님은 임신할 수 없는 여인에게 아들을 주셨습니다. 여인은 너무도 행복하고 감사하고 기쁩니다.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은혜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게 끝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에스더가 황후가 되었습니다. 황후가 된 이유가 있습니다. 은혜를 받았습니다. 은혜를 받은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을 깨닫고 살아갈 때에 진정한 은혜의 삶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주신 자녀들은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신 선물입니다. 그러므로 부모인 우리는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주신 자녀에게 어떻게 행해야 할지, 어떻게 기르며 무엇을 가르쳐야 할지 끊임없이 기도하며 배워야 합니다.
임신할 수 없는 마노아의 아내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겠다는 말을 듣고 남편에게 가서 여호와의 사자가 한 말을 전합니다. “보라 네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이제 포도주와 독주를 마시지 말며 어떤 부정한 것도 먹지 말라 이 아이는 태에서부터 그가 죽는 날까지 하나님께 바쳐진 나실인이 됨이라 하더이다”(7)이에 마노아는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마노아가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르되 주여 구하옵나니 주께서 보내셨던 하나님의 사람을 우리에게 다시 오게 하사 우리가 그 낳을 아이에게 어떻게 행할지를 우리에게 가르치게 하소서”(8)이에 하나님은 마노아의 목소리를 들으시고(9) 마노의 아내가 밭에 있을 때 하나님의 사자를 다시 보내주십니다. 그리고 급히 아내를 따라가서 다시 묻습니다. “마노아가 이르되 이제 당신의 말씀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이 아이를 어떻게 기르며 우리가 그에게 어떻게 행하리이까?”(12)우리는 여기서 참으로 중요하고도 당연한 진리를 배우게 됩니다. 자녀를 양육하는 부모도 바른 부모가 되기 위해 끊임없이 고민하며 쉬지 말고 기도하며 공부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언제가 읽었던 글에 이런 내용이 하나 있었습니다.
큰 도시의 후생국에 근무하는 한 여직원이 빈민가에서 일하게 되었습니다. 그곳에서 소아마비 장애가 있는 한 아이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 아이를 매우 불쌍히 여긴 그녀는 아이가 걸을 수 있도록 도와주기 위해 시내의 유명한 정형외과 의사를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의지할 곳 없는 아이에게 깊은 애정과 관심을 쏟아달라고 호소했습니다. 감동을 받은 의사는 무료로 그 아이를 수술해주었고, 후생국 여직원은 수술을 받은 아이에게 열심히 걷는 법을 훈련하고 가르쳤습니다. 똘똘하게 보이는 아이는 점점 건강해져 갔습니다. 오랜 세월이 흘러 중년 부인이 된 후생국 직원과 의사가 우연히 만나게 되었습니다. 옛일을 상기해낸 의사가 여인에게 물었습니다. “그 아이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무척 똑똑한 아이였는데, 지금쯤 과학자가 되었습니까? 아니면 박사가 되었습니까?”그러자 여인은 우울한 표정으로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그는 지금 사람을 죽인 죄로 교도소에 들어가 있습니다. 의사 선생님, 저는 그에게 걷는 법만을 가르치려고 애썼지 걸어가야 할 길을 가르치지 못했습니다.”
임신하지 못한 여인이 임신하여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물어보아야 합니다. ‘하나님 왜 이런 선물을 나에게 주셨는가요?’나에게 큰 사업장을 주셨고, 나에게 큰 물질의 복을 주셨습니다. 이 때에 물어보아야 합니다. ‘하나님, 나에게 이런 은혜를 주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오늘 마노아의 가족은 하나님에게 묻습니다. “이 아이를 어떻게 기르며 우리가 그에게 어떻게 행하리이까?”
