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주 계룡산 산행후기
일시: 2023. 11. 19
참석: 75명 (25회 10명)
산행: 7Km (5시간)
영험한 산 계룡산(鷄龍山)
계룡산은 신령스럽게 여겨지는 산이다. 무속인들이나 점집 도사들에겐 특히 더하다. 요즘엔 덜하지만, 우리들 자랄때만 해도 '계룡산에서 수도했다'는 것을 훈장처럼 내세우는 무속인과 도사들이 많았다. '계룡산은 영험하다' 는 일반인들의 믿음 때문이다.
계룡산은 백두대간에서 뻗어 나온 한 갈래의 산줄기가 진안 주화산에서 다시 갈라져 거슬러 올라온 금남정맥의 끝자락에 위치한 산이다. 공주를 반달 모양으로 휘감아 돈 형세로 금강을 허리에 두른 채 충남 공주시 계룡면과 반포면, 논산시 두마면, 대전광역시 유성 지역에 걸쳐 있다. 금남정맥 중에서도 비교적 험난한 이 산은 유연히 흐르는 금강의 풍치와 어울려 멋지고 독특한 산악 경관을 이루고 있다. 다른 국립공원들에 비해 규모는 크지는 않지만 1968년에 지리산에 이어 두번째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명산이다.
산 이름은 조선 초기에 태조 이성계가 지금의 계룡시 신도안면 일대에 도읍을 정하려고 이 지역을 답사하였을 때 동행한 무학대사가 산의 형국이 금계포란형(金鷄抱卵形), 비룡승천형(飛龍昇天形)이라 일컬었는데, 여기서 두 주체인 계(鷄)와 용(龍)을 따서 계룡산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계룡산은 산줄기와 물줄기가 태극 형상으로 서로를 휘감아 흐르는 ‘산태극 수태극’의 지세라 했다. 신령스러운 풍수로 계룡산의 위엄과 신비로움은 외경심을 불러일으켰고 신앙의 대상으로까지 비쳤다. 이 태극의 중심이 계룡산 아래 신도안(新都安)이다. 신도안은 조선시대 이래로 재난을 피할 수 있는 이상향으로 여겨져 수많은 무속인들과 신흥종교가 들어왔으나, 1983년 난립된 종교시설들이 일제히 정비되고, 이후 육·해·공군 통합기지인 계룡대가 들어섰다.
정상인 천황봉(845m)에는 통신탑이 있고, 3군 본부가 모인 계룡대가 훤히 보이기 때문에 민간인 통제구역이다. 같은 이유로 머리봉과 쌀개봉도 통제구역이다. 그래서 등산객들에겐 관음봉이 계룡산의 실질적인 정상이라 동학사 쪽으로 등산객이 많다.
등산은 주로 동학사-은선폭포-관음봉 코스나 동학사-남매탑-삼불봉 코스로 올라가는 경우가 많다. 반대편인 갑사에도 등산객이 많은데 동학사-은선폭포-관음봉-삼불봉-갑사로 산을 아예 넘어버리는 코스도 존재한다. 오늘 25회는 남매탑이 목표이다. 동학사 못미처 세진정에서 오르는 방법도 있지만, 남매탑 아래 약 600m 정도의 급경사 구간을 힘들게 올라야 하기 때문에 완만하고 비교적 쉬운 천정탐방로로 올랐다.
계룡산(鷄龍山) 가는 길
눈알이 핑핑 돌아갈 정도로 빠르게 변해가는 세상에 익숙하지 않은 변화를 따라잡으려고 속력을 내보지만 이제는 어림도 없다.
그런 일상에 한숨이 절로 난다. 나이만큼 빠르게 흐르는 인생의 악셀레이터를 조금이라도 늦출 수 있는 것은 바람 부는대로 슬로우 스피드로 자연에 몸을 맡겨버리는 여행이나 등산이다.
천천히라도 몸을 움직이면 만날 수 있는 친구가 있고, 경치가 있고, 이야기 거리가 있다. 하지 않아서 문제지만 ---
엊그제는 흐리고 눈발이 날리더니만 오늘은 화창하였다. 간만에 아니 올해는 처음인가? 교대역에서 출발하는 남쪽지역 산행이라 강변역을 기준으로 집을 나왔더니 30분이나 일찍 도착하였다. 일찍 나온 집행부 요원들이 김밥을 먹는 사이 준비된 믹스커피 한 잔 타서 마셨다.
