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에 관한 시모음 49)
5월에 피어나는 마음의 향수 /은파 오애숙
5월의 하늘 청아함 노래합니다
뭉개구름 피어나는 이 아침에 동요가 메아리치고 있어
"동구밭 과수원길 아카시아 꽃 피었습니다 ~"
휘파람 불며 콧노래로 흥얼거려봅니다
겨우내 숨 막히도록 집안에서만 있었기에
오월이 되면 완연한 봄날 되어 산과 들로 삼삼오오
관악산 허리까지 다녔던 기억 오롯이 떠 올라 그 시절이
그리움으로 다가오는 계절입니다.
지금 이역만리 타향 LA에서 살고 있기에
그저 사시사철 아카시아 껌을 씹으며 향을 음미 해
어린시절 그 향그러움 만끼하며 잎사귀로 가위바위 게임했던
추억의 향기 달래보나 실제 아카시아꽃만 하겠나요
허나 어린시절 향수 달랠 수 있어 감사한 마음
LA 이곳에선 사시사철 정원만 잘 가꾸면
오색무지게 정원 만나 볼 수 있는 기후라 행복 만끽하나
아카시아는 좀처럼 볼 수 없어 5월만 되면 하얗게 핀 꽃물결속
그 향그런 아쉬움의 물결 가슴에 일렁입니다
다행히 LA에 살면서 늘 접하는 꽃
만인의 연인이라 불리는 꽃을 거의 하루도
빠짐 없이 마켙에서 늘 사시사철 접하는 장미꽃 보며
포장지 잔뜩 사 놓고 만드는 꽃입니다
틈틈이 장미 꽃을 접어 급한 행사 때
사용하기 위해 친밀한 관계를 갖다보니 향수도
장미향을 구입 해 선물 하거나 사용하고 있어
점점 장미 향에 매료 되어 가고 있네요
또 하나 맘에 피어나는 게 있습니다
늘 오월이 되면 봄날의 화사함으로 피어나
빼 놓을 수 없는 건 5월의 신부!! 벌써 새신부인양
두근 거려지는 맘 지인에게서 결혼 청첩장이
서서히 날아 드는 계절입니다
우리네 인생사 여인들, 생애 한 번 밖에
입지 말아야 할 하얀 드레스 생각만 하면 아직도
그때 그 설레임! 살짝쿵 윙크하며 5월 하늘
청아함의 노래로 다가오는 아침입니다
불타는 오월은 /김소해
내 사랑이였으면 좋겠다
장미 빛 열정으로
지글지글 타올라
그대의 가슴에 철커덕 박히고 싶다
새파랗게 낙인된 가슴에
넘보지 못할 순정의 촉수 세우고
영혼마저 풍덩 빠지는 날
오월은 사랑의 불바다가 된다
곰슬거리는 아카시아 향기가
하늘을 뜀박질하는 날
활활 타오르는 열정이
새파랗게 감금되어도 좋다
5월이 간다 /노정혜
계절의 여왕 5월이 떠나네
바람이 산들산들 시원해서 좋았다
나무에 청록색 옷 입혀 놓고 가네
6월이 문 앞에서 더워를 풍긴다
봄꽃의 화려함 추억으로 남겨 놓고
신록이 그 자리를
더워라 더워라
선풍기가 춤을 춘다
오월에 띄운 편지 /김용언
몇 해 전이었지
들찔레 향기 퍼질 때
멀리
기적 소리 들렸지
그대 떠나던 날
흔들던 손수건
날 미치게 했지
신발이 해져
주저앉은
오늘
덤불 사이로 하얀 찔레꽃 피어
날 미치게 하네
발송인도 나였는데
수신인도 나
옛날 그 시간으로 반송된 추억
나는 꽤 나를 사랑하고 있었나 보다
오월, 햇살, 나뭇잎들, 금방 스러질 /김정란
나뭇잎들, 열기도 해라, 내 가슴,
가늠할 수 없는 먼 진원지에서부터
흔들리네…가여워라 예쁜 것들
내가 북받치듯 그것들을 명치께에
꼭 보듬어안네 아가야 금방 커버릴
솜덩이들 윤곽이라곤 하나도 없는
오 저항하지 않는 귀여운 작은
너무나 위태위태한… 몰랑몰랑한 우주들
이제 막 생겨난…
내가 정신없이 그것들을 내품에
숨겨싸안네 다칠라 내 새끼들
거기… 늘 회한의 깊은 바람
어둡게 부는 동굴에서 너희들을
잘 기를 수 있을지 알 수 없지만
그러나 가끔은 알 수 없는
어떤 어렴풋한 날개들
쉭쉭 날아다닌다네 내 검은 영혼
온통 투명한 불빛으로
물들이는, 아주 이따금
5월의 산 /정연복
5월의 산에 들면
기분이 참 상쾌하다
사방 어디를 둘러보아도
연둣빛 이파리들
보고 또 보아도
싫증이 나지 않는다.
