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미 人터뷰] 팬들과의 소통 중시하는 차명석 단장, “욕먹는 건 두렵지 않다”
2020.06.29. 오후 08:45
<단장 2년차. 여전히 팬들과의 소통에 적극 나서고 있는 LG 트윈스 차명석 단장과 한강에서 인터뷰를 진행했다.(사진=이영미)>
“아침에 일어나 휴대폰을 보면 개인 SNS DM에 수백 개의 메시지들이 쌓여 있는 걸 확인한다. 욕설 담긴 내용이 대부분이지만 빼놓지 않고 다 읽는다. 욕설의 중간 중간에는 귀담아 들을 만한 내용도 있기 때문이다. 단장은 욕먹는 자리다. 그리고 팬들과 소통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그걸 두려워한다면 이 일을 하기 어렵다.”
LG 트윈스 차명석 단장은 10개 팀 단장들 중 팬들과 가장 활발하게 소통하는 단장이다. 일부 팬들은 LG 성적의 높낮이나 선수 기용 관련해서 불만이 생기면 차 단장의 SNS에다 팀 운영 관련해서 비난 섞인 글들을 올린다. 일일이 댓글을 달지는 못해도 차 단장은 모든 글들을 그냥 흘려보내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렇게 글을 쓸 정도면 LG에 대한 애정이 대단한 팬이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그중 가장 많은 글을 올린 이에게 잠실야구장에서 만나자고 청했다. 그 내용이 언론을 통해 알려진 데 대한 부담 때문인지 글 작성자는 정해진 시간에 나타나지 않았다.
차 단장이 팬들과의 소통에 앞장 서는 이유는 팬들의 알 권리 때문이다. 그는 “추울 때나 더울 때 돈 들여 야구장을 찾아올 정도의 팬이라면 구단의 운영 방침이나 앞으로의 계획 등에 대해 어느 정도의 알 권리는 있다”고 설명한다.
오랜만에 차 단장을 만나 LG 팬들이 궁금해 하는 몇 가지의 현안을 가지고 인터뷰를 진행했다.
실책 1위 정근우, 보이지 않는 평가
7개월 전 정근우가 2차 드래프트를 통해 LG 유니폼을 입을 때만 해도 팬들은 국가대표 레전드 2루수의 영입에 크게 기뻐했다. 그러나 시즌이 개막되고 정주현과 함께 교대로 출전하고 있는 지금 정근우는 41경기 출장에 8개의 실책을 범해 리그 전체 실채 1위라는 불명예를 안고 있다. 일부 LG 팬들은 수비 실책이 잦은 정근우에게 너무 많은 기회를 주는 게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인다. 차명석 단장도 팬들의 이런 반응에 대해 잘 알고 있지만 외부에서 보는 것과 내부에서 보는 시선은 다를 수밖에 없다고 설명한다.
“현장의 보스인 감독님이 유일하게 터치하지 못하는 게 클럽하우스다. 클럽하우스 분위기는 베테랑 선수들이 이끌어 가는데 우리 팀은 박용택, 이성우, 정근우, 김현수, 김용의가 역할을 정말 잘해주고 있다. 정근우의 존재는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부분에서 큰 영향을 미친다. 그걸 간과할 수 없다. 정근우는 2차 드래프트를 앞두고 류중일 감독님이 강력하게 영입을 희망한 선수다. 구단 입장에서는 고액 연봉자라 부담이 클 수밖에 없었는데 감독님뿐만 아니라 데이터 분석팀에서도 정근우를 영입하자고 제안했다. 에이징 커브로 하향세를 보이는 베테랑 선수지만 정근우가 합류하면 주장 김현수를 적극 도와 팀 분위기가 달라질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차 단장은 일부 팬들이 정근우의 성적에 만족하지 못하는 부분을 이해하면서도 숫자로만 정근우의 가치를 평가하기에는 어려움이 뒤따른다고 말했다.
“‘메기 효과(막강한 경쟁자의 존재가 다른 경쟁자들의 잠재력을 끌어올리는 효과)’라는 말이 있지 않나. 정근우 덕분에 정주현까지 더 좋은 모습을 보이는 것 같다. 사실 경쟁 구도에 놓인 선수들은 한쪽이 잘하면 다른 한쪽은 슬퍼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정근우는 정주현이 안타를 치거나 호수비를 보이면 누구보다 좋아하고 박수를 보낸다. 자신보다 팀을 먼저 생각하는 정근우의 마인드를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기록으로 설명되지 않는 정근우의 가치가 존재한다.”