7시 25분, 교대역을 출발하여 경부고속도로 버스전용차선을 달렸다. 떡 대신에 김밥이 아침식사로 나왔다. 막힘없이 너무도 빠르게 길을 달렸다. 도로변 산엔 단풍 진 나무들 뿐이고, 논엔 하얀 비닐포장을 한 소먹이용 볏집 덩어리들이 어지럽게 널려있다.
옥산휴게소에 잠시 들렸다. 간만의 남쪽지방 산행이라 즐거운지 동기들도 후배들도 웃음꽃이다.
다시 길을 달려 대덕에서 호남선으로 갈아타고 곧 유성 IC에서 빠져나왔다. 유성에서 계룡산국립공원 가는 길이 6차선으로 꽤 넓게 확장되었다. 계룡산 관광과 공주, 계룡에서의 출퇴근 막힘 때문에 넓힌 것 같다. 예정보다 빠르게 9시 45분에 계룡산주차장에 도착하였다.
버스에서 내려 송신탑이 솟아 있는 계룡산 정상 천황봉을 바라보니, 온통 눈으로 덮혀 있다. 왜 A코스팀에게 아이젠을 가져오라고 했는지 알겠다.
계룡산국립공원 안내판이 서있는 앞뒤에서 단체사진을 찍고, 구호 외치고 A, B팀은 계룡산으로, C팀은 다시 버스를 타고 대전현충원으로 향했다. 25회는 C코스 단골 인자를 포함하여 간만에 10명 완전체로 사진 한 장 찍고, B코스 남매탑으로 향했다.
계룡산주차장에서 계단을 올라 좌우로 상가가 즐비한 도로를 따라 걸어갔다.
상가가 끝나는 다리앞 동학사와 천정탐방로 갈림길에서 잠시 망설이다가 대전에서 합류한 20회 선배 한 분이 망설임 없이 좁은 골목길을 들어서 천정탐방로로 향하는 것을 보고 함께 갔다.
올라가는 도중에 다른 등산객에게 들어서 안 사실이지만, 동학사 못미처 세진정에서 오르면 남매탑 아래 약 600m 정도의 급경사 구간을 힘들게 올라야 하기 때문에 현지 사람들은 주로 완만하고 비교적 쉬운 천정탐방로로 오른단다.
천정탐방로 입구에 멋진 소나무들이 있어 20회 선배들 사진 한 장 찍어 주고 바쁘게 동기들을 뒤따라 갔다.
넓은 다리를 건너니 바로 천정탐방지원센타이다.
예전 현지인들은 대부분 이곳을 통해 등산을 시작했는데, 금년 5월 동학사 입장료가 무료가 되고서는 동학사로 많이 오른단다.
동기들은 벌써 앞으로 치고 나갔다. 아픈 허리 붙잡고 헐레벌떡 뒤쫓아가니 동기들은 산비탈 계곡길을 따라 걷고 있었다.
철난간 작은 다리를 건너서는 큰배재까지 계곡을 왼편으로 두고 경사가 완만한 산길을 걸어 올라갔다.
길도 잘 나있고, 가파르지도 않고, 출입금지 표지도 붙어있어 일부러 들어가지 않는 이상 길 잃을 염려는 없었다.
추울거라 예상하고 옷을 두껍게 껴입었으니, 완만한 오르막 산길이라도 땀은 아니지만 몸에서 더운 기운이 올라와 갑갑하였다.
잠시 쉬며 옷을 한 겹 벗어 버렸다.
주차장에서 1Km, 문골 천지암 갈림길이 나왔다.
계곡을 건너 이파리 없이 붉은 감만 주렁주렁 달려있는 감나무 아래의 길죽한 집이 천지암인가 보다.
집 모습을 보니, 정식 절은 아니고 무속인의 개인암자인 것 같다.
남매탑 가는 길 중에 본격적인 바위길의 시작이다.
바위길을 올라가서 폭우로 무너졌던 길 앞에 새로 놓인 작은 다리를 건너고, 가파른 계단을 돌아 올랐다.
다리 위 영험이 숨어져 있을 법한 엄청 커다란 바위 아래는 기도처였던가 보다. 촛불 검뎅이 흔적이 남아있다.
