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바이오 패러다임과 기술 트렌드
- 김무웅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책임기술원
혁신기술의 발명은 새로운 과학적 지식의 발견을 촉진한다. 「사이언스」지에서는 과학과 기술을 ‘파워 커플(Power couple)’이라 지칭하며, 과학적인 기술(Scientific technology)의 발전은 새로운 과학적 발견(Scientific discovery)을 유도해 그간 알 수도 할 수도 없었던 연구를 가능하게 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특히 바이오 분야에서 새로운 혁신기술들의 등장은 생명현상의 이해를 가속해 최근 개발된 단일세포 이미징 및 시퀀싱 기술은 발달 생물학, 면역학, 종양학에 매우 진보된 접근방식을 제공하고 있다.
플랫폼바이오와 바이오 패러다임
이러한 관점에서 레드바이오(보건·의료), 그린 바이오(농업·식품·자원), 화이트바이오(화학·에너지)와 같은 응용·산업분야에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플랫폼바이오가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유전체 분석, 유전체 편집, 세포 리프로그래밍, 합성생물학처럼 레드·그린·화이트 바이오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플랫폼바이오가 바이오 기술개발과 산업발전에 혁신을 가속하고 있다. 실례로 우리가 그 어느 때보다 빨리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유전체를 시퀀싱하고 구조를 분석해 백신을 개발할 때 플랫폼바이오가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한편, DNA, RNA, 단백질, 바이러스 등 다양한 바이오 콘텐츠가 디지털 프레임을 만나면서 기존의 접근방법으로는 한계가 많았던 글로벌 난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바이오 패러다임이 형성되고 있다. 정밀/맞춤, 재생/회복, 지속가능이라는 바이오 패러다임은 플랫폼바이오와 더불어 한동안 바이오 분야의 큰 흐름이 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플랫폼바이오는 생명현상을 있는 그대로 분석하고 이해하는 생명분석(Read), 이러한 현상을 재설계하는 편집/리프로그래밍(Edit), 이를 기반으로 생명현상과 유용한 기능을 모사/합성(Write)하는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으며, 더 나아가 가상의 공간에서 생명현상을 시뮬레이션하는 가상/예측(Imagine)은 새로운 차원의 상상력을 더할 것으로 전망된다.
10대 바이오 미래유망기술
한국생명공학연구원 국가생명공학정책연구센터는 지난 2015년부터 매년 10대 바이오 미래유망기술을 발굴하며, 2018년부터는 플랫폼바이오의 중요성을 반영해 레드·그린·화이트 바이오 외에 플랫폼바이오를 별도로 구분해 바이오 미래유망기술을 발표하고 있다.
[플랫폼 바이오]
1. 생체 내 면역세포 실시간 분석
▶ 다양한 면역세포의 기능을 실시간으로 관찰하는 동시에 관련 유전자의 발현 분석
▶ 복잡한 면역반응과 질환별 면역세포의 다양한 기능을 분석해 인체 면역 원리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치료제 개발에 활용
2. AI 기반 인공 단백질 설계
▶ AI 기술을 활용해 자연계엔 없지만 유용한 기능을 보유한 인공 단백질 설계
▶ 실험적 접근 방식으로 불가능했던 단백질을 인공적으로 설계해 기존 단백질의 단점을 보완하고, 생산과 유통에 있어 획기적인 장점 제공
3. 세포 역노화
▶ 세포 리프로그래밍 등을 통해 세포의 건강을 유지하고, 세포의 재생 능력을 복원
▶ 세포 노화로 발생하는 퇴행성 질환을 근본적으로 치료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건강수명 연장 및 노년 삶의 질 향상
[그린 바이오]
4. 배양육/대체육 고도화
▶ 기후변화, 팬데믹 대응을 위해 동물세포 배양, 식물 유래 단백질 등을 통해 친환경, 고기능성 대체육류 생산
▶ 축산업에 요구되는 자원과 공간, 온실가스 배출을 크게 감축해 환경을 보호하고 미래 식량 문제 해결에 기여
5. 토양 마이크로바이옴
▶ 생물지각 내 마이크로바이옴을 파악, 개발
▶ 탄소, 질소 등의 생물지구화학적 순환과 토양 내 영양 수준을 유지해 토양 안정성 , 동식물 보존 등 건강한 토양 생태계 보존 및 복원에 기여
[레드 바이오]
6. 비침습적 신경조율 기술
▶ 인지기능 저하 등 뇌기능 문제를 부작용과 거부감 없이 회복, 향상하는 새로운 접근방법
▶ 비약물의 국소 신경망 자극을 통해 개인의 돌봄 접근성을 높여 팬데믹 이후 증가 추세인 정신건강 문제 해결에 기여
7. 개인 맞춤형 암 백신
▶ 암환자별 특이적 항원에 대한 데이터 분석을 통해 개발된 다양한 형태(DNA, RNA, 펩타이드 등)의 암 백신
▶ 종양 항원에 대한 방대한 데이터로 암 백신 라이브러리를 구축, 치료용·예방용 암 백신을 신속 개발하는 데 활용
8. 임상 적용 가능 유전자편집 기술
▶ 빠르게 진전되는 유전자편집 기술을 환자 치료 등 임상에 적용하기 위한 고도화 기술
▶ 높은 효율성과 안전성을 기반으로 유전자 돌연변이 등 다양한 희귀, 난치질환에 대한 임상적인 치료 가능성 제고
[화이트 바이오]
9. 합성생물학 적용 미생물공장