여호와의 사자는 마노아의 부인에게 선물로 주신 자녀를 낳은 것을 넘어 어떻게 양육해야 하는지 분명하게 가르쳐줍니다. ‘①포도주와 독주를 마시지 말며 어떤 부정한 것도 먹지 말지니라. ②그의 머리 위에 삭도를 대지 말라. ③하나님께 바쳐진 나실인이다.’(4-5)이 이야기를 마노아가 듣고 하나님 앞에 이렇게 기도합니다. “우리가 그 낳을 아이에게 어떻게 행할지를 우리에게 가르치게 하소서.”(8)이것이 오늘날 부모들이 해야 할 기도의 제목입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나타나자 마노아는 반복적으로 또 이렇게 묻습니다. “이 아이를 어떻게 기르며 우리가 그에게 어떻게 행하리이까?”(12)그러자 여호와의 사자는 ‘내가 여인에게 말한 것들을 다 삼가서 지키라’(14)고 말씀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어떤 귀한 선물을 받은 후에는 그 선물에 취해서 선물이 주어진 본질을 망각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특별히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은혜의 선물로 주신 자녀를 생각할 때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너무나 귀한 선물인 자녀를 내가 노력해서 얻은 것인양 착각하고, 내 자녀만이 최고라고 생각하며 다른 사람의 자녀를 무시하고, 더 나아가 하나님도 무시하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요즘 우리 주변에서 자주 일어나고 있는 ‘학교 폭력’ 문제의 원인이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그 모든 문제의 대부분은 부모에게 있습니다. 내 자식만이 최고이고 옳다고 생각하고 이웃을 배려하고 더불어 살아가야 할 존재라는 사실을 교육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일이 발생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기도하므로 앗수르 대군 185,000명을 물리치고, 생명을 15년이나 연장받은 히스기야 왕이 그 후에 얻은 아들므낫세가 이스라엘을 멸망하게 하게 한 가장 악한 왕이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히스기야 후에 남유다에서 마지막으로 종교개혁을 일으켰던 요시아왕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남유다가 멸망하게 되는 원인이 므낫세의 죄 때문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요시야와 같이 마음을 다하며 뜻을 다하며 힘을 다하여 모세의 모든 율법을 따라 여호와께로 돌이킨 왕은 요시야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그와 같은 자가 없었더라, 그러나 여호와께서 유다를 향하여 내리신 그 크게 타오르는 진노를 돌이키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므낫세가 여호와를 격노하게 한 그 모든 격노 때문이라”(왕하 23:25-26)
“아이를 훈계하지 아니하려고 하지 말라 채찍으로 그를 때릴지라도 그가 죽지 아니하리라, 네가 그를 채찍으로 때리면 그의 영혼을 스올에서 구원하리라”(잠 23:13-14)
3. 부모의 바른 행실이 참 교육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이 아이를 어떻게 기르며 우리가 그에게 어떻게 행하리이까?”(12)자녀 교육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묻는 마노아에게 하나님의 사람은 13절에서 이렇게 대답합니다. “내가 네 아내에게 이미 일러둔 것을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지켜야 한다.”(공동번역) 한 마디로 ‘부모가 하나님의 말씀(명령)을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다 지켜 행하는 것이 자녀를 잘 앙육하고 교육하는 길’이란 말입니다. 부모는 자녀의 거울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날처럼 자녀 교육이 어려운 시대도 없는 것 같습니다. 자녀들이 부모보다 더 탁월한 세대이기 때문입니다. 부모는 기성세대인데 자녀는 디지털 세대입니다. 생각하고 사고하는 방식이 전혀 다른 자녀들을 어떻게 가르치고 양육할 것인지가 최대의 고민입니다. 그러나 고대로부터 지금까지 자녀 교육의 정답은 하나였습니다. 그것은 ‘부모가 자녀들의 모델이 되는 것’입니다. 자녀들은 부모를 닮아가고 따라갑니다.
오늘 본문 1절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다시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그들을 사십 년 동안 블레셋 사람의 손에 넘겨 주시니라”(1)이스라엘은 여호와의 목전에서 악을 행함으로, 40년 동안 블레셋으로부터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런 표현은 별로 생소하지 않은 내용입니다. 이런 표현은 앞에서도 거듭거듭 나오고 있는, 사사기의 대표적인 표현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자세히 살펴보면 앞의 표현들과 한 가지 다른 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라’는 말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전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범죄하여 하나님께 징계를 받게 되면 비록 피상적이나마 하나님께 부르짖으며 회개를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지금에 와서는 무려 40년간이나 이방의 압제를 받으면서도 회개하지 않은 것입니다. 즉 그들은 거듭 죄를 반복하면서 마음이 강퍅해지고 죄에 둔감해져 결국 회개할 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된 것입니다.