커다란 나무를 지나 돌식탁이 있는 쉼터에서 장용이가 주차장 가게에서 사온 막걸리와 오색 토마토를 먹으며 잠시 쉬었다.
딱, 산행 중 이시간! 갑자기 성일이표 시원한 맥주가 생각났다.
잠시 쉬는 사이 생각보다 많은 등산객들이 옆을 지나갔다.
길가 큰바위 위의 작은 돌탑들, 심지어 잘려진 나무 기둥 위에도 쌓은 작은 돌탑들,
이처럼 바위, 나무기둥 위에 정성을 다해 돌탑을 쌓았던 산꾼들의 한결 같은 소원은 바로 '안전산행'이다.
작은 돌탑들을 지나 계룡산 산속에서 올해 처음 쌓인 눈을 보았다.
엊그제 내린 눈이 양지쪽엔 다 녹았는데, 계곡쪽 산비탈 응달에는 녹지 않고 아직 남아 있었다.
눈을 보고 나서 바위길을 힘들게 오르니 문골삼거리이다.
지석골탐방지원센터에서 작은 배재를 거쳐 올라오는 등산로와 만나는 지점이다.
25회는 2호차를 타고 올라가라는 부탁을 받아서 시간을 죽이며 쉬엄쉬엄 걸어 30분 거리를 한 시간 걸려 올라왔다.
문골삼거리를 지나서는 평지에 바위들을 넓게 펼쳐 놓은 길 같았다.
길바닥에 깔린 낙엽 속에 눈녹은 물기가 많이 있어서 미끄러져 넘어지기라도 하면 큰 일 날 것 같아 조심조심 걸었다.
큰 바위에 기대어 잠시 쉬며 귤을 까먹고는 바로 위에 있는 계단을 올라 고갯마루 큰배재에 도착하였다.
큰배재는 병사골공원지킴터에서 장군봉, 칼바위, 신선봉을 거쳐 올라오는 길고 긴 등산로와 만나는 지점이기도 하다.
남매탑도 500 m 남았다. 큰배재에서는 쉬지 않고 바로 남매탑으로 향했다.
남매탑이 있는 봉우리 뒤편의 응달이라 아직 눈이 많이 쌓여 있었다.
잠시 내려가는듯 하다가 남매탑고개로 이어지는 긴 오르막 돌계단길이다.
길 초입에 상산탐방지원센터에서 큰골삼거리를 지나 올라오는 또다른 등산로와 만나 큰배재와 남매탑 고개로 이어진다.
돌계단길은 눈이 녹아 질퍽거리고 미끄러워 위험해서 내려오는 사람들과 조심조심 교행하며 천천히 올라갔다.
남매탑 고개로 오르는 마지막 계단길이 제법 힘들었다.
남매탑고개에서 남매탑으로 가는 길에 거꾸로 동학사쪽에서 올라와 남매탑을 보고서 큰배재로 넘어가는 선후배들을 만났다.
"남매탑 다 왔어요! 5분이면 되요!" 지나가면서 말했는데 진짜 5분만에 남매탑에 도착하였다.
20년만에 보는 남매탑은 여전히 소박한 모습이다. 우선 남매탑과 산을 배경으로 인증사진부터 찍었다.
청량사지 쌍탑이라고도 불리는 남매탑은 이상보의 수필 ‘갑사로 가는 길’이 고등학교 국어 교과서에 실리면서 이름이 알려졌다. 두 개의 탑 가운데 칠층석탑(보물 제1285호)을 오라버니탑, 오층석탑(보물 제1284호)을 누이탑이라 부른다.
오뉘탑엔 다음과 같은 전설이 깃들어 있다.
신라 선덕여왕 원년에 당승 상원 대사가 이곳에서 움막을 치고 수도할 때였다. 어느 날 그는 목에 가시가 걸린 범 한 마리를 구해 줬다. 이튿날 범은 보답으로 한 처녀를 물어다 놓고 사라졌다. 스님은 처녀를 정성껏 치료한 뒤 돌려보내려 했으나 하필 큰 눈이 내렸고, 둘은 꼼짝없이 한 움막에서 겨울을 나야 했다. 이듬해 봄 스님은 처녀를 고향에 데려다줬으나 그에 대한 연모의 정이 뼈까지 스민 처녀는 부부의 연을 맺자고 애원했다. 처녀의 소원을 들어줄 수 없었던 스님은 의남매를 맺자고 했고, 둘은 평생 불도를 닦다 한날한시에 입적했다. 둘이 입적한 뒤에 제자들이 세운 부도가 지금의 남매탑이 되었다.
