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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모든 AI의 역사] ① '돈'의 힘? 맥락으로 보는 오픈AI 사태
정지훈
해고됐다 돌아온 CEO 샘 알트만… 오픈AI 쿠데타 사건
창업 초창기, AI의 위협보다 빅테크 기업의 AI 주도권 경계해
알렉 래드포드, GPT 탄생에 중요한 역할… 강화학습 넘어서
시작된 내부 균열… MS 사티아 나델라의 파격 투자로 반전
단순한 쿠데타? 장단기적 맥락 읽어내 AI 미래 직시해야
챗GPT로 전 세계에 이름을 알린 오픈AI CEO의 샘 알트만은 '오픈AI 쿠데타'로 불리는 일련의 사건으로, 해고 그리고 복귀의 과정을 거쳤다. 이 일을 두고 혹자는 '돈의 힘이 가장 중요했다'라거나 누군가는 '앞으로 MS와 오픈AI가 더 공격적으로 사업을 펼칠 것'이라고 해석했다. 《거의 모든 IT의 역사》, 《거의 모든 인터넷의 역사》의 정지훈 저자가 이번에는 AI(인공지능)에 대해 이야기한다. 필자는 "단기와 장기적인 맥락에서 AI의 과거와 현재를 이해할 때, AI의 미래를 제대로 직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오픈AI 사태를 다룬 이번 원고에서는 단편적 시각에서 벗어나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 반란의 구심점 일리야 수츠케버와 함께한 오픈AI의 창립에서부터 턱밑까지 쫓아온 앤스로픽과의 라이벌 관계까지 살핀다. [편집자 주]
오픈AI의 공동창업자이자 CEO인 샘 알트만이 해고됐던 오픈AI 쿠데타 사건은 관련 업계에서 2023년의 가장 큰 충격적 사건이자 해프닝처럼 기록되었다. / 사진=셔터스톡
오픈AI 오일천하(五日天下) 해프닝
2023년 11월 17일, 트위터를 통해 충격적인 소식이 전해졌다. 2022년 10월 발표한 챗GPT를 통해 생성형 AI를 통한 새로운 미래의 선두 주자로 자리매김하던 오픈AI의 공동창업자이자 CEO인 샘 알트만이 해고되고, 동시에 이사회 의장을 맡고 있던 그렉 브로크만이 이사회에서 물러난다는 소식이었다. 6명의 이사진 중 사내 이사 3명 중 하나인 일리야 수츠케버가 나머지 사외이사 3인과 함께 일으킨 이 사건은, 일종의 쿠데타와도 같은 급작스러운 전개와 이후 벌어진 5일간의 반전이 얽히면서 2023년의 가장 큰 충격적 사건이자 해프닝처럼 기록되었다.
이사진의 결정은 샘 알트만이 "이사회와의 소통에 일관되게 솔직하지 않아 이사회가 책임을 다하는 것을 방해했다."라는 명목을 내세웠으나, 대체로 인공지능의 안전하고 책임 있는 개발에 대해 우려를 하는 이사회 및 오픈AI 내부의 일부의 목소리와 이를 무시하고 독주하는 샘 알트만과의 갈등을 주원인으로 보는 시각들이 많다. 그렇지만, 가장 큰 투자를 감행했던 마이크로소프트의 CEO 사티아 나델라가 샘 알트만과 그렉 브로크만을 마이크로소프트로 불러 들인다는 내용을 발표하고, 오픈AI 대다수 직원들이 이사회의 결정에 등을 돌리고 샘 알트만의 복귀에 서명을 하는 연판장을 돌리면서 사태 추이가 바뀌었다. 결국 이사회 6인 중 단 1인만 유임이 되고, 3인이 교체가 되는 선에서 샘 알트만이 다시 복귀하는 것으로 사태는 종결이 되었다. 이 결과를 놓고, 돈의 힘이 가장 중요했다거나, AI가 가진 혁신에 대한 기대가 안전성에 대한 우려보다 중요하게 생각되었다며 앞으로 마이크로소프트와 오픈AI가 더 공격적으로 사업을 펼쳐나갈 가능성이 높다는 해석들이 많이 나왔다.
