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식에는, 고추, 파, 마늘, 생강, 후추, 깨, 겨자 등을 제외하곤 “향신료(spice)”가 중국, 인도, 동남아요리나 서구요리에 비해서 다양하게 사용되지 않는 편입니다.
향신료의 대부분이 열대지방과 신대륙이 원산지로, 한반도와 같은 온대지방에선 자생하지 않아, 사용하기 시작한지 1~200백년 수준에 불과하니 그럴 수 밖에 없을겁니다.
한식의 대표주자로,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김치조차 고추가루로 벌겋게 버무린 현재의 조리법이 널리 시작된것이 300년도 채 되지 않으며, 특히 배추김치는 100년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 합니다.
멕시코가 원산지인 고추는, 1492년 신대륙이 발견된이후 유럽에 전파되었고 그것이 포루투갈인에 의해 일본으로 전파되고 조선엔 임진왜란(1592) 이후에 전파되었으니 이해가 가지요.
한민족이 김치를 상식한게 삼국시대때부터라 하니 고추가 전래되기전엔 김치라해도 물김치나 백김치 였으리라 추측 된다는 군요.
“커리(curry)”도 먹지만 인도인들이 먹는 커리가 아닌, 일식(和食)화 된 소위 “카레 라이스” 인지라 인도인들이 상식하는 커리와는 크게 다른, 달리 표현해서, "커리맛 소스"에 불과합니다.
실제 인도 커리는 무려 스무가지 정도의 향신료가 지역마다 다른 배합비율로 들어갑니다 - 고추, 후추, 생강, 마늘, 겨자, 큐민(cumin), 카르다몸(cardamom), 육두구(nutmeg), 고수(coriander), 정향(clove), 팔각(star anise), 회향(fennel), 호로파(fenugreek), 월계수잎, 커리잎, 강황(tumeric), 계피(cinnamon), 육계피(Ceylon cinnamon), 메이스(mace)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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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향신료 - 사진은 모로코(Morroco) Agadir 의 중앙시장의 한 향신료샾에 전시된 다양한 종류의 향신료
지금은 부엌 구석에 처박혀, 그리 주목받지 못하지만, 향신료는 성경에도 자주 언급되는, 유럽인에게 수천년전부터 알려져왔던 귀중품으로, 불과 몇백년전만 해도 평민들은 언감생심 맛볼 수 조차 없었는데, 이는 대부분의 향신료가 유럽에서는 자라지 않고, 주로 동남아나 아프리카에서만 산출 되는 교역상품 이기 때문입니다.
수백을 헤아리는 향신료 중에서도, 특히 세계사의 흐름에 뚜렷한 족적을 남긴것이 정향(clove), 육두구(nutmeg) 및 후추(pepper) 인데, 그중 15세기말엽을 기준으로, 정향과 육두구는 현재 인도네시아 군도 동남방에 위치한 "몰루카 제도(Moluccas Islands 혹은 말루쿠 제도(Maluku Islands)"의 "떼르나떼(Ternate)"섬 과 "반다(Banda)" 섬에서만 유일하게 산출되는 특산품 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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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루카 (혹은 말루쿠) 제도(Molucca Islands)
그로인해, 16세기까지 향신료는, 원산지인 동남아에서, 복잡하고 위험한 소위 "향신료 공급로 (spice route)" (몰루카 제도(인도네시아) - > 말레카 (말레이지아) -> 인도/스리랑카 -> 아라비아 반도 -> 콘스탄티노플-> 베니스)를 통해 1년에 고작 2000톤 정도만이 유럽으로 수입되어, 왕족과 귀족에게 공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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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신료 공급로 (spice route). 당시 “정향(clove)” 과 “육두구(Nutmeg)”는 현재 “인도네시아” 영토인 “몰루쿠 제도(Mouccas)”에서만 생산되었습니다. 위 지도에서 오른쪽 하단부 화살표가 시작되는 곳입니다.
이 2000톤 정도의 향신료를 위해 지불한 금액으로 150만명을 1년 먹일수 있었다 하는데, 한국인 기준으로, 하루 쌀600그램(요즘엔 다른 것을 많이 먹기에, 하루 쌀 200그램도 섭취하진 않지만, 다른 먹을게 없는걸 기준으로 해서)을 섭취한다는 가정으로 계산해보니, 8200억원 정도로, 향신료 1kg당 41만원 정도가 나옵니다. 당연히 평민들이 자주 사용할 수 가 없었겠지요.
