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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액암(급성 골수성 백혈병) 투병 일천열일곱(1017) 번째 날 편지, 1(안부, 소식)-2023년 6월 20일 화요일
사랑하는 큰아들에게
2023년 6월 20일 화요일이다.
오늘 편지 배경음악은 아빠가 좋아하고, 많이 들었던 ‘나나 무스쿠리의 어메이징 그레이스(Amazing Grace)♪’ 찬양곡을 올렸으니, 클릭해서 찬양을 들으면서 편지를 읽어 보시게…….^^
사랑하는 큰아들아
고린도후서 11장 21절 이하에 사도 바울이 ‘부득불(不得不)’ 자랑한다(21절, ~~~그러나 누가 무엇을 자랑한다면, 나도 어리석은 자랑을 좀 하겠습니다.)는 말처럼 아빠 자신의 간증이나 기도나 믿음이나 성령 충만과 지금까지 지내온 신앙생활을 말하고, 자랑하고, 감사할 것들이 참으로 많다네.
지금까지 지나온 모든 것들을 편지에 다 기록하자면, 찬송가 304장 3절에 ‘하늘을 두루마리 삼고, 바다를 먹물 삼아도 다 기록할 수 없다.’는(하늘은 두루마리 삼고 바다를 먹물 삼아도 한없는 하나님의 사랑 다 기록할 수 없겠네.) 찬송가 가사처럼 너무나도 많아서 그중에 추리고, 추려서 몇 가지만 오늘 편지에 기록해 보려고 하는데, 줄이고, 줄였어도 단편소설 정도의 분량이라네….
우리 집안은 광산 김씨(光山金氏) 5대파(五大派) 중의 양간공파(良簡公派-14世:연/璉) 6중파(六中派) 중의 밀직부사공파계(密直副使公派系-17世:천리/天利) 3중파(三中派) 중의 전직공파(殿直公派-19世:숭지/崇之), 예안파계(禮安派系-21世:효로/孝盧) 팔소파(八小派) 중의 산남공파(山南公派-23世:부인/富仁) 손인 우리 아버지 김수기 원로 장로님과 우리 어머니 김정희 목사님의 장남으로 이 세상에 출생했다네.
아빠가 지금은 혈액암으로 병약하고, 연약해 아무것도 못 하고, 오직 힘들고, 고통스러운 혈액암 투병을 하는 상황이지만, 모태 신앙인으로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교회를 다녔었구나.
그러다가 중학교 1학년 때에 예배당에서 무릎 꿇고, 눈물과 콧물을 쏟으며 통회(痛悔) 자복(自服)하면서 기도하며 지냈구나.
그러는 중에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 나의 하나님으로 영접하고, 모셔 들인 후부터 지금까지 약 50여 년을 오직 믿음 하나로 주님 안에서 아주 성실하게 열심히 살아왔다네.
중학교 1학년 때에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믿은 후부터 수시로 이어진 뜨거운 기도 속에 성령 충만을 받고, 많은 은사를 체험하며(기쁨, 화평, 충성, 방언, 치유, 지혜, 예언, 입신, 진동, 능력 등) 살았다네.
예수님을 나의 구주 나의 하나님으로 모셔 들인 후 아빠가 가장 먼저 하고 싶었고, 그렇게 하면서 살아온 것이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 읽기와 성경공부와 전도와 주일학교 교사직과 기도였다네….
먼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 이전에 단순하게 교회만 다닐 때는(선데이 크리스천-Sunday Christian) 성경을 각 권이나(사복음서나 시편, 잠언서 등) 부분적으로 읽었으나, 예수님을 믿은 후부터는 부분적으로 읽는 것이 아니라, 창세기부터 요한 계시록까지 정독하며, 밤낮없이 시간이 되는대로 수시로 수없이 일고 또 읽었구나.
성경을 얼마나 재미있게 읽고, 항시 지니고 다녔었는지 아빠가 구입한 가죽 성경이 매일 수시로 성경을 읽느라 아빠의 손때가 타서 성경 표지 가죽과 성경책이 너덜너덜해져 매년 새 성경책으로 바꾸어야 했고, 그러다 보니, 성경을 수백 번이나 읽게 되다 보니, 중학교와 고등학교와 신학교 시절에 성경 박사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었구나.
