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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편>
제목;나의 목표
태어나서 몇 개월 후 부턴 방학마다 우리나라를 마을버스 타듯 도보여행하다가
4학년때부터는 국제버스를 타게 되었다.
처음에는 여행이 뭔지도 몰랐다.
한국에서는 1~2주 짧게 갇다가 집이라는 종점에서 쉬었지만,
초등학교 4학년때 시작한 우리가족 세계여행은 3년이라는 엄청나게 먼 코스였다.
가족끼리 3년 여행 후, 한국에 돌아 왔을땐, 난 목표를 가지고 있었다.
프랑스에서 멋진 패션디자이너가 되어 세계적으로 유명해지는 것이다.
그래서 프랑스어를 배우기 위해 프랑스 국제학교를 다녔다.
난 내 부족한 프랑스어를 보충하고 실력을 키우기 위해 최선을 다해 공부했다.
그리고 난 이젠 한국에서 공부하며 나의 목표를 향해 갈 줄 알았다.
그러나....
난 배낭을 다시 쌌다.
이번엔 가족과 하는 여행이 아니라 친구나 동생들과 함께하는
하반하 10개월 여행학교 학생의 자격이었다.
처음엔 막연했지만, 난 이 여행을 통해 또 다른 목표가 생겨났다.
1) 존경받는 패션디자이너 되기
2)이번 여행에서 만나는 친구와 동생들을 가족으로 만들기
3)어디서나 책임감있는 리더되기
4)많은 기술과 재능을 배워 엄마/아빠 도와드리기
5)스무살이 되면 project Runway나가서 top.1되기
난 이젠 더 이상 막내로써 따라다니는 여행을 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목표를 향해 당당히 걸어나가기 위해 이 여행에 왔다.
그 첫나라가 프랑스이다.
나의 밝은 미래를 향해 아자!!!!
<스페인 편>
제목; 배우고 나누고
난 하반하 10개월 여행에 처음 들어와서 스승/제자 사이를 갖게 되었다.
내가 스승이 된것은 처음이었다.
써니쌤께서는 그런 관계가 있으면 서로 공부하게 되고 스승에게는 영어를 많이
늘릴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하시면서 그런 관계를 만들으셨다.
난 스페인에 와서 가장 많은 제자들을 데리고 잇었다.
<민서,지함,원준, 호영 , 동호,정인, 승묵>이렇게 7명의 제자들을 데리고 있었다.
난 이제 제자들이 수준이 다 다를 뿐만 아니라 공부를 잘 하게 하는 미끼도 다 다른
것이 필요했다.
민서
민서는 우선 나의 첫 번째 제자이자 한번도 내제자여서 걱정하게 만들지 않은 우등생이다
민서는 공부는 알아서 잘 해오지만 다른 것보다 읽기가 부족하여 처음에는 읽기연습을 많이 시켰어야 했다. 연습을 하라고 할땐 잘 하기에 곧 읽는 것도 잘 하게된 제자이다.
지함
지함이는 어릴때 배우면 잘한다는 말에 맞게 발음은 최고였다.
특히, 다른 아이들이 어려워하는 R발음도 잘해서 독해와 단어만 봐주면 잘 하는 아이지만,
나도 어렸을땐, 영어과외가 싫어서 도망 다녔던 경험이 있는 것처럼 지함이도 집중하지 않고 나랑 장난치고 싶어했다.
난 나도 그럴때가 있어 지함이에게 “집중해!”라고 소리치긴 했지만,
마음속으론“그래, 나도 그랬어--하지만 그때, 다 배워두면 좋아~”란 생각으로 지함이가
집중 할수 있게 스페인때 걸으면서 먹으면 최고인 젤리를 잘 하면 한봉지를 준다는 조건으로 젤리 앞에 두고 공부를 시켰다.
지함이는 젤리를 두고 공부하면 꼭, 아이슈타인정도의 위인이 될것만 같이 집중을 해서
그때, 다시한번 젤리님의 위력을 느꼈다.