정우영, 총량의 법칙에 의하면
LG는 고졸 2년차 정우영의 ‘혹사’ 논란에서 자유롭지 않다. 정우영이 지난해 어깨 통증으로 한 차례 자리를 비웠던 터라 팬들은 정우영의 몸 상태에 특히 신경을 쓰고 있다. 정우영이 필승조로 마운드에 오르는 배경에는 고우석의 부상과 이상규의 부진이 존재한다. 그렇다면 차 단장은 정우영의 혹사 논란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고우석이 복귀할 때까지는 필승조로 정우영이 마운드에 자주 올라가는 상황이지만 류중일 감독님 말씀대로 투수는 이닝 수가 아닌 투구 수를 보고 판단하기 때문에 ‘총량의 법칙’에 따라 정우영의 등판 간격을 조절하게 될 것이다. 고우석이 돌아오면 정우영에게 좀 더 많은 휴식을 부여할 예정이다. 팀 승리를 이끌어야 하는 감독님 입장도 이해해야 한다. 승리를 앞두고 정우영 카드를 외면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차 단장은 지난해부터 내부적으로는 정우영의 투구 수를 1000개가 넘지 않도록 조절했다고 말한다. 실제로 정우영은 2019시즌 총 983개의 공을 던졌다.
“팬들은 자꾸 이닝 수를 이야기하는데 현대 야구에서 이닝은 무의미한 부분이다. 5이닝 던진 투수가 40구의 공을 던질 수도 있고, 3이닝에 80구를 소화할 수도 있는 것 아닌가. 그래서 코칭스태프는 투수들을 관리할 때 투구 수를 체크한다. 이기는 경기가 많을수록 필승조 등판은 불가피한 부분이고, 고우석이 무릎 수술로 이탈한 상황에서 지금은 정우영이 고우석 복귀 전까지 잘 버텨줘야 한다.”
올시즌 후 군 입대 예정자들은?
차명석 단장은 지난 시즌부터 신속한 군입대를 통한 유망주 선순환을 추진했다. 과거 성적에 얽매여 선수들의 군입대를 미뤘던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겠다고 천명했던 그는 선수들이 일찌감치 군복무를 마치고 돌아와 20대 후반에는 필드에서 뛸 수 있기를 바랐다. 그렇다면 올시즌 마치고 어떤 선수가 군입대 로테이션에 들어갈까.
“김대현은 계획 중이고, 이정용, 구본혁은 조금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 이재원은 올시즌을 마치고 군입대하면 24세에 복귀한다. 그때부터 새롭게 시작해도 좋다. 김대현을 올시즌 마치고 군대로 보내야 하는 이유는 임정우가 돌아오기 때문이다. 지난해 단장 부임하자마자 22명을 군입대시켰다. 한 번 정도 면회를 가려고 해도 너무 많이 보내서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를 정도였다(웃음). 선수들 군입대 문제는 단장의 역할이 중요하다. 남아야 할 선수와 잠시 떠나야 할 선수를 잘 정리해줘야 한다. 특히 2군에 있는 선수들은 경쟁력 없이 시즌을 보내느니 하루라도 빨리 군 문제를 해결하고 돌아오라고 설득하는 편이다.”
차 단장은 내야수 중 유망주로 꼽혔던 김주성과 투수 손주영이 제대해 지금 2군에서 몸을 만들고 있다고 귀띔했다. 구단은 2군에서 선수를 육성해 1군으로 올려 보내는 역할을 하는 것이고, 그걸 활용하는 몫은 감독이라고 말한다.
“화수분야구의 키포인트는 감독님이다. 아무리 구단이 준비를 잘해도 감독님이 기용 안하시면 아무 의미가 없다. 2군에서도 류중일 감독님한테 보고서를 올리지만 나도 준비해둔 선수가 있다면 이런 저런 선수를 준비해뒀다고만 말씀드린다. 물론 선택은 감독님의 몫이다. 갑자기 부상 선수가 나오면 대체할 수 있는 선수가 있어야 하기 때문에 항상 준비해두려고 한다.”