영적으로 가장 암울하던 시기에, 죄악 가운데 희망이 보이지 않던 이스라엘에 하나님은 한 가정을 통해 구원자를 준비시키셨습니다. 사실 마지막 사사 삼손이 태어났던 시기는 그 어떤 시기보다 이스라엘의 배교와 불신앙이 최고조에 달했던 시기였습니다. 다른 때와 달리 부르짖음이 없었습니다.이런 고통을 당해도 회개도 하지 않는 절망적인 상황에서, 하나님은 직접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 사사를 친히 세우시고자 하십니다. 그래서 아기를 낳을 수 없는 마노아의 집을 찾아갑니다. 그리고 말합니다. “이제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러므로 너는 삼가 포도주와 독주를 마시지 말며 어떤 부정한 것도 먹지 말지니라, 보라 네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의 머리 위에 삭도를 대지 말라 이 아이는 태에서 나옴으로부터 하나님께 바쳐진 나실인이 됨이라 그가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시작하리라”(3-5)
블레셋의 40년 압제에도 불구하고 회개하고 부르짖는 백성이 한 사람도 없는 암울한 시대에 구원을 줄 특별한 아이를 주겠다는 것입니다. 아이를 가졌을 때부터 포도주와 어떤 부정한 것도 먹지 말라고 합니다. 특별히 “마시지 말며”(티쉬티, תשׁתי), “먹지 말지니라”(토켈리, תאכלי)가 둘 다 미완료형으로 사용되어, 그녀가 마시거나 먹지 않는 행동이 아이를 출산할 때까지 계속 되어야 함을 보여줍니다. 이렇게 태중에서부터 성별된 아들을 낳은 후에는 머리에 삭도를 대지 말라고 하므로, 앞으로 태어날 아이가 태에서 나옴으로부터, 세상과 구별되어 하나님께 속한 “나실인”이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나실인”(나지르, נזיר)은 ‘구별하다’, ‘바치다’, ‘거룩하게 하다’는 동사 ‘나자르’(נזר)에서 파생된 명사로, ‘구별된 사람’, ‘성별되거나 헌신된 사람’을 가리킵니다. 나실인은 하나님께 대한 헌신의 행동으로 특별히 절제의 서원을 한 사람을 일컫습니다. 그는 ①포도 산물(포도주, 독주)을 먹지 않아야 하며, ②머리를 자르지 말아야 하고, ③시체를 접촉할 때 야기되는 의식상의 부정을 피해야 하는 의무를 지녔습니다(민 6:1-11). 머리털을 밀지 않는 것은 복종의 표시요(고전 11:10), 시체를 가까이하지 않음은 죄악을 멀리함을 상징합니다. 그리고 이 나실인의 서원은 일정 기간 할 수도 있고, 평생 할 수도 있는데, 삼손은 태어날 때부터 죽는 날까지 평생 나실인으로 살아가야 하는, 하나님의 특별한 선택을 받은 나실인이었습니다(7).오늘 본문에 보면 이 특별히 선택받은 나실인의 규례를 세 번이나 언급하고 있습니다(4-5,7,14). 그만큼 나실인은 중요하고, 그 규례는 반드시 지켜져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사사 시대가 어떤 시대였습니까?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경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17:6, 21:25)하던 시대였습니다. 한 마디로 자기 생각대로, 자기 마음대로 행동했던 시대였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타락하고 제멋대로 살아가던 시대에 하나님은 삼손이라는 구별된 나실인을 보내셔서, 시대를 거스르며, 블레셋 40년 압제에서 해방시켜 주시길 원하셨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삼손을 나실인으로 주시면서 매우 독특한 점이 있습니다.
성경에는 하나님께서는 잉태하지 못하는 여인에게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계십니다. 구약과 신약에 잉태하지 못한 여인들은 사라와 리브가, 라헬, 한나, 엘리사벳이 소개되고 있는데, 하나님께서 잉태하지 못하는 여인을 통해서 하나님의 큰 구원의 역사를 이끌어 가심을 알 수가 있습니다. 잉태하지 못하는 여인들로부터 태어난 자녀들을 보면 이삭, 야곱과 에돔, 요셉과 베냐민, 삼손, 사무엘, 세례자 요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대부분 잉태하지 못한 부부를 통해서 그 자녀들이 태어나서 하여야 하는 큰 일들을 보여주십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잉태하지 못한 부부에게 자녀를 허락하시면서 어머니에게도 아이와 함께 공동 사역을 감당하도록 명령한 어머니는 삼손의 어머니뿐입니다. 삼손의 어머니는 삼손을 잉태하는 동안 ‘포도주와 독주와 어떤 부정한 것도 먹지 않는 나실인의 삶을 살아야만’했습니다. 이러한 어머니의 태교로 인해서 삼손이 평생에 나실인으로서의 삶을 살아가는데 큰 영향력을 미치도록 하였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아버지 마노아도 삼손을 어떻게 키워야 하는지를 여호와의 사자에게 묻는 것을 볼 때에 아들 삼손의 양육에 있어서 아버지 마노아도 적극적으로 참여했음을 말해 줍니다.
