씬 158. 민박집.
정말 눅눅한 방…….
소희, 편지를 쓴다.
소희: (E) 항상 나는 후회만 하는 사람인가 봅니다. 항상 나는 한 발씩 늦는 가 봅니다. 이렇게 늦은 날……. 용서할 수 있나요?
씬 159. 우체통 앞.
소희, 우체통 앞으로 걸어온다.
편지봉투…….
'화성으로 간 사람에게'라고 씌여 있다.
소희, 편지를 우체통 안에 넣는다.
소희: (E) 뒤늦게 돌아온 나의 화성에는……. 당신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군요. 하지만, 당신을 잃었다고 생각하지 않겠습니다. 당신이 가장 사랑한 '나'를 내가 끝까지 지킬 거니까…….
앞으로 긴 시간동안 얼마나 많은 시련이 내게 올 지 모릅니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건……. 당신의 사랑을 알게 된 지금이, 나에게는 가장 행복한 순간이라는 것입니다.
당신의 영원한 소희가…….
강가를 걸어가는 소희…….
카메라, 소희의 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F. O.
끝
서로 노려보는 눈…….
카세트에서 학생부장 CRANE UP E. S
학생주임: 야 임마 넌 전학 온 첫날부터 지각이냐, 요즘 자식들은 정신 상태가 빠져가지고 ……. 아 자식이, 선생님 말하는데 어디보고 있어?
민, 측면
(학생주임): 내 눈 똑바로 봐
민, 학주 측면 모습.
학생주임: 우리 학교에서 학내 폭력으로 걸리면 내손에 죽어, 알았어? 알았으면 대답
민, 측면
(학생주임): 해 임마
민: 네
학주 측면
학생주임: 뺀 질하게 생겨가지고. 어이, 김 선생. 벌서는 환규 뒤로 민,
학주 학생부장: 새로 전학 온 녀석이에요 가봐
담임: 이리와라
민 너머로 담임과 환규
담임: 반갑다
담임에게 다가오는 민
(담임): 네가 이민이니?
고개 드는 환규
(담임): 내가 니 담임이야
환규보고 웃는 민
(담임): 잘해보자
열 받는 환규
민 내레이션: 전학 와서 처음만난 친구가 환규였다.
S#6 학교 옥상
둘러선 아이들
민의 발차기 쓰러지는 학생
환규 TRACK IN
민 TRACK IN
민 내레이션: 환규는 국민학교 5학년 때부터 본드를 했다는걸 늘 자랑삼아 떠들어대는 그런 녀석이었다. 허풍이 좀 심하기는 했지만. 정이 많고 착한 놈이었다.
환규, 옆 사람 밀어냄
민 앞으로 지나가는 학생
민을 째려보는 학생
달려드는 학생
주먹 날리는 학생
피하며 한 대 치는 민
연타 날리는 민. 쓰러지는 학생
민, 다리 사이의 환규
환규 얼굴 3/4 앞으로 나오고
민 앞머리 훅 분다.
민 너머로 환규의 모습
환규: 어디서 좀 놀았니. 이 씨발 놈아. 너 내가 누군지 알아 이 씨발 놈아 넌 오늘 되졌어.
환규 뒷머리. 민 얼굴
민 어깨너머로 환규, 갑자기 주먹 날린다.
때리려다 민한테 맞는 환규
쓰러지는 환규
다가서는 민
민: 됐지?
환규: 좆까, 이 씨방 새가 봐 줬더니
민 얼굴
(환규): 넌 오늘 하이 까면 죽어
일어서는 환규의 얼굴
덤비는 환규 뒤돌아 때리는 민
환규: 안 서, 이 씨
환규 뒷모습 때리는 민
S#7 락카페
MONTAGE
다리 우---좌
배꼽티 여자 아래---위
여자 뒷모습. 위―아래--위
춤추는 사람들. 빨간 모자
(가면)
여자가슴, 양각
춤추는 사람들. 노란 반팔
치마, 나시. 멀티비젼
석고상, 빨간 모자 우―좌
들어오는 환규, 민
계단 올라오는 웨이터
로미 "축하해" 박수
애선: 고마워 / 빨리 꺼
폭죽, 로미 뒤로 지나가는 민, 환규
선물 주는 로미
로미: 내 것은 삐삐야
로미 O. S. 애선.
애선: 오늘 아침에 엄마한테 호출기 선물 받았는데
로미: 다른 거 뭐 사줄까.
애선: 음- 보이프랜드. 브래드 피트같이 생긴
인경: 안 돼! 연애하면 대학 못가.
까르르 웃는 로미와 친구들
화장실( 앞 신의 음악이 작게 들림)
화장실로 다가가는 민.
민: 조환규, 조환규 너 뭐해.
화장실에 앉아있는 환규.
민: 야, 너 뭐해. 빨리 나와봐, 빨리
나오는 환규
환규: (중얼거림) 씨발 여기도 못 즐기게.
반창고 띄는 환규
환규: 너 운 좋은 줄 알어 작년에 17대 1로 다구리 붙다가 허리를 좀 삐긋했지. 그거 아니였으면 넌 뒈졌어. 이 씹새끼야.
거울에서 프레임 아웃되는 민, 환규
환규: 한 번 더 뜰까? 농담이야 새꺄 우리 지갑들한테 한 번 가볼까
락카페
<음악 바뀜: 슈퍼글로브(CAN'T GET IT ENOUGH>
환규. 담배물고 손짓.
박수, 환호하는 여자들
안경 쓴 노예
구역질하는 여자
쇠사슬 당기는 환규
팔 들어 올려주는 여자
환규 B.S. 손가락 다섯 개
웃으며 손 내젓는 여자
담배물고 손 뻗는 환규
담배 불 붙이는 민.
노예 끌고 가는 여자
돌아보는 로미
환규 걸고 분홍색 여자
선글라스 노예
입 벌리는 여자들
선글라스 벗는 노예
돈 세는 환규
손짓하는 환규
여자들 앞으로 와이프 되는 노예
인사하며 일어나는 검정노예
엄지손가락 여자
가격표시하는 여자들
쇠사슬 한 바퀴 돌림
다투는 여자
노예 입 벌리는 환규
입 벌린 노예
웃는 민
손가락 질 하는 분홍여자
만원, 주먹 내미는 환규
오만 원 여자와 양손 드는 여자
오만 원 낙찰. 노예, 환규 2인 바스트 샷.
일어섰다 앉는 여자. 환규, 민에게 눈짓.
자신을 가리키는 민.
손가락질 하는 환규
안 나가려고 환규에게 '죽어'하는 손짓을 보내는 민
고개 돌리는 민
환규 M. S.
환규. 손동작 준비
환규: 오늘의 하이라이트 …….
환규: 이 민
담배 끄고 일어서는 민
여자들 앞으로 와이프 되는 민
걸어 나오는 민
걸어 나오는 민. 바스트 샷.
고개 드는 민
환호하는 여자들
손가락질 하는 모자 쓴 여자
돌아보는 로미
환규의 머리를 치는 민
민 뒤로 입 막는 여자
일어서는 파란색 여지. 손가락 여섯
쑥스런 민
환규 뒤로 손가락 펼치는 여자.
양쪽으로 손가락 흥정하는 환규
민 뒤로 싸우는 여자
환규 뒤로 싸우는 여자
웃으며 고개 돌리는 민
오만 원 여자
[오리지널 사운드: "만 삼천 원" /다른 쇼트의 "오만 원"으로 대체]
오만 원 박수치는 환규
일어서는 여자
손바닥 맞추는 환규와 여자
옷잡는 여자들
로미, 수표를 흔들면서 가격을 부른다.
로미: 십만 원
돌아보는 여자들
로미 뒤로 민과 환규의 반응
놀라는 환규
환규: 십만 원?
