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전 서울대 교수가 오는 4월 보궐선거에서 서울 노원병에 출마하기로 했습니다. 대선 이후 미국에 머물며 간간히 자신의 근황을 전하던 안철수 전 교수는 사실 이번 보궐 선거에 출마하지 않을 것으로 점쳐졌습니다. 필자 역시 이번 보궐선서에는 그가 출마하지 않을 것으로 판단했습니다. 일단 미국에 머무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이번 보궐 선거를 치르기에는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고, 또 하나는 그동안 안철수 전 교수가 보여왔던 불확실한 행보의 연장선상에서 이번 보궐선거를 바라보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출마하지 않을 것이라던 세간의 예상을 깨고 안철수 전 교수는 출마를 선언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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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원병 출마를 선언한 안철수, 그의 선택은 옳은 것일까? 출처 : 오마이뉴스>
필자는 안철수 전 교수가 오랜 장고를 끝내고 정치일선에 복귀하는 것을 타박할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국민들이 안철수 전 교수를 대한민국의 정치판으로 불러들인 본질적인 이유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에, 낡은 정치를 개혁하고 혁신하기 위한 안철수 전 교수의 위치와 역할이 반드시 필요한 시기가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오랜 칩거를 끝내고 정치재개를 선언한 안철수 전 교수가 선택한 곳이 다름아닌 노원병 지역이라는 데에는 동의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왜 하필 노원병인가? 왜 다른 곳이 아닌 노원병이란 말인가?'라고 안철수 전 교수에게 묻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말씀드린 것처럼 안철수 전 교수를 대한민국의 정치로 이끈 것은 국민들이었습니다. 이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거대한 흐름이었습니다. 국민들은 기성정치집단과 정치인들에게서 도무지 희망을 찾을 수 없었고, 정치에 대한 새로운 희망을 그를 통해 발견하고자 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작년 온 나라를 관통하며 대선정국을 폭풍처럼 몰아쳤던 '안철수 현상'의 본질이었습니다. 그렇게 안철수 전 교수는 화려하게 대한민국 정치의 중심으로 부상했고, 대선과정을 통해 많은 국민들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그는 정치개혁과 정권교체라는 두가지 시대적 화두를 해결할 수 있는 '백마타는 초인'이었으며 '구세주'와도 같은 존재였습니다. 필자 역시 안철수 전 교수에 대해서 상당한 기대와 희망을 걸었던 사람 중의 하나입니다. 최대한 안철수 전 교수의 입장을 변호하는 글을 써왔으며, 단일화의 과정이 지지부진해지며 이에 대한 비판이 빗발쳤을 당시에도 참고 기다리며 그의 진의를 헤아리려 공을 들였습니다.
그러나 안철수 전 교수에 대한 기대와 희망이 조금씩 무너져 간 것은 그가 시간이 지날수록 기성정치인들의 모습을 나타냈기 때문이었습니다. 정치개혁을 외치지만 그가 구상하는 정치개혁의 밑그림이 구체적이지 않았습니다. 정작 민주당의 구태와 계파문제를 비판하면서도 대한민국 정치를 망쳐놓은 장본인들인 새누리당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습니다. '정치쇄신'과 '국민의 뜻'을 거듭 주창했지만 그 어떤 것도 현실속에서 그 실체를 보이지는 못했습니다. 오히려 모호한 말과 의뭉스러운 태도로 혼란과 혼선을 자초하기 일쑤였습니다. '신기루 정치', '불확실성의 정치'를 보여주었고 이는 그가 비판하던 기성정치인들의 모습에 늘 등장하던 익숙한 모습이기도 했습니다. 정치신인이었지만 그의 모습은 정치9단을 떠올리게 충분할만큼 대단히 정치적이었습니다.
이번 보궐선거 역시 그는 돌아가는 정치판세를 미국에서 면밀히 재단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민주당이 대선패배의 후유증으로 자중지란을 일삼고 있는 사이 자신의 존재감을 부각시키기 위한 적절한 타이밍라고 생각했을 것이고, 이를 통해 화려하게 정치일선으로 복귀할 수 있다고 판단했을 것입니다. 정확합니다. 맞습니다. 지금이 바로 그 타이밍입니다. 새누리당의 일방적인 독주와 무능하고 무기력한 민주당, 싹이 잘려나간 진보세력 사이에서 대선패배의 후유증에 출구없이 넋놓고 있던 다수 국민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안겨줄 수 있는 적절한 시기입니다. 안철수 전 교수의 존재와 역할이 필요한 기가막힌 타이밍인 것입니다.