원준
원준이는 혀가 짧다.
정말 태어나서 혀가 짧은사람은 보지 못했다.
그런데 원준이는 영어에서 못하는 발음들이 많았다.
비슷하게는 하지만 내가 스승이 되어보니, 더 자세히! 더 정확히!하길 원해서 그렇게 느끼는 걸수도 있다. 내가 가르친 제자 중에 최고로 노력을 잘 한는 아이는 원준이다.
존댓말만 쓰고 내가 살짝 인상이라도 쓰면 그날 걸으면서까지 연습을 해서 나에게 PASS!
를 받는 아이이다.
문호영!
호영이는 머리가 좋다.
내가 호영이를 가르친 첫주에 전교 2등이 될 정도로 .하라고 하면서 옆에서 봐주면 잘 한다
호영이도 젤리님께서 같이 있어야지 잘 하는 면도 있지만, 호영이는 공부의 매력만 느끼면 박사까지 될수 있을 것이다.
호영이를 가르칠 때는 옆에 두고 아닐때는 엄하고 가르쳐 줄때는 친절히 대해서 호영이가 짧은 시간안에 집중을 해서 쫘~~~라락! 풀수 있게 해야 한다.
호영이는 암기를 잘 한다.
옆에서 같이 외우면서 도와주면 많은 양도 단시간안에 외우는 암기 왕이다.
(언제나 저희 곁엔 젤리님)
동호
동호는 동갑이어서 약간 모르는 발음 또는 독해만 봐주면 되었다.
같이 봐주고 있으면 웃겨서 화를 못 내게 만들때도 있다.
나이에 맞게 알아서 단어 공부도 암기도 잘하는 스스로 잘 하는 아이이다.
<자기주도 학습을 잘 하지만 옆에서 틀린 것을 고쳐 주어야하는 사람이 필요하다>
정인
정인이!
읽기를 봐주지 않아도 되고 꼭 읽을 때는 목소리까지 바꿔가며 재미있게 읽는 아이이다.
처음 독해는 지어내서 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지금은 그 문장에 맞춰 독해하려고 노력한다.
항상 독해때 많이 혼이 나지만 내 기분도 풀어주는 애교도 부리고 내가 화를 내서 미안하게 만든다. 날 가장 많이 챙겨주는 학생이다.
승묵
마지막으로 승묵군.
승묵군을 처음 받을때, 써니쌤께서 “애는 독해는 잘 하니까 읽기만 봐주면 되”라고 하셨다.
애도 내가 많이 봐준 아이중에 속하면서 알려주면 고친것을 보면 또 틀려오지만 입으론
다 알겠다는 듯이 “음...그렇군”이라고 말하는 아이이다.
승묵이 하고는 큰 문제없이 항상 잘 넘어가서 그냥 걱정이 그렇게 많이 되지 않았던 제자이다.
난 이런 일곱명의 제자들을 가르쳤다.
산티아고를 생각하면 먹는 것 , 걷는 것, 공연한 것, 제자들 가르친 것 밖에 생각나지 않는다.
난 이 일곱명과 많은 일들이 있었다.
내가 버린다고 한 적도 있었고, 내 제자에서 나갔다가 다시 들어온 아이도 있었다.
잠시 8명이 된적도 있었다.
난 이 스승/제자 사이를 하면서 책임감에 대해 배웠다.
처음에는 말을 안 들으면 “너 내 제자 하지마!” 라고 했다.
하지만 ,써니쌤께서 스승은 어떤 경우라도 제자를 버리면 안된다.라고 말씀하신 후 부터는 더 책임감을 가지고 애들에게 내가 맞추고 아이들이 내게 맞추려고 노력하닊, 우리 하반하 아이들이 발전해 나가는 것을 느꼈다.
지금은 ‘젤리님’께서 없으셔도 영어공부를 다들 잘 하고 나도 아이들과 좋은 관계를 맺으며
나의 영어실력을 제자들 덕분에 2배로 늘려가고 있다.