민 반응
(환규): 십만 원! (앞쇼트 대사 넘어옴)
여자들 반응
여자아이: 야! 니들 판 테이블에 넘기는 게 어딨어!
환규: 억울하면 더 배팅 ……. 하던지
불평하는 여자들.
여자들: 말두 안 돼
환규: 셋 세겠습니다. 하나, 둘, 셋.
로미에게 달려오는 환규
돈 낚아채는 환규
환규: 축하 합니다. 어서 가져가세요. 야, 너 팔렸어 빨리 와
민 반응
민에게 손가락질하는 로미
웃는 민
춤추는 아이들 <음악 바뀜: PRINCE의 댄스곡>
춤추는 로미, 민
로미: 너 몇 등급이야?
로미 어깨 걸고 민
민: 뭐라고?
로미: 몇 등급이냐구? 내신 말이야
로미 귀에 입 대는 민
로미: 그래 가지고 대학 갈 수 있겠어?
민: 넌 공부 잘하니?
로미: 일등급, 일학년 때부터 주욱 …….
춤추는 환규. 크레인 업. 로미, 민 2인 풀샷
민, 로미 2인 측면 샷.
민: 난 비틀즈를 좋아해 그냥 좋아
로미: 솔직히 너 맘에 들어, 하지만 명심해 넌 내 노예야.
웃는 민
삐삐 꺼내는 로미
삐삐 내미는 로미
로미: 아무 한테도 번호 가르쳐 주지 마
받는 민
로미
로미: 내가 곤하면 언제든 달려와 알았지
끄덕이는 민.
일어나는 로미
로미: 학원갈 시간이다 안녕
S#8 민의 집
앉아있는 민 BS
창문 여는 민
담배 무는 민
민, 연기 뿜으며 밑으로 시선을 준다.
굳은 얼굴 민.
포옹하는 어머니와 백사장
문 닫고 들어가는 민
민 뒤로 옷 벗는 엄마
엄마: 이 어미는 너하나 대학 보내려고 발바닥이 부르튿록 보험 팔러 다니는데
볼펜으로 노트를 찢는 민.
(엄마) 너 니 애비처럼 되는 안 돼
삐삐
로미음성: 나야 로미
S#9 야구장
로미음성: 내일 잠실구장에서 엘지하고 롯데의 플레이오프 삼차전이 있어.
직접 가서 보고 게임 내용을 자세히 적어와. 경기장 분위기까지 상세하게.
만일 내용이 틀리거나 빈약하면 당장 노예자격 박탈이야
야구장 필드
관중 사이로 걸어가는 민 측면
달려가는 주자
박수 치는 사람들
외야 계단으로 내려오는 민
박수치며 응원하는 사람들
자리에 앉는 민의 뒷모습
공 던지는 투수
공 던지면 스트라이크
소리치는 관중
수첩에 노트하는 민.
공치는 타자. 달린다.
S#10 피자헛
인경, 애선 측면.
애선: 다음 주부터 모의고산데
인경, 애선 사이로 로미.
애선: 마음도 편하다 얘
로미: 바이올린도 연주 않할땐 줄을 느슨히 풀어 놓는데. 휴일에도 온종일 책만 붙들고 있는 애들, 정말 밥맛 아니니? 그래 가지고 대학가면 뭐하니?
로미 뒤로 인경.
인경: 너 정말 대단하다.
빨대 무는 로미
문 열고 들어오는 민
고개 돌리는 로미
다가오는 민
로미: 왔어?
인사하는 민
일어서는 로미
로미: 나 먼저 갈게.
인경, 애선 앞으로 와이프 되는 로미
나가는 민과 로미
S#11 시립도서관
책들 사이로 보이는 민과 로미의 눈
민: 니가 그렇게 야구광인지 알았으면 같이 가는 건데
돌아보는 로미
로미: 난 야구별로야. 섹스, 스포츠 스크린 그거다 사람들 바보로 만드는 수작이지
로미 뒤로 민의 반응
로미: 휴일에 야구장이나 다니는 애들, 대학 갈수 있을 것 같아?
책 빼는 로미
로미: 어림없어
로미 프레임 아웃. 쳐다보는 민
S#12 놀이터 언덕
정글짐 위에 앉아있는 로미, 민
로미: 내 친구들 모두 1등급이야. 전체 석차 3% 우리 학교에서만 12명이지.
남은 시험 결과에 따라
돌아보는 민
로미: 내가 탈락할지도 몰라
민: 탈락하는 게 두렵니?
로미 (민 걸고)
로미: 아니 그렇지만 개들한테 질수 없어 내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으니까.
다시 돌아보는 민
로미: 모든 게 다 생존 경쟁이야. 비열하고 치사해 질수록 승자가 되는 법이니까.
민.
로미: 나한테 정 떨어지니?
민: 아냐 솔직히 난 너처럼 목표가 확실한 사람을 보면 존경스러워.
민 걸고 로미
로미: 노예는 당연히 주인을 존경해야지.
정글짐에서 내려가는 로미. 프레임아웃
쳐다보는 민
정글짐 전경으로 걸리고 의자에 앉는 민과 로미
책 보는 로미를 쳐다보는 민
민 내레이션: 로미는 그 동안 내가 보아왔던 그 어떤 여자아이와도 달랐다.
그 애에게서는 늘 좋은 냄새가 났다.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언제나 자신만만한 모습에서 온통 향기가 진동했다.
로미 얼굴로 트랙인
책 덮는 로미
로미: 안 돼. 이런 식으로 나가면 나도 내 페이스를 잃을지 몰라.
고개 젖힌 민을 보는 로미
민과 로미의 2인 바스트 샷.
로미: 난 네가 좋아. 그러니까 너도 대학 가야돼.
S#13 자율학습실
학생들 뒷모습 트랙킹
앞에서 뒤로 트랙킹. 민 보임
오토바이 불빛
창 밖 보는 아이들
헬멧 벗는 태수
태수: 이 민!
친구가 어깨 치면 일어나는 민
학생: 야, 누가 니 이름 부른다.
태수 뒷모습으로 교실 창문들.
태수: 이민
웃는 민
민 내레이션: 넉 달 만이었다.
S#14 소주방
민 내레이션: 그런데. 태수는 별로 말이 없었다.
술 마시는 태수
잔 내리는 태수
술 마시는 민
태수 얼굴
태수: 나 학교 때려치웠다. 벌써 두달 됐어.
고개 떨어뜨리는 민
찌개 내려놓는 환규
환규: 야, 민아, 이것 좀 봐라. 주방장한테 사리 좀 신경 써 달랬더니 아예 산 이다. 산! 어쩜 좋냐. 야, 한 잔주라
술 마시는 환규
환규: 야, 그리고 좀만 기다려. 좇나리 이쁜 댓삐리 기집애한테 삐삐 쳐놨거든.
술잔 내려놓는 환규
환규: 오늘 술 진짜 잘 들어간다.
민: 환규야.
환규: 응?
민: 환규야, 미안한데 자리 좀 비켜줘.
3인샷. 프레임 아웃되는 환규
환규: 응, 너 계산할 때 나 불러라.
술병 드는 손, 술따르는 민, 마시는 태수
민: 무슨 일이야?
태수 측면
태수: 그냥, 너 보고 싶어서 왔어
민 얼굴
태수 얼굴
일어서는 태수 뒷모습
민 뒤로 일어서 태수
태수: 그만 갈래
일어나는 민 앞모습
일어난 민, 뒷모습
태수 뒤로 민
민: 많이 마셨어. 오토바이 타면 안돼.
신선 밑으로 떨구는 태수
S#14-1
오토바이를 탄 태수, 민
민, 태수 바스트 샷 …….