오르막길 산행을 하면서
숨이 가빠오다가도
그 이파리들
한번 눈에 담으면
가슴이 뻥 뚫리고
피로감이 싹 가신다.
오월, 비에 갇히다 /아송희
투명한 창살에 야윈 몸이 갇힌다
나무도 건물도 모두 비에 갇힌 채
차디찬 담장 너머엔 겁에 질린 눈빛들
빗속을 비집고 면회 오는 어머니
그녀의 목덜미를 끌어안지 못하고
온 종일 비를 맞은 채 봉분에 갇힌 사랑
5월의 단풍나무 /안도현
우리 아이들이 제 또래 친구들을 하나 하나 사귀어 가듯이
그래서 고만큼의 새 세상을 찾아 가듯이
우리가 가르쳐 주기도 전에
5월, 단풍나무는
중학교 1학년 아이들 손바닥 같은
이파리들을 한 잎씩 불러 모은다
어린 가지에 어디선가 붉은 어여쁨들이 날아와 붙는다
단풍나무야
단풍나무야
부끄럽게 가을로 물들며 가는구나
손바닥과 손바닥을 합쳐
큰 주먹을 이루려는구나
드디어 눈부신 세상이 오는구나
오월 /박소란
천변을 걸었네 늙은 애인과 걸었네
향이 곱다 하였네
향이 곱다 향이 곱다
처음으로 라일락을 알았네
달금한 꽃내음이 우리를 잠시 웃게 하였네
울게도 하였네 꽃은
시들어 버릴 테니까 그럴 테니까
비로소 아름다운 것
내 늙은 애인은
이만 쉬자 하였네 꽃이 되어
이만 돌아가자 하였네
그럴 수 없다 하였네 나는
꽃나무를 흉내 낸 시멘트 벤치처럼
단호하였네 단호한 빛으로 애인의 주름진 얼굴을 바라보았네
그 사이,
눈을 동그랗게 뜬 꽃잎 몇 알
젖은 벤치 위로 주저앉았네 두 번 다시 일어설 줄 몰랐네
인디언의 오월 /박두규
인디언들은 오월을
‘오래 전에 죽은 자를 생각하는 달’이라고 불렀다지.
그들에게도 우리의 오월 같은 세월이 있었던 게지.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일이
해마다 꽃이 피고 지는 일과 얼마나 다를 것인가.
오래된 오월이지만, 오월은 또 오고
나는 팽목항에 내려와 저무는 바다의 어둠을 맞는다.
바다 속 회오리치는 어둠과
초도화 된 캠프를 떠나던 인디언의 어둠과
당 구석 홑이불을 덮고 지쳐 잠든 이의 어둠은
무엇이 얼마나 다를 것인가.
죽은 자의 오월과 살아남은 자의 오월이 다르다면
저 수평선이 만들어낸 경계의 오류처럼
또 얼마나 많은 세월이 속절없이 스러질 것인가.
오월 /정석봉
봄은 차선도 없는 길을 걷고 있었지
황급히 지나는 트럭은 국방색 위협 한 짐 부려놓는데
달려가서 똥침이라도 놓고 싶었는지 뿔이 돋고
침이라도 뱉고 싶었는지 입을 열고 눈을 크게 뜨고
연달래 만발하고
고래고래 고함치다가
메가폰을 그만 놓쳐버렸을 때 눈물방울 부풀어 올랐어
날 시퍼런 잎으로 후려치고
주름살 하나 더 늘어난 몸이 몹시 흔들렸어
화염에 휩싸이고 쩍! 쩍! 갈라지고 터지고 있었어
새로운 싹을 틔우기 위해 슬픔을 묻을 수밖에 없는 꽃이 지고
꽃이 피는 밤
아침이라도 뱉고 싶었는지 입을 열고 눈을 크게 뜨고
탄환이 뚫고 지나간 자리 눈물 떨어지듯 싹이 돋는다
묘지 위로 무성히 자라난 풀잎
별똥별 떨어지듯
달이 고개 숙인다
오월 첫날 /임재화
오월이 시작된 첫날 깊은 밤
잠 못 이루고 홀로 깨어서
조용히 방석을 깔고 앉아있습니다.