페게로 이슈, 차 단장도 할 말은 있다
차 단장은 최근 카를로스 페게로의 보류권을 풀지 않아 키움이 페게로 영입에 어려움을 겪었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공개적으로 사과의 메시지를 전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페게로에게 다른 구단에서 영입 제안이 오면 보류권을 풀어 주겠다고 했지만 올시즌에는 코로나19로 외국인 선수 영입에 어려움이 있는데다 현재 부상 중인 라모스의 복귀에 문제가 있다면 페게로를 활용할 수도 있는 터라 차 단 장은 그 약속을 지킬 수 없었다고 한다.
“그에 대한 비난은 내가 감당할 몫이다. 코로나19 사태가 벌어질 줄 몰랐기 때문에 페게로 에이전트한테 진심으로 미안하다고 말했다. 페게로 에이전트가 우리의 결정에 배신감을 느끼고 언론에 알린 부분도 이해한다. 내가 저지른 일이기 때문에 받아들였다. 그러나 반대로 거대 에이전시, 에이전트가 외국인선수 계약을 갖고 구단을 좌지우지하는 건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어떤 선수를 100만 불에 계약하기로 합의했고, 그 계약을 이끌어낸 담당자는 단장, 사장, 구단주한테까지 보고해서 예산 집행을 받아냈는데 정작 계약하기로 한 날에 에이전트가 나타나지 않는다면? 그리고 이틀 후 다른 팀과 계약한 사실이 알려진 다음에 뒤늦게 전화해선 ‘미안하다’ ‘비즈니스적인 관점에서 이해해 달라’라고 말한다면 그 담당자는 어떤 상황에 처하게 될 것 같나. 당연히 윗사람들의 문책, 질책이 뒤따를 수밖에 없고 심지어 사표 쓰고 나가거나 다른 업무로 교체되는 경우도 있다. 그런 일들에 대해선 기사가 한 줄이라도 나오는지 궁금하다. 그들도 한 집안의 가장이고, 사랑받는 남편이자 아버지일 수 있는데 그들이 에이전트의 행보에, 장난에 휘둘리는 상황은 알려지지 않는다. 나는 내가 잘못한 부분에 대해선 정식으로 인정했고 사과했다. 그렇다면 에이전시나 에이전트들도 앞으로 자신들이 잘못한 일들에 대해선 공식적으로 사과해야 한다. 구단이 아닌 업무 담당자한테 말이다.”
차 단장은 외국인 선수 영입 관련해서 구단이 절대 갑이 아니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외국인선수 보류권의 룰 개정은 필요하지만 그 룰을 없애는 건 반대한다는 이야기도 덧붙였다. 보류권마저 없다면 선수 몸값을 놓고 저울질하는 에이전트와 돈을 더 많이 주겠다는 구단의 횡포에 당하는 팀들이 한두 군데가 아니기 때문이다.
페게로 문제로 또 다시 자신을 되돌아봤다는 차 단장에게 “굳이, 왜, 미리 보류권을 풀어주겠다는 이야기를 했느냐”라고 물었다. 차 단장이 먼저 그런 말을 꺼내지 않았다면 논란도 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난 그래도 말할 것이다. 물론 이번 일로 엄청난 욕을 먹었지만 욕먹는 게 무섭다고 팬들에게 구단의 계획을 전하지 않는 건 아니라고 본다. 그리고 내 성격상 먼저 말을 내뱉고 행동으로 옮기는 스타일이다. 이미 말을 했기 때문에 그걸 지켜야 한다는 압박감을 갖는 게 필요하다. 말을 안 하면 자꾸 뒤로 물러나 있게 된다. 유명한 일화가 있다. 내가 LG 투수 코치였던 2012시즌을 마치고 사장님과 회식을 가졌다. 그해 LG는 팀 평균자책점 꼴찌를 기록했다. 그런데 내가 사장님 앞에서 ‘2013시즌은 투수 왕국인 삼성의 팀 평균자책점을 잡겠다’라고 큰소리를 쳤다. 당시 미친 놈 소리를 들었지만 그 말을 해놓은 덕분에 2013시즌 18년 만에 삼성을 제치고 팀 평균자책점 1위를 기록했다. 말한 데 대한 평가를 두려워하지 않는 편이다. 그 평가가 두려웠다면 아무 것도 못했을 것이다.”
새벽에 걸려오는 전화
차 단장은 잠자리에 들기 전 휴대폰 벨소리 음량을 가장 크게 해놓는다. 물론 새벽에 전화가 오지 않는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혹시라도 놓치는 전화가 있을까봐 항상 휴대폰을 머리맡에 두고 잠자리에 든다고 말한다.