그리고, 아빠 혼자 성경만 열심히 읽으면, 올바른 성경 관을 갖지 못할 수도 있어서 당시에 여기저기 알아보아서 건전한 교단들이나 기관들(루터란 아워, 루터교 선교회 기독교 통신강좌부, 루터성경통신교육원, 순복음 국제성경통신힉교, 극동방송국, 장로교 등)에서 진행하는 성경통신 성경공부를 우편으로 수시로 주고받으며, 엄청나게 많이 공부했다네.
그런데, 50여 년이라는 세월이 흘러 오래되다 보니, 일정한 과정을 마칠 때마다 받아 두었던 수료증들이 이사하거니 수재를 만났을 때마다(광명시에서 우리 집이 장마에 잠기는 수재가 3번이나 있었음-당시 광명시는 아내는 없이 살아도 장화 없이는 못산다고 할 정도였음) 분실되거나 손실되어 많이 사라졌구나.
이제 아빠에게 남은 것이 얼마 안 되지만, 남아있는 수료증들을 사진으로 촬영해 오늘 아침편지에 올려 보니, 아하~~ 우리 아빠가 그렇게 열심히 성경공부를 했구나 하고 이해 바라네.….
둘째로. ‘하루에 한 명 이상에게 전도하지 못하면 잠들 수가 없다.’는 각오와 굳은 결심 아래 매일매일 1명 이상게게 전도를 하면서 살았구나.
예수님을 믿고 난 후부터 언제 어디서든 만나는 사람들에게 사영리와 개인 성경 지식을 가지고, 전도해서 수많은 사람을 그리스도인으로 변화시켰고, 그중에 교회와 문화 방송국과 사회에 중요한 자리에 있는 그리스도인들도 있다네….
개인적으로 전도하는 것으로 성에 안 차서 시내와 서울 인천 간 시외버스와 경일 전철과 서울에서 수원 가는 전철 안에서 복음을 전했며 살았다네.
일주일에 한두 번은 시간을 내서 서울 남산과 명동 등에서 노방 전도 등을 해서 당시 일기를 기록된 것을 보면 하루에 수천 명에게 복을 전했다는 기록이 거의 매일 이어졌다네….
셋째로, 예수님을 믿고, 가장하고 싶었던 것 중의 하나가 주일학교 교사직이었는데, 중학교 때는 여러 번 교사를 신청했으나 "아직 너무 어리다."라며 번번이 임명이 안 되었구나.
그러다가 고등학교 1학년 여름에 주일학교 여름성경학교를 앞두고, 여름성경학교 보조교사를 신청해서 보조교사로 임명돼 2학년 2반 담임을 맡아 교사직을 시작했구나.(당시 주일학교 학생들이 약 200여 명과 장로님과 집사님들과 청년들 등 교사 20여 명 이상)
여름성경학교 보조교사로 시작해 성경학교를 마친 후 정교사로 2년 2반을 아주 열심히 지도해서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는 주일학교를 이끄는 부장직을 임명받았으나 그해 3월에 신학교에 입학하고, 얼마 안 되어 장호원교회 교육전도사로 부임하게 되어 부장직을 다하지 못했구나….
넷째로 기도 생활이었는데, 학교에 가기 전에 아침 일찍 교회에 들러 잠시 기도하고 학교에 갔고, 학교에서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와서도 성전에 가서 무릎 꿇고, 눈물과 콧물을 쏟으며 통성기도와 방언 등의 기도를 하며 많은 은혜를 받았구나….
특히, 교회의 모든 예배시간에는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참석해 은혜를 받았을 뿐 아니라 금요기도회 시간에는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참석해서 밤새 찬양과 말씀과 기도로 은혜를 받고 새벽에 철야 기도회를 마치고 집에 와서(당시는 금요 철야 기도회는 밤 10시부터 다음날 오전 5시 새벽 예배까지 이어짐) 피곤한 줄 모르고 학교에 갈 준비를 하고, 학교에 갔었다네….
그리고, 고3 겨울방학 때부터 신학교 시절과 우리 교회를 개척한 후 담임 목회를 하면서도 매주 목요일 저녁에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쉼 없이 침낭과 돗자리를 들고, 서울 은평구 삼각산과 도봉구 도봉산 등에 올라가 기도를 하였구나.
밤새 추운 줄도 모른 채 밤새 눈물로 부르짖으며, 간절하고, 간곡하게 기도를 드리고, 다음날 이른 새벽에 산에서 내려와 우리 집에 와서 피곤함도 모른 채 하루 일정을 건강하고, 은혜롭게 소화하면서 살아왔구나….
