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벨의 피부터 즈카르야의 피에 이르기까지 예언자들의 피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 11,47-54
그때에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47 “너희는 불행하여라! 바로 너희 조상들이 죽인 예언자들의 무덤을 너희가 만들기 때문이다. 48 이렇게 너희 조상들은 예언자들을 죽이고 너희는 그들의 무덤을 만들고 있으니, 조상들이 저지른 소행을 너희가 증언하고 또 동조하는 것이다.
49 그래서 하느님의 지혜도, ‘내가 예언자들과 사도들을 그들에게 보낼 터인데, 그들은 이들 가운데에서 더러는 죽이고 더러는 박해할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50 그러니 세상 창조 이래 쏟아진 모든 예언자의 피에 대한 책임을 이 세대가 져야 할 것이다. 51 아벨의 피부터, 제단과 성소 사이에서 죽어 간 즈카르야의 피에 이르기까지 그렇게 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이 세대가 그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52 불행하여라, 너희 율법 교사들아! 너희가 지식의 열쇠를 치워 버리고서, 너희 자신들도 들어가지 않고 또 들어가려는 이들도 막아 버렸기 때문이다.”
53 예수님께서 그 집을 나오시자,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독한 앙심을 품고 많은 질문으로 그분을 몰아대기 시작하였다. 54 예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그분을 옭아매려고 노렸던 것이다.
예언자로 살기
예언자는 ‘예언자(預言者)인가 예언자(豫言者)인가’ 말이 많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미리 예(豫)’자를 쓰지 않고, ‘미리 예(預)’자를 써야 맞는다고 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런데 두 말이 같은 뜻을 가지고 있지만 예(豫)자는 ‘미리, 즐기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고, 예(預)자는 ‘미리, 참여하다, 간여하다, 즐기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어서 아주 작은 문제지만 문제를 삼았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두 가지 뜻으로 쓰일 때 어떤 것이 맞는지 한 번 생각해 볼 일입니다. 예언자(豫言者)라는 말이 ‘자기 사상이나 예측에 의하지 않고 영감(靈感)에 따라 계시(啓示)된 신탁(神託 : 神意)을 전달하고 또 해석하는,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매개자.’라고 백과사전에서는 쓰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언자(預言者)라는 뜻은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매개자이며, 하느님의 뜻을 담아 간직하였다가 사람들에게 전하는 예언직분(預言職分)을 강조하는 말로서 일반적인 예언자의 뜻을 더 많이 가지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일에 인간이 참여하고, 하느님의 말씀을 앞날을 위해서 보관하고 있다가 전해야 하는 것입니다. 어려운 하느님의 말씀의 핵심에 대한 실마리를 가지고 있다가 실타래를 풀들 풀듯 사람들이 말씀을 알아듣도록 하는 그 중요한 일을 하는 것이라고 해석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언자는 앞으로 일어날 일을 미리 알려주고, 올바른 길로 인도하는 역할과,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다른 사람에게 전하는 역할을 하는 사람들을 지칭하는 예언자(預言者, 豫言者)인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글자가 맞는다고 할 수는 없고 모두 맞는 글자라고 생각되어집니다.
모름지기 예언자는 자신의 의지에 의해서 살지 않고, 자신의 사상이나 예측에 의하지 않고 하느님의 성령에 의해서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며, 해석하고, 하느님과 인간과의 매개자로서 그 역할을 충실히 하는 사람입니다. 그런 예언자를 예언자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것은 하느님을 부정하는 것이고, 하느님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어서 주님의 진노를 사고, 사람들이 주님께로 다가가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바리사이들이나 율법교사들의 교만과 위선을 질책하시고, 지금 그들과 같이 살고 있는 우리를 또한 나무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도 그렇게 꾸중을 듣는 입장에서 그들을 탓할 수만은 없다는 생각입니다. 내가 바로 그런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하느님의 말씀을 전달해야 하는 데도 내 자신의 교만함과 오만함으로 하느님을 말씀을 잘 받아들이지 않고, 예언자들의 말씀을 하느님의 말씀으로 깨닫지 못하고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배운 지식이 내게는 편견과 선입견을 형성하고, 내가 배운 지식이 그릇된 것임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진리에 접근하지도 못하고, 진리의 품이신 하느님께 다가가지도 못할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이 하느님께 들어갈 수 있는 문을 막아버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내 말을 듣는 사람도 나의 폐쇄적 사고방식에 하느님과 장벽을 쌓고 그 장벽이 점점 두꺼워지도록 행동하고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위선자의 삶을 청산하기 위해서 내 패러다임을 전환하지 않으면 예언자로서 예언직분을 수행하지 못하는 어리석은 사람이 될 것입니다. 오직 주님의 성령께서 저를 도와주시기를 간절히 청할 뿐입니다. 주님, 자비를 베풀어 주소서.
야고보 아저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