남매탑은 계룡산을 대표하는 풍경 중 하나다. ‘남매탑 명월’이 계룡 8경으로 이름을 올렸다. 남매탑 너머로 보름달 뜨는 모습이 빼어나다는 뜻이다. 한밤중에 위험한 산길을 오르내려야 하니, 현실적으로 등산객들이 ‘남매탑 명월’을 보기는 쉽지 않다.
남매탑 아래 상원암 마당의 식탁에 자리를 잡고 앉아 간식을 챙겨 먹었다.
천년고찰 상원암은 당승 상원대사의 이름에서 따온 것 같다.
상원암앞 텃밭에 잘라낸 배추 겉잎들이 널려있는 것을 보니 얼마전에 겨울채비 김장을 한 모양이다.
텃밭 아래 골짜기를 건너서 앞을 가로 막고 솟아 있는 봉우리가 도덕봉 같다.
오래전 대전 시가지를 바라보며 절벽길을 올라 크게 한바퀴 돌았던 추억이 있는 산이다.
상원암 마당에서 시간을 죽이려니 찬바람이 불어 앉아있기도 서있기도 불편하여 동학사로 내려가기로 하였다.
500m 만 더 가면 전망 좋은 삼불봉인데 그냥 내려가기는 아쉬웠다.
"시간도 널널한데 왔던 길로 되돌아 내려가자!" 장용이가 잠시 한 고집을 부렸다.
"동학사를 돌아보며 시간을 보내면 돼!" 말하며 일승대장이 앞서 내려가니 모두 뒤따라 내려갈 수 밖에 없었다.
가파른 내리막길 돌계단에 싸인 물기 머금은 낙엽에 잘 미끌어져 난간을 잡고도 내려가기가 힘들었다.
울퉁불퉁한 돌길, 돌계단에 발바닥과 무릎에 무리가 와서 잠시 쉴 때도 길 한쪽으로 줄지어 비켜서서 쉬어야만 했다.
남매탑하단 쉼터에 이르러서야 600m 급경사 내리막길은 끝이났다.
쉼터에 선점자가 있어 그냥 지나쳤다.
남매탑하단 쉼터를 지나 계곡을 건너고 나서야 돌길은 완만해졌다.
마른 계곡의 가운데 바위 위에도 작은 톨탑을 쌓아 놓았다.
완만한 돌길을 내려가는 중에 관음봉, 삼불봉, 남매탑을 돌고 첫번째로 내려오는 38회 이준호 후배가 바로 뒤따라 내려와 만났다.
지금까지 3시간 30분 걸렸다. 빨라도 너무 빠르다. 장용이면 모를까? 나머지 우리들은 엄두도 못낸다.
이야기를 나누며 잠시 쉬는 사이, 인호가 재빨리 배낭을 열고 사과 봉지를 꺼내서는 준호와 우리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꿀맛이 따로 없었다.
우리들의 위로와 힘을 받고 준호는 먼저 내려갔다.
계곡을 왼쪽으로 두고 작은 물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길 따라 물 흐르는 계곡이 계속 보이다가 암반계곡 위에 놓여있는 아치형 작은 다리를 건넜다.
건너서 뒤돌아보니, 암반계곡은 깊고 가파른 낭떠리지이다. 그 가운데로 작은 물줄기가 미끄러듯 흘러내리고 있다.
난간 길을 따라 걷고 경사진 돌계단을 내려서 조금 걸어가니 동학사 올라가는 포장도로에 다달았다.
왼쪽은 동학사입구 주차장, 오른쪽은 동학사 오르는 길이 있는 세진정 삼거리이다.
세진정은 두 계곡 합수지점의 다리를 건너자마자 왼쪽으로 계곡에 붙어서 세워져 있다.
세진정을 지나 동학사로 올라갔다.
1층에 기념품 판매점을 두고 있는 범종각을 지나, 대웅전 비석이 서있는 계단을 올라 대웅전으로 들어섰다.
경내는 비구니 사찰답게 깔끔하다. 이곳의 삼층석탑은 남매탑이 있는 옛 청량사에서 있던 것을 옮겨 놓은 것이다. 대웅전에서 바라보면 벽돌담 기와 뒤로 보이는 단풍나무들은 대웅전으로 가지를 뻗고 불경에 귀를 기울이며 수줍은 듯 서있는 모습이다.