이탈리아 반도 동쪽에 위치한 손바닥만한 도시국가인 “베네치아 공국(The Most Serene Republic of Venice, 지금의 베니스)”이 강력한 해군을 구축해 “오스만 터어키 (Osman Turkey)”를 통해 들어오는 향신료 무역을 독점하면서 8세기에서 15세기까지 700년간 전성기를 누렸음은 잘 알려져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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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니스와 오스만 터어키는 향료무역을 위해 서로 협조하지만 때로는 대치하기도 합니다. 사진은 “1661년 8월 27일 베니스와 몰타의 연합함대가 오스만 투르크의 함대를 격파하는 해전을 묘사”한 그림
오랜세월동안 유럽인들은 향신료의 원산지가 어디인지 알지 못했습니다.
베니스에 향신료를 판매했던 아랍상인도 중간공급책에 불과해, 원산지를 알 수 없었던데다, 당시 유럽인의 세계관으론 동방에 대한 아무런 지식이 없으니 감을 잡을 수가 없었지요.
그러나, 14세기 중순, 유럽에서 25~35백만명의 희생자를 내게한 “흑사병 (black death)”유행 이후의 “사회-경제적인 변화”가 향신료의 수요를 급격히 증가시키고 급기야는 15세기 말부터 향신료는 전유럽의 군주들과 모험가, 무역상들의 피를 끓게하는, 그로인해 세계역사를 변화시킨 결정적인 상품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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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사병으로인한 재앙이 닥친 도시지역을 묘사한 그림
흑사병의 유행중 발생한 사망자의 대부분이 기층민중이었던 “농노(serfs 혹은 villains)” 였던지라, 이들를 기반으로 한 피라미드 형태의 중세 “봉건제도(feudal system)”는 붕괴하고 농민이 없어 경작을 못하게된 경작지는 인력소요가 적은 “목초지”로 변경되어 축산업이 성행하게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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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유럽 봉건제도에서의 신분계층. 위에서 부터 , 아래로, 왕 – 귀족 – 기사 – 농민(농노)
그러나 기술적으로 유치한시절 이었던지라, 겨울이 가까우면 사료를 구할 길이 없어 가축을 대량 도살하여 고기값이 폭락하고, 봄엔 도살할 가축이 없어 폭등하는 악순환이 계속됩니다. 도살한 “육류”를 장기저장하는 방법이라곤 소금에 절이거나 훈제외엔 없었고, 시간이 지나면 그런 저장육들은 당연히 맛이 없었지요.
당시 기록중에 장기보관한 염장육을 먹는게 고역이었다는 기록이 많습니다.
그러니 역한 냄새가 나는 염장고기를 그나마 먹을만하게 해주는( palatable) “향신료”의 수요가 15세기 무렵부터는 폭증 할 밖에.
근대사를 돌이켜 보면 15세기부터 시작된 “대 항해시대 (great voyage period)”는 유럽이 아시아를 추월하고 과학문명의 발전에 박차를 가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하는데, 바로 향신료가 그 시대을 여는 동기를 제공했으니 세계역사 발전에 “향신료 (spice)”를 쳤다고나 할까요?
대항해 시대의 동기를 부여해 준것이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 (The Million 혹은 The Travels of Marco polo)” 입니다.
예전에 “동방 견문록”을 읽고 의아심을 가졌었죠. 여행기로 보기엔 황당무계한 내용이 너무많아, 이책이 세계역사를 변화시킨 책이었다는게 믿어지지 않았지요.
그런데 실제로 그책은 세계역사를 바꿨습니다.
그 책 가운데 몇구절이 지난 수천년간 유럽인들이 가졌던 의문을 풀어준 것이죠.
“향신료가 산출되는 곳이 동남아의 섬나라(archipelago)란 것을, 유럽에서 배로 항해하면 언젠가는 도달 할 수 있다는 것”을 유럽인들에 알려준 것입니다.
15-16세기 유럽시장에서 향신료중 “정향 (clove)”, “육두구 (nutmeg)” 및 “메이스(mace)”의 가격은 같은 무게의 금값보다 훨씬 비싼 값으로 팔려, 후에 “네덜란드”인들이 향신료 무역을 독점할때, 무역상은 평균160배의 이익을 남겼답니다.
거래량이 훨씬많은 “후추(pepper)” 조차 같은 무게의 은값보다 비쌌다는군요.
그 당시엔 금과 은의 가격차가, 지금과는 달리, 많지 않아(80% 수준) 은도 매우 귀중하게 취급되었지요.
그러니 ‘동방 견문록”이 널리 읽힌후 모험가들과 항해자들이 얼마나 설레었겠나를 미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미 12세기중엽, 배에는 “키(rudder)”가 장착되었고 나침반도 사용되기 시작했으며 15세기 경에는 3개의 마스트를 장비한 범선인 "카라벨(Caravel)"이 건조되기 시작해 초보수준 이지만 원양항해가 가능해졌지요.
일확천금을 기대할 수 있는 꿈의 나라 동방에로 가기위한 하드웨어와 소프트 웨어가 준비된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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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세기경 대양항해에 사용되던 범선, Carave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