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막북무쌍 漠北無雙
그런데 설걸우 천부장 진영에서는 난리가 났다.
포로로 잡아 두었던 한준과 하갈도호 천 부장이 옥사 獄舍에서 사라지고 없었다.
책사인 동방향기도 한준과 동시에 행방이 묘연하다.
동방향기가 한준과 적장을 탈출시키고 함께 사라진 것이다.
그물에 사로잡혀 온 한준을 보고,
“즉각 참형시켜라”하는 포노선우의 명령에 혈창루가 사제지간의 정을 내세워 시일을 잠시 늦추어 놓았는데,
그 당사자가 사라지고 없으니 혈창루 모용척의 입장이 난처하다.
과연,
나흘 후 일축왕 진영에서는 싸움을 걸어왔다.
선봉대장은 백마를 탄 한준이다.
그런데 전장으로 출전하는 한준의 전투 장비가 특이하다.
원반형의 작은 방패를 양 무릎에 차고 있는데, 그 모양새가 무릎 보호대 처럼으로 보였으며,
창 모양도 처음 보는 형태였다.
한쪽은 보편적인 일자형 창날인데 다른 끝 쪽은 작은 초승달 형태의 칼 모양새다.
그러니 양쪽을 다 같이 활용할 수 있는 자루가 없는 양날의 창이다.
한 날은 찌르는 본연의 창날인데, 다른 쪽은 칼날처럼 베어갈 수도 있는 날카로운 칼날 모양인 것이다.
양 두 창 兩 頭 槍이다.
양쪽이 모두 날카로운 창날이다.
한준의 비술 祕術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독특한 창 모양이다.
한준은 기상천외 奇想天外한 최장한의 그물에 사로잡혀,
포로 생활을 하는 동안 새로운 무기를 직접 창안 創案한 것으로,
그 신무기 新武器를 들고나온 것이다.
이중부도 한준의 새로운 무기인 양 두 창을 보니 대적할 마음이 사라진다.
일반 장창을 상대할 때는 창날은 창으로 막고, 창 자루 공격은 봉술을 접목 接木시켜,
몸을 돌려 피해 가며 상대하였는데, 이제는 그 수법도 통할 것 같지 않다.
이제는 양쪽이 모두 날카로운 창날이고 칼날이므로 피하는데,
조금의 오차만 생겨도 치명상 致命傷을 입을 것이다.
선봉을 맡을 자가 없으니 혈창루 모용척이 자신의 죄를 만회하고자,
노익장 老益壯을 발휘하여 흰 수염을 휘날리며 한준을 상대하러 달려간다.
그러자 담비와 최장한, 배중서가 뒤를 따른다.
우문청아와 고발후도 언제든지 즉시 발사할 수 있게끔 화살 오뉘를 활시위에 걸어 놓고는 후방에 대기하고 있다.
혈창루가 한준에게 다가가자, 한준은 마상에서 혈창루 사부에게 고개 숙여 목례 目禮를 하고는 말머리를 돌려 자기 진영으로 향하였다.
그러자 달려가던 담비가 장창으로 한준을 찔렀다.
한준이 돌아서며 창을 곧추세워 담비의 창을 막는다.
순간, 최장한의 투망이 허공으로 펼쳐진다.
지난번 대어 大漁를 사로잡을 때와 흡사한 모양새다.
그러자 한준은 이미 기다렸다는 듯이 오른손으로 왼쪽 무릎의 원반형 방패를 집더니,
자신을 향해 덮쳐 오는 투망을 항해 힘껏 던져버린다.
그러자 투망은 방패를 안고 저 멀리 날아 가버린다.
배중서의 손에서도 투망이 펼쳐진다.
그러나 역시 한준의 오른쪽 방패에 의해 그물망은 엉뚱한 곳으로 떨어져 버린다.
오늘 조황 釣況은 망치고 어구 漁具만 잃어버렸다.
그리고 한준의 양날 창이 춤추기 시작한다.
그 모양새가 지난번 어처구니없이 사로잡혔던 앙가픔을 보복하는 듯 사납기 그지 없었다.
단, 오 합 만에 최장한과 배중서는 어깨와 팔에 각각 심한 부상을 당하고 급히 뒤로 물러선다.
뒤쫓는 한준을 담비와 혈창루가 창을 들고 막아서니 한준은 추격을 포기하고, 자기 진영으로 되돌아 가버린다.
투망 전술은 한번은 성공하였지만, 두번은 통하지 않았다.
선우 진영은 분위기가 심각하다.
병력 兵力과 장수의 개인적인 무예, 모두가 불리하다.
기대하였던 다른 소왕들의 지원도 감감무소식이다.