정말 추운 겨울에는 산 위라 너무도 추워서 가만히 앉아서 기도할 수 없어서 이리저리 움직이면서 기도를 했고, 간혹 앞에 있는 나무들을 교인으로 삼고, 설교를 하기도 했구나.
밤새 기도하다가 이른 새벽에 산에서 내려와 피곤한 줄도 모른 채 금요일 정해진 일정들을 은혜와 건강한 가운데, 소화하며 살아왔구나….(간혹 우리 교회 성도들과 함께 감)
특히, 1970년대에 들어와서 민족 복음화를 위한 우리나라 기독교인들의 초교파 대중 집회인 ‘빌리 그래함 전도대회’와 이듬해 열린 ‘엑스플로 74 집회’와 ‘77 민족 복음화 대성회’와 ‘80 세계 복음화 대성회’와 ‘2007 한국교회 대 부흥 100주년 기념대회’ 등에 비가 억수같이 오던 날에도 한 번도 빠짐없이 참석했다네.
그러나 올해(2023년) 6월 3일(토) 오후 1시 30분 서울 마포구 상암동 월드컵 경기장에서 열린 ‘빌리 그래함 전도대회 50주년 기도회’는 혈액암 투병 중이라 참석 못 했으나, 일반인들은 한 번 참석도 어려웠던 초교파 대중 집회들을 한 번도 빠짐없이 참석했었다네….
그리고, 1979년 늦봄부터 경기도 장호원 교회 교육전도사로 부교역자로 사역을 하다가 교회 개척을 위해 1987년 11월 말에 부교자 사역을 마쳤다네.
그해 12월에 서울 강서구 화곡2동 곰달레길(화곡2동 동무사소와 신정초등학교 사이) 상가 50평을 임대해 사랑하는 가족들과 함께 예배당으로 꾸몄구나.
그런 후 1988년 1월 1일부터 우리 교회를 개척 교회를 시작해 지금까지 수십 년을 오직 목양 일념으로 목회 사역을 해 오면서 지금까지 전국 교회들의 부흥회와 금요기도회와 기도원(안양 갈멜산 기도원 등) 집회 등을 수없이 인도하며, 아주 열심히 살아왔구나….
1988년 11월 5일에 우리 집에 있던 화곡본동 향목으로 임명돼 수년간 예비군 훈련장에 가서 예비군 정신 교육에 힘썼다네.
1997년 10월 10일 한국 기독교 평화 협의회 통일대책 위원회 북한 돕기 중앙위원으로 위촉돼 활동하기도 했다네….^^(노회나 총회 직임은 너무 많아 지면상 기록 안 함)
그뿐인가?
여러 군데 신학교에서 후학을 지도하는 신학교 교수로서 강의(신학 개론, 변증학, 장로교회사, 갈라디아서 강해 등)를 하기도 했구나.
한 번은 모 신학교에서 1학교에 입학한 주간 신학교 반 담임으로 그들이 졸업하는 4학년 때까지 4년간을 함께 동고동락(同苦同樂)하며, 훌륭한 신학생들로 배출하기도 했다네(아빠의 강의를 들으며 신학을 공부한 이들이 수천 명은 될 것이라네 – 80~90년대 당시는 신학생들이 많았음)….
.아래는 1988년부터 2006년까지 아빠가 강의하던 신학교와 강의 과목들과 기간들이라네….
1. 총회신학교 교수(신학 개론, 변증학 / 서울)
총회신학교 주간 학년 담임 교수(1학년부터 4학년 졸업반까지 4년간)
2. 인천장로교신학교(신학 개론 / 인천)
3. 청주신학교(신학 개론, 갈라디아서 / 충북 청주시)
4. 대한신학교(교리사, 장로교회사 / 서울)
5. 개혁신학교(세계교회사 / 서울)
6. 국제개신총회신학교(장로교회사 / 서울)
7. 북방신학대학대학원대학교(신학 개론, 초대교회사, 갈라디아서)
8. 국제개신총회신학교(구약 역사서, 갈라디아서 / 경기도 부천)
더구나, 담임 목회와 여러 신학교 강의와 수많은 부흥회와 기도원 집회 등을 하면서도 남들은 평생 책 한 권을 출간할까 말까 한 책들을(대부분은 책을 출간해도 자비로 출간해 성도들에게 나누어 주는 정도) 50여 권이나 출간해 우리나라 최대의 서점인 교보문고와 전국 서점 등에서 판매되기도 했으니, 이 또한 ‘부득불(不得不)’ 자랑을 아니 할 수 없구나….
