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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순정> 2월 17일 개봉 |
영화 <순정>으로 입봉한 이은희 감독은 김소현을 ‘멜로 신동’이라고 했다. 어떤 디렉션을 줘도 그 이상으로 이해해 깊이 표현해냈기 때문이다. 사실 신인 감독에게 영화 <순정>은 모험이었다. ‘지붕 없는 미술관’이라 불리는 전남 장흥의 풍광, 그만큼이나 때묻지 않은 섬 마을 소년소녀들의 성장기…그게 전부였다. 이 무공해 청정영화를 뚝심있게 밀어부칠 수 있었던 건 배우에 대한 믿음 때문이었다.
수옥 역할을 맡은 김소현 뿐 아니라 범실 역의 도경수(EXO), 길자 역의 주다영, 개덕 역의 이다윗, 산들 역의 연준석까지… 이은희 감독은 이들을 ‘순정이들’이라고 불렀다. 이들의 자연스러운 모습이 좋아, 현장에서 추가된 장면도 있다. 완성된 장면의 “컷!”도 배우들이 직접 외치게 했다. 함께 ‘까르르’ 웃다보면 붉은 노을이 지던 바닷가, 김소현은 “꼭 다같이 수학여행을 다녀온 것 같다”고 그 시간을 추억했다.
“촬영 전에는 힘들었어요. 수옥이는 ‘첫사랑’의 상징같은 존재니까요. 그 무게가 처음엔 버겁더라고요. 저에게서가 아니라 친구들에게서부터 시작해서 수옥이를 이해했어요. ‘왜 이렇게 친구들이 수옥이를 사랑하고 챙겨주었을까’…수옥이는 친구들에게 ‘언제든 그곳에 그대로 있어주는 존재’인 거예요.”
물 수(水)에 구슬 옥(玉) 자를 쓰는 수옥이는 바닷가 마을의 진주같은 존재다. 어릴 적 엄마를 잃고 병으로 다리 한 쪽을 쓰지 못하지만 속이 깊고 하는 행동은 더 곱다. 뭍에 나간 친구들이 방학을 맞아 돌아오기를 기다리면서 혼자 글을 쓴다. 바 소(所)에 빛날 현(炫)을 쓰는 김소현은 수옥이와 닮은 점이 많다. 어릴 적 아버지를 잃었다. 여덟 살에 연기를 시작해 사회를 일찍 배우면서 이른 철이 들었다. 다른 배우들이 술자리를 가질 때 미성년이던 김소현은 숙소에서 이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섬 밖의 세상을 자유롭게 다니는 친구들을 하염없이 기다리는 수옥이처럼.
수옥 역할을 맡은 김소현 뿐 아니라 범실 역의 도경수(EXO), 길자 역의 주다영, 개덕 역의 이다윗, 산들 역의 연준석까지… 이은희 감독은 이들을 ‘순정이들’이라고 불렀다. 이들의 자연스러운 모습이 좋아, 현장에서 추가된 장면도 있다. 완성된 장면의 “컷!”도 배우들이 직접 외치게 했다. 함께 ‘까르르’ 웃다보면 붉은 노을이 지던 바닷가, 김소현은 “꼭 다같이 수학여행을 다녀온 것 같다”고 그 시간을 추억했다.
“촬영 전에는 힘들었어요. 수옥이는 ‘첫사랑’의 상징같은 존재니까요. 그 무게가 처음엔 버겁더라고요. 저에게서가 아니라 친구들에게서부터 시작해서 수옥이를 이해했어요. ‘왜 이렇게 친구들이 수옥이를 사랑하고 챙겨주었을까’…수옥이는 친구들에게 ‘언제든 그곳에 그대로 있어주는 존재’인 거예요.”
물 수(水)에 구슬 옥(玉) 자를 쓰는 수옥이는 바닷가 마을의 진주같은 존재다. 어릴 적 엄마를 잃고 병으로 다리 한 쪽을 쓰지 못하지만 속이 깊고 하는 행동은 더 곱다. 뭍에 나간 친구들이 방학을 맞아 돌아오기를 기다리면서 혼자 글을 쓴다. 바 소(所)에 빛날 현(炫)을 쓰는 김소현은 수옥이와 닮은 점이 많다. 어릴 적 아버지를 잃었다. 여덟 살에 연기를 시작해 사회를 일찍 배우면서 이른 철이 들었다. 다른 배우들이 술자리를 가질 때 미성년이던 김소현은 숙소에서 이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섬 밖의 세상을 자유롭게 다니는 친구들을 하염없이 기다리는 수옥이처럼.