사사기에서 가장 드라마틱한 삶을 살았던 삼손의 배후에는 아버지 마노아와 어머니의 큰 영향력을 있었음이 분명합니다. 사사기에서 표면적으로 드러난 삼손의 삶이 깨끗하지 않아 보여도, 부모의 헌신적인 교육은 삼손이 홀로 이스라엘 사사로서 거대한 블레셋과의 싸움에서도 승리하는 삶을 살도록 하였음을 볼 수 있습니다. 부모의 역할은 일시적으로 끝나지 않으며, 자녀들의 평생을 좌우하는 일이기에 끝까지 영적 후원은 지속되어야 합니다.
이렇게 삼손의 아버지 마노아와 어머니는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태중에서부터 하나님께서 명령한 모든 규례들을 지키고, 부모로서 본을 보여주며 자녀를 양육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부모된 우리들도 반드시 따라야 하는 양육 방법입니다.
한 마디로 ‘부모가 정직하게 살면 아이들이 정직하게 살 것이고, 부모가 거짓을 말하면 자녀들도 거짓을 배우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부모가 되는 것이 쉽지가 않습니다. 아이들은 말로 가르쳐지는 것이 아니라 부모의 삶으로부터 배웁니다. 교회에서도 아이들에게 인사하라며 머리를 강제로 숙이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부모가 먼저 머리 숙여 인사하면 됩니다. 부모가 존댓말을 쓰면 아이들도 존댓말을 쓰게 됩니다. 요즘 애들이 입에 욕을 달고 사는데, 부모인 우리가 그렇게 만든 것은 아닌지 반성해야 합니다.
교회 생활과 신앙 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부모가 주일에 세상 일이나 약속을 하지 않고, 주일을 지키려고 애를 쓰고 항상 주일 예배 참석하면 아이들은 본 그대로 주일 성수하고 예배 잘 드립니다. 부모가 십일조 정확하게 하고 감사 생활하면 자녀도 십일조와 감사 헌금하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고, 결코 아까워하지 않습니다. 부모가 교회에서 열심히 봉사하고 섬기면 자녀들도 나이가 들고 성인이 되면 교회에서 교사를 비롯해서 찬양대 등 스스럼없이 봉사하고 섬기게 됩니다. 부모가 이웃을 사랑하고 배려하면 자녀들도 이웃을 사랑하며 섬기게 됩니다.
제가 지난 4월에 조사한 설문 통계 자료를 세 개 보여드리겠습니다. (☞ ‘별첨’ 참조)
지난해 우리나라 출산율이 0.78%(2022년)로 전 세계에서 꼴찌인데, 최근에 가정의 달 5월을 맞이하며 목회데이터연구소에서 “한국인의 결혼과 출산 의식”조사 결과입니다.
먼저 ‘1. 성,연령별 결혼에 대한 견해’설문에, 2022년 기준 ‘결혼은 반드시 해야 한다’ 응답은 15%로 10년 전 대비 5%p 감소했습니다. 연령별로 보면 2030남성은 ‘결혼은 반드시 해야 한다’ 응답 비율이 30%를 넘었지만, 2030여성은 8-10%에 불과해 남성과 큰 차이를 보였습니다. 두 번째 도표는‘2. 청소년기 경험에 따른 결혼 의향률’설문에, 미혼 응답자 중 ‘결혼 의향이 있다’는 사람은 57%, ‘의향이 없다’고 응답한 사람은 43%였습니다. 성,연령별로 비교 시 격차를 보였는데 ‘결혼 의향 있음’이라고 응답한 20대, 30대 남성의 비율은 각각 65%, 71%인데 반해, 같은 연령대 여성의 결혼 의향률은 이보다 훨씬 낮은 40%대에 그친 점이 주목됩니다. 세 번째 도표는‘3. 청소년기 경험과 결혼 의향률’설문에 대해, 부모의 결혼 생활이 행복할수록 자녀 결혼 의향이 높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실 앞서 말한 내용과 설문 조사는 우리가 잘 아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부모된 우리가 제대로 실천하지 못하므로 자녀들을 제대로 교육하고 양육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너희는 스스로 깨끗하게 하여 거룩할지어다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 너희는 내 규례를 지켜 행하라 나는 너희를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이니라”(민 20:7-8)우리에게 주어진 자녀들은 모두 하나님께서 주신 특별한 자녀들이며, 하나님의 구별된 선물입니다. 그들은 우리의 소유가 아니라, 하나님께 속한 거룩한 생명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진 자녀입니다. 이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진 나의 자녀들을 매일 매 순간마다 축복하고, 기도와 말씀, 내 삶의 본으로 양육하므로 삼손과 같이 나라와 조국을 구하고 세워나갈, 구별된 하나님의 자녀로 키워나갈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III.
