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여행 인터넷 언론 ・ 1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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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두이 문화국장(연극배우)
한반도만 남과 북이 갈려있는 땅이 아니다. 아프리카 수단 역시 ‘수단 공화국’과 ‘남 수단’으로 나뉘어져, 지금도 예기치 못하는 포화 속, 외세의 영향 아래 내전은 지속되고 있는 비극의 땅이다.
SUDAN은 아랍어 ‘흑인의 땅’에서 유래한다.
수단은 1956년 1월 1일을 기해, 영국과 이집트로부터 독립을 인정받아, ‘수단 공화국’으로 그리고 2011년엔 ‘남 수단’이 또한 분리 독립을 선언했다.
늘 그렇지만 국민을 아랑곳 하지 않는 정치인들의 부패, 착오와 무능한 오판으로 인해 나라는 둘로 (兩分)됐다.
하지만 수단인들은 나라와 민족에 대한 혈통과 자부심과 긍지를 최고의 혈맥(血脈)으로 이어가고 있다.
필자는 수단을 1999년 이집트를 통해 들어갔다.
수도 카르툼(Khartoum)의 고요한 적막은 수단 사람들의 평안한 얼굴처럼 첫 인상으로 날 맞았다. 누가 현재 내전으로 살벌한 살육의 현장이 될 것이라 예측했을까?
사진: 수단 뮤지엄 직원과 함께
당시 필자를 안내하던 ‘알리 파샤’가 말한다. “기원 전 2천 5백 년 전에 케르마 왕국으로 시작한 저희 역사가 현재는 최악의 상황이에요. 나를 비롯해, 대다수 수단 사람들이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해서 이런 국면을 맞이한 셈이죠. 국민 교육이 제대로 됐으면, 지금 같은 정치인들의 부패와 무능의 소치(召致)는 막을 수 있었겠죠.” 문득 수단 ‘톤즈’에서 학교와 병원을 세우고 문맹을 치료했던 이태석 신부님이 떠올랐다.
“근데 코리아는 왜 남과 북으로 나뉘어져 있나요?”
필자는 잠시 말문이 막혔다. 수치심(?).....?
수단은 지리적으로 남서쪽으론 중앙아프리카공화국, 북동쪽으론 에리트레아, 남동쪽으론 에티오피아, 북서쪽으론 리비아, 동쪽으론 홍해와 접견한 나라로 인구는 4,600만 명 정도. 아프리카에서 세 번째로 큰 영토를 가진, 큰 나라다.
인접한 이집트와 많은 영향과 관계 속에 16세기, 17세기에 이슬람교가 본격적으로 유입됐고, 이후 1차 수단 내전(1955-1972), 2차 수단 내전(1983-2005), 이어서 터진 남수단 내전(2013-2020). 그리고 현재 수단 내전이 진행형이다.
인구대비 97%가 수니파 이슬람교도로 주를 이루고 있다. 작년 세계식량계획(WFP) 발표에 의하면 580만 명 이상이 실향민이고, 150만 명 이상이 난민으로 국외로 탈출했으며, 2024년 4월 현재 860만 명 이상이 집에서 쫓겨났고, 500만 명 이상이 비상 상황에 처해 있으며, 인구의 95% 이상이 하루 한 끼 식사를 할 여력이 없다는 비참한 보고서가 발표되기도 했다.
“예술은 빵 없이도 영혼의 울림으로, 굶주림에 상관없이 진행되고 있는 것이죠.” 카르툼 뮤지엄 앞에서 ‘알리 파샤’는 글썽이는 눈으로 필자에게 하소연 한다.
역사는 그냥 생기는 것이 아니다. 그 속엔 피와 땀과 눈물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법. 수단의 시각예술은 역시 수 천 년의 역사를 가지고 이어져왔다. 토착 아프리카 전통과 파라오, 그리스, 로마, 비잔틴 및 아랍 문화 등 지난(至難)한 역사에 걸쳐 다양한 문화적 배경으로 나름 독특한 문화적 표현을 지니고 내려온 것이다. 사실 필자는 이들의 아트를 보면서, 다시 한 번 문화예술은 결코 GDP로 평가할 수 없는 영역임을 새삼 절실히 절감(切感)했다.