제자 공부를 내가 더 잘 가르쳐주기 위해 더 쉽고 재미있게 나의 지식을 플러스해 나누는 일을 할 수 있어 좋았다.
이 경험은 내가 패션 디자인학교를 만들었을때, 유용할 것이어서
난 항상 책임감을 가지고 아이들과 모든 것을 배우고 나눌것이다.
<터키편>
제목; 저의 소원이 이루워졌어요!
-엄마 나도 옆집 순희처럼 동생갖고 싶어.
나도 동생 생기면 언니,오빠가 하는 심부름도 안 시키고,
엄마, 바쁘면 동생 업고 학교 다닐래. 응?
나의 어렸을때, 소원은 커가면서 이룰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던 어느날, 난 소담이를 알게되었다.
처음에는 잘 몰랐지만, 나랑 잘 맞는 것이 많았다.
잘 삐지고 잘 푸는 성격, 죽에 간장 넣어 먹는 음식취향, 외국인이 보면 자매냐고 물어보는
얼굴 생김새 등으로 말이다.
어렸을때부터 소원해서인지, 하나님께서 착하고 재미있는 동생을 보내주신것 같다.
우린 의자매가 되었다.
그러나!!!!
동생을 갖는다는 것은 좋은 것만은 아니였다.
우린 많이 싸웠다.
또, 형님이 되니까, 언니,오빠가 그동안 심부름 시키는 것도 이해가 되었다.
형님이 된다는 것은 참 어려웠다.
너무 감정적이게 행동하면 안되고 무슨 일이든 책임감있게 행동해야 했다.
더욱이, 소담이는 내가 고른 동생이기에 다른 친자매보다 더 큰 책임감을 갖고 지냈다.
정말 가끔은 후회한적도 있다.
하지만 생각해보니. 친동생이 아닐수록 내가 더 책임감있고 형님으로써 잘 행동하게
해주는 것을 감사해야 했다.
‘동생갖기’소원이 이루워 졌으니, ‘동생과 좋은 관계 유지해 가며 커서도 외롭거나
도움이 필요할 때, 바로 날 찾게 만드는 것이 그 다음 소원이다. 아자!!!
<인도편>
제목; IT COULD ALSO HAPPEN TO ME
우린 망고가든에 도착했다.
난 사실 이번 여행지인 망고가든에 큰 기대가 없었다.
파스칼과 써니쌤께 이곳이 어떤 곳인지 들어서 아마 더 그랬을 것이다.
우리와 다른 사람들, 가난한 사람들, 거기에 몸이 불편한 사람들이 사는 곳...
왠지 귀찮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우린 두 개의 변변치 못한 방에 돗자리를 깔고 남/여로 나뉘어 머물게 되었다.
화장실도 밖에 있었다.
물론 그 화장실에 내가 가장 싫어하는 개구리도 있었다.
뿐만 아니라, 해가 지면 망고가든 가득 개구리 울음이 울려 퍼졌다.
이 망고가든에는 아침/저녁 미사가 있었다.
반드시 참여해야한다는 강제는 없었지만, 우리 하반하식대로 적극적 참여가
전제되었다.
망고가든에서의 첫날밤은 어서 이곳을 떠나고 싶다는 생각으로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날 우리는 일상적인 망고가든 사람들을 만났다.
하루 종일 침대에 누워있지만 입으로 펜을 물고 그림을 그리는 미소천사 딜립아저씨
우리와 아주 약간 다른 늘 침을 흘리며 흥분하는 데이비드 아저씨
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하반신 마비인 망고가든 최고의 댄서 수구나
그리고 가난한 아이들...
그러나 그곳에는 우리를 이곳으로 안내한 파스칼같은 봉사자들도 많았다.
우리에게 연극 수업을 해주신 폴란드에서 온 마그다 언니.