동학사는 마곡사의 말사이며 비구니 사찰이다. 동학사는 신라 중엽 때 사원선사가 창건했다는 설과 백제 때 회의화상이 창건했다는 설이 있다. 고려조에 와서 도선국사가 중수했으며 태조의 원찰로 삼아 국태민안을 빌었고, 그 뒤 순조 때와 고종원년(1864년)에 크게 중건, 개수됐다.
안타깝게도 옛 건물은 6·25전쟁 때 모두 불타 없어졌고, 현 건물은 1960년 이후 점차적으로 중건되었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대웅전, 삼성각, 동림당, 조사전, 숙모전, 육화당, 염화실, 강설전, 화경헌, 범종각, 실상선원, 동학강원(東鶴講院) 등이 있다. 특히 동학강원은 운문사의 강원과 함께 한국의 대표적인 비구니 수련도량으로 유명하다. 산내암자로는 관음암, 길상암, 문수암, 미타암, 귀명암, 상원암 등이 있다.
대 위의 장용이와 여동들은 무엇을 열심히 쳐다보는 걸까? 혹시 부처님이라도 본 것인가?
대웅전 밖으로 나와 다시 보니, 게곡의 언덕 위에 서있는 늦은 단풍나무는 멋지기도 하였다.
동학사입구에 있는 식당을 향해 계곡을 따라 난 길을 천천히 내려갔다.
가을 가믐으로 수량은 적지만 비구니 스님들의 맑은 눈동자처럼 물은 맑았다.
길 왼쪽으로 줄지어 붙어있는 동학사의 작은 암자들인 미타암, 길상암, 문수암, 관음암 등을 지났다.
자연관찰로에는 사람은 거의 없고, 치우기도 힘든 낙엽만 쌓여 있다.
늦은 단풍과 어우러진 일주문은 멋진 자태를 뽐내며 위풍당당하게 서있다.
모든 것을 다 내려 놓고 들러가야 할 문에서 오만한 폼을 잡고 사진을 찍자고 하니 부처님 노하실까 나도 쫄았다.
3시에 동학사입구에 있는 식당에 도착을 하였다.
1호차는 한참 전에 먼저 출발하였고, 20회 선배들과 36화 후배들이 남아 있었다.
자리를 잡고 시원한 맥주부터 한 잔 마셨다.
상이 차려지고 버섯고기전골로 식사를 하는 중에 연이어 A코스를 돌고내려온 후배들이 도착을 하였다.
맛있는 파전을 안주로 고주, 맥주, 막걸리 취향대로 마셨다.
분위기가 무르익으니, 산악회장과 20회 선배들은 이곳저곳 옮겨 다니며 정이 넘치게 술을 나눴다.
4시 30분, 동학사주차장을 출발하여 유성IC로 가지 않고 세종, 천안으로 들어섰다가 길이 막히는 바람에 한참을 헤멨다.
6시 30분, 간신히 천안 IC에서 들어서 버스전용차로를 마구 달려 1시간만에 교대역에 도착하였다.
샛길로 빨리 가려다가 1시간 늦게 도착하였다. 정석대로 가는 것이 제일 빠르다!
12월 총회산행에서 봅시다.
|
첫댓글 항상 선배님 기행문 덕분에 이번산행에 참석못했지만 함께 산행한것 같은 기분입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형님
나중에 꼭 산행 후기 모음 수필집을 출판할 것을 강권 드립니다. 차승환 올림
주묵씨 ... 산행후기 잘 읽었습니다...
저는,, 계룡산은 처음 가보는 곳 이라서
기대와 설레임으로 참석하였습니다.
그런데.. 경치도 볼 사이 없이,, 25 동기들, 뒤 쫒아가느라,,
정신없이,, 숨가쁘고 힘든 산행 이있습니다...
하산 마지막쯤 거의 다 내려왔을 때 , 낙엽 과, 돌에 미끄러져 넘어져 버렸습니다.. ㅠ ㅠ
아마도,,,
계룡산 산신령님 께서, , ,,
저에게 앞으로는 더욱 조심 해야 한다는
무언의 메세지 인듯 싶었습니다, ^^ ^^..
주묵씨,,,, 기행문 글 쓰시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