그런데 정치복귀의 타이밍은 좋았지만 그 선택지가 틀렸습니다. 그는 노원병이 아니라 부산 영도로 가야만 했습니다. 부산 영도에서 새누리당의 정치거물이자 한때 박근혜 대통령의 좌장이었으며, 지난 대선 총괄선대본부장으로 활약했던 김무성 전 의원과 겨루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가 출마하는 곳이 다름 아닌 노원병 지역입니다. 노원병 지역이 어디입니까? 바로 노회찬 전 의원이 '삼성X파일 공개'에 대한 사법부의 어이없는 판단으로 의원직을 상실한 곳입니다. 그것도 불과 2주 전에 말입니다.
알다시피 노원병은 진보정의당 노회찬 전 의원의 지역구였습니다. 지난해 4월 총선에서 노회찬 후보는 통합진보당의 후보로 출마해 57%의 득표율로 당선이 되었습니다. 18대 총선에서도 노회찬 후보는 비록 낙선하기는 했지만 40%이상의 득표율을 기록하며 지역주민들의 탄탄한 지지를 확인한 바 있습니다. 그만큼 이 지역에 대한 노회찬 전 의원의 애착과 지역주민들의 노회찬 전 의원에 대한 지지가 교차하는 곳이 바로 노원병 지역인 것입니다. 진보정의당 당 차원에서도 큰 공을 들이고 있는 곳이기도 하며, 이번 보궐선거에서도 당의 후보로 노동운동가 출신이며 노회찬 전 의원의 부인인 김지선씨의 출마가 유력시 되던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런 지역구에 안철수 전 교수가 진보정의당 및 노회찬 전 의원과 아무런 사전 교감도 없이 덜컥 출마 선언을 한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노회찬 전 의원에게 전화로 예의를 갖추었다고 송호창 의원은 전하고 있으나, 진보정의당의 이야기는 전혀 다릅니다. 의원직 상실에 대한 위로의 말만 오갔을 뿐, 출마와 관련된 어떠한 이야기도 두 사람 사이에는 없었다고 진보정의당 이정미 대변인은 밝혔습니다. 과연 안철수 전 교수의 이와 같은 출마 결정과정이 정치 도의에 맞는 일인지 필자는 의문입니다.
지난 대선 안철수 전 교수와 민주당 문재인 후보의 지리한 야권후보단일화의 과정을 애타는 마음으로 지켜봐왔던 필자는 대선의 패배원인에 대한 여러 원인들 가운데 후보단일화가 너무 늦게 이루어졌다는 점이 결정적이었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단일화를 이뤄나가는 과정에서 양측이 보여주었던 모습은 기성정치의 구태를 그대로 답습하는 것이었고, 이로 인해 단일화의 감동과 시너지 효과가 크게 작동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번 보궐선거 출마 역시 이와 비슷합니다. 출마선언의 과정이 전혀 아름답지 못합니다. 출마의 시기는 아주 적절하나, 그 과정과 출마지역이 매끄럽지 못한 것입니다. 이런 상황이라면 안철수 전 교수가 노원병 보궐선거에서 승리한다 하더라도 아름답지 못한 승리가 될 수 밖에는 없습니다. 만에 하나 낙선하기라도 한다면 정치적으로 치명적 타격을 입게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합니다. 따라서 안철수 전 교수는 노원병이 아닌 부산 영도로 가야만 했습니다. 그 곳에서 당당하게 살아돌아와 화려하게 자신이 가고자하는, 자신이 이루고자 하는 정치개혁의 그림들을 국민들에게 떳떳하게 제시해야만 했습니다. 만에 하나 낙선한다고 하더라도 그에게는 아름다운 패배가 될 것이요, 어찌보면 정치인생에서 가장 중요할 수 있는 정치적 명분이 남게 됩니다. 과거 노무현 전 대통령이 미련하게 부산 출마를 고집해 세번이나 낙선했지만, 결국 그 진심이 통하게 되었던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안철수 전 교수는 안전한 길을 택했습니다. 그리고 그 안전한 길도 정치 도의상 올바르지도 않는 길입니다. 명분도 미약하고, 정치개혁과 혁신을 주창했던 정치인 안철수의 이미지와도 전혀 어울리지 않는 선택이 되고 말았습니다. 바로 이것이 필자가 그의 선택을 장고 끝에 악수라고 평하는 이유입니다.
기성정치에 신물이 난 국민들이 지난 대선에 안철수 전 교수를 호출했습니다. 잘못된 정치관행을 바로 잡아달라고, 국민에게 희망을 주는 정치를 해달라고 그에게 S.O.S를 친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호출된 안철수 전 교수가 보여준 모습들은 신선하지 못했습니다. 그 자신이 낡은 정치 안에 함몰돼어 버린 듯한 느낌마저 듭니다. 정치혁신과 개혁을 위해 국민들이 불러낸 안철수 전 교수가 기성정치권의 모습을 보이는 순간 그의 존재의미는 사라지고 맙니다. 안철수 전 교수는 이 점을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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