S#15 일식집
일식집에서 멈추는 태수와 민
내리는 태수
태수: 넌 내리지마
돌아보는 민
다가오는 태수
태수: 오토바이 오늘 산거야. 내가 안타면 이걸 누가 타야할지 생각해봤어.
고개 돌리는 민
태수: 씨발, 답이 너무 빨리 나오더라.
이야기하는 태수와 민
태수: 바로 너야
측면 2인 미디엄 샷, 돌아서는 태수
태수: 이건 내일이야. 끼어 들어마. 절대로
일식집으로 다가오는 태수
펼 잼의 SOMETIMES
민 트랙 인
일식집으로 다가가는 민 뒷모습
창밖의 민
일식집 안 풍경
우―좌 팬. 태수 등장
칼 빼들고 올라서는 태수 .F. S
놀라는 민 C. U
튀어나오는 태수 F. S
칼 맞는 두목 X2
넘어지는 두목 F. S
칼 휘두르는 태수 M. S X2
던져지는 태수 F. S
의자 던지는 태수
붙잡혀 넘어지는 태수 F. S
밟히는 태수 BS. X2
놀라는 민. 좌―우 팬. X2
밟히는 태수 X2
들어오려는 민 X2
밟히는 태수. 오블 리크 X2
몸부림치는 민 BS. X2
밟히는 태수 C. U. X2
민 뒤로 경찰차 등장 X2
밟히는 태수. 오블 리크 X2
들어오는 경찰 X2
태수 일으키는 형사 X2
끌고 나오는 형사 X2
끌고 나오는 형사 (각도 다름) X2
차에 태워지는 태수 X2
출발하는 차. 타고 있는 태수 X2
민 트랙 인 X2
S#16 대입학원
카메라 팬, 프레임 되는 민과 오토바이.
민 내레이션: 짐승처럼 끌려가는 태수를 나는 그저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내 자신을 용서할 수가 없다.
헬멧 쓴 민. 측면
민, 헬멧 쓴 눈
나가는 학생들, 뒷모습
로미, 인경 보임
학원 문 나오는 로미, 인경, 애선
라이트 켜짐
눈부셔하는 로미
헬멧 벗는 민
헬멧 벗는 민 바스트 샷.
웃으며 프레임 아웃 하는 로미
민에게 다가서는 로미. 헬멧 받고 탄다.
예선, 인경
민 등에다 기대는 헬멧 쓴 로미
시동
라이트
액셀
마후라
옆으로 트는 몸체
출발하는 오토바이
S#17 남부순환도로
커브 도는 오토바이 뭉샷
민, 로미 바스트 샷
오토바이 뒷모습
민, 로미 측면 B.S
시점. 도로
민, 로미 측면 프레임 아웃
오토바이 질주 뒷모습. 오른쪽 커브
오토바이 질주 뒷모습. 오른쪽 커브.
근접
시점, 도로
헬멧 쓴 로미
시점, 도로 << 표시
오토바이 장면 도로질주, 오른쪽으로 프레임 아웃
S#18 로미의 집
부감, 프레임 인 되는 오토바이
헬멧을 민에게 던지는 로미
로미: 너하고 이 오토바이 성능하고 혼돈하지 마. 저능아같이 보여
로미 와이프 되고 뒤로 민
인터폰에 이야기하는 로미. 그 뒤로 민
로미: 엄마, 나야.
(엄마목소리): 왜 이렇게 늦었어? 영어 선생님이 30분 넘게 기다리고 계시잖아.
로미를 붙잡는 손
민 어깨 걸고 로미.
로미: 놔
민: 넌 나한테 아무 감정도 없니?
로미. 공부하는 기계야. 들어가는 로미
닫히는 문. 다가서는 민 측면
민: 로미야
뒤돌아보는 로미 민 뒤로 들어서는 로미
문 열고 나오는 로미. KISS!
KISS하는 로미
로미 아웃. 문 밖에서 바라보는 민
민 미소 지으며 이도. 카메라 민 앞을 스쳐간다.
TRACKING
민 내레이션: 저애를 정말 좋아하게 될 것 같다.
S#19 모의고사
앞. 뒤 트랙킹 민 보임. 선생님. 민을
톡치고 나간다.
민 내레이션: 수능고사가 다가왔지만
머릿속엔 태수와 로미에 대한 생각뿐이었고. 책상 앞에 앉아 잇는 것이 무의미 했다.
민 얼굴
가방 들고 나가는 민
민 내레이션 ; 기다려지는 건 로미의 호출뿐이었다.
S#20 지하철역
로미 측면
로미 풀 샷, 책을 보며 걸어감
정면으로 책을 덮으며 다가옴
인경, 애선에게 다가감. 로미 뒷모습
앉는 로미. 3인 샷
로미: 너 모의고사 망쳤다며?
애선: 너 따라 한다고 남자들 만나 한 눈 좀 팔았더니 집중력이 떨어졌나봐
약 부감. 인경이를 힐끔 보며 말하는 애선
로미: 인경이도 많이 떨어졌니?
애선: 앤 나보다 심해
로미에게 부러운 듯 말하는 애선
애선: 넌 정말 신기해. 놀거 다 놀면서 1등 지키는 거 보면
로미: 힘내. 수능만 잘 보면 되지 뭐.
열차 도착을 알리는 보드 판에 불이 들어옴
애선에게 이야기하는 로미
로미: 정 안되면 재수하면 되잖아
애선: 이 짓을 일 년 더하라구
돌아보는 애선, 아웃되는 인경
애선: 엄마 얼굴 보기 무서워. 저울대 못가려면
인경 발
(애선 대사): 집안 망신시키지 말고 나가 죽으래.
애선 로미 2인 클로즈업
걸어 나오는 인경 측면
(로미대사): 너희 집 언니, 오빠 다 저울대니까
다가오는 전철을 바라보는 인경
오브리끄 들어오는 전철
돌아보는 로미 클로즈업
눈감고 뛰어드는 인경
뛰어드는 발
C.G 뛰어드는 인경
지하철 로미 애선 앞으로 와이프
전철 바퀴
일어서는 애서 프레임 아웃
모여드는 사람들 풀샷
일어나는 로미
로미 클로즈업 양각
무릅 끓는 로미
로미 클로즈업
S#21 민의 집
부감. 민, 엄마, 백사장. 민을 꾸중하는 엄마.
민의 어머니: 애미가 지 때문에 얼마나 고생하는데 이놈은 그것도 모르고
백사장: 김여사, 진정하세요. 앞으로
오블리크. 벽에 걸린 사진을 보는 민
백사장: 열심히하면 좋은 결과가 나오겠죠.
성적문제로 민을 혼내는 엄마. 말리는 백사장. 민 냉정하게 대꾸한다.
민의 어머니: 인석아, 칠등급이 뭐냐, 칠등급이 …….
민: 아셨으니까 맘이 편하네요. 전 졸업장이나 딸래요.
1민의 어머니: 당장 자퇴해. 검정고시 보는거야. 니 머리면 충분히 대학가고도 남아.
백사장: 너무 다그치지 마세요. 자네도 어머니가 하는 말씀을 좀 이해하게
백사장을 몰아 붙이는 민. 엄마의 만류. 백사장, 민이 말에 아무말도 못한다.
민: 아저씨. 우리 엄마 데리구 살거예요?
민어머니: 저 녀석이. 어른 앞에서 말버릇이 그게 뭐야!
민: 잘해 주세요. 우리엄마
아버지 사진떼는 민의 손
계단 내려가는 민. 풀샷
민어머니: 민아, 민아, 어디가는 거니 민아.
S#22 도로
헤드라이트. 팬 업. 민.