항상 미소로 망고가든의 모든 일을 해주시는 피터신부님
미사때마다 기타연주로 아름다운 성가를 불러주는 로만
농구와 축구를 정말 잘하고 아이들에게 춤을 가르치는 말틴오빠
마치 이곳의 큰오빠처럼, 모든 사람들을 잘 챙겨주는 존오빠
우리 엄마,아빠를 한국 엄마,아빠라고 부르는 우리 망고가든 안내자 파스칼...
난 그 사람들을 통해 또다른 세상을 보았다.
내가 생각했던 불편함이 아닌 그들을 가족처럼 돌보고 있는 마음이었다.
내가 망고가든에 오기전에 생각했던 모든 것들이 부끄러웠다.
그래서 난 항상웃고 미사때도 그분들을 위해 기도하게 되었다.
미사시간에 어느때보다 더 절실하게 기도했다.
우리가 망고가든에서 하는 일은 아주 단조로왔다.
망고가든에서 우리가 한 일은
여자들은 아침을 먹은 후 , 다음 식사를 위해 채소를 다듬었고,
남자들은 정원에서 잡초를 뽑았다.
난 그 외에 망고가든에 기증된 다음 봉사자들을 위한 옷들을
써니쌤과 같이 몇시간을 꽤매기도 했다.
내가 뭔가 하고있다는 것이. 그것도 누군가를 위한다는 것에
마음이 흥분되었다.
그래서 망고가든에서 내가 할수 있는 일은 아주 열심히 했다.
난 이제 망고가든이 좋다.
내가 가지고 있던 편견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서로 아무조건 없이 서로 사랑하고, 위하며
살고있는 모습을 볼수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누군가를 돕는다면 우리 언니처럼 몸으로 돕는 것이 아니라
물질로 돕고 싶다는 그런 내 생각을 바꿀수 있는 기회여서 더 좋았다.
도움이란 ...
진정으로 사람의 입장과 감정을 공유 할수 없다면 되려 그들에게
상처가 될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짐했다.
우리랑 약간 다른 사람들에게 힘이 되겠다고.
인생 누가 알겠는가---
it could also happen to me...
<타일랜드>
제목; 내가 관심있는 것을 하기 위해...
우린 ‘방콕시티’에 왔다.
써니쌤께선 우리에게 “각자 관심있는 것을 알아와라!”라고 하셨다.
모두가 알다시피 난 항상 그 지역/나라의 패션에 관심이 있다.
이번에는 내가 항상 알아보던 전통옷과는 달리, 티셔츠 프린팅에 대해 알아보았다.
왜냐하면 인도에서 만난 프랑스 친구 마이트리안이 옷가게를 여는데
내가 그가 선택한 디자이너 중 한명이 되었기 때문이다.
난 티셔츠 프린팅 디자인은 한번도 해보지 않아서 많이 걱정이 되었다.
그래서 태국 티셔츠들의 다양성에 은근히 기대가 되었다.
사실, 꿈이 패션 디자이너이긴 한데, 아직까지 누구와 일해본 경험이 없는 데다
내 스타일이 그가 예상하고 있는 디자인과 맞을지 여러모로 걱정이 되었다.
“내가 관심있는 것 알아오기!”미션을 받은 후, 나에게 도움이 될만한 티셔츠들을 찾아 다녔다.
태국은 야시장 문화가 화려한 곳이다.
몇시간 동안 걸어도 다 못볼만한 시장에 정말 많은 다양한 티셔츠 프린팅들이 있었다.
어느 가게나 가면 볼 수 있었던 태국을 알리는 코끼리 티셔츠,
스타벅스나 술집가게 이름이 있는 티셔츠,
메시지가 담겨있는 티셔츠,
귀여운 캐릴터가 있는 심플한 티셔츠
문양이 디테일하게 나와있는 티셔츠등이 있었다.
내가 관심있게 본 것은 메시지가 있는 것과 귀여운 캐릭터가 있는 것이었다.
의미있는 메시지는 옷을 옷 하나의 기능만 하게 하지 않고 사람들의 의식을 다듬어주니 좋고, 귀여운 캐릭터는 개인적인 내 취향이기 때문이다.
