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원사 철불좌상 / 불가사의한 철불
관련 문화재 : 충북 충주 대원사 철불좌상(보물 제512호)
충북 충주에 소재하고 있는 대원사에 봉안되어 있는 철불좌상은
원래 충주시 성남동 마하사 앞뜰에 있었다.
1770년(영조 46) 무렵에 지은 〈약전원수기〉를 보면,
633년에 절을 창건한 후 높이 3척 2촌 5푼의 철조석가좌상을 조성하여,
염해평 서쪽, 곧 충주공고와 성남초등학교 부지 일대로서
충주 시내의 중심부에서 마즈막재로 향하는 안림로의 오른쪽 길가에,
서쪽을 향하게 봉안하고 그 뒤로 수 백 년을 내려왔다고 한다.
전해오는 말에 의하면, 그간 불상이 노천에 방치된 것을 유감으로 생각하여
누군가가 건물을 짓고 봉안하면 당우가 소실되거나,
또는 향화(香火)로 공축하면 반드시 악병이 유행하므로
이 철불의 명칭을 광불(狂佛)이라고 불렀다 한다.
그래서 본래는 완전했던 두 손을 무뢰배가 부숴 버렸다고 한다.
그러다가 1922년에 옛 중원군청, 곧 지금의 관아공원 구내의 석가산으로 옮겼고,
다시 1937년 마하사로 옮겼다가 1959년에 지금의 대원사로 다시 옮겨져 봉안되었다.
이같은 내용은 1959년 중원군 교육청에서 발간한 《예성춘추》에 실려있다.
위에서 나온 지명인 염해평은 ‘염밭’ 또는 ‘염바다’라고도 한다.
그 지명에 관련해서는 다음과 같은 내용을 담은 기록이
《예성춘추》와 《중원향토기》(1977년)에 나와 있어 소개해본다.
예로부터 현 성남동 마하사 앞뜰에 철불이 서향해서 앉아 있었으므로
지금까지 이곳을 ‘광불거리’라고 한다.
곧 계족산(鷄足山) 아래의 어림리 앞과 금봉산(남산) 서쪽의 넓은 들을 말한다.
전설에 의하면 삼한시대부터 어림리에 고도(古都)가 있었다고 한다.
통일신라 때인 930년(경순왕 4)에 견훤(甄萱)은
이 곳에 후백제의 도읍을 정하려 했는데,
지렁이의 후신인 견훤은 이 일대가 염바다라 하므로 질겁을 하고
전라남도 광주 지역에 도읍을 정하게 되었다고 한다.
위와 같은 기록 또는 전해 오는 전설을 근거로 해서 본다면,
염해평은 지금의 충주공고 북쪽의 들판이다.
이 곳에 철불이 오랫동안 방치되어 있었으므로 광불거리로 불렀다.
염해평에서 동쪽으로 약 700m 떨어진 곳에 대원고등학교가 위치해 있으며,
위의 인용문에서 나온 어림리는 대원고와 약 200여m 떨어져 있다.
어림리는 이궁지(離宮址)·대궐터 등으로 부르기도 하는데,
이 곳에 절이 있었다 하여 어림동사지로 칭하기도 한다.
[출처] (부처님 찾아 떠나는 여행) | 작성자 성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