우수에 찬 민의 눈
엑셀 당기는 손
빠르게 지나가는 오토바이 풀샷
민 측면 샷
놓는 손
팔 놓고 타는 민
팔 놓고 타는 민 바스트 샷
오토바이 후면 모습
눈감은 민 얼굴
중앙선 넘는 바퀴
다가오는 트럭 풀샷
양각, 손놓고 타는 민
지나가는 트럭, 측면
민 얼굴. 눈감은 민
오블리크. 다가오는 트럭 풀샷
오토바이 바퀴
오블리크. 다가오는 트럭 깜박거린다.
빛을 받는 민의 얼굴
깜박이며 다가오는 트럭
눈뜨는 민
지나가는 트럭 측면
오토바이 바퀴 걸고 트럭이 다가오는 모습
핸들을 트는 운전수
핸들잡고 트는 손 클로즈업
오블리끄 피하는 민 풀샷
시점샷
교차되는 오토바이 풀샷
교차되는 오토바이 풀샷 근접샷
피하고 나서 자리 잡는 민
오토바이 탄 민 측면
삐삐 꺼내는 민
여자, 정혜 This Charming girl
정혜는 우편취급소 카운터 뒤에서 조심스럽게 세상을 내다본다.
상처의 흔적들을 끌어안고, 그녀는 사랑 받지도 못하여 혼자 메마르게 살아간다.
처음으로 스며드는 사랑의 감정을 느끼는 순간 다시 그녀에게 드리워지는 익숙한 슬픔.
그리고 그 절망 끝에 피어오르는 희망의 아이러니.
인생은 하나의 어려운 수수께끼다.
사랑만이 이 수수께끼를 푼다.
나오는 사람들 (등장 순서)
정혜
우편취급소 소장과 동료 여직원 1, 2
작가인 듯 한 남자
기억 속의 엄마
결혼했던 남자
고모
고모부
슬픈 남자
그 외…….
프롤로그. 타이틀 백 / 중학교 교정 (낮) - 기억
누군가의 시선으로 - 눈부시게 쏟아져 내리는 햇살.
카메라 뒤로 빠지면, 교복을 입은 어린 정혜가 얼굴을 살짝 찌푸리고 한 손을 펴서 이마에 댄 채 하늘을 보고 있다.
자전거 페달 소리에 한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한 남학생이 자전거를 타고 곁으로 지나가면서 - 마치 비웃듯이 - 피식 웃으며
정혜를 바라보는데, 저만치 멀어지면서도 고개를 돌린 채 시선을 정혜 쪽으로 두다 가 비틀거리면서 자전거와 함께 옆으로 넘어진다.
허둥지둥 자전거에 올라타고 가버리는 남학생을 잠시 보던 정혜, 교실 창가 쪽 담에 가까이 서서 유리를 통해 교실 안을 들여다본다.
교실 한 쪽 책상에 걸터 앉아있는 담임선생인 듯한 여자와 건너편 의자에 앉아있는 엄마가 보인다. 두 사람 모두 이야기를 멈춘, 심각한 표정이다.
인기척에 다시 돌아보는 정혜. 입구로 여자 아이들 서너 명이 팔짱을 끼고 재잘거리 며 나와 교문으로 향하고 있다.
다시 교실 안쪽으로 시선을 돌리면, 엄마에게 뭔가 얘기하고 있는 담임선생.
정혜, 잠시 그들을 보다가 돌아서서 쪼그려 앉아 무릎을 안고 벽에 기댄다.
따스한 봄 햇살이 가득 내리는 정원.
운동장 쪽에서 들려오는 사내아이들의 소음.
이마에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힌 정혜, 부스럭, 하는 소리에 정원 한 구석을 바라본다.
뭔가 지나간 듯이 흔들리는 관목의 잎사귀들.
정혜, 고개를 비스듬히 한 채 허리를 낮추고 유심히 보는데…….
흔들리는 잎사귀들 사이로 메인타이틀.
여자, 정혜
1. 정혜의 아파트 / 베란다 (아침)
크고 작은 화초들이 나란히 놓인 베란다.
양란이 심어진 도자기 화분을 걸레로 닦고 있는 정혜, 이마에 땀이 맺혀있다.
문득 베란다 한 구석 화분 밑에 책 한 권이 깔려있는 게 보인다.
화분을 들고 책을 끄집어내는 정혜.
오랜 시간 방치되어있어 심하게 훼손된 동화책 - <숲으로 간 아이>.
책장을 넘기려 해보지만 페이지끼리 대충대충 엉겨붙어있고 색깔도 누렇게 바래있다.
2. 우편취급소 (낮)
일과 중 가장 바쁜 시간.
십오 평 남짓한 우편취급소 안은 드나드는 사람들로 분주한 모습.
정혜는 바닥에 놓인 바구니의 우편물들을 체크하고, 동료 1과 2는 선 채로 손님들 을 맞는다. (손님들은 주로 주변 회사의 여직원들로, 단골인 듯 익숙하게 일을 보 고 나간다) 회사 유니폼을 입은 여직원 한 명이 출입구 옆 탁자에 서서 쾅, 쾅 소리를 내며 우편물에 소인을 다 찍고는 손에 모아들고 카운터 안쪽으로 들어온다.
여직원: (정혜에게) 언니, 여기 맞죠?
정혜: 일반? (바구니를 가리키며) 그럼 여기.
여직원: (우편물을 바구니에 넣고) 갈게요.
정혜: 잘 가-.
여직원, 동료 1, 2에게 손을 흔들며 카운터 밖으로 나가는데
동료 1: 어, 안녕-. (갑자기 생각난 듯이) 지난주에 밥 산다더니 왜 소식 없어?
여직원: (멈칫 하며) 맞다 참. 이번 주에 꼭 살게. 진짜. (나간다)
동료 1: (혼잣말로) 만날 이번 주래 쟨... (전화 울리자 받는다) 네. 네? 누구요?
자판기 커피를 든 사십대 아저씨가 들어서서 카운터로 다가오며
아저씨: 김 소장 어디 갔어?
정혜: 식사 가셔서 안 오셨는데요.
동료 2: (창밖을 보며) 저-기 오시네.
창가 쪽엔 초등학교 아이들 몇이 모여서 새로 발행된 우표를 서로 나눠 보고 있다가 동료 2에게 다가간다.
아이 1: 이거 말구요. 다른 거 좀 보여주세요.
동료 2: (다른 일을 보며 사무적인 말투로) 다른 거 뭐여. (남자 손님에게) 이천 구백 원이요. (우표를 뜯어서 내준다)
아이 2: 그, 만화시리즈 중에요. 8집인데요. 맹꽁이 서당 그림 있는 거요.
아이 1: 환미나 만화랑 같이 붙어있어요.
정혜: (서류를 보며) 등기에 뭐가 하나 비는데. (동료 1에게) 거기 책상에 없어?
동료 2: (아이 1에게) 그거 오래 전에 나온 거야. 다 팔리고 없어. (아줌마 손님에게) 이거요. 규격 봉투 따로 있거든요. 하나 드릴까요?
동료 1: (귀찮다는 듯이) 얘들아. 그만들 좀 가. 나중에 와. (봉투 하나를 정혜에게 건네며) 이건가 보다.
아이 1: (동료 1에게) 왜요?
동료 1: 애요라니. 봐바. 지금 젤루 바쁠때잖어. (나가는 손님에게) 안녕히 가세요.
아이 2: 우리두 손님인데. 그러면 안돼요.
아이 1: 그래, 손님인데에.
동료 1이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자 옆에서 주소를 적고 있던 아줌마가 거든다.
아줌마: 고것들 참. 니들 말이 맞다. 손님은 손님이지.
소장이 입구에서 커피 든 아저씨를 만나 인사하다가 카운터 안으로 들어온다.
소장: 아이쿠……. 오늘 왜 이렇게 붐벼.
동료 1: (짜증 섞인 목소리로) 소장님. 우리, 밥도 못 먹었단 말예요.