이 미션후, 난 더 많은 아이디어를 냈다.
이 당시 난 ELLE이라는 잡지에서 “크리스티나 김”이란 디자이너의 기사를 읽었는데,
그 디자이너의 생활속에서 패션의 영감을 얻는다는 말에 동감을 하게 되었다.
패션이란, 결국 생활속에서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막상 시장조사를 하면서 느낀 것은, 체력부족, 열정의 부족이였다.
넓은 시장, 다양한 수천가지의 티셔츠...
두세시간이 지나면서 평발의 나는 바닥나는 나의 체력을 느끼며
내가 관심있고, 하고 싶은 것을 하기 위해서는 체력을 우선 키워야겠다는
처음에 예상도 하지 못했던 일에 봉착을 하게 되었다.
내가 원하는 것을 하려면
체력을 가장 먼저 키워야한다는 우리 할아버지께서 늘 말씀하셨던 그 지혜를 깨닫게 된 것이다.
“건강을 잃으면 다 잃게 된다”
그래서 이번일로 난 건강을, 체력을 키워야겠다고 다짐했다.
<라오스편>
제목;RUN HIGH~
써니쌤-동남아시아에서 유네스코에 가장 아름다운 도시라고 등록된 곳이야.
하반하-에? 여기가요?
우리가 르왕프라방에 올때, 써니쌤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셨다.
평범한 동네같은데 어딜봐야 그 아름다운 도시를 볼 수 있는 지 궁금했다.
그렇게 우리가 메콩강을 이틀동안 건너 온 루왕프라방은 우리에게 큰 인상을 주지 않았다.
십대 여자아이들이라면 한번즘 생각했을 다이어트가 나에게도 고민으로 찾아왔다.
아침에 운동하는 것을 좋아하지만 내가 혼자 운동을 하러 나가는 것이 힘들었다.
그래서 운동을 누구보다 사랑하시는 아빠랑 단둘이서 르왕 프라방을 아침운동으로 돌기로 했다.
처음에 뛸때에는 살도 빼고, 체력도 기르겠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뛰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인사도 잘 했다.
10분 후....
그만 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눈 앞에 보이는 건 벤치들 뿐이었다.
아빠가 옆에서 뛸때는 어깨를 펴고, 팔에는 너무 힘주지 말고, 오르막길에서는 몸을 숙여.
또, 이곳은 조용하니까 나중에 크면 그림 그리러 와라...라는 말들이 점점 희미하게 들리기 시작했다.
그래도 내가 단지 10분-15분 달리고 뻗을 한종은이 아니기에 아빠 말씀대로 열심히 달리기 시작했다.
점...점....힘이 들지 않기 시작했고, 나의 생각은 상상속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힘듬 보다는 뭔가 자유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난 보았다.
르왕프라방의 아름다움을...
그곳은 우리가 생각하는 눈으로 보이는 화려한 곳이 아니라, 피로에 지친, 또는 자신만의 시간을 가지러 온 사람들의 휴식처였다.
르왕 프라방에서는 다른 지역보다 더 아침에 조깅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또 메콩강을 마주보는 숙소에서 노부부들이나 가족들이 앉아서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그들은 모두 하나같이 미소짓고 있었다.
난 그때, 아~ 이런 느낌이 써니쌤께서 말씀하신 RUN HIGH~이구나!를 느꼈다.
내가 뛰고 있는데도, 뛰는 것 같지 않고,
속도는 늘었는데도 호흡은 정상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 주위로 지나가는 모든 것들에 내 마음이 담겼고,
뛰면서 웃을 수 있는 여유도 생겼다.
다이어트의 고민으로 아빠와 특별한 데이트를 하게 된 Laos-Luang purabang은 아빠 말씀대로 내가 커서 고민거리가 있을 때 와서 쉬면 좋을 것이다.
그때는 살을 빼고 체력을 기르려고 뛰는 것 보단 내 생각을 하기 위해 뛰어야지.