“새벽 4시쯤에 오는 전화가 제일 두렵다. 그때 오는 전화는 대부분 사건 사고 관련 전화이기 때문이다. 요즘은 구단에서 나서 막을 수 있는 일이 없다. 오히려 막으려다 더 큰 일이 난다. 지금은 가급적 빨리 오픈하고 대책을 마련하는 게 현명한 방법이다. 장래성이 뛰어난 선수가 개인적인 일탈로 팀을 떠날 때 가장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요즘은 선수의 실력도 중요하지만 인성과 도덕성이 겸비되지 않은 선수는 생존하기 어렵다. 특히 음주운전은 엄청난 제재가 뒤따른다. 옷을 벗어야 하는 경우가 생길 정도로 말이다. 선수들이 억울해 하면 안 된다. 음주운전을 하는 행위 자체가 유니폼을 벗겠다는 의지라고 밖에 해석할 수 없기 때문이다.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위대한 야구 선수 중 한 명인 피트 로즈도 경기 결과를 두고 도박한 사실이 드러나 1989년 영구제명 당한 게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그만큼 프로 스포츠 선수들한테는 일반인과 다른 엄격한 도덕적인 잣대를 들이밀 수밖에 없다.”
<차 단장은 25일 자신의 SNS에 팬과의 만남을 알렸다. 팬이 찾아와 커피 한 잔 했고 궁금해 하는 질문에 성심껏 답했다는 말도 남겼다. 그리고 앞으로 유튜브를 통해 팬들의 질문을 받고 라이브로 방송할 예정이라는 메시지를 전했다.(사진=이영미)>
팬들과의 소통은 계속 된다
차 단장은 최근 해프닝으로 끝난 팬과의 만남 관련해서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한다. 차 단장에게 만나자고 약속한 이가 계정 삭제 후 사라진 듯 했지만 또다시 다른 계정으로 글을 남기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그 팬을 만나려 했던 건 대화를 하기 위함이었다. 그가 지적한 내용 중에 새겨들어야 할 부분도 있었고, 오해하는 내용도 있어 직접 만나서 설명을 드리려 했다. 그런데 약속한 시간에 나타나지 않았다. 이후 내 SNS에 다른 계정으로 글을 올린다. 본인은 내가 모를 거라고 생각하겠지만 글 내용을 보면 그가 썼다는 걸 금세 알 수 있다. 그는 지금의 성적에 만족하지 말고 팀의 미래를 위해 신인 선수들을 더 많이 기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내가 묻고 싶다. 그렇게 팀 운영했다가 성적이 안 나면 어떻게 할 건가. 그 사람만 LG 팬은 아니지 않나. 다른 팬들은 올시즌 LG의 우승을 위해 지금처럼 팀을 운영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단장은 욕먹는 사람이다. 내가 욕먹는 건 전혀 문제 되지 않는다. 단, 선수들한테 그 비난을 옮기지 않았으면 좋겠다. 또 개인 SNS에 올린 내 딸 사진에도 악플을 달지 말아 달라. 비난의 글은 다른 사진에 남겨주길 바란다.”
프로야구팀 단장은 감독과 또 다른 무게의 스트레스를 안고 산다. 아무리 팀 성적이 좋아도 불안한 마음이 앞선다.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기 때문에 늘 대기 상태다. 외국인선수를 비롯해 국내 선수들의 몸 상태가 어떤지, 부상 선수라면 언제 복귀할 수 있을지, 현장에서 구단에 바라는 사항이 무엇인지 등등 세심하게 체크해야 한다. 차 단장은 단 한 번도 이런 일들이 힘들다고 생각해보지 않았다.
“LG가 우승만 할 수 있다면 단장인 내가 무엇을 못하겠나. 남은 시즌 동안 잘 준비해서 유광 점퍼 입고 ‘가을야구’를 멋지게 했으면 좋겠다. 그때는 관중석에 팬들도 함께 한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 같다. 요즘에는 야구할 때마다 관중석에서 선수들 응원가를 목 놓아 부르던 팬들의 함성이 그리워진다. 결국 야구는 팬들이 존재해야 한다. 선수들도 그 명제를 절감했을 것이다.”
<이영미 기자>
기사제공 이영미 칼럼
https://sports.news.naver.com/news.nhn?oid=380&aid=00000014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