정혜: (소장에게) 우정국 최 과장님이 전화하셨어요. 핸드폰으로 한다고 그러시던데 받으셨어요?
소장: 응? 응. (우표를 붙이고 있는 동료 2 뒤를 지나다가) 그렇게 붙이지 말라니까. 좀 얌전하게 붙이지…….
동료 2: 왜 또요. (손님에게) 여기 영수증.
소장: (정혜에게 봉투를 보여주며) 이거 좀 봐. 빵점이야, 빵점.
동료 2: 바빠서 그래요. 바빠서.
3. 우편취급소 건물 / 화장실 (낮)
정혜가 화장실로 들어서자 동료 1이 손을 씻다가 돌아본다.
정혜도 곁에 서서 손을 씻는다.
동료 1: (물을 잠그고 자신의 손을 유심히 보며) 아, 이거. 손이 성하질 않네. (종이 타월을 꺼내 물기를 닦고) 가자, 밥 먹으러. 배고파 죽겠다.
정혜: (손에 비누 거품을 내며) 잠깐만.
동료 1, 옆에 서서 기다리며 보고 있다가 정혜가 물을 잠그고 돌아서자
동료 1: 뭐야. 속눈썹 떨어졌다. (정혜 얼굴에 묻은 속눈썹을 가리키는데)
비리릭 비리릭 벨소리 울리고 동료 1, 조끼 주머니에서 휴대폰 꺼내 받으며 화장실을 나간다.
거울에 얼굴을 가까이 대고 보는 정혜.
4. 우편취급소 앞 길 (낮)
우체국 운송 차량이 서있고 한 젊은 우체국 직원이 중간 마감한 우편물이 든 자루를 뒤에 싣고 있는데, 동료 2가 그 곁에 서서 거들고 있다. 그들 뒤로 정혜와 동료 1이 건물 입구에서 나온다.
동료 2: (정혜와 동료 1에게) 언니들! 도와주지도 않고 뭐야.
동료 1: 아침엔 나 혼자 했는데? (하고 그냥 걸어간다)
동료 2: (뒤에서 보다가) 올 때 하겐다즈 아이스크림-.
정혜: 응.
정혜와 동료 1, 주위를 살피고 뛰어서 차도를 건너간다.
동료 1은 휴대폰을 들고 계속 통화 중이다.
중학교 교정 쪽에서 수업 시간을 알리는 차임 벨 소리가 들려온다.
길을 따라 걷다가 고개를 돌려 본 정혜의 시선으로, 자루를 다 싣고 트렁크 문을 닫은 우체국 직원이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내 동료 2에게 주는 모습이 보인다.
(점프)
우편취급소 근처 사거리로 나온 정혜와 동료 1.
동료 1: (통화가 끝나고 휴대폰 플립을 닫으며) 가만. 뭘 먹지? (정혜를 본다)
정혜: (주위를 둘러보며) 글쎄.
동료 1: 참. 내가 왜 이래. 너한테 그런 어려운 걸 물어보다니.
횡단보도 신호가 바뀌자 두 사람, 건너간다.
정혜: 그냥 가던 데로 가는 게 편하잖아. 그 집 음식 괜찮던데 난.
동료 1: 그건 그런데. 그래도, 좀 나은 게 있지 않을까 뭐 그럴 때도 있어야되는거 아니니. (잠시 걸어가다가) 우리, 도시락 싸갖고 다닐래? 반찬 뭐 잘해?
5. 마을버스 (저녁 무렵)
차창 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거리 풍경.
뒤편 창가 자리에 앉아 거리를 바라보고 있던 정혜, 정차 안내 방송을 의식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벨을 누른다.
심하게 흔들리는 버스.
사람들과 부딪히지 않으려고 조심조심 나가는 정혜의 모습.
6. 아파트 단지 (저녁 무렵)
버스 정류장에서 아파트로 이어진 작은 길.
그 길을 따라가다가 보면, 고층 아파트 단지에서 정혜가 사는 저층 아파트 단지로 연결하는 지하 통로를 중심으로 서있는 노상 시장.
저녁 찬거리를 사기 위해 나온 동네 사람들.
정혜, 지하 통로를 막 벗어나려는데 한 가게 아주머니가 우체국 처녀! 하고 부르자 다가간다. 아주머니가 내미는 편지 봉투를 받아드는 정혜, 고맙다는 아주머니 말을 뒤로하고 돌아서려다가 허리를 숙이고 좌판에 있는 나물을 본다.
정혜: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이게 뭐예요, 이름이.
아주머니: 그게. 쑥부쟁이 나물이라고, 봄에 나는 나물이다.
정혜: 맛있어요?
아주머니: 뭐냐 저. 좀 알딸딸한 맛이재. 칼칼하고. (봉투를 들고 나오며) 좀 줄게. 가서 먹어봐. (나물을 손으로 퍼서 담는데)
정혜: 아니, 아니에요. 나물 무칠 줄 몰라요.
아주머니: 에에? 그런 것 좀 배와 놔야지. 시집가면 어짤라구. (나물 담은 봉투를 내밀며) 연습해. 이걸로. 처녀 모친은 이런 거 좀 잘했나. 진작에 모친한테 좀 배와놓지 그랬어. 그냥.
정혜, 한사코 마다하다가 마지못해 봉투를 받아든다.
인서트 A-1. 아파트 앞 길 (저녁 무렵)
(인서트는 정혜가 현재 또는 가까운 과거 시점에서의 시선 A, 그리고 먼 과거에 그녀 시선으로 보고 기억에 남은 이미지 B, 이 두 가지가 짧게 현실과 교차하는 형식이 된다. 그 시선들은 정혜의 의식 세계와 대부분 연관이 있지만, 전혀 무관한: 경우도 있다.)
부감으로. 교복을 입고 쌕을 맨 한 여학생이 뻥튀기를 입으로 뜯어먹으며 아파트 단지 사이를 천천히 걸어간다. 여학생, 한 손으로는 우산을 빙빙 돌리고 있다.
그 곁으로 한 뚱뚱한 아저씨가 경보를 하며 우스꽝스럽게 지나간다.
7. 정혜의 아파트 / 부엌 (저녁)
부엌 싱크대 앞에 서서 나물을 씻고 있는 정혜.
나물 한 잎을 물고 맛을 보다가 쓴 맛에 얼굴을 찡그리고 풋풋, 하고 뱉어낸다.
다 씻겨진 나물들을 채에 올려 물기를 빼면서 고개를 돌려보는 정혜.
거실 쪽에 켜져 있는 TV. 홈쇼핑 채널에서 호스트가 열심히 상품 광고를 하고 있다.
정신을 뺏긴 듯이 잠시 멍하게 TV에 시선을 두고 있는 정혜.
8. 정혜의 아파트 / 거실 (이른 아침)
천갈이를 새로 한 듯한, 구식 소파에 누워 천장을 보고 있는 정혜.
거실 창을 통해 비스듬히 들어오는 햇빛이 정혜의 상반신에 걸쳐 있다.
손을 들어 햇빛에 비춰보는 정혜. 마치 그림자놀이를 하는 듯하다.
자명종 알람 소리가 요란하게 울린다.
누운 채 고개를 돌려 협탁에 놓인 시계를 보는 정혜. 6시 30분.
손을 뻗어 알람을 끄고 몸을 일으켜 앉는다.
한쪽엔 TV가 켜진 채 작은 소리를 내고 있다.
물끄러미 TV 화면을 보고 있던 정혜, 방안에서 들려오는 또 다른 알람 소리에 흠칫 한다. 원, 투, 원투 쓰리 포, 하는 짓궂은 구령 소리.
그 소리에 맞춰 고개를 앞뒤로 가볍게 흔들어보는 정혜.
잠시 그러다가 일어나 방으로 간다.
멈추는 알람 소리.