그렇지만 이는 이런 사건을 단편적이고 맥락없이 해석을 한 단견이라고 본다. 필자는 기술의 미래가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주로 연구하고, 그에 맞추어 전문적인 투자를 하는 투자자이기도 하고, 미래에 대한 시나리오를 많이 쓰기 때문에 ‘미래작가’로 불리기도 하지만, 《거의 모든 IT의 역사》나 《거의 모든 인터넷의 역사》와 같은 기술의 역사에 대한 통찰력을 매우 중시하기도 한다. 그 이유는 미래를 바라볼 때, 시간이 과거로부터 흘러와서, ‘지금’이라는 현재의 시간을 지나 그다음의 물줄기를 찾아나가는 거대한 물줄기로 보기 때문이다. 오픈AI 쿠데타 사건도 정보들을 단편적으로 떼어놓고 보면 당연히 단편적인 해석을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오픈AI가 누구에 의해 어떤 주변 환경 속에서 어떻게 창업이 되었고, 이들을 구성한 주요 인물들이 가진 생각과 특징들이 무엇이고, 그리고 이후 벌어진 여러 기술의 개발 및 진행 상황에 따라 외부 환경에 해당하는 기업과 이해당사자들이 어떤 궤적으로 움직여 왔는지를 제대로 파악해야 이 사건의 본질도 제대로 해석할 수 있다고 본다. 그런 측면에서 '거의 모든 AI의 역사' 라는 주제로 연재를 시작하면서, 오프닝으로 오픈AI 쿠데타 사건의 역사적 흐름을 살펴보고자 한다.
오픈AI 공동창업자들, 왜 모였나?
오픈AI는 2015년에 창업했다. 현재 외부에 잘 알려져 있는 샘 알트만과 그렉 브로크만, 그리고 이번 반란의 주역이라고 할 수 있는 일리야 수츠케버 외에도 창업 당시에는 크게 세 그룹의 인물들이 모여서 만들었다고 할 수 있다. 일단 AI 연구를 끌고 나가야 하는 AI 연구자 그룹이 있었는데, 딥러닝의 아버지라 불리는 토론토 학의 제프리 힌튼 교수의 제자로 구글 AI 연구의 핵심이 되는 구글 브레인을 만들 때부터 참여한 일리야 수츠케버를 주축으로, 테슬라의 자율주행 서비스와 관련한 AI 개발에도 참여한 안드레이 카파치, VAE라고 불리는 초창기 생성형 AI 기술 중 가장 유명한 알고리듬을 개발한 더글라스 킹마, 그 이외에도 여러 강화학습 최고연구자들이 합류하였다.
또 하나의 중요한 그룹은 바로 투자자 또는 기업가 그룹이었다. 샘 알트만이 이 그룹에 속한다고 할 수 있는데, 이미 자신의 스타트업을 팔아서 매각을 해본 경험이 있을 뿐 아니라, 당대 최고의 스타트업을 길러내는 기관이라고 할 수 있는 와이컴비네이터의 대표까지 맡아서 전도유망한 스타트업에 직접적인 투자와 성장을 시켜본 경험이 있었다. 알트만은 AI의 미래 가능성을 알아보고 여러 투자자들을 설득해서 오픈AI에 참여하게 만들었다. 이 그룹에 해당하는 인물로 가장 유명한 사람은 바로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이지만, 그 이외에도 링크드인 창업자로 향후 마이크로소프트와의 연결에 지대한 영향력을 발휘하게 되는 리드 호프만, 페이팔 마피아의 대표적인 인물로 꼽히는 피터 티엘 등도 있었다.
마지막 그룹으로는 아무리 연구를 열심히 해도 제품과 서비스로 만들지 못하면 안 되기 때문에, 제품으로 기술을 이해하고 만들어 나가는 역할을 담당하는 엔지니어 그룹이 있다. 이 그룹의 대표가 뉴욕에서 최고의 핀테크 기업 중 하나인 스트라이프의 CTO를 지내면서 이미 큰 성공을 거뒀지만, AI가 세상을 삼킬 것이라는 것을 직감하고 실리콘밸리까지 건너와 엔지니어 조직을 만들고 실질적인 초기 CEO 역할을 담당한 그렉 브로크만이었다. 그렉 브로크만은 초기에 직원과 연구원들을 모집하고 다니고, 실제로 본인의 집을 사무실로 내주고 일을 시작했는데, 이는 공동창업자 주요 멤버들 중에서 자신만 풀타임으로 일했기 때문이었다. 이때 중요한 엔지니어와 과학자들을 설득하고 소개받기 위해 당시 관련 전공의 유명한 교수들 중 유일하게 기업들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지 않던 몬트리올대학의 요슈아 벤지오 교수를 찾아가서 자문을 구하였다. 이때 벤지오 교수는 자본의 힘에 휘둘리지 않고, AI 기술 개발과 관련한 윤리적 대의를 먼저 추구할 만한 사람들로 주로 추천을 해주었다고 한다.
