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브, 1000만 팬덤 플랫폼 운영
카카오 경영투명화 ‘SM 3.0’ 속도
라이벌 네이버와 불편한 동거할듯
‘SM 인수’를 위한 한 달여 간 ‘머니 게임’이 마무리되며 K-팝 산업은 또 한 번 전환기를 맞게 될 전망이다.
카카오가 SM의 경영권을 갖고, 하이브와도 긴밀히 협력하기로 하면서 K-팝 시장에 미치는 영향력이 대폭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따라 20여년 간 SM, YG, JYP 등 빅3 체제를 유지해오던 국내 엔터 업계는 그룹 방탄소년단(BTS)의 세계적인 성공으로 SM, YG, JYP, 하이브 등 빅4로 이어진 후 카카오의 등장과 함께 구도 재편을 다시 시작하게 됐다. 하이브, SM·카카오 연합, YG, JYP 등 3개의 큰 축이 K-시장을 좌지우지 할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관련기사 13면
13일 엔터업계에 따르면, 카카오는 지난 10일 오후 하이브와 함께 협상 테이블에 앉으며 SM 인수와 관련한 사안을 논의, 구체적인 방향성을 잡았다. 이어 3일 뒤인 12일 카카오가 경영권을, 하이브가 플랫폼 협업으로 실리를 챙기는 것으로 극에 달한 치킨 게임을 마무리했다.
김범수 카카오 창업주(왼쪽), 방시혁 하이브 이사회 의장
▶1000만 규모 팬 플랫폼 탄생 ‘눈앞’=SM 인수전이 마무리되면서 K-팝 산업의 지각변동은 불보듯 뻔하다는 게 대체적 반응이다. 특히 새로운 K-팝 제국의 제왕이 누가 될 것인지가 초미의 관심사다.
가요계에 따르면, 하이브는 카카오에 SM의 경영권을 넘기는 대신 다양한 분야에서 사업 협력을 이어나가기로 했다. 특히 플랫폼에 대한 협의를 중점적으로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이브가 운영하고 있는 국내 최대 팬 플랫폼 ‘위버스’에 SM 가수들을 입점하는 한편, 가수들의 쇼케이스, 공연, 팬미팅을 비롯한 일상 공유 라이브 플랫폼 ‘네이버 브이라이브’와도 협업하기로 한 것이다.
‘팬덤 플랫폼’은 카카오와 하이브 양측 모두가 탐냈던 사업이다. 하이브는 일찌감치 팬 플랫폼 사업에 뛰어들었다. 국내 엔터사 최초의 팬덤 플랫폼인 위버스를 운영, 네이버와 함께 덩치를 키웠다. 네이버는 지난 2021년 하이브에 자사 팬 플랫폼 브이라이브를 넘겼고, 대신 위버스 지분 49%를 가지며 견고한 협력 체계를 마련했다. 이용자는 월간 약 840만 명에 달한다.
위버스의 유일한 대항마는 SM 계열사 디어유가 운영 중인 팬덤 커뮤니티 플랫폼 ‘버블’이다. 버블에선 SM을 비롯해 국내 67개 엔터사의 125개 그룹, 솔로 아티스트들의 유료 구독 콘텐츠를 공급하고 있다. 특히 디어유의 핵심 서비스인 아티스트와 팬의 ‘1대1 프라이빗 메시지’가 인기다. 위버스에는 없는 서비스다. 유료 구독자 120만 명을 보유한 버블은 JYP가 18.9%의 지분을 가지고 있다.
SM과 카카오, 하이브로 구축된 새로운 ‘K-팝 연합’으로 이들의 주요 사업인 ‘팬덤 플랫폼’ 사업 확장에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업계에선 이번 협업을 ‘윈윈 전략’이라고 보고 있다. 특히 플랫폼 사업 측면에선 하이브는 버블과의 협력, SM 아티스트들의 위버스 합류로 명실상부 전세계 최대 플랫폼을 구축하게 된다. 위버스와 버블이 통합 형태로 방향을 잡을 경우 월간 활성 사용자 수 1000만 명에 달하는 ‘공룡 플랫폼’이 탄생하게 된다.
▶카카오, 엔터 상장 ‘청신호’=SM도 손해는 아니다. SM이 운영하고 있는 공연 중계 플랫폼 ‘비욘드 라이브’가 운영 초기 네이버 ‘브이 라이브’를 통해 이용자 유입을 늘렸지만, 지난해 브이라이브가 하이브와 손을 잡으며 교류가 끊겼다. “하이브와의 플랫폼 협력은 어떤 형태로든 이점이 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는 배경이다.