9. 정혜의 아파트 / 욕실 (이른 아침)
양치질을 하며 거울을 보던 정혜, 수건걸이에 걸려 있던 스타킹을 가져가 얼굴에 대보며 말랐는지 확인한다.
(점프)
욕조에 머리를 90도 각도로 숙인 채 샤워기를 틀어 머리카락에 물을 적시는 정혜.
욕조 구석에 세워둔 샴푸 통이 욕조 바닥으로 떨어진다.
샴푸 통을 주워들다가 남은 양을 재듯이 흔들어보는 정혜.
10. 아파트 앞 길 (아침)
출근복 차림으로 입구를 나서서 걸어가는 정혜.
앞 쪽 코너 길에서 한 운동복 차림의 여자가 조그만 강아지를 끌고 나타난다.
정혜는 여자를 보고 안면이 있다는 듯이 어색하게 미소 지어 보이지만 여자는 그냥: 지나쳐서 정혜가 나온 아파트 입구로 들어간다.
더 어색해진 표정으로 코너를 돌던 정혜, 문득 멈춰 선다.
화단 쪽으로 다가가는 정혜, 허리를 낮추고 화단 안쪽 관목들을 유심히 본다.
나뭇잎이 흔들리며 뭔가 지나간 듯 한 흔적은 있지만,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11. 우편취급소 (아침)
복도를 청소하고 있는 건물 관리 아저씨와 인사를 하며 들어오는 정혜.
늘 그녀가 해왔던 일인 듯, 익숙하게 열쇠를 꺼내 우편취급소 출입문을 열고 들어간다.
어두운 실내. 불을 켜고 블라인드를 올리는 정혜.
아침 햇빛이 그녀의 얼굴로 쏟아진다.
12. 우편취급소 건물 / 화장실 (낮)
양변기에 앉아있는 정혜, 바깥에 있는 동료 1에게 이야기를 하고 있다.
동료 1은 문자 메시지를 보내는 듯 삑, 삑 하는 다이얼 톤이 들려온다.
정혜: 같은 크기의 샴푸하고 린스를 사는데, 이상하게 꼭 샴푸가 먼저 떨어져서 린스가 남거든. 매번 그래.
동료 1: (소리. 문자에 열중하느라 건성으로) 응…….
정혜: 그래서 샴푸만 새 걸로 다시 사면 린스 떨어지고 나중엔 샴푸가 또 많이: 남게 되잖아? 그래서……. (대꾸가 없자) 뭐해? ... 거기 있어?
동료 1: (소리)... 응. 샴푸가 모자라서. (휴대폰 벨이 울리고) 아, 이 인간은 꼭 뭐 할 때 전화를 해요. (전화를 받으며) 네. ... 응. ... 일하지 뭐하겠어. ... 점심은? ... 응. 오늘도 늦어? ... 자꾸 그러면 나도 매일 술 먹고 늦게 들어간다.
밖에서 통화하는 소리를 들으며 멍하게 있던 정혜, 물을 내리고 휴지를 뜯다가 벽 에 붙어있는 재떨이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립스틱이 희미하게 묻어있는 담배 꽁초.
인서트 B-1. 정혜의 아파트 / 엄마의 방 (낮) - 기억
작고 투명한 크리스털 재떨이 (C. U)
담배 하나가 길게 타서 금방 재가 떨어질 듯하다.
그 뒤로 - 포커스 아웃되어 누군지 알 수 없는 - 사람의 실루엣.
창가 쪽 탁자에 앉아 뭔가 작업을 하고 있는 (정혜 엄마의) 모습이다.
13. 우편 취급소 (낮)
정혜, 우편취급소로 들어온다.
한산한 실내.
소장이 자신의 책상에서 컴퓨터 모니터를 보고 있는데 그 곁에 동료 2가 서서 보 고 있다. 두 사람 모두 진지한 표정이다.
동료 2: 검은 돌이 이쪽 끝에 가야되는 거 아닌가?
소장: 아니라니까 그러네.
정혜, 카운터 의자로 가다가 소장 책상 쪽으로 다가가서 뭔가 하고 보면 컴퓨터 바둑이다. 카운터에서 열심히 서랍을 뒤지고 있던 동료 1이 뒤를 돌아본다.
동료 1: 니베아 같은 거 있는 사람.
정혜: 베이비 로션 있어. (카운터로 가서 서랍을 연다)
소장: (혼잣말처럼) 여자들은 왜 꼭 둘이서 같이 화장실을 가나 몰라.
동료 2: 궁금하세요?
소장: 아니.
동료 1: (로션을 바르며) 가르쳐 드릴 테니까 이따 맥주 사주세요.
소장: 안 궁금하다니까…….
건너편 중학교에서 차임 벨 소리가 들려온다.
동료 1이 익숙하게 허밍으로 차임 벨 멜로디를 따라하자 뒤에 있던 동료 2도 같이 한다.
동료 2: (카운터 쪽으로 오며 동료 1에게) 저기. 영화 시사회표 있는데. 쓸래요?
동료 1: (서류를 보며 전자계산기를 두드리다가) 무슨 영환데? (표를 받아든다)
동료 2: 난 시간이 안 맞아서 못가거든.
동료 1: (관심 없다는 듯이) 아, 이거. 공포 영화잖아. 애들이나 보는 거 아냐?
동료 2: (정혜에게) 언니는?
정혜: (정색을 하며) 난, 무서운 영화는 좀…….
동료 2: 어어. 누구 주지? 소장님은 보나마나 안가실거고.
정혜: 그거. 우체국 최기사한테 받은 거지?
동료 2: (난감해하며 말하지 말라는 표정) ...
소장: (컴퓨터 바둑에 시선을 둔 채) 나, 다 들었어.
(씬 2에서 소장을 찾던) 아저씨가 한 손엔 자판기 커피, 다른 손엔 신문을 말아들고 들어선다.
정혜: (인사하며) 오셨어요. (뒤로 돌아 소장에게) 소장님. 이 주사님 오셨어요.
아저씨: (소파에 털썩 앉으며) 주사……. 주사, 그 호칭 좀 안쓰믄 안되나?
정혜: 예?
소장: 한번 주사하다 잘렸음 영원히 주사지, 뭘 더 바라는데.
아저씨: (괜히 민망해져서) ... 아, 에어컨이나 좀 켜. 손님들 더워 죽겠어.
14. 마을버스 (저녁 무렵)
뒤편 창가 좌석에 앉아있는 정혜. 삐익, 하는 소리에 가방에서 휴대폰을 꺼내본다.
액정에 ‘성인. 광고. 화창한 주말에 함께 드라이브 가지 않을래요? 여성 무료…….’ 따위의 메시지가 떠있다. 다시 휴대폰을 가방에 넣으며 문득 앞을 보니 앞자리에 앉은 남자가 기절한 듯이 자고 있다. 너무 깊이 잠든 나머지 고개가 땅에 닿을 듯이 옆으로 기울어진다. 위로 올라갈 듯 뚝 떨어지고 또 올라가다가 떨어지고……. 그때마다 멈칫멈칫하며 손으로라도 받쳐줄까 고민하는 정혜... 하지만 마음뿐이다. 얼굴은 보이지 않지만 - 그의 머리에 듬성듬성 난 흰 새치들이 눈길을 끈다.
15. 동네 서점 (저녁 무렵)
계산대 앞. 가게 주인과 이야기하고 있는 정혜.
주인: (컴퓨터 모니터를 보며) 어디 출판사라고요?
정혜: 한 아름 출판사요.
주인: (갸우뚱하며 자판을 치고 모니터를 보다가) 이거 아주 오래된 거네요. 여긴 지금 없어요. 출판사 자체가 없어진 거 같은데요.
정혜: (실망하며) 아…….