그리고, 옥한흠 목사가 훈련된 평신도들이 교회의 주인이 되게 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시작한 제자훈련인 ‘칼 세미나’ 등 국내에서 전국 목회자를 대상으로 하는 수많은 목회자세미나와 교회 성장세미나 등에 참석해 강의를 듣고 은혜를 받아왔었구나….
특히, 하나 더 기록하자면, 그렇게 평생을 쉴 시간이나 안식월이나 안식년 없이 없을 정도로 바쁘게 열심히 살아오면서도 우리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 경일 노회(이전에 속했던 용천노회도)나 총회 일도 아빠 나름으로 열심히 했구나….
그리고, 1987년에 피치 못할 사정(서울 강서구 화곡4동에 있던 모 교회 목사가 거리가 5km가 안 된다고 하면서 화곡동 2동(화곡2동 동사무소와 신정초등학교 사이)에 우리 교회 개척을 못 하게 매일 새벽이나 수시로 찾아와 난리 치고, 당시 그 목사가 교단 어른이라 교단적으로 문제를 삼아서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어린 아빠가 교단을 옮기기로 결정하고, 교단을 옮김 - 교단 내 친구나 동창이나 지인 목회자와 절대로 연락 안 하고 사는 것을 전제로))이 있어서 교단을 현재 아빠와 우리 교회가 속한 교단으로 옮겼구나.
교단을 지금 현재 소속한 교단으로 옮기기 전에 소속했던 총회에서 어린이 계단 공과와 여름성경학교 교재를 부분 집필하기도 했구나.
우리 경일노회(전에 소속했던 용천노회 것도) 홈페이지도 만들어 운영 관리하기도 했었는데, 지금은 아빠가 손을 대지 못하다 보니 우리 경일노회 홈페이지가 옛날 자료 그대도 머물러 있는 것 같아 몹시도 마음이 아프고, 안타깝구나….
특별히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수많은 책을 읽고, 구입해서 한때 우리 집에 약 3만 권 정도의 책이 있었고, 일기나 글이나 편지를 쓰는 것을 좋아해서 매일매일 일기를 기록했었고(기록한 일기 중 일부는 이사 등으로 사라지고 20여 권 남음), 사랑하는 엄마와 3년여간 데이트할 때도 1천여 통의 편지를 기록해 보냈었구나.
특히, 사랑하는 우리 큰아들이 군에 입대했을 때는 군으로 보내는 편지가 엄청나게 많아서 국군의 방송에 진행하는 행복바이러스에 3월 3일 오전에 아빠 편지가 낭독되었고, 3월 26일(금)에는 아빠가 국군 방송 행복바이러스 '행복한 데이트' 생방송에 15사단 승리신교대와 1군사령부 부모님들을 대신해서 출연해 1시간 동안 전국 국군장병들과 함께하기도 했다네.
마찬가지로 사랑하는 우리 작은아들이 군에 입대했을 때는 군으로 보내는 편지가 엄청나서 군에서 55사단 신병훈련소에서 신병 교육을 마치고 하는 수료식에서 참석해서 참석한 모든 이들 앞에서 아빠와 우리 작은아들이 칭찬과 박수를 받기도 정도로 유명했었다네.
그뿐 아니라 사랑하는 우리 큰아들에게 보낸 편지를 편집해 군에 간 아들에게 아빠가 쓴 편지 ‘사랑하는 나의 아들아’제목으로 세 권의 책으로 만들어 출간하기도 했고, 15사단 승리 교육대에서 훈련받는 아들들에게 부모님들이 쓴 편지를 모아서 ‘사랑하는 이들이 쓴 편지’를 편집해 출간하기도 했다네….
끝으로 한 가지 더 ‘부득불(不得不)’ 자랑해도 될만한 일을 기록하자면, 아빠가 가장 사랑하고, 존경하는 작전동 할아버지 원로장로님과 할머니 목사님께서 어디를 가시든지 아빠의 일정을 목회 일정이나 다른 일정들을 조정해 차량으로 모시고 다녔었다네.
1997년 3월 5일(수) 작전동 할아버지께서 직장에서 뇌출혈로 쓰러지셔서 서울시 영등포구 영등포병원에서 대수술하신 초기에는 곁에 머물면서 병간호를 해왔고, 10여 년을 입원하신 후 퇴원하시고, 일주일에 두세 번씩 인천중앙병원으로 통원 치료(정기 진료 및 물리치료 포함)를 다니실 때는 아빠가 반드시 할아버지 장로님을 업고, 차량에 모시고 다녔었구나.