다음 날
또 한준이 선우 진영 앞에 다가와서 결투를 신청한다.
이에 혈창루가 갑옷을 걸치자, 이를 본 을지 소왕이 만류한다.
노구 老軀에 체면치레는 한 번으로 족하다는 것이었다.
그러자 설태누차 천부장이 사부를 대신하여 출전하였다.
걸부황과 팽이가 좌, 우장을 맡아 이천 군사를 이끌고 뒤를 따른다.
한준과 맞붙은 설태누차, 이번에는 오 합 만에 수세 守勢로 몰려 쩔쩔맨다.
걸부황이 삼지창을 꼬나 쥐고 합세하였으나 이전 대결 때보다 더 불리하다.
한준의 새로운 무기가 빛을 발하며, 실력이 아니라 계략에 의해 포로로 잡혔던 분풀이를 설욕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자 우장인 팽이가 철퇴를 들고 가세하였다.
세 명이 연합하니 백중세다.
철퇴를 맹렬히 휘두르는 팽이의 모습을 이중부가 유심히 지켜보고 있었다.
그러자 아록환 천부장이 오천의 기마병으로 선우측 선봉대를 향하여 돌진한다.
한준과 결투를 벌이는 설차누태를 지원하고자 나가버려 좌, 우장이 제자리에 없어,
부장들이 대신 선두에 앞장서 항전을 하나 역부족으로 선우의 기마병들은 속절없이 당하고 말았다.
설걸우 천부장의 지원으로 겨우 적을 물리쳤으나 피해가 상당하였다.
선봉대 이천 군사 중 태반이 전사하였다.
이제 선우 측의 병력은 적의 선봉대 병력과 엇비슷하다.
한준은 일축왕 진영에서는 최고의 영웅이 되었다.
이틀 후,
또다시 한준이 싸움은 걸어온다.
이제는 옆에 부장 副將을 대동하고 있는데, 커다란 흰 비단 깃발을 들고 있다.
그 깃발에는 처음 보는 문구가 세로로 힘찬 필체로 적혀있다.
단씨 형제 중 단윤이 커다란 장군기 將軍旗를 단 장대를 양손으로 받쳐 들고,
한준을 중심으로 하여 그 주위를 천천히 돌고 있었다.
장군기가 바람에 펄럭인다.
‘漠北無雙. 韓準將軍’ ‘막북무쌍. 한준장군’
한준은 이제 막북무쌍 漠北無雙이란 엄청난 별호 別號까지 얻었다.
사막의 북쪽 즉, 고비사막 이북 以北에서는 한준 장군의 적수가 없다는 뜻이다.
‘둥~ 둥~ 둥~’
일축왕 측, 진격의 우렁찬 쇠 북소리는 더욱 크게 초원을 울리고 있었다.
사기가 오른 남흉노 측 병사들의 환호 소리가 초원을 울린다.
반면에 선우 진영의 사기는 땅에 떨어지고, 조용하다.
더는 이 전투에서 승산 勝算의 가능성은 없어 보였다.
그런데 그때 금성부에서 병사 삼천을 지원해 왔다.
병사를 이끄는 장수는 석늑과 석태다.
그런데 병사들을 보니 반은 15, 16세의 어린 병사들이고, 반은 삼십 대의 노년층 병사들이다.
가동 稼動할 수 있는 모든 인력 人力을 총동원 總動員하여 온 것이다.
이를 본 포노선우와 을지소왕은 자기도 모르게 눈가에 물기가 고인다.
금성부, 산동대군의 충심 忠心 어린 지원에 감격할 따름이다.
어쨌든 간에 병력은 다시 일만 명으로 채워졌다.
그래도 적군의 병력에 비하면, 이 할 수준에 불과하다.
비록 병력이 증원되었다고는 하나, 상대 적군과의 병력을 감안 勘案한다면, 언 발에 오줌 누기식이다.
적병의 태반은 넘어야 어느 정도 버틸 수 있는데, 5분의 1로서는 승리할 가망이 없다.
다만 대의명분 大義名分 하나로 버티고 있는데, 그 대의명분도 선우 측의 주장이지,
상대방들은 생사 生死의 갈림길에서 생 生을 택한 것이라고 나름대로 생각한다.
가축이 죽고 생명이 위급한 상황에서는 절차나 기존의 질서는 무시해도 괜찮다는 식으로 자기 합리화 自己 合理化를 해버린다.
가마우지 삼백 부장이 평원을 넓게 차지하고 있는 적 진영을 바라보며, 남몰래 한숨을 내쉰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옆에 있던 담비가 쓴웃음을 짓는다.
“왜? 답이 안 나와?”