“저도 힘들거나 복잡한 일이 있으면 글로 써 봐요. 그러다보면 도움이 되더라고요. 쓰면서 스트레스가 풀리기도 하고요. 혼자 있는 시간이 많고, 제약이 있고, 그런 상황이 수옥이랑 비슷했던 거 같아요. 저야 미성년자니까 시간이 흐르면 해결되는데 수옥이는 아예 섬 밖으로 못나가는 거잖아요. ‘그래서 그렇게 다리를 고치고 싶었구나’ 싶어 마음이 짠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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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겪은 무명의 기억
김소현은 2006년, KBS <드라마시티- 십분간, 당신의 사소한>이라는 단막극으로 연기를 시작했다. 올해로 11년차다. 2010년 영화 <파괴된 사나이>를 만나기까지 5년간은 무명에 가까운 시절을 보냈다. 엄마와 함께 고속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오디션을 보러 다녔다. 여의도에 살다시피 하며 보낸 시절도 있었다. 화면에 잠깐 비추는 그 짧은 배역을 위해 몇 날을 기다리는 삶이 반복됐다. 기다림보다 힘든 건 막막함이었다. 아직 주변에 어리광을 부려도 좋을 나이, 김소현은 자신 때문에 함께 힘든 시간을 보내는 엄마와 남동생에게 미안한 마음뿐이었다.
“보조출연으로 시작해서 굉장히 오디션을 많이 봤어요. 거의 대부분은 떨어졌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연기를 못했으니까 당연한데(웃음), 굉장히 힘들었어요. 초등학교 4학년 때 쯤부터는 조금씩 역할을 맡았는데 너무 막연하더라고요. ‘이렇게 하다보면 언젠간 배우가 될 수 있을까?’ 싶어서요. 동생은 동생대로, 엄마는 엄마대로 저 때문에 너무 고생하시니까 밤마다 눈물이 나더라고요. 엄마도 느끼셨는지 “언제든 네가 힘들면 그만 둬도 괜찮다”고 말씀해주셨어요. 그 말을 들으니까 그만 두고 싶지가 않더라고요.”
그러다 2010년 영화 <파괴된 사나이>를 만났다. 스스로도 이상하다고 생각할 정도로 꼭 하고 싶었다. 극중에서 납치되어 구금되어 있는 배역 주혜린에게 자신을 맞추기 위해 ‘밖에 나가지도 않고, TV도 보지 않고, 밤이 되면 불도 끄지 않은 채로 방 안에 갇혀’ 지냈다.
“5학년 때였어요. ‘이건 꼭 해야겠다’는 마음을 처음으로 느껴봤어요. 당시에 오디션을 5차까지 봤어요. 매번 갈 때마다 자유연기를 1~2개씩 하는데, 5개씩 준비했어요. 마지막 오디션을 보고 집에 가는데 눈물이 나더라고요. 떨어진 것 같아서요. 근데 전화가 와서 ‘됐으니까 돌아오라’고요. 그 순간을 잊을 수가 없어요. 내가 노력한 것에 대해서 “드디어 반응이 오는구나” 싶었거든요.”
그러다 2010년 영화 <파괴된 사나이>를 만났다. 스스로도 이상하다고 생각할 정도로 꼭 하고 싶었다. 극중에서 납치되어 구금되어 있는 배역 주혜린에게 자신을 맞추기 위해 ‘밖에 나가지도 않고, TV도 보지 않고, 밤이 되면 불도 끄지 않은 채로 방 안에 갇혀’ 지냈다.
“5학년 때였어요. ‘이건 꼭 해야겠다’는 마음을 처음으로 느껴봤어요. 당시에 오디션을 5차까지 봤어요. 매번 갈 때마다 자유연기를 1~2개씩 하는데, 5개씩 준비했어요. 마지막 오디션을 보고 집에 가는데 눈물이 나더라고요. 떨어진 것 같아서요. 근데 전화가 와서 ‘됐으니까 돌아오라’고요. 그 순간을 잊을 수가 없어요. 내가 노력한 것에 대해서 “드디어 반응이 오는구나” 싶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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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김소현은 500:1의 경쟁을 뚫고 혜린 역을 맡았다. 소속사인 싸이더스 HQ를 만난 것도 이 때다. 아무리 두드려도 열릴 것 같지 않은 문이 열렸다. 이후 배우 ‘김소현’의 이름을 각인시킨 드라마 <해를 품은 달(2012)>, <보고싶다(2012)> 등을 연달아 찍었다. 당시 <해품달>을 연출했던 김도훈 PD는 김소현을 ‘이성적으로 이해하는 차원이 아니라 가슴으로 받아들이는 감성의 폭이 놀랄 정도로 넓은 배우’라고 했다. 연우(김유정)를 시기하는 보경 역을 맡았던 <해품달> 뿐 아니라 <옥탑방 왕세자>에서도 세자빈으로 간택된 여동생을 괴롭히는 악역을 연달아 맡았다. 당시에는 그에 대한 댓글이 99%는 악플이었다고 했다.