주인: 인터넷으로 주문하면 혹시 있을지 몰라요. 주문해드릴까요?
정혜: (잠시 생각하다가) 예.
주인: 이거. 애들 보는 동화책 같은데. 특별히 뭐 찾는 이유라도…….
정혜: 그……. 아는 사람이 쓴 건데, 책이 많이 상해서요.
주인, 무심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인터넷 화면을 주시한다.
16. 아파트 앞 길 (저녁 무렵)
한 손에 비닐 봉투를 들고 아파트 입구 쪽으로 걸어가던 정혜, 멈춰 선다.
화단 한쪽에 작은 고양이가 누워 있다가 머리를 들고 정혜를 바라본다.
정혜, 허리를 숙인 채 고양이를 향해 휘휘, 하며 어설프게 휘파람을 불어본다.
잠시 고개를 갸우뚱하며 정혜를 바라보던 고양이, 팔을 뻗어 기지개를 펴고 몸을 한번 부르르 떨고는 다른 쪽으로 사라진다.
고양이가 있던 자리의 관목 잎사귀들이 작게 흔들린다.
17. 정혜의 아파트 / 거실, 현관 (저녁)
소파에 앉아 김밥과 사발 면을 먹고 있는 정혜.
기계적으로 김밥 안에 들어있는 오이를 젓가락으로 밀어서 빼버리고 먹는다. TV 리모컨을 들어 채널을 이리저리 돌린다.
강아지가 맹렬하게 짓는 소리가 옆집에서 들려온다.
딩동! 하며 울리는 초인종 소리.
흠칫 하는 정혜. (별거 아닌 것에 비정상적으로 놀라는 반응이다)
문 쪽으로 다가가서 현관 구멍으로 바깥을 내다본다.
정혜: ...누구세요?
수위: (소리, 퉁명스러운) 경비예요.
정혜, 현관키, 보조키, 그리고 걸쇠까지 풀고 문을 연다.
나이든 수위가 상자 하나를 들고 몹시 짜증스러운 표정으로 서있다.
수위: 집에 있으면서 왜 인터폰을 안 받아요?
정혜: ... 인터폰 안 울렸는데요.
수위: 무슨 소리예요. 내가 몇 번을 했는데…….
정혜: (자신 없이) 고장 났나?
수위: (상자를 내밀며) 이거나 받아요.
정혜: ? (상자를 받는다)
수위: 아까 낮에 택배가 맡기고 갔어요.
정혜: 아하. (꾸벅하며) 감사합니다.
수위: (툴툴거리며) 거 고장 났으면 빨리 고치던지 해야지……. (하고 간다)
남자가 나가자 현관문을 아래위로 꼼꼼히 잠그고 소파로 와서 앉는 정혜.
상자를 열어 보려고 하다가 인터폰을 쳐다본다.
일어나서 인터폰 앞에 간 정혜, 수화기를 들어본다.
호출을 해보지만 아무 소리가 나지 않는다.
(점프)
택배 상자를 연다.
상자 안에 총각김치가 들어있는 커다란 비닐 봉투가 있다.
정혜, 봉투를 열어 손으로 김치를 하나 꺼내 먹어보는데 줄기가 너무 길게 나와 국물이 탁자 위로 줄줄 흘러내린다. 김치를 입에 문 채 당황하는 정혜의 모습.
(점프)
시간 경과.
소파에 기댄 채 바닥에 앉아 TV를 보는 정혜.
TV에 시선을 두다가 가끔씩 한 손으로 바닥을 훑어 머리카락을 줍는다.
TV 화면에선 오래된 흑백 영화가 보인다.
(점프)
시간 경과.
어둠 속에 켜있는 TV. 홈 쇼핑의 호스트가 열심히 상품 광고를 하고 있다.
소파에 누워 잠이 들어있는 정혜.
문득 눈을 뜬다.
희미한 눈빛으로 한동안 TV 쪽을 응시하던 정혜, 몸을 반대로 돌려 베개에 얼굴을 묻는다.
컹, 컹 하고 짖는 강아지 소리가 옆집에서 들려온다.
18. 아파트 앞 길 (이른 아침)
화단 코너 쪽을 돌아가던 정혜, 고양이를 보았던 그 장소에 잠시 멈칫 했다가 다시 발걸음을 옮긴다.
19. 아파트 단지 / 버스 정류장 앞 (이른 아침)
마을버스 정류장.
사람들과 함께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 정혜.
버스가 정류장 앞에 멈춰 서서 사람들을 태우고 떠나는데, 정혜는 버스에 타지 않고 돌아서서 아파트 쪽으로 걸어간다.
(점프)
빠른 걸음으로, 뛰듯이 지하 연결 통로를 빠져 나와 노상 시장을 지나 아파트 단지로 다시 들어가는 정혜.
20. 우편취급소 앞 길 (낮)
유니폼 차림 위에 카디건을 걸치고 우편취급소를 나오는 정혜.
우체국 남자 직원과 동료 2가 커피 자판기 앞에서 이야기를 하고 있다.
동료 2: (지나치는 정혜를 보고) 어디가, 언니?
정혜: 잠깐. 볼 일이 있어서.
동료 2: 오늘 나랑 점심 먹는 날이잖아요. 나 혼자 먹으라고?
정혜: 아참. 그렇지. (잠시 망설이다가) 정말 미안. 오늘만 봐줘. 응?
정혜, 투덜대는 동료 2를 뒤로하고 빠른 걸음으로 걸어간다.
21. 동물 병원 앞 (낮)
한 손엔 케이지를, 다른 한 손엔 쇼핑 봉투를 들고 동물 병원을 나서는 정혜.
직원이 문 앞에 따라 나오며
직원 건강하긴 해도 길에서 자라서 아직 조절 능력 같은 게 없으니까, 처음부터 아무거나 주지 마세요. 낯도 많이 가릴 거구요.
22. 정혜의 아파트 / 거실 (낮)
케이지를 거실 바닥에 놓고 그 곁에 앉는 정혜.
정혜가 허리를 낮춰 케이지 안을 들여다보지만 고양이는 아무 반응이 없다.
케이지 문을 열어주는 정혜.
정혜: (달래듯이) 나와봐…….
고양이는 겁에 질린 듯 움직이지 않는다.
하는 수 없이 케이지에 손을 넣어 고양이를 밖에 내놓는 정혜.
고양이는 밖으로 나오자마자 후다닥 뛰어 소파 밑으로 들어가 버린다.
소파로 다가가 머리를 바닥에 대고 소파 밑을 들여다보는 정혜.
(점프)
정혜, 한동안 소파에 앉아 있다가 다시 바닥으로 내려와 소파 밑을 들여다본다.
정혜: 거기 있을 거야? (반응이 전혀 없자) ... 응?
23. 우편취급소 (낮)
비교적 한산한 시간.
미니 콤포넌트에서 흘러나오는 라디오 소리.
창가 쪽엔 초등학교 아이들 두 명이 서로 우표를 교환하면서 보고 있고 동료 1이 한 할머니와 이야기하고 있다.
동료 1: (등기 영수증을 내밀며) 저기요. 다음부턴 여기까지 오지 마시구 그냥 집 근처 우편취급소로 가세요. 예?
할머니: (영수증을 받아들며) 아니 그거야 내 맘이지. 왜 자꾸 딴데 가라마라 그래.
할머니, 기분 상한 듯 중얼거리면서 나간다.
소장: (나가는 모습을 한참 보다가) 저 분, 이사 가신지 꽤 오래된 거 같은데. 어디 멀리 이사 가지 않았나?
동료 1: 여기서 부쳐야 소포가 빨리 간다잖아요. 그거 하나 부치러 한 시간 반 걸려서 일부러 여길 오신데요 글쎄. 아무리 설명을 해도 안 들으셔.