▶ 합성생물학에 의해 재설계된 생합성 경로를 미생물에 구현해 천연물질, 화학합성 대체물질 및 유용 단백질을 생산
▶ 자연계에 존재하는 미생물에 비해 목표물질 생산 효율이 높고, 복잡한 물질도 생산 가능해 바이오 제조 역량 구축에 기여
10. 미세플라스틱의 건강 및 생체영향 평가
▶ 미세플라스틱이 생체에 미치는 영향을 모니터링하고, 장기별 독성, 유해성 검증을 통해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평가
▶ 미세플라스틱의 체내 유입량과 잠재적인 영향에 대한 평가를 통해 환경 및 건강 관리 방안 마련에 활용
그간 발표된 바이오 미래유망기술을 통해 바이오 패러다임에 따른 기술 트렌드를 살펴볼 수 있는데, 플랫폼바이오의 생명분석에 관한 혁신기술 등장과 진전은 그동안 접근할 수 없었던 연구 영역에 다가갈 수 있게 해 생명현상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혀주며 고령화, 만성질환, 감염병 대응을 보다 정밀하게, 개인 맞춤형으로 고도화하고 있다. 최근 단일세포 시퀀싱과 노화세포 분리기술을 기반으로 노화세포의 특성을 규명한 연구결과가 발표되었는데, 이러한 발견은 노화세포를 정밀하게 제거하거나 개인 맞춤형 노화방지 물질 개발에 활용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바이오 분야에서 편집/리프로그래밍이란 생명현상을 재설계하는 기술을 말한다. 이 기술의 발전은 재생과 회복에 대한 패러다임을 이끌고 있다. 고령화와 질병 극복뿐 아니라 에너지·자원고갈, 환경오염 및 기후변화에 긍정적인 영향이 클 것으로 전망된다. 예를 들어, 유전체편집 기술을 이용해 질병 저항성과 생산량을 높인 벼 품종이 개발되었으며, 최근에는 세계 최초의 크리스퍼 유전자편집 치료제가 영국과 미국에서 승인을 받았다. 이러한 기술들은 질병과 관련된 유전자를 복원하거나 변형하는 방식으로 다양한 질환을 치료할 수 있을 것으로 그 가능성을 주목하고 있다.
앞으로는 생명분석, 편집/리프로그래밍의 기술적 진전을 토대 삼아 모사/합성에 대한 패러다임이 보다 뚜렷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모사/합성 트렌드는 기후변화 대응, 바이오 제조를 통해 지속가능한 환경 및 공급망 확보에 기여할 수 있다. 최근 탄소중립 및 식량고갈 문제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연구결과가 발표되기도 했는데, 연구팀은 무세포 기반의 인공합성회로를 개발해 이산화탄소를 전분으로 전환했으며, 또 다른 연구팀은 합성생물학에 의해 재설계된 효모에서 항암제인 빈블라스틴을 제조해 코로나19 대유행 기간 발생했던 의약물질 공급 문제에 대한 해결 가능성을 제안했다.
단백질의 3차 구조를 예측할 수 있는 AI인 ‘알파폴드’를 개발한 지 4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 알려진 거의 모든 단백질(약 2억 1,400만 개)의 구조를 분석한 정보가 데이터베이스(AFDB)에 공개되면서 AFDB는 미지의 단백질 연구에 새로운 통찰력을 제공하고 있다. 이제는 단백질의 구조 예측을 넘어 원하는 기능과 특성을 가진 단백질을 인공적으로 설계하는 방향으로 R&D의 영역이 확장되고 있다.
바이오 R&D에 있어 가상/예측 트렌드는 광범위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우리 삶에서 축적되고 있는 바이오 빅데이터(유전체, 진료, 라이프로그 등)는 빠르게 통화화되고 있다. 이러한 변화 때문에 바이오 전문역량을 보유한 연구 그룹뿐만 아니라 글로벌 디지털 기업들도 가상/예측 관련 기술 개발에 통 큰 참여를 하고 있다.
2024년 주목할 바이오 혁신 기술
앞으로 우리가 주목해야 할 바이오 분야의 혁신 기술들로는 어떤 것이 등장할까? 지금까지 설명한 바이오의 플랫폼화, 정밀/맞춤화, 재생/회복화, 지속가능화라는 패러다임은 한동안 유효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플랫폼바이오의 기술 트렌드(Read, Edit, Write, Imagine)를 통해 패러다임의 현실화가 촉진될 것으로 예상하는 바이다. 그렇기 때문에 주목할 만한 바이오 혁신 기술은 보다 근본적으로 생명을 분석하고 편집하고 예측해 모사 및 합성하는 단계에서 발굴될 가능성이 높다. 이렇게 발굴된 기술들은 고령화, 만성질환 및 정신건강, 감염병, 에너지 및 자원 고갈, 환경오염 및 기후변화 등의 문제 해결에 있어 정밀/맞춤, 재생/회복, 지속가능 패러다임을 선도하는 연구, 기술, 제품, 서비스가 향후 유망할 것이다.
올해도 국가생명공학정책연구센터는 2024년 10대 바이오 미래유망기술 발표를 위해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현재 20개의 후보 기술을 도출했고, 이 가운데 10대 기술 선정을 위한 설문조사와 전문가 평가를 앞두고 있다. 후보 기술 중에는 차세대 롱리드 시퀀싱(플랫폼바이오), 박테리아 주사기(레드바이오), 공생 미생물 유래 대사체(그린바이오), 환경유전자(eDNA) 모니터링(화이트바이오) 등이 포함되어 있다.
바야흐로 바이오 R&D가 ‘읽기(Read)’에서 ‘편집하고(Edit), 쓰는(Write)’ 방향으로 확장하고 있는 가운데, 디지털과의 접목을 통해 상상(Imagine)의 차원이 넓게 펼쳐짐에 따라 새로운 관점의 창작이 가능해질 것이라 예측해본다.
※ 이 원고는 월간 <과학과기술> 1월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