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와대 본관 후정에서 어느날의 육영수 여사와 박지만.
박 대통령은 강화도를 다녀와서 “요즈음 젊은이들은 어째서 예절을 그렇게 모를까. 대통령이라고 부르기 어려우면 근영이 아버지라고 할 수도 있을 텐데… 다녀와서 고맙다는 인사도 없이 가버리니…” 하며 아쉬워했다고 한다.
대학생들과 가까웠던 육영수 여사
육 여사는 순수하고 발랄한 젊은이들을 무척 좋아했으며 대학생들의 과외 활동에 많은 관심을 가졌다. 육 여사를 좋아했던 대학생들은 육 여사를 캠퍼스로 초청, 좌담회 등을 가졌는데 육 여사가 방문했던 대학은 고대·외대·숙대·영남대·계명대·경희대 등이었다.
서울의 H대학에서 좌담회가 있었는데 한 학생이 박 대통령의 매력이 어디에 있느냐는 질문을 했다. 육영수 여사는 그분의 강한 의지력이라고 답변한 뒤 웃을 때의 모습이 어린애같아 더 좋다고 해 강당이 웃음바다가 되기도 했다. 박 대통령을 점수로 매기면 몇 점쯤 되느냐는 질문에는 ‘남편인데 B학점은 주어야 하니 이해해 달라’고 해 박수를 받기도 했다. 지금은 대통령 부인이 대학 캠퍼스를 찾아가 학생들과 대화를 갖는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 되고 말았지만.
육영수 여사는 대학생들의 농촌봉사활동에 관심이 많아서 그들을 도와주었다. 각 대학의 각종 서클이 육영수 여사에게 서신을 보내와 지원을 요청해 오면 반드시 봉사활동에 필요한 경비의 일부를 지원했다.
1973년 여름 서울 K대학의 동아리 대표 조(趙)모군을 청와대에 오라고 해 영부인이 주시는 경비를 전하면서 내가 이렇게 말한 일이 있다.
“반정부 데모하느라 학생들은 수업을 못하고 시내 교통이 막혀 시민들은 짜증스럽고… 언제까지 이런 일을 반복해야 하나. 내가 좋은 방법을 알려주겠다. 이번 여름 농촌에 가서 봉사활동을 하는 틈틈이 농민들에게 대학생 자격으로 이야기하라. 이 정부는 도저히 안 되겠으니 다음 선거 때는 반드시 야당을 뽑아야 한다고….”
- 1972년 5월 12일 학생회 초청으로 경희대를 방문한 육영수 여사.
1974년 8월 14일 각 대학 유네스코 학생회원들이 10여 일간의 조국순례 대행진을 마치고 최종 목적지인 부여 백마강을 향해 도보로 행진을 하고 있었다. 정오 무렵 도보행군으로 땀에 흠뻑 젖은 그들에게 서울서 내려온 해태제과 냉동차에서 시원한 아이스크림이 배급되었다. 육 여사께서 그곳까지 보낸 것이었다. 그러나 바로 다음날 15일, 대학생들이 백마강에서 8·15광복절 기념행사를 가진 그 시각, 영부인은 총탄에 맞아 서울대병원에서 뇌수술을 받았다.
첫댓글 참. 아까운 분을 ㅡㅡㅡ 그때 를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아프고 숨이 갑빠지는데 북한과 일본에 아베 조총련 등 모조리 그냥 . 싸그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