<말레이시아>
제목; 내 인생 최고의 스폰서
세자매, 임자매들 모두 잘싸우지만 항상 서로를 챙겨주는 모습에 나도 나의 친남매가 그리울때가 있다.
겉으로는 “하나도 않보고 싶어”라고 말하면서도, 오빠의 이야기를 들을때, 언니가 잘 챙기는 특별한 날들이 올때, 친구나 형님이랑 문제가 있을때, 언니, 오빠가 자주 듣는 노래 들을때, 오빠는 않먹고 언니가 좋아하는 아이스크림 먹을때, 우리가족 세계여행 이야기를 할때....그립다....
벌써 하반하가 여행한지 8개월이 다 되었다.
난 처음에 언니, 오빠 없이 어떻게 여행을 할 지 걱정이었다.
왜냐하면 우리 오빠는 항상 엄마가 최고라고 하는 영어실력의 소유자이자 무슨 일이든 완벽하게해서 우리 가족의 agent였다.
거기에 우리 언니는 모두를 놀라게 할 선물을 준비하고 우리의 특별한 날들을 모두 챙겨주는 재주꾼이다. 언니는 그것뿐이 아니라 다이어리에 빈칸이 하나도 없을 정도로 여행중에 정보들을 다 꼼꼼히 적는 꼼꼼이여서 엄마가 필요한 정보 또는 물건들을 옆에서 다 챙겨주는 비서였다.
이렇게 언니, 오빠 자리가 크니, 이번 여행이 걱정 않될 리가 없었다.
난 언니처럼....오빠처럼.....
그래서 다시한번 언니, 오빠처럼 따라하려고 주먹을 불끈쥐고 노력하게 되었다.
참...대단한 언니,오빠를 가진것도 힘든 것이었다.
이번에는 언니가 말레이시아팀 11명을 데리고 왔다.
오랜만에 언니를 봐서 묻고 싶은 것도 많았고, 하고 싶은 말도 많았다.
특히,엄마를 엄마라고, 아빠를 아빠라고 부르지 못하는 홍길동같은 내 처지를 너무 잘 아는 언니에게 난 엄마한테 하지 못했던 속상한 일부터 털어놓았다.
“우리 종은이 속상했겠구나...”하며 나를 따듯히 바라봐주는데 순간 그때!!
나는 눈물이 나올뻔했다.
어렸을때 우리 남매가 싸울때면 우리 엄마는 이런 말씀을 해주셨다.
“너희가 크면 우리가 아니라 너희들 서로를 의지해가며 살아야한단다.
그러니 싸우더라도 너무 심한 말로 마음의 상처를 만들게 하지 마라.
나중에 커서 후회할 수도 있다.
그러니 미래를 위해서라도 서로를 위하려고 노력해라”
내가 가장 힘들때, 내 옆에서 위로해 준 우리 종하언니...
다른 애들이 날 괴롭히면 항상 혼내준 우리 든든한 종윤이오빠...
난 이 둘이 있어 행복하고 그래서 더 잘해줄 것이라 다짐했다.
세상에서 가장 든든한 나의 스폰서들이니까-
사랑해-
고마워-
<인도네시아편>
제목;한종은 패션디자이너?
나의 꿈은 단순한 패션디자이너가 아니다.
난 세계적으로 유명한 존경받는 패션디자이너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난 오로지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부단히 지금까지 노력해왔다.
지금까지 거의 200장 넘는 패션 그림을 그리면서...
그런데 고민이 생겼다.
그것도 이 10개월 여행이 마무리 될 인도네시아에 와서 말이다.
“정말 이 꿈이 나에게 맞는 것일까?”
“내가 정말 이쪽에 재능이 있는 걸까?”
....
그래서 다시 돌아 본 내 패션 그림들은 하나도 맘에 들지 않았다.
그리고...그림 그리는 흥미가 사라졌다.
내가 단지 그동안 해온것이 아까워서 이 꿈이 나한테 맞는거라고 억지를 부리는 것은 아닐까?