이중에서 초창기 오픈AI라는 조직을 만들기로 주도한 사람은 일론 머스크와 샘 알트만, 그리고 일리야 수츠케버였다. 이들이 시작하던 당시만 하더라도 AI가 너무나 크게 발전해서 인간을 위협한다는 것보다는, 구글과 같은 빅테크 기업이 AI의 주도권을 모두 가져가서 지배하는 상황이 훨씬 더 인간에게 위협적인 시나리오로 보였다. 그래서 이들은 창업 초기에 구글 등의 빅테크 뿐만 아니라 어느 누구나 AI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새로운 형태의 AI 연구실을 만들자는 취지로 시작을 했고, 그랬기 때문에 이름도 오픈AI로 지었으며, 동시에 투자를 할 수는 있지만 상업적인 지배력은 약화시킬 수 있는 지배구조를 구상하게 된다. 초기에는 비영리 형태로 시작했고, 여기에 가장 많은 투자(정확히는 이 당시만 하더라도 비영리였기 때문에 기부라고 해야 할 것 같다)를 담당한 사람이 일론 머스크였다.
오픈AI의 실질적인 초기 CEO 역할을 담당한 그렉 브로크만(왼쪽)과 오픈AI 반란의 주역이었던 일리야 수츠케버. / 사진=일리야 수츠케버 엑스.
강화학습에서 시작해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내다
초창기 오픈AI가 주로 연구했던 것은 딥마인드의 알파고의 영향으로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던 강화학습이었다. 특히 강화학습을 쉽게 연구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 프레임워크 등이 부족했기에, 연구자들과 개발자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연구환경 소프트웨어인 오픈AI 짐(gym, 일종의 체육관, 연습장의 개념)을 만들어서 배포하면서 처음으로 외부에 활동이 공개가 되었다. 뒤이어 매우 유명한 온라인 게임 중 하나였던 도타 2(Dota 2, 오늘날 가장 유명한 게임 중 하나인 리그오브레전드와 유사한 게임)에서 당시 최고의 인간 게이머 팀들을 오픈AI 파이브(5대의 강화학습 에이전트가 대신 겨룸)가 크게 이기면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강화학습의 문제점 중 하나인 가치정렬(value alignment) 문제가 해소되지 않으면, 인간의 의도와는 다른 여러 가지 학습이 일어날 수 있음을 심각하게 보고, 인간이 이 과정에 개입할 수 있는 '인간 피드백을 통한 강화학습(RLHF, Reinforcement Learning from Human Feedback)' 기술을 딥마인드와 공동으로 연구해서 발표하였다. 이 RLHF 기술과 GPT 기술이 함께 챗GPT 탄생의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GPT 기술의 탄생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은 초기 공동창업자들이 아니고, 이후 엔지니어들을 초기 고용할 때 오픈AI에 합류한 알렉 래드포드(Alec Radford)였다. 알렉 래드포드는 보스턴의 명문 올린공대를 졸업하자마자 오픈AI에 주니어 엔지니어로 입사한 매우 젊은 엔지니어였다. 래드포드는 대부분의 오픈AI 연구자들이 강화학습에 주력하고 있을 때, 언어와 음악, 이미지 등의 다양한 미디어를 통한 언어의 이해, 그리고 학부 때부터 관심을 가졌던 생성형 AI 기술을 접목하는 여러 아이디어를 실험했다. 그는 구글이 발표한 트랜스포머라는 알고리듬을 창의적인 방식으로 언어를 생성하는 쪽에 중점을 두고 확장했을 때 단순히 글을 생성하는 것뿐만 아니라, 언어에 대한 이해도도 상당히 높아진다는 것을 발견하고 GPT(Generative Pre-Training)라고 이름붙이고 해당 내용에 대한 논문을 2018년 발표했다. 이때부터 오픈AI는 강화학습을 넘어서서 자연어 처리와 생성형 AI의 가능성을 눈여겨보고 이에 대한 연구에 집중했다.
