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대엔 모임의 종류가 많다. 취미 따라 모여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가 하면, 또는 남을 위해 봉사하려는 모임도 있고, 여러 가지의 배움을 위한 모임도 있다. 정치가도 예술가도 다 들 끼리끼리 모여서 일들을 치른다.
나는 짚신문학회 모임에 끼인 덕으로 총회겸 시낭송회를 위한 춘천으로의 나들이 길에 올랐다. 세종문화회관 옆에서 기다리던 대형버스는 회원들이 모두 탄 것을 확인하고는 오늘하루의 평안과 알찬 여행을 위한 기도를 하며 출발시동이 걸렸다. 버스 안에서 받아든 김유정 문학촌의 안내서를 보면서 오늘의 큰 관심인 작가 김유정을 생각했다 부유했던 집안의 몰락과, 이루지 못한 짝사랑의 아픔을 두 번씩이나 겪었던 여린 모습의 김유정을 생각하며. 그 자신이 그런 아픔과 고통의 삶을 살았기에, 작품 속 인물과 조우하며 따뜻한 풍자가 있고 슬픈 미소가 들어있는 살아있는 글을 쓴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실레마을은 김유정의 탯줄이 묻힌 고향이다, 그가 쓴 단편소설 30편 가운데 12편의 소설이 태어난 고향이라고 한다. 그의 소설 동백꽃에 나오는 노란 동백꽃의 향기를 오늘 맡지 못함이 너무도 아쉬워 진다.여기 나오는 동백꽃은, 생강나무라고도 하고 산동백 이라고도 부른다, 빨간 동백과는 색깔과 모양이 전혀 다르다, 노란동백꽃 내음을 처음 맡았을 때 나는 그 향기에 반해버렸는데 오늘 그의 고향에서 만난다면 얼마나 좋을까... 김유정, 그는 가고, 그의 유품도 사라지고, 두고 간 산천만이 그의 글을 따라 ‘김유정 문학촌’을 이루고있다.
드라마 겨울연가에 나왔던 준상이네 집에 들렀다, 춘천지방의 관광명소가 되어 많은 사람이 찾아오는데, 특히 일본 여성들이 문전성시를 이룬다. 이는 한국의 남성 준상이의 따스한 미소와 푸근함에 흠뻑 젖어보고 싶은 일념으로 불원천리 달려오는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오늘로 어느새 18회를 맞은 우리 짚신문학회 시낭송회는 무언가 좀 다른 면이 있다.
개회선언에 이어 기도로 시작하며 국민의례에서는 애국가 4절을 다 부른다. 1절 가사에는 동해물과 백두산을 만드신 하나님의 보호를 바램이 있고, 성삼문의 독야청정 시와 정몽주의 일편단심 정신이 알알이 깃들어 있으니, 4절까지의 가사가 다 소중하기 때문이다.
춘천에 찾아온 우리를 환영하는 뜻으로 김유정 문학촌장님과 춘천교육대 교수님의 축사에 이어, 듬직한 체구의 성악가의 축가는 그의 가슴에서 흘러나와, 아직 열리지 않은 우리의 가슴속으로 젖어 들어 시낭송 시작부터 온통 감성의 물결로 출렁이게 만들었다, 조용히 흐르는 배경음악 위로, 자작시 ‘혼자 얘기하는 여자’의 낭송이 시작되었다, 다소곳이 앉은 가냘픈 여인은 그의 시처럼 참 아름다웠다. 이런 형식의 시를 나는 좋아한다. 이어서 ‘청솔바위’시가 흐른다, 작자의 외모만큼이나 신선하고 강한 힘이 들어 있는 ‘오봉산 능선에 우뚝 선 청솔바위’로 시작되는 시의 음률 따라 내 마음속의 약해빠진 기초가 단단히 다져지고 있었다. 자작시 ‘파란하늘에 들게 하소서’를 낭송하는 시인은 화가이기도하다. 맑고 파란하늘에 한 폭의 아름다운 시를 그려서 보여주었다.