사진: 수단 아트1
사진: 수단 아트2
사진: 수단 아트3
1956년 독립 이후, 의식 있는 아티스트들이 수단 현대예술의 새로운 기치(旗幟)를 내 걸기 시작했고, 소위 ‘수단 현대 미술운동’을 통해 순수회화에서부터 벽화, 그래피티, 만화, 사진, 비디오 아트 등 전방위적 활약으로 1980년대까지 이어갔다.
선사시대 ‘누비아 문명’의 석기는 물론, 6,000년 전에 새겨진 야생동물, 도자기, 무기, 가축, 사람을 그린 암각화와 각종의 금, 상아, 가죽으로 만든 생활 공예품, 건축 그리고 이들 피라밋의 흔적은 타 아프리카 나라 민족과는 또 다른 문화예술의 차별성(差別性)을 갖게 만든다.
사진: 수단 아트4
사진: 수단 아트5
사진: 수단 아트6
19세기와 20세기에 들어서, 영국인들이 카르툼에 미술교육 기관을 설립, 본격적인 수단 현대미술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며 서양화, 조각 작품 등의 뿌리를 내리기 시작한다. 그 가운데 1950년대 수단 아티스트들이 영국으로 건너가 미술 교육 대학원을 마치고 돌아온 이후, 수단 아트는 아프리카에서 막강한 비주얼 아트의 영역을 구축한다. 당연히 수단 전통과 아랍-아프리카 그리고 서구에서 받아들인 추상예술이 혼용(混用)된 경향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사진: 수단 아트7
사진: 수단 아트8
사진: 수단 아트9
마침내 수단 비주얼아트를 서구에 소개하며 성공을 거둔 아티스트들.... Mo Abaro, Rashid Diab, Kamala Iblahim Ishaq, Abdel Basit El Khatim, Severino Matti, Hassan Musa, Amir Nour, Ibrahim El-Salahi, Osman Waquialla......
‘카르툼 대학교 예술학부’를 통한 수단 아티스트들의 다양한 활동은 내전 속에서도 지속되고 있으며, 우리 미술계보다 훨씬 많은 기회로 런던의 ‘테이트 모던 아트 뮤지엄’, ‘사치 갤러리’, 파리의 'Monde Arabe', 독일의 ‘Schirm 미술관’ 등을 통해 활발한 활동을 펼쳐가고 있는 것이다.
사진: 수단 아트10
사진: 수단 아트11
사진: 수단 아트12
2009년 수단 현대미술에 대한 한 기사에서 ‘전시 공간의 부족과 후원 결핍으로 수단의 예술계가 심각한 어려움에 봉착해 있다’라고 언급됐지만, 내전을 피해 카이로, 아디스 아베바, 나이로비 등 외국 땅으로 망명한 많은 수단 예술가들은 끊임없이 수단 아트를 옹호하고 지켜내며, 피 터지는 노력 끝에 좋은 작품으로 세계인의 눈을 놀라게 하고 있는 것이다.
사진: 수단 아트13
사진: 수단 아트14
2주 넘게 수단에 머물며, 필자는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인내로 이어가는 이들의 작업에 깊은 감명을 뒤로 한 채, 이집트 공항을 통해 귀국했다.
누가 ‘예술’이란 특권을 인간에게 주었던가?
누가 배고픔에도 굽히지 않는 예술표현의 힘을 주었는가?
여타 동물이 할 수 없는 인간 고유의 영역은 역쉬 ‘아트’다.
사진: 수단 아트15
사진: 수단에 남아있는 고대 누비아 피라미드
“인간 세상에 예술이 없으면 얼마나 삭막할 것인가?<죤 D. 록펠러의 어록 중에서>
<미술여행>을 통해 필자가 접한 수단 아트를 함께 나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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