오픈AI, 균열의 조짐이 보이다
2015년 창업한 이래로 기술의 개발은 꾸준히 진행이 되고 있었지만, 조직 내부에서는 조금씩 균열의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 GPT 기술을 발표했던 2018년 말, 가장 중요한 공동창업자 중 한 명이었던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가 오픈AI에서 공식적으로 손을 떼겠다고 발표했다. 이미 상당한 기부와 투자를 했던 것에 대해서는 원래 공익적인 목적으로 기부하기로 했던 것이므로 아무런 보상도 필요 없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멋지게 떠난 것처럼 포장되었지만, 내부에서의 갈등은 상당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무엇보다 샘 알트만이 와이컴비네이터에서의 일을 모두 그만두고 CEO로 일을 하면서, 스타트업으로서의 혁신성과 뛰어난 인재들이 들어오도록 해야 하고, 동시에 딥러닝 학습에 들어가는 큰 비용도 감당해야 했기에 비영리 조직으로서의 한계를 절감하고 있었던 점이 컸다. 한편 일론 머스크는 테슬라를 단지 전기자동차 기업이 아닌 소프트웨어로 움직이는 최고의 자율주행자동차 및 AI 플랫폼 기업으로 성장시키고 싶었기에 테슬라와 오픈AI를 동시에 관여하면서 끌고 나가는 데에 이해충돌과 관련한 상당한 부담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결정적인 사건은 일리야 수츠케버와 함께 가장 유명한 과학자이자 엔지니어라고 할 수 있었던 안드레이 카파치를 테슬라의 AI 책임자로 스카우트했던 것으로, 이때부터 일론 머스크는 오픈AI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유지하면서 AI의 안전성에 대해 강조하는 언급을 더욱 많이 하게 된다.
일론 머스크와 안드레이 카파치는 떠났지만 (안드레이 카파치는 챗GPT 혁명 이후 오픈AI에 다시 합류하였다), 샘 알트만은 GPT 기술을 계속 연구하면서 생성형 AI 기술이 세상을 바꾸는 데 큰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을 확신했다. 문제는 돈이었다. GPT는 모델의 크기를 크게 할수록 작은 모델일 때에는 나타나지 않던 엄청난 성능의 발전을 이루어내는데, 모델의 크기를 키우면 키울수록 이를 학습하고 서비스를 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 역시 크게 늘어나기 시작했다. 2019년 GPT-2를 개발, 발표하고 나서는 일론 머스크가 기부한 돈도 거의 떨어져가고 있었고, 앞으로 더 나은 모델을 만들기 위해 엔비디아의 장비와 운영 비용이 더 많이 필요했다. 당시만 하더라도 구글이 가장 위협적이었기에, 오픈AI는 마이크로소프트의 애저(Azure) 클라우드 서비스를 사용하고 있었는데, 클라우드 비용이 너무 많이 들어갔다. 알트만은 이 비용이라도 조금 줄여보자는 심산으로 오픈AI 공동창업자 중 한 명이었던 리드 호프만(링크드인 창업자로 링크드인은 2016년 마이크로소프트에 31조 원 정도에 매각되었다)의 주선으로 마이크로소프트의 CEO인 사티아 나델라를 만나게 된다. 이 만남에서 알트만은 사티아 나델라에게 마이크로소프트 애저를 공짜로 활용할 수 있는 크레딧(사용권) 지원을 부탁하였다. 이에 사티아 나델라는 GPT-2 정도 수준의 생성형 AI 모델을 보고도 향후 나타나게 될 챗GPT 혁명을 예견하고 크레딧을 현물로 투자하고, 현금까지 더해서 1조 원이 넘는 투자를 하면 어떻겠냐는 역제안을 하면서 큰 반전의 계기가 마련되었다.
마이크로소프트 CEO 사티아 나델라. 그는 챗GPT 혁명을 예견해 오픈AI에 큰 투자를 한다. 이로써 오픈AI는 반전의 계기를 마련했다. / 사진=마이크로소프트
비영리와 영리의 경계를 허물 수 있는가?