남들이 ‘한종은하면 패션디자이너 되고 싶은 애’ 라는 말에 나는 이 꿈을 바꾸면 않된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대장님은 나에게 맞지 않는 것에 너무 매달리지 말고 그냥 훌훌 털 수도 있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정말 털어버려야 하는 것일까...
우리는 스페인 산티아고 두 달을 걸었다.
거의 하루에 대 여섯시간을 걸으면서도 매일같이 내가 해야하는 일에 참 부지런했던 시간이었다.
그때 나는 30명의 순례자들에게 산티아고를 걸으면서 가장 좋은 옷차림새와 배낭에 대한 설문조사를 했었다. 참 쑥스러움이 많은 내게 쉽지 않은 미션이었는데, 내가 스스로 나를 극복하기 위해 정한 것이어서인지 막상 미션을 마치고 리포트를 냈을 땐 참 뿌듯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인도를 여행하면서는 인도 남자, 여자들의 룽기, 싸리, 펀잡에 관한 디자인 조사를 했었고, 왜 그들이 전통옷을 즐겨 입으려 하는지에 대한 학생들 인터뷰도 했었다.
친절한 사람들이 내게 보이는 호의에 난 더 패션디자이너에 대한 열정을 느꼈었던 것 같다.
그 외에 태국에서 기념품에 관한 리포트를 만들면서 조사했던 일, 마이뜨리안의 함께 일하자는 제의를 받으면서 뿌듯해 했던 일들이 떠올랐다.
흐뭇했다.
더군다나 언니가 나를 위해 보내 준 “project runway"를 볼때마다 ”아~ 좋겠다“가 아닌 꼭 나는 그 무대에 설 거라고 다짐하며 영어공부에 매달렸던 기억도 나고, 그래서 마치 그 주인공이 된 듯 더 디자인에 빠져 있었던 시간들도 생각났다.
갑자기 엄마 말씀이 떠올랐다.
“어떤 일이 정말로 네게 맞는지 않맞는지 알고 싶다면, 첫 번째 그 일에서 돈을 빼라-
만약 그 일을 하는데 돈을 받지 못한다고 하는데도 하고 싶다면 너는 돈 때문에 그 일을 하는게 아니라 진정으로 네가 그 일을 좋아한다는 뜻이거든. 그리고 두 번째로, 그 일을 하는 동안 밥도 먹지 못하고, 잠도 자지 못한다고 하는데도 하고 싶으면 그 일은 정말로 네게 맞는 일이다. 그건 하고 싶은 마음이 넘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경지이기 때문이지. 그리고 세 번째는 위와 같은데도 행복하냐고 스스로에게 묻는거지. 그래도 행복하면 그건 네 천직일게야”
그때 나는 그럼에도 나는 패션디자이너가 되고 싶다고 했었다-*^^*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혹시 나에게 패션 디자이너가 적성에 맞지 않을지라도 내가 5년동안 노력을 해 왔던 것처럼 오히려 그 꿈을 나에게 맞게 만들면 되겠다고-
내가 10개월 여행하는 동안 내꿈을 향해 달리면서 큰 벽에도 부딪치고, 흥미를 잃고, 다시 일어서고 주저 앉은 것처럼 성공한 사람들도 나같은 고민에 빠졌을때가 있지 않았을까...
써니쌤께서는 어떤 문제에 맞닥뜨렸을때 나의 롤모델들은 이 문제를 어떻게 풀었을까 고민해보라고 하셨다.
나의 롤모델은 어떤 고난속에서도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았던 유관순누나이고, 디자이너 중에는 자신의 주관이 뚜렷한 마이클 콜스, 생활속에서 패션 감각을 찾아내는 크리스티나 킴, 그리고 패션과 모델들에게 객관적인 명석한 지적을 하시는 elle 잡지의 Director 니나 가시아이다.
*^^*
그런데 이런 생각들을 하면서 웃음이 난다.
그냥 행복하다.