무엇보다 카카오와 카카오엔터가 얻는 것이 적지 않다. 그토록 원하던 ‘아티스트 IP(지식재산권)’ 파워를 가지게 됐다. 그간 엔터 업계에서 카카오가 저평가받은 이유는 기존 빅4 기획사와 같은 ‘슈퍼 IP’가 없었기 때문이다. 카카오는 이제 아이유 소속사 이담을 비롯해 스타쉽, 안테나 등 총 11개의 엔터테인먼트사는 물론 엑소, NCT, 에스파까지 SM의 아티스트 IP를 품을 수 있게 됐다. 덕분에 업계 내 카카오의 위상이 올라가면서 자회사인 카카오엔터의 상장 가능성도 커졌다.
‘SM 인수전’에 깊이 개입한 한 관계자는 “3사 모두 K-팝으로 글로벌 시장의 메인스트림에 서며 경쟁력을 가지고 싶어한다는 교집합을 확인했다 점이 이번 합의의 배경에 있다”며 “카카오는 이제 SM의 IP를 활용해 미디어콘텐츠·웹툰·웹소설 등 K-콘텐츠의 강점을 살려 글로벌 엔터테인먼트 사업에 가속화할 수 있고, 하이브는 플랫폼을 비롯해 카카오와의 여러 사업이 협력으로 경쟁력 강화의 계기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다만 다소 ‘불편한 동거’는 예상된다. SM의 경영권을 가진 카카오의 등판, 카카오와 하이브의 ‘다양한’ 사업 협력으로 난데없이 네이버와 카카오가 같은 이불을 덮게 된 것이다. 플랫폼을 비롯해 웹툰, 웹소설 등 핵심 사업에서 경쟁을 벌이고 있는 양사가 K-팝 분야에선 협력 관계로 어색한 만남을 하게 된 셈이다.
뿐만 아니라 지분 구조도 풀어야 할 과제다. 하이브가 여전히 이수만 SM 전 총괄 프로듀서로부터 사들인 지분을 가지고 있다. 이번 협상 테이블에선 하이브의 지분에 대해선 논의되지 않았다.
업계에선 하이브가 공개매수를 통해 지분을 던질 가능성, 하이브가 지분을 쥐고 향후 SM 플랫폼 협의에 활용할 가능성을 제기한다. 하이브는 “SM 주식을 어떻게 할 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결정된 내용이 없다”고 말을 아꼈다. 현재 지분 4.9%를 보유하고 있는 카카오와 카카오엔터테인먼트는 공개매수를 이어간다. 카카오에선 양측의 합의로 SM의 주가가 안정화에 접어들면 공개매수에서도 긍정적인 결말이 나올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SM의 미래, 3.0 계획 실현되나=카카오가 SM의 경영권을 가져오면서 양사의 사업협력 계획이 어떻게 구체화될 지도 주목된다.
앞서 SM은 카카오와 다양한 사업을 추진하기로 했다. 카카오엔터와 북미 합작법인 설립하는 것은 물론 미주 거점의 신인그룹 데뷔, 카카오의 음원 스트리밍 서비스 멜론을 통한 SM 가수들의 음원·음반 및 공연 티켓 유통 등 주요 핵심 사업들을 협력하기로 했다. 해당 내용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사업협력 계약을 맺은 이후 세부안을 짜야 하는데 그간 지분 인수 등의 복잡한 과정으로 한 달 간 세부 논의를 하지 못했다”며 “이제 세부안 수립에 속도를 낼 수 있을 것 같다”고 귀띔했다.
K-팝 산업을 닦은 선구자의 역할을 해온 SM은 카카오와 함께 새롭게 도약할 채비를 하고 있다.
SM은 카카오와 하이브의 합의 이후, “SM은 이제 주주, 구성원, 팬과 아티스트에게 약속한 ‘SM 3.0’ 전략을 속도감 있게 추진하고 팬, 주주 중심의 글로벌 엔터테인먼트 회사로의 도약이라는 미래 비전을 반드시 이뤄내겠다”고 강조했다.
카카오와 하이브의 극적인 합의로 일단락된 만큼 오는 31일로 예정된 주주총회에서 하이브 측 사내이사 후보들은 사의를 표명할 예정이다. 앞서 SM은 장철혁 최고재무책임자(CFO), 김지원 마케팅센터장, 최정민 글로벌 비즈니스 센터장 등 3인의 사내이사를 포함한 6인의 사외이사, 2인의 기타 비상무이사를 후보로 올린 바 있다.
카카오 관계자는 “이사진 후보에 대해 논의되는 부분은 없지만, 카카오의 경영권 확보로 상황이 달라졌기에 조정 가능성도 있다”며 “양측이 협의해 결정해나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고승희 기자
고승희 she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