“당면한 이 난감한 문제를 풀 방법이 없어 보여”
“한해 旱害로 인하여 피해가 어느 정도로 심각한지는 각자의 근거지 위치와 가축의 규모 그리고 주위 환경에 따라 천차만별 千差萬別이지.”
“그러니 대화가 안 되고 타협 妥協점을 찾기가 까다로울 수밖에 없지.”
“첫 갈등의 시초 始初는 가뭄이라는 자연재해 自然災害로부터 시작되었는데...”
“그러나, 자연재해는 표면적인 이유고, 속내를 살펴보면 좀 더 안전하게 평안하게 살고자 하는 안전의 욕구에서 시작된 것이라 볼 수 있지.”
“맞아, 그 이면에는 명분과 자존심을 버리고, 실리를 추구하는 안일한 사고방식 思考方式이 자리 잡고 있다고 할 수 있지.”
“그렇지, 한 걸음 더 나아가면 같은 혈통이고, 함께 살아온 종족이지만 이를 자신의 경쟁상대로 인식하고, 다른 종족과 합세하여 경쟁 대상을 제거하고, 자신이 우두머리 자리를 차지하려는 욕심이 표면화된 것이지.”
“그래, 잠재 潛在되어 있던 원초적 原初的인 인간의 욕망이 밖으로 표출 表出된 것이야.”
지금까지 싸움에 참여하지 않은, 나머지 소왕이나 천 부장들은 측후병 測候兵을 통하여,
사태의 추이 推移를 예의주시 銳意 注視하며, 관망 觀望하고 있다.
결과를 보고 이기는 쪽으로 합세하겠다는 기회주의자 機會主義者들이다.
그런데,
이들을 기회주의자라고 마냥 폄하 貶下만 할 수도 없었다.
선우를 생각한다면, 흉노 종족 최고의 지위에 계신 분으로 마땅히 선우를 따라야 하는 것이 도리 道理이나, 가뭄으로 인한 어려운 처지에서 이미, 일축 왕 측으로부터 구호품 救護品을 받아 사용하여 마음속으로 켕기는 터였다.
그러니, 감히 어느 쪽 누구를 함부로 지지하겠느냐?
그 들은 자신과 가족들도 중요하지만, 자신을 믿고 따르는 천부장, 백 부장
그리고 그 휘하 麾下에 속해 있는 병사들과 그 가족들을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다.
자신이 내린 판단과 결정에 수만 명의 안위 安危가 걸린 심각한 문제다.
그러니,
어느 쪽을 지지할 것인지 그에 대한, 결정을 보류 할수 밖에 없었다.
한준은 양 진영의 가운데 지점, 마상에서 양날 창을 옆구리에 꿰차고 당당하게 버티고 있고,
남흉노 측으로 진영을 옮겨 전향 轉向해 버린 단윤 백 부장은 깃발을 들고
‘막북무쌍’ 한준 장군의 주위를 천천히 돌고 있다.
한준 진영의 쇠 북소리는 초원을 울린다.
둥~둥~둥~...
‘막북무쌍’이란 별호를 부인 否認하거나 상대할 자신이 있는 자는 전장으로 나와서 대결을 해보자는 시위 示威다.
가만히 있으면 인정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한 달 전 전투에서 애송이 한준에게 허벅지를 다친 기혁린, 이제는 어느정도 치료가 되었다.
서로가 정식 인사는 없었지만, 기혁린은 십이지살 선우휘의 수제자이며,
한준 역시 십이지살이 총애 寵愛하던 애제자 愛弟子이므로 두 사람 사이는 사형제 지간이다.
사형이 되는 기혁린은 적군에 투항한 배신자 한준의 안하무인 眼下無人격인 오만 傲慢 방자무기 放恣無忌한 시위示威를 더 이상 보고 참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선봉장을 자처하여 말을 몰고 진영 바깥으로 나아간다.
기혁린의 제자인 천강선 우문청아와 일궁 고발후가 좌, 우장 左 右將을 맡아 전장터로 나가니, 담비가 옆에서 지원하고 나선다.
이제 적진에서 한준만 나타나면 담비 일행은 자동 출전이 공식화되어 버렸다.
별다른 대안이 없으니 그래도 한번 이겨본 전력이 있는 자들이 항시 한준의 대항마 對抗馬로 나선다.
담비와 최장한, 배중서는 이제 삼총사로 일심동체 一心同體로 일체화 되어있었다.
최장한과 배중서의 무술 실력이 일천 日賤하니 박지형이 특별 지도를 담당하였다.
기공 氣功과 격투기는 단군 조선의 적통자 박지형이 담당하고, 기마술은 일궁 고발후, 창술은 혈창루 모용척이 노구 老軀를 마다하지 않고 틈틈이 특별히 지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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