사티아 나델라의 제안은 샘 알트만에게 근본적인 고민거리를 안겨주었다. 비록 오픈AI를 비영리조직으로 만들어서, 1조 원이라는 기부금을 받아 운영하고 있었지만, 향후 GPT가 가져올 혁명적 변화를 주도하기 위해서는 더 큰 금액의 비용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을 선도하기 위해서는 최고의 엔지니어와 과학자들이 필요한데, 초기 비영리조직일 때처럼 최고의 대우는 아니지만 AI 민주화의 대의를 위해 와달라고 설득하기에는 많은 인재들이 결국 빅테크 기업을 선택하게 될 것이라는 딜레마가 있었다. 이에 초기 오픈AI의 설립 취지에 어긋나지 않으면서 마이크로소프트 등과 같은 기업들의 투자도 받을 수 있고, 우수한 직원들에게는 스톡옵션과 같은 인센티브도 줄 수 있는 법적인 구조를 고민했다. 그 고민의 결과로 탄생한 것이 바로 전체 조직의 거버넌스는 오픈AI 비영리조직이 맡고, 이 조직의 이사회가 가장 중요한 결정을 모두 내릴 수 있도록 하되, 직원들과 투자자들의 이익도 보장할 수 있는 영리조직을 더 만들어서 이들 간의 상호보완과 견제를 할 수 있도록 조직체계를 변경하는 것이었다. 이를 통해 오픈AI의 조직 구조는 복잡하게 구성되고 말았다.
물론 이 과정도 순탄하게만 진행되지는 않았다. 법적인 부분도 어려움이 있었지만, 무엇보다 최고의 인재들이 새 정책에 반발해서 회사를 뛰쳐나가는 일이 발생하게 되었다. 현재 오픈AI 최대의 라이벌 기업으로 급부상하고 있는 앤스로픽(Anthropic)이 이 사건을 통해 닻을 올리고 생성형 AI의 바다에 항해를 시작하였다.
앤스로픽의 공동창업자인 다리오 아모데이와 다니엘라 아모데이, 잭 클락, 톰 브라운 등은 오픈AI 최고의 인재들로 통하고 있었다. 다리오 아모데이와 톰 브라운은 오픈AI의 서비스를 위해 거대화를 하고, 현재의 기틀을 다진 가장 중요한 엔지니어들로 꼽히고 있고, 다니엘라 아모데이와 잭 클락은 각각 미디어와 정책 부분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맡고 있었다. 이들이 주로 관심을 가지고 기술을 개발했던 부분은 바로 AI의 안전과 관련한 것이었다. 다리오 아모데이는 챗GPT 탄생에 중요한 역할을 한 가치정렬과 관련한 RLHF 논문의 공저자 중 한 명으로 2019년에는 연구 담당 부사장으로 승진하고, GPT-3 기술개발도 지휘하였다.
이들은 마이크로소프트의 투자를 받기 위해 오픈AI가 조직의 체계를 바꿀 때부터 이미 오픈AI의 접근이 위험하다고 느끼고 있었고, 이후 조직이 서비스를 준비하면서 실리콘밸리의 스타트업 방식의 접근을 강조하고, 안전을 후순위로 돌리는 듯한 분위기가 지속되자 2020년 말 오픈AI를 그만두고, 2021년 2월 앤스로픽을 창업하였다. 앤스로픽은 2023년 구글에서 2조 원, 아마존에서 4조 원이 넘는 엄청난 투자를 유치하며 아마존과 구글, 세일즈포스, 줌 등의 빅테크 기업에 보다 안전한 생성형 AI 기술 모델을 제공하는 등 오픈AI 최대의 라이벌 회사로 성장하였다.