“선배님들이 악역은 나쁜 말을 많이 들을수록 잘한 것이라고 말씀해주셔서 괜찮았어요. 극 중에서 상대배우들에게 사랑보다는 미움을 받는 역이라 외롭긴 했지만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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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역에서 주연으로
악역을 맡은 경험은 두고두고 도움이 됐다. 이후 김소현은 1인2역 역할을 두 번이나 맡는다. OCN에서 제작한 드라마 <리셋>에서는 최승희/조은비라는 1인2역을, 지난해 종영한 드라마 <후아유-2015>에서는 왕따 이은비와 퀸카 고은별이라는 1인2역을 소화했다. 이를 통해 아역이 아닌 주연으로 한 작품을 이끌었고, 서로 다른 캐릭터를 이해하는 법을 배웠다. 연말대상 시상식에서 ‘베스트 커플상’과 ‘신인상’을 함께 수상했을 정도로 호평을 받은 작품이기도 하다. 하지만 김소현 개인에게는 뒤늦게 찾아온 ‘질풍노도의 시기’이기도 했다. 배우와 학생이라는 1인 2역은 감당하기가 버거웠다고 했다.
“제가 중3병을 좀 앓았어요(웃음). 주연 작품을 만나서 너무 잘하고 싶은데 연기에 집중하기도 학업에 집중하기도 너무 어려운 시간이더라고요. 촬영하는 내내 갈등이 커서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를 진학할 것인지, 말 것인지 고민이 됐어요. 가족과, 회사와 상의도 했지만 결국엔 제가 선택을 해야 할 부분이었어요. 만약 학교를 간다면 새로운 작품을 할 때 후회를 할 거 같았어요. 가지 않기로 결정하고 난 뒤에는 마음이 편하더라고요.”
고등학교 진학 대신 홈스쿨링을 택했다. 주변에서 “평범한 학창시절이 그리울지 모른다”고 염려했지만, 그만큼 남은 중학교 생활에 더 집중했다. 평생 갈 친구들도 사귀고, 학교 활동에도 최선을 다했다.
“이제 아역에서 좀 더 비중있는 역할로 넘어가는 시기인데, 제가 함께 하는 많은 스태프들에게 폐를 끼치면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맡은 역할에 욕심도 났고요.”
그렇게 연기에 ‘올인’하기로 하고 처음 만난 작품이 <순정>이다. <순정>을 찍는 동안은 아예 고흥에 내려가 살았다. 촬영이 없을 때는 고흥 시내를 돌아다녔다. 혼자 목욕탕에 가서 동네 주민들이 하는 이야기를 귀동냥으로 들었다. 어떻게 하면 마을의 일부가 될 수 있을까 싶어 마을 구석구석을 살폈다.
“초반에 다른 배우들이랑 친해지는 게 좀 어려웠어요. 오빠들이 저를 웃겨주려고 노력을 많이 했죠. 마니또 게임도 하고요. 그 마음이 참 고마웠어요. 저도 낯을 가린다고 가만히 있으면 안 되겠다 싶더라고요. 친해지기 시작하니까 금방 마음이 열렸어요. 사실 갈 곳도 없고 놀 것도 없으니까 시시한 이야기도 재미있게 느껴지는 환경이었어요.”
함께 호흡을 맞춘 배우 도경수는 장흥에서의 시간을 ‘내 인생 최고의 시간’이라고 꼽았다. 그곳에서 한류스타 엑소의 디오는 없었다. 알아보는 사람이 없는 자유의 몸, 쉬는 시간이면 마음껏 밖으로 산책도 다니고 맛 집도 찾아다녔다. 서울은 물론 중국과 일본에서도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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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경수 오빠는 눈빛이 정말로 좋아요. 대사가 많지 않은데 그 눈을 보고 있으면 감정이 전달돼서 자연스럽게 저도 수옥이가 돼요.”