한 시인이‘새벽기도’를 낭송한다, 그의 시가 내 시처럼 그의 눈물이 내 눈물처럼, 그의 통곡이, 감사가, 그의 사랑이 나의 시가 되어왔다. 그리고 언제봐도 사랑스런 여인은, 수수한 웃음을 머금고 날을 듯한 깃털 단 모자를 쓴 멋진 모습으로 ‘하얀 아침이 좋다’를 하얗게 노래하였다. 또 혈관질환으로 쓰러졌다 일어선 한 시인은‘삼손의 눈물’을 힘 있게 외쳤다, 저 시인도 나처럼 다시 얻은 삶에서 마지막 남아있는 소중한 힘을 다 쏟아 쓰려는 그 시어는, 지금 나의 마음이다. 우리 모임의 명사회자이며 오늘도 사회를 보시는 분이 ‘깨끗한 새 종이’를 낭송하신다. 볼 때마다 느끼던 새 종이 같은 인품은 날마다 새 종이에 정성껏 써 내린 흔적일 텐데, 그래도 부족하다며 더 큰손에 맡기려는 겸허함이 깨끗한 새 종이처럼 느끼게 하는가보다.
피아니스트는 계속해서 잔잔히 배경 음악을 연주하는데, 평소 좋아하는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가 흐르고 있다. 오, 저음악과 지금 이 시의 향연! 너무나 벅찬 감동에 옆의 사람에게 나직이 말을 건 냈다, 참 좋지요? 그런데 그는 나보다 더 좋아하는 모습이다. 박수하고 싶어서 가슴위로 두 손을 짝 펴서 대기해 놓은 채, 제일먼저 웃으려고 입안가득 웃음을 담고 있다. 이런 모습이 그의 이름처럼, 세상 사람에게 두루두루 퍼져 모두가 이런 마음으로 살아간다면 참 좋겠다. ‘어머님의 틀니’를 낭송할 때 누구나 가지고 있는 어머니와의 사랑의 끈으로 인해 작가도 청중도 눈시울이 젖어왔다. 풍물꾼들의 앞장에 서서 돌아가는 ‘모가비’를 시로 엮은 낭송에 이어, “몹사리 만나고픈 그대여! ‘파로호 연가’를 낭송하는 시인의 목소리는 귀에 띄게 멋이 있다. 우리의 회장님은 ‘기도’ 시에서 ‘참 좋은 사람들만 오롯이 모여 살게, 참 마음 바른 사람들만 수북이 함께 살도록...’ 계속 이어지는 시어는 평소에 들려주시던 자신의 삶의 목표인 ‘참삶 뼈삶 빛삶’을 실천으로 보여주는 몸으로 쓴 시를 읊으셨다.
우리를 초청한 춘천에 사시는 목사님의 시 ‘결단’은 아직도 넘어지고 일어서고의 반복을 계속하는 나를, 일어서게 하는 청량제로 다가왔다. 거의가 자작시를 낭송하며, 간혹 애송시가 낭송되는 장내는 시의 물결에 심신을 푹 담근 채, 씻겨지고 치료되고 새로워지는 기운으로 가득하다. 여기에 맞춰 바이올린과 플롯을 연주하는 부부의 모습이 한 폭의 그림처럼 다가왔다, 두 다른 악기에서 나오는 음이 어쩌면 이렇게 잘 어울릴까...부부라서 더 아름다운 화음이 나오는 것일까, 그동안 부단히 노력하여 이루어낸 화음이리라. 이렇게 다른 악기가 만나듯, 세상은 남남이 만나 어우러져 살아간다. 혼자는 못산다, 재미가 없다, 멋대가리 없을게 뻔하다. 여기 이 자리만 해도 시와 음악과 조명과 실내장식이 어우러져 감동과 멋과 신명이 일어나고 있지 않은가, 이렇게 모이니 얼마나 좋은가!
그러나, 모이면 안 되는 모임이 많으니 참으로 애석하다. 그런 모임에 대해서는 지금 말하고 싶지 않다. 오늘의 우리모임처럼 모이면 사람들이 아름다워지는 곳, 각기 다른 악기를 들고 나와도 고운 선율이 흐르는 곳, 창조와 비전이 있는 모임, 하나의 물방울이 모여서 맑은 샘을 이루고 담을 넘어, 마을을 지나 강이 되고, 바다를 채워가는 모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