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당동으로 둥지를 옮긴 지 2주를 넘겼다.
방배동에서 이삿짐이 출발하고
우리 세식구는 분당의 루루(如如)라는 중국식당에서
맛난 점심을 들고
새 둥지에 도착하니
현관문에 이미 달려있다.
분당성요한성당
이제 짐정리도
집안정리도 마무리 되었고
주변의 불곡산 율동공원도 돌아보았다.
언제부터인가
나그네 길 나서면
젤 먼저 그 지역의 성당에 들러
마음을 추스린다.
이번 주말
일요일 저녁비양기로
막탄공항
세번째로 찾는다.
안전하게
또 좀 더 자유롭게 잠수하고
유영할 수 있도록
내 몸을 바다속에 적응시키려는
과정일 뿐이다.
행운이 찾아준다면
바다복덩어리
거북이를 만나 눈인사를 나눌 수도 있을 것이다.
화면으로 보던 바다속 세상
실제로 2, 3십미터 내려가
내 눈으로 본다는 거
벌써 19회 잠수를 하였지만
마냥 흥분되고 설레인다.
내가 무슨 복이 많아서
이런 행운을 누리고 사는지???
체력도 끌어올리고
폐활량도 높이고
지구력도 키워야겠고
중간에 이마트에 들러
필요한 장을 본 탓에
오후 2시가 넘었다.
시간상 빠듯하다.
성지를 둘러보고
광교산을
성지에서 출발하는 용인너울길을 따라
시루봉까지 오르는 것이
맹모삼천
울 집 막둥이따라 삼천 사천
그리곤 다시 좀 멀지만 인근으로 둥지를 틀었다.
홀로 동천동 집에서
걸어서 동막천을 따라 손골성지에
그리곤
광교산을 오르곤 했었는데
장남 짝 이루고
둘째 사제의 길로 떠나고
모처럼
온 가족이 또 찾았던 곳이기도 하고
내 힘들고
답답할 때면
찾아왔던 곳이기도 하다.
처음 찾아왔을 때와는 사뭇 달라져
성지로서의 꾸밈도
성당도 번듯하게 세워져 있다.
살짝 눈 내린 성지를
지난 추억도 겯들여 가면서
찬찬히 돌아보았다.
성지 위로 오르는 산길
십자가의 길을 지나
작은 골짜기를 따라 위로 위로
용인너울길이 이어진다.
이젠 체력도 전같지 않고
쉬엄쉬엄 시간반 걸으면
목적지를 불문하고
되돌아 온다.
이 길로 광교산 여러차례 올랐던지라
익숙하다 생각했겄만
막상 오를 수록 사람의 흔적은 뜸했고
길도 인동초와 다래넝쿨이 우거진 곳에서부터는
사라졌다.
한겨울에 푸르른 인동초
인동을 그리도 사랑했던 님을 떠올려보고
계속 떡갈나무잎으로
미끄러운 경사를 올랐다.
스틱 대신
부러진 나뭇가지를 챙겨서
조심스레 오르고
또 올랐건만
광교산으로 오르는 능선길은 멀기만 하다.
아차하면 미끄러지는 산길
조심스레 올라
조금만 더 가면
능선길을 만날터이지만
이미 4시 반
마음을 비우고 내려가야 한다.
능선길까지 올라가서
편하게 좀 멀지만 돌아서 갈 수도 있지만
그냥 정해진 내 룰대로
하산하기 하였다.
경사도 급하고
낙엽이 수북히 쌓여있으니
걷기보다는 주저앉아
낙엽썰매를 타고 말았다.
얼마나 내려왔을까
길을 찾을 수가 없다.
한참을 헤매고서야
올라왔던 길
나만의 흔적을 찾아
조금 어렵게 하산하였다.
곧 이 코스는 사라지겠구나
간간히 즐기던 나도
이제 찾지 않으니...
어찌보면
당연하고 옳은 순리가 아닐런가?
자연은 사람이 덜 찾으면 찾을 수록
활기를 되찾고
본연의 모습을 보여준다.
사람들은
자신들을 위하여
자연의 섭리보다는
인간의 뜻으로 맹글어 간다.
천주교 갈매못성지에 들렀던 글에
그지역의 토백이님이 댓글을 달았다.
"참, 무섭습니다. 썩은 물 웅덩이였던곳이 어느날 순교지로 팻말이 서더니 전도관? 수련관? 이 들어서고 대형 버스들이 순례지 팻말을 붙이고 몰려들더니 이제는 성지로 자리잡았네요. 믿음에 힘이랄지? 대물림에 시끄러운 대형 교회를 보면 자본주의가 좋은건지? 민주주의 종교의 자유가 좋은건지? 신자로 세례받고 냉담하는 난 하늘나라에가면 혼줄나겠지요?ㅎ "
시신도 못 건진
성인을 모신 손골성지
첨에는 가묘로
지금은 아예 가묘를 없애고
무명순교자의 묘도 봉우리를 올리지 못한다.
이미 개정된 법에 따라서...
20대 초반에 순교한 프랑스인 선교사
그 아버지는 집안에서 사용하던 맷돌을 보내왔고
그 맷돌은 십자가가 되어
하나님의 숭배와
인간인 애비로서의 부정을 절절하게 보여주고 있다.
VIDEO
첫댓글 바쁜 하루 보내셨네요
수고하셨습니다
멋진구경 했네요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