앤스로픽은 2023년 구글에서 2조 원, 아마존에서 4조 원이 넘는 엄청난 투자를 유치하며 오픈AI 최대의 라이벌 회사로 성장하였다. / 사진=셔터스톡
화려한 성공에 가려졌던 조직의 여러 고민
이처럼 오픈AI 쿠데타 사건에 대해 오픈AI의 창업과 성장과정의 역사의 흐름을 전반적으로 느끼면서 지켜보면 단순히 몇몇 이사회 멤버들의 설익은 쿠데타로 보기에는 훨씬 뿌리깊은 갈등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반란을 주도한 사외이사 3명에 대해서도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겠지만, 오픈AI라는 조직의 탄생과 발전, 그리고 성장기의 갈등에 대해 전체적인 이해를 하는 것이 그보다 훨씬 중요하다. 비록 샘 알트만의 복귀에 오픈AI 직원의 다수가 서명을 했다고는 하지만, 이미 많은 수가 샘 알트만이 마이크로소프트의 투자를 받고 스톡옵션 등의 인센티브를 줄 수 있는 형태로 조직을 만든 이후에 합류한 사람들이라는 점을 봐야 한다. 익명으로 글을 쓰고 볼 수 있는 레딧 게시판에는 오픈AI 직원이라며 샘 알트만의 독단적 행위와 개인적 이익을 위한 의사결정을 폭로하는 글들이 종종 게시된 바 있었다. 일리야 수츠케버의 입장에서 보면, 반란 이후 오픈AI 조직구성원 다수가 이 결정에 반발하자 조직의 와해를 막기 위해 백의종군을 선언하기는 했지만, 이후의 활동이나 전달하는 메시지는 뭔가 마지못해 따라가는 느낌을 주는 것이 사실이다. 그런 점에서 오픈AI 사태를 단지 돈이 최고이고,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결국 투자자를 보호하고, 혁신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갈 수밖에 없다고 간단히 결론을 내리는 것을 주저하게 만든다.
더 깊이 들어가면 반란을 주도한 오픈AI 이사회의 사외이사 3인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이들에게 큰 영향을 준 것으로 알려져 있는 효율적 이타주의자(effective altruism) 집단의 탄생과 이들에게 영감을 주었던 트랜스휴머니즘 또는 휴머니티+ 등의 철학 사조와 이에 대한 이론적 배경을 제공한 여러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까지 해야할 것이다. 이들에 대한 이야기들은 이 연재를 지속하면서 조금씩 더 이야기를 해보도록 하겠다.
중요한 것은 이런 도도한 흐름을 읽는 것이다. AI는 단순한 기술로 이야기를 하기에는 인터넷이나 모바일, 디지털 혁명과 같이 우리 사회 전체를 송두리째 바꾸어놓을 거대한 사회경제적 영향을 만들 그런 기술이다. 이런 변화는 하루 아침에 일어나지 않는다. 지난 수십 년간 수 많은 사람들의 노력과 수십 년 단위로 바뀌는 주변 환경의 다양한 변화가 매우 다양한 상호작용을 일으키면서 여기까지 오게 만든 것이다. 단기적인 맥락에서는 누가, 왜, 어떤 방식으로 변화를 이끌어 나갔는지를 아는 것이 중요하며(특정한 기업이나 산업이 향후 수년 내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에 대한 부분), 장기적인 맥락에서는 구체적인 사람이나 기업과 상관없이 결국 진행될 수밖에 없었던 흐름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구글의 AI를 가능하게 하고, 딥러닝의 아버지로 불리는 제프리 힌튼 교수는 자신이 중요한 연구를 한 것은 맞지만, 자신이 아니었더라도 10년 이내에 비슷한 일을 한 사람이 분명히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고 말한다). 단기와 장기적인 맥락에서 시대의 흐름 속에 AI의 과거와 현재를 이해할 때, AI의 미래를 제대로 직시할 수 있을 것이다.
글쓴이 정지훈은
미래학자이자 국내 최고의 IT 전문가. 의학과 사회과학, 공학을 전공했다. 현재 K2G 테크펀드의 제너럴파트너로 국내외 딥테크 분야 스타트업에 투자하고 있으며, DGIST 전기전자컴퓨터공학과 겸직교수, 모두의연구소 최고비전책임자를 맡고 있다. 《거의 모든 IT의 역사》, 《거의 모든 인터넷의 역사》, 《생성형 AI가 바꾸는 메타버스의 미래》, 《미래자동차 모빌리티 혁명》, 《내 아이가 만날 미래》 등을 집필했다. AI를 비롯하여 AR/VR, 블록체인, 로봇 기술과 같은 딥테크 기술들이 사회를 변화시키는 양상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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