그렇게 지난 50여 년을 아빠 나름 그 누구보다도 진실하고, 성실하게 아주 열심히 살아왔고, 목회나 기타 사역 역시 그 누구보다도 많이 했었기에 지금 지나온 아빠의 과거를 되돌아보아도 아쉬움이나 후회됨이 전혀 없다네(단, 한순간의 잘못된 선택과 악마 같은 인간을 만남으로 교회가 경매로 날아간 것은 후회스럽다네)….
사랑하는 큰아들아
오늘은 ‘부득불(不得不)’ 자랑해 보았습니다.’라는 기도문과 ‘오늘 내 자랑을 좀 했습니다.’라는 글을 기록해 본단다.
♡부득불(不得不)’ 자랑해 보았습니다.♡
글: 주시(主視) 김형중
주님!
제가 매일 기록하는 편지를 읽고
극히 일부지만 제 신앙과 체험 등을
자기의 기준을 가지고, 판단하거나
간혹 나 자신을 정죄하는 이들이 있어.
부득불(不得不)’ 저도 어리석은 자랑을 좀
해보았사오니, 그들이 무어라 하더라도
참고 인내해야 함에도 참지 못하고 자랑질했사오니
아직 여러모로 부족한 종을 용서하시고
붙드시고, 늘 함께 동행해 주시옵소서. -아멘-
(2023년 6월 20일 화요일에)
♡오늘 내 자랑을 좀 했습니다.♡
글: 주시(主視) 김형중
사도 바울이
‘부득불(不得不)’ 자랑한다는 말처럼
나의 간증, 기도, 믿음, 성령 충만과
지금까지 지내온 신앙생활을 자랑하고,
감사할 것들이 참으로 많은데,
지금까지 지나온 것들을 다 기록하자면
하늘을 두루마리 삼고, 바다를 먹물 삼아도
다 기록할 수 없다는 찬양 가사처럼
너무나도 많아서 그중에 추리고, 추려서
몇 가지만 오늘 편지에 기록해 보았다.
(2023년 6월 20일 화요일에)
사랑하는 큰아들아
‘빌리 그래함 전도대회’
1973년 5월 30일부터 6월 3일까지 닷새 동안, 전국에서 모인 총 334만 명이 여의도광장을 가득 메우며, 대한민국 기독교 역사에 커다란 획을 그은 성화다.
‘엑스플로 74 집회’(Explo74)
1974년 8월 13일부터 8월 18일까지 5.16 광장-현. 여의도공원-에서 개최된 한국 기독교의 부흥 대성회로 한국 기독교의 역사상 손꼽히는 규모의 부흥 대성회다.
‘77 민족 복음화 대성회’
1977년 8월 15일부터 18일까지 4일간 서울 여의도 5·16 광장에서 교단과 기관, 단체를 초월해 매일 밤 180만 명 이상 연인원 750만여 명의 성도들이 한자리에 모여 기도한 자리였다.
‘80 세계 복음화 대성회’
80 세계 복음화 대성회는 1980년 8월 11일부터 8월 15일까지 서울 여의도 5.16 광장(현. 여의도공원)에서 열린 한국 오순절 교의 부흥 대성회다.
‘2007 한국교회 대 부흥 100주년 기념대회’
2007년 7월 9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 월드컵 경기장에서 개최한 성회다
‘빌리 그래함 전도대회 50주년 기념대회’
‘빌리 그래함 50주년 기념대회’는 1973년 5월 30일부터 6월 3일까지 닷새 동안, 전국에서 모인 334만 명이 여의도광장을 가득 메우며 대한민국 기독교 역사에 커다란 획을 그은 ‘빌리 그래함 전도대회’의 50주년을 맞아 ‘사람에게 진심으로, 하나님께 전심으로’라는 주제로 초교파적인 집회로 6월 3일(토) 오후 1시 30분 서울 마포구 상암동 월드컵 경기장에서 열렸으며, 1만 명의 찬양대, 6000여 개의 교회, 7만여 명이 기념대회에 참가했다.
사랑하는 큰아들아
아무튼, 오늘 오전 편지 여기서 마치니, 오늘 하루도 안전하고, 건강하고, 늘 평안하고, 행복하기를 간절히 바라고, 기도하며, 주님 안에서 안녕히…….
2023년 6월 20일 화요일 오전에 혈액암 투병 중인 아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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