여기에는 이은희 감독의 역할도 크다. 섬마을 소년소녀의 첫사랑 이야기를 제대로 표현하기 위해 김소현과 도경수에게는 다른 숙제를 내주었다. 카메라가 돌고 있든 아니든, 둘이 손을 꼭 붙잡고 다니라는 것. 혹시 부끄러울까봐 이런 디렉션은 귓속말로 전달했다.
“귓속말 디렉션은 처음이었어요. 다른 사람들이 보고 있고, 듣고 있으면 아무래도 의식이 되고 부담이 되잖아요. 그런데 저한테만 들리게 말씀해주시니까 더 집중할 수 있더라고요. 중간에 한 번 손을 놨는데, 감독님이 모니터로 보고 계시더라고요. “수옥이, 손 잡으세요”라고 무전이 와서 다시 잡았죠.(웃음)”
덕분에 그 설렘과 떨림이 화면에 잘 담겼다. 도경수 모르게 노력한 것도 있다. 극 중에서 김소현은 거의 친구들의 등에 업혀 다닌다. 그 중에서도 도경수가 가장 많이 업는다. “내가 평생 니를 업고 다닐팅게”가 이 순박한 소년의 사랑표현이다. 그런데 그가 엑소 해외공연 도중 발목 부상을 입었다. 내색을 안 해 촬영이 강행됐다. 뒤늦게 안 김소현은 저녁을 굶었다. 조금이라도 수옥을 가볍게 만들어주고 싶어서다.
“수옥이가 속이 이렇게 깊어요(웃음). 수옥은 범실(도경수)에 대한 마음을 표현하기가 조심스러웠을 거예요. 다 같이 친구니까요. 그래도 좋아하는 마음을 늘 한 켠에 두고 촬영했어요. 수옥이가 다리를 고치고 싶은 것도, 섬 밖에 가고 싶은 것도 결국은 범실이랑 함께 있고 싶은 마음 때문인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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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김소현의 오늘
그리고 23년 만에 수옥이 보낸 편지가 범실에게 닿는다.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로 남았던 수옥의 목소리가 어른이 된 네 친구들의 가슴을 친다. 수옥이가 늘 마음에 품고 있었던 말, 그러나 한 번도 하지 못한 말. “미안해, 사랑해, 고마워”
“수옥이가 그러잖아요. “우리 내일 만나”, 그런데 이제는 수옥이를 못 만나요. 그래서 수옥이가 마지막에 한 말이 더 와 닿아요. “가장 아프고 가장 예쁜 오늘, 용기를 내서 주변 사람들에게 표현하세요”, 저도 이제 표현을 좀 해야 할 거 같아요. 너무 내일만 보면서 달리는 게 아닌가 싶어서요.”
일곱 살 때 피아노 보다는 연기가 좀 더 ‘특별해’보여서 학원에 등록했다. 너무 어린 아이가 와서 그런지 학원에서는 연기가 아닌 자기소개와 인사하는 법을 가르쳐줬다. 여덟 살부터 오디션을 봤다. 지금 와 생각해보니 학원에서 배운 연기가 아니라 현장에서 배운 연기를 하게 돼 다행이라고 했다. 초등학교 때는 매일 줄넘기를 1,000개씩 했다. 어른이 될 때까지 원하는 만큼 키가 크지 않을까봐 걱정이 돼서다. 그렇게 줄곧 내일만 바라보며 뛰어왔다. 그런데 이제는 ‘오늘’에 집중해보고 싶다.
“작품이 연달아 있어서 홈스쿨링의 커리큘럼에 차질이 생기고 있어요.(웃음) 이제 슬슬 공부를 시작하려고요. 하고 싶은 것부터 해보자 싶어서 ‘한국사’ 공부를 시작했어요. 중학교 때 중간 중간 들어서 그런지 역사를 제대로 알기가 어렵더라고요. 중간에 들으면 이해도 안 되고요.”
다음 작품은 마침 역사극인 <덕혜옹주>다. 역사를 공부하는 만큼 작품에 대한 이해도 깊어질 것 같다. 10년을 쉼 없이 달려왔고, 이제 하루하루를 소중히 여기며 살아보려 한다고 다짐하는 그는 이제 열일곱이다. “네가 있는 곳에서 빛나라”는 뜻으로 어머니가 지어주었다는 이름 소현(所炫), 항상 그 자리에 있기에 수옥이 수옥(水玉)으로 남은 것처럼 그도 작품 하나하나에 인장을 찍듯 김소현 이름 석 자를 남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