이것만으로 패션디자이너는 나의 천직인게 아닐까-
앞으로 갈 길이 험한데도 이렇게 행복하니 말이다-
역시 난 세계적으로 유명해질 수밖에 없는 한종은 패션디자이너가 될 것 같다.
10개월 마지막 나라 인도네시아에서 나는 그동안 나의 고민을 다시 한번 점검했다.
더 멋진 나, 한종은을 만들기 위해서-
<10월을 마치며....>
제목;하루살이
10개월 여행초기에도 난 벼락치기 선수였다.
그렇게 금요일은 토요일마다 있는 정산을 위해 밤을 지샜다.
그러다 어느날 써니쌤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
“우리에겐 내일은 없다,
우린 항상 오늘을 살아가는 것이지. 내일은 없으니 일을 미루지 말라”
생각해보니, 항상 모든 날들은 나에게 오늘이란 이름을 갖고 왔었다.
그래서 난 여행중에 매일매일 계획한 것을 그날 하려고 노력하게 되었다.
간혹 어려움이나 유혹이 있었지만 되도록 내가 정한 규칙을 지키려고 노력하니,
어느새 난 내가 생각하는 나 , 한종은에 가깝게 설수 있었다.
이 하반하 10개월여행에서 배운것을 잠시 공개 하겠다.
1)그날 할 일은 그날 끝내라
2)매일 아침 나의 미래에 대란 상상을 자세히 해라
3)자기전에 일기나 다이어리 공책에 오늘 내가 한일에 대해 써라
4)매일 하루에 한 시간 이상 나의 몸/머리/마음의 밸런스를 위해 시간을 써라
5)매일 아침에 계획을 세워 그것을 매일매일 하려고 노력하고 만약 작심삼일이
된다면 삼일 마다 다시 계획하고 다짐하라!
하반하에서의 10개월은 나에겐 하루같았다.
그 하루 동안 나에게 많은 고난과 슬픔이 있었을지 몰라도
나에겐 더 나를 발전시킬 수 있는 큰 기회를 주는 시간이었다.
난 어디를 가서든 하반하에서 배룬 오늘만 사는 나의 습관 다섯가지를 적용할 것이다.
그래서 하반하의 명예룰 높이는 자랑스런 하반하 졸업생이 되고 싶다.
그리고 오늘 10개월을 마치는 마지막 문집을 쓰며
그동안 감사라고 싶었던 분들게 인사를 하고 싶다.
10개월동안 항상 안전하고 건강하게 지켜주신 하나님.
10개월에서 만난 정말 우리를 사랑해 주신 여행자 분들...
써니쌤 ,대장님께 하반하 2기와 계절학교아이들을 보내주신 학부모님들.
그리고 10개월간 나의 여행의 벗이 되어준 하반하 아이들..
한국에서 언제나 평생 우리 가족을 위해 기도해주시는 내가 가장 사랑하는 우리
친할아버지, 할머니, 외할아버지 , 할머니.
나를 가장 많이 사랑하는 작은 엄마,고모
나를 언제나 자랑스럽게 봐주시는 작은 아빠.고모부
아직 내가 많이 감사의 표현을 하지 못한 외숙모, 외삼촌
나의 스폰서이자 내가 많이 사랑하는 사촌들.....
분명 전생에 우리 친 가족이었을 연구부장님, 연구부장님 남편분,
우리와 의남매인 정열이와 충열이-
교회사람들... 나의 점수를 높게 올려주긴 검정고시 한양학원 선생님들...
누구보다 부모님
모두모구 정말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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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한참을 망설인다. 쓸 말이 생각나지않아서..
어떤 말도 떠오르지 않을 정도로 많은 경험과 내적 성숙...
다만 배울뿐!!!
큰형님 하느라 애썼고..고맙다.
종은아-
언니도 고맙고, 사랑해~♡
곧 보장^^*
안뇽~언니!!! 나 시라야
보고 싶당..ㅠㅠ한국 돌아오면 전화해~영화 보러가자.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