모두에서 윤석열 대통령께서 미국 백악관을 방문했을 때 울려퍼진 뉴저지어린이합창단의 “이리랑”을 들려드렸습니다. 윤 대통령은 미국 바이든 대통령과의 회담 등 공식 일정을 마치고 보스톤으로 이동해서 세계 최고의 대학인 하버드대학교를 방문해서 연설도 하고 대화도 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미국 최고의 명문인 하버드대학교 출신 대통령이 8명이고 다음으로 예일대학교로 5명을 배출했습니다. 특별히 미국에서 대통령과 상하원 의원을 가장 많이 배출한 학과가 예일대학교 정치학과인데, 이 정치학과에에는 하나의 모랜 불문율이 있다고 합니다.‘대학에 들어오는 순간부터 마리화나(마약)나 이성 문제 등을 끊고 청교도적인 엄격함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노라하던 대선배들이 과거 학창 시절에 있었던 자그마한 실수 때문에 대통령이나 국회의장 문턱에서 줄줄이 낙마(落馬)하는 것을 목격하면서 생긴 불문율이라 합니다. 이는 공직에 나가고자 하는 이들에게는 철저한 엄격함이 요구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국가를 세우고 피흘리며 싸웁니다. 왜냐하면 국가라는 조직, 그리고 국가를 운영하기 위한 법은 사람들의 자유를 지켜주는 최후의 뽀루이기 때문입니다. 국가가 없을 때나, 법이 무시될 때 사람들은 더 큰 폭력, 자의적인 폭력에 노출되기 마련입니다. 힘 있는 자가 자신을 함부로 지배해도 법이 없으면 그에 대응할 수 없으며, 결국 자신을 지킬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근대 국가에서 법은 곧 자유입니다. 우리가 법을 지키고, 애국하려는 이유도 바로 자신의 자유를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법을 힘 있는 자들이 무시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몰라서 불법은 했어도 땅 투기는 아니다’, ‘그런 작은 법을 어긴 것은 별 것 아니다’, ‘정치하는데 돈이 들어가는데 그 정도의 돈은 밥값도 안된다’ 등등 권력으로, 돈으로, 힘으로 자유와 민주를 유린하는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수차례 대한민국 헌법의 개헌에도 불구하고 단 한 번도 바뀌지 않는 것이, 대한민국 헌법 제1조 1항 “대한민국은 민주 공화국이다”입니다. 그런데 이 1조 1항에 위배되는 행동을 한다는 것은 대한민국 헌법 전체를 부정하는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세상 국가의 법과 하나님의 법을 동시에 잘 지키고 그대로 살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그 모습을 자녀들에게 보여주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어린이 주일은 어른의 주일”이란 말을 들어보셨습니까? 어린이를 제대로 양육하고 교육하기 위해서는 좋은 어른이 되어야 합니다. 내 자녀들이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부모들이 먼저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을 따라갈 때 우리의 자녀들도 그 길을 걸어가게 될 것입니다. 자녀들을 위해 기도하고, 온 몸으로 말씀과 명령대로 살아가고, 국가의 법을 지키는 본을 보여주며 하나님의 은헤의 선물인 우리의 자녀들을 잘 양육해야 합니다. 우리의 영적 부모가 되시는 하나님의 관점으로 자녀들을 바라보는 어른들의 어린이주일이 되시길 기원합니다. 아멘! 샬롬!!
첫댓글 2023년 5월 7일(주일) 주일 2부예배 facebook 실시간 송출한 동영상 url 주소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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