온 누리가 모두 잠들어
조용히 숨죽인 이 시간에
무거운 마음을 모두 내려놓고서
들숨 날숨을 하나둘 세며
조용히 호흡하면서
그윽한 허공의 기운을 느껴봅니다.
오월 /유홍준
벙어리가 어린 딸에게
종달새를 먹인다
어린 딸이 마루 끝에 앉아
종달새를 먹는다
조잘조잘 먹는다
까딱까딱 먹는다
벙어리의 어린 딸이 살구나무 위에 올라앉아
지저귀고 있다 조잘거리고 있다
벙어리가 다시 어린 딸에게 종달새를 먹인다
어린 딸이 마루 끝에 걸터앉아 다시 종달새를 먹는다
보리밭 위로 날아가는
어린 딸을
밀짚모자 쓴 벙어리가 고개 한껏 쳐들어 바라보고 있다
오월의 배교(背敎) /최형심
술탄의 비단슬리퍼가 끌고 간 관습적 한낮,
파랗게 녹슨 거미 한 마리가 봄의 여백을 흔들고 있다
곧 달의 파편이 비린 연대기를 전하러 올 것이다
달빛의 표정이 흘러가는 지붕 위,
질긴 윤회로 맞물리는 흑단의 밤이면
맨발의 시간을 오래 바라볼수록 달의 허리가 휜다
허공을 핥는 고양이의 허기가 달의 맨홀 속으로 빨려들고
하얀 면사포를 쓴 무채색의 광대들이 범람한다
늙은 낙타는 돌아앉아 이제는 무정부주의자가 된
슬픈 종족의 이야기를 들을 것이다
열꽃에 감염된 계절이 저녁에 유폐된 뒤, 가위의 입을 빌어
금빛문자를 읽는 밀교의 풍경 한가운데로
온전히 피고 지지 못하는 것들의 비명은 고요하다
날개를 봉인한 것들이 꼭대기에 처박혀 반짝이듯
흘러갈 수 없는 이들이 바닥에 몸을 맡기듯
한쪽으로 몰려 피 흘린 석양의 체온이 꽃잎 위에 붉게 쌓이듯
꽃무덤 위, 가장 낮은 자세로 한밤이 올 때, 그렇게 무게를 놓친
한 장 꽃잎은 파문이 된다
5월이 가기 전에 /김덕성
당신은 나의 사랑입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당신과 꼭 마주하고 싶습니다
그리움이 깊어지고
견딜 수 없이 외로움이 오는
그런 날이 아니어도
당신을 내 곁에 두고 싶습니다
햇살이 내리고
꽃이 화사하게 핀 아름다운 날엔
더욱더 그리워집니다
임이여 내게 오시옵소서
사랑의 당신과 함께
행복한 시간을 가지고 싶습니다
5월이 가기 전에
오월의 기도 /정세나
오월의 장미꽃으로
피어 있게 하소서
사무치는 그리움을
환한 등불로 밝히고
움트는 새순의 마음으로
당신을 기다리게 하소서
가시 돋친 성깔 꺾어버리고
당신의 구원으로 엮은 꽃다발로
사랑을 나누는 곤궁한 사람들을 위해
고개 숙여 기도하게 하소서
오월의 길목에서
이름 없는 풀꽃과 어우러져
믿음으로 하나 되어
당신을 찬미하는
장미꽃이게 하소서
聖 오월 /황지우
망월 가는 이맘때쯤이면
아카시아 꽃봉지 들고 다가오는 산 전체에서
막 양치질한 딸아이
입내 같은 것이 났지
꼭 죽음이 아니어도
이렇듯 신성이 찰나에 임하는,
잎새로 噴射되는 햇살 샤워;
낯뜨거워라
치약처럼 환한 꽃 한움쿰 입에 털어넣고
멀찍이서 묘역을 대하는데
죽어서 받은 거룩함도 살아있는 날의 우연성, 덧없음,
어처구니없음에 잠깐 일어난 정전기 같다 할까
사실 벌거지만도 못한 삶이었는데
커다란 거품인 무덤들 둘레를
명함 돌리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둘러싼다
聖 오월; 아카시아꽃은 갑자기 재채기하고 싶은
흰 손수건을 흔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