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적봉으로 오르는 길은 생각보다 완만하다.
사실 아이젠을 하고 오지 않았으면
완만하다는 생각은 추호도 없었을 테지만,
아이젠을 하고 휴게소부터 오르는 눈 쌓인 길은 그리 험난하지 않다.
보이는 풍경도 무척 아름답다.
멀리 보이는 호수며, 무주의 아름다운 풍경들은
향적봉으로 오르는 재미에 플러스 알파를 더한다.
올해 마지막으로 볼 수 있는 눈 덮힌 산등성이들.
마치 노르웨이에 갔을때 피오르드를 만났던 그 장면처럼 여겨져 괜히 반갑다.
옆에서 함께 오르는 누군가가 말한다.
"와, 여기 스위스같아!"
라고.
사실 여기는 노르웨이도, 스위스도 아니지만
그만큼 큰 스케일에 아름다움을 간직한 곳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비유들이다.
사실 한 10분 정도 오르니 향적봉이 바로 보인다.
생각보다 난이도도 낮고 무척 쉬운 코스라
그냥 산책하는 기분정도만 느껴질 정도다.
향적봉을 배경으로 찰칵, 예쁜 부녀의 모습을 담는다.
사실 나는 늘 카메라 뒤에 서서 촬영을 하고 있기 때문에
내 얼굴이 카메라에 담기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이렇게 다정한 남편과 아이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나도 찍어줘!"라고 말하고 싶어질때도 많다.
카메라 뒤에 서서 눈 앞에 보이는 풍경을 담는 것이 늘 유쾌하지만은 않은 것도
이러한 배경에 있다.
향적봉은 덕유산의 최고봉으로 높이는 1614미터다.
향적봉 1코스는 무주리조트~곤돌라~설천봉~향적봉으로 편도 0.6km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오르는 시간은 약 20분 정도나 제2 코스로 가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제2코스는 구천동탐방지원센터~인월담~안심대~백련사~향적봉으로 편도 약 8.5km다.
편도 3시간이나 걸리는 어렵고 힘든 코스로 아이와 함께 가는 것은 힘드니
아이와 함께라면 무조건 케이블카를 타는 1코스를 추천한다.
향적봉에 오르면 중봉과 삿갓봉 등 덕유산의 아름다운 봉우리들을 볼 수 있다.
그리고 멀리 지리산과 가야산, 적상산, 마이산 등
한국의 유명한 산들의 장쾌한 모습들을 만날 수 있다.
향적봉에서 중봉에 이르는 등산로는 구상나무가 군락을 이루어 장관을 만든다.
많은 사진가들과 등산가들이 덕유산을 찾는 데에도 여기에 이유가 있다.
향적봉으로 오르는 마지막 계단.
이 코스도 어려워 헉헉대며 오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
눈이 많이 쌓인 상태를 모르고
따뜻한 기온만 믿고 아이젠을 준비하지않아
미끄러지며 오르는 사람들도 많았다.
"옆으로 걸으라니까! 옆으로!!!"
갑자기 옆에서 싸우는 목소리가 들린다.
아이젠을 하고 오지 않은 한 가족이
계속 눈길에 미끄러지자 서로 언성을 높이며 싸우게 된 것...
여행와서 서로 싸우는 가족의 모습을 보니 안타까운 마음도 들었지만
솔직히 마음속으로 아이젠을 빌려서 온 게 최고의 선택이었다, 는 생각만 들었다. 이기적이게도.
계단을 밟아 올라가니 드디어 향적봉 정상!
정말 눈이 하얗게 쌓인 설원이 펼쳐진다. 마치 만년설처럼 말이다.
대신 고도가 높아 바람이 불어 굉장히 춥다.
3월인데도 말이다.
눈 쌓인 향적봉 바위에 꽤 많은 사람들이 모여있다.
사실 성수기에 비하면 무척 적은 사람들이지만
바위에서 인증샷을 찍으려는 사람들이
'봄에 만나는 겨울'이 보고싶다면 향적봉을 오르면 되겠다.
해외여행을 너무 못가서 헛것이 보이는건가.
향적봉 정상에 서서 보니 저 멀리 스위스 융프라우같은 산이 보인다.
정말 생김새건 모양새건 딱 융프라우같다.
<향적봉에서 바라본 풍경>
미리 준비해온 담요로 덜덜 떨고있는 아인이의 몸을 감싸준뒤
가방에 넣어온 과자를 꺼낸다.
너무 추워서 과자가 꽁꽁 언 것 같다.
그다지 맛있지도 않다.
따뜻한 차를 준비해올껄, 하는 후회가 밀려온다.
어디서 컵라면 냄새가 난다.
아까 싸우면서 올라오던 가족들이다.
뜨거운 물을 준비해 왔는지 컵라면을 후루룩대는 소리가 냄새와 함께 코 끝에 닿는다.
그 냄새가 내 내면의 식욕에 대한 강력한 발동을 건다.
"아차, 산에서 컵라면을 먹어도 되나?"
의아한 생각도 들지만
어쩌겠어, 이미 먹고 있는 것을.
향적봉에서는 다양한 산을 바라볼 수 있다.
친절하게도 표지판까지 마련되어 있는데
지리산 천왕봉과 무봉산, 남덕유산, 마이산과 계룡산 등을 볼 수있다.
충청도와 전라도 사이에 있는 덕유산이라
충청도와 전라도의 산을 대부분 다 바라볼 수 있는 것.
어쩌면 지역과 지역을 잇는 산이 덕유산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여러 의미로다가 참 멋진 곳이 아닐 수 없다.
가는 봄이 못내 아쉬운지 귀여운 눈사람도
향적봉 어귀를 차지하고 있다.
그래, 봄이 가는게 아쉬워 올라왔지만...
참, 춥구나 추워.
꽤 추웠는지 아인은 옷과 담요를 꽁꽁 둘러메고 다닌다.
더 따뜻하게 입혀서 올껄, 하는 후회가 밀려온다.
확실히 산을 오를때는 정상의 기온까지 생각하고 오르는 것이 현명한 길이다.
<여러 사람의 염원이 담긴 향적봉의 거대한 돌탑>
참, 향적봉에는 하나의 뷰 포인트이자 포토 포인트가 있다.
바로 등산로 반대편에 있는 하산하는 계단인데 이 곳은 나무 계단과 함께
전라도 방면의 아름답게 굽이진 협곡과 더불어 환상적인 풍경을 마주할 수 있다.
이러한 풍경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남기는 것은 평생 기억에 남을 것.
다만 그 날, 날씨가 춥다면 사진에 찍힌 사람들의 일그러진 얼굴도 평생 기억에 남을 것.
많은 사람들이 향적봉의 가장 높은 바위에 올라 기념사진을 남기기도 한다.
나도 질세라, 남편과 아이를 남기고서 바위 위로 올라간다.
눈 앞에 펼쳐지는 황홀하고 시원한 풍경!
한국에 스위스같은 장소가 있다면 바로 이 곳이 아닐까 싶다.
이 곳을 배경으로 내 트레이드 마크인 별 사진을 찍는다면 그것도 얼마나 아름다울까.
밤에 와보고 싶은 충동이 어마어마하게 들지만
초롱초롱한 아인의 두 눈을 보고 있으니
'그럴수 없다'는 사실이 퍼뜩 깨닫는다.
아쉽다.
언젠가는 이 풍경을 배경으로 아름다운 별 사진을 찍게 될 날을 기대하며.
아인이가 어서 빨리 커서 나와 함께
낮이고 밤이고
세계의 자연을 누벼주기를!
향적봉의 가장 높은 바위에 서서 그 날을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