소장: 그냥 편한 대로 하시게 해. 뭐 어쩌겠어.
(아래 상황은 위의 상황과 동시에 벌어진다)
한 남자가 우편취급소로 들어와 카운터에 두툼한 서류 봉투를 꺼내놓는다.
동료 2: 뭐로 보내실 건데요.
남자: 등기로.
동료 2, 봉투를 받아 주소를 확인하고 무게를 잰다.
동료 2: 이천 백 원이요. (옆자리의 정혜에게) 아까 어디 갔다 왔어요?
정혜: (전산 입력을 하다가) 응? 그냥……. 집에 고양이가...
남자: 빨리 가는 건 얼마죠?
동료 2: 속달이요? 등기 속달 말씀이죠? (정혜에게) 응? 못 들었어.
남자: 아……. 등기 속달로 하면……. 그냥 등기랑 얼마 차이가 나죠?
동료 2: 천구백 원 더 내시면 되요. (동료 1과 아주머니의 대화를 흥미롭게 듣는다)
남자, 잠시 고민한다.
남자: 죄송한데요, 속달로 하면 언제 도착하죠?
동료 2: 보통 이틀 정도 걸리는데, 우편물이 밀리면 조금 늦을 수도 있어요.
남자: (고민하듯) 아……. 예.
동료 2: (기다리다가) 어떡하실래요?
남자: 그럼……. 등기 속달로.
정혜, 다시 전산 입력을 하면서 벽에 걸린 시계를 보다가 문득 고개를 돌려 남자의 옆모습을 본다.
삼십대 중반쯤 되어 보이는 남자는 덥수룩한 머리에 수척한 얼굴인데, 그의 어색한 표정이나 행동이 마치 이런 종류의 대화나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조차도 부담스러워 하는 수줍은 모습이다.
동료 2: (우표를 건네며) 우표 붙이시고 이쪽 옆에 내세요. 저기 풀 있거든요.
남자, 우표와 봉투를 들고 출입구 옆 탁자로 가서 봉투에 우표를 붙이고는 다시 주소를 꼼꼼히 확인한다. 정혜의 시선으로 보이는 그의 뒷모습이 마치 버스에서 보았던 - 애처롭게 자고 있던 - 남자 같은 느낌이다. (중국집 배달원이 들어와 카운터 안 탁자 위에 짜장면 두 개를 놓고 나간다.)
남자, 다시 카운터로 돌아와 조심스럽게 정혜에게 봉투를 내민다.
봉투를 받아든 정혜, 전산 입력을 하고 영수증을 내준다. (그의 얼굴을 똑바로 보지는 않는다)
남자가 나가고 나자 봉투에 쓰여 있는 주소를 무심히 본다.
‘서울 강남구 논현동 25-11 B1 성원 출판사’
봉투를 자신의 옆에 놓인 바스켓에 집어넣는 정혜.
동료 2: 글 쓰는 사람같이 생겼는데. 원고 같은 거는 요즘 다 이메일로 하지 않나?
소장: (짜장면을 비비며) 누구꺼야 이거. 빨리 와.
정혜: 저요.
동료 2: 아. 짜장면 냄새는 언제 맡아도 좋다니깐.
단골 여자 손님이 들어선다.
여자: 안녕하세요……. 냄새 좋네요.
소장: 식사했어?
여자: 했어요. (하며 우편물을 올려놓고) 이거 다 일반.
24. 호프집 (저녁)
전형적인 동네 호프집.
정혜와 동료 1,2가 함께 생맥주를 앞에 놓고 앉아 TV에 시선을 두고 있다.
여러 명이 앉아 퀴즈를 푸는 프로그램이 TV로 보인다. (브레인 서바이버)
인상 좋은 아줌마가 방금 튀긴 치킨을 탁자에 놓고 가는데, 그녀의 시선도 TV에 고정되어 있다.
정혜는 TV에 시선을 두면서도 벽시계를 바라보며 왠지 초조한 듯하다.
동료 2: 삼칠!
동료1: 사칠! (거의 동시에 진행자가 사칠! 이라고 답을 말하자) 맞았다... (생맥주잔을 들고 한 모금 마신다)
동료 2: (실망하며) 왜 이래……. 머리가 나쁜가. 하나도 못 맞추네.
아줌마: 치킨, 뜨거울 때 먹어. 응? (하고 접시에 남은 팝콘을 주워 먹으며 주방으로 돌아간다)
아저씨 두 명이 들어와 뒤쪽 자리에 앉으며
아저씨 1 아니. 저거 일요일 날 하는 거 아냐? 오늘이 일요일인가?
아저씨 2: 유선방송. 유선방송이잖아.
아줌마: (다가가서 재떨이를 놓으며) 뭐 드려요.
아저씨 1: 치킨이지 뭐. 프라이드 반 양념 반.
아줌마: 술은?
아저씨 2: 아 뭘 자꾸 물어봐. 그냥 생맥주 줘요.
아저씨 1: 아냐. 오늘은 그거 먹어보자. 버드와이저. 응? 버드와이저 두 병.
아저씨 2: 꼴같잖아 가지구는……. 아무거나 처먹지.
아저씨 1: 버드와이저. 모르냐, 너? (탁자에 맥주병이 놓이자) 오리지널로 제대로 읽으면 부드바이저다. 이 무식한 놈아. (TV 리모콘을 가져온다)
아저씨 2: 지랄…….
아저씨 1이 리모컨을 들고 채널을 바꾼다.
TV를 보고 있던 정혜의 동료들, 황당해하며 아저씨 1을 돌아본다.
아저씨 1 어. 아가씨들 보는 거였어?
동료 2: 아우. 아저씨. 한참 보고 있는데.
아저씨 1 축구 좀 볼라고. 그래. 응? 몇 대 몇인가만 볼게.
동료 1: (김샜다는 듯이) 됐어요. 많이 보세요.
그 상황에서 정혜는 아예 외면한 채 돌아보지도 않는다.
동료 1: (정혜의 표정을 보다가 자기 잔을 정혜의 잔에 부딪히며) 뭐, 생각해?
정혜: 아니. 아무것도.
동료 1: (TV로 시선을 돌리며) 낮엔 어디 갔다 온 거야?
동료 1: 그러게. 뭐했어요?
정혜: 집에 좀……. 고양이가 생겨서.
동료 1: 웬 고양이? (아줌마에게) 저희 팝콘 좀 더 주세요.
동료 2: (얼굴을 찡그리며) 난 고양이 싫은데. 종이 뭐야? 페르시안?
정혜: 아니. 잡종 같은데, 아직 요만-한 애기야. 움직이지 않으면 인형 같고...
동료 1: (TV에 시선을 둔 채) 왜 그랬어...
동료 2: (얼굴에 희색이 돌며) 안정환이다.
다시 TV 화면의 축구 중계를 보며 침묵하는 세 사람.
TV 중계 소리와 아저씨들의 슛해! 슛! 하는 소음만이 어지럽게 엉킨다.
정혜: 나 있잖아.
동료 1: ... 응?
정혜: 먼저 가봐야 되거든.
동료 1: 조금만. 우리도 금방 갈거야. (하고 다시 TV로 시선을 돌리는데)
동료 2: 나도 약속 있어. 요거만 보고 가요. 전반전만.
정혜: (잠시 눈치를 보다가 일어서며) ... 미안해. 대신 내가 계산하고 갈게.
동료 1: 에이. 왜 그래. 조금 더 있다 가면 안돼?
정혜: 걱정되거든. 집에 고양이 땜에.
동료 1: (잠시 정혜를 보다가) 난, 집에 신랑 있어. (하고는 하는 수 없다는 듯이 맥주 잔을 들고) 그래. 이거만 마시고 나가자.
정혜, 괜히 더 미안해진 표정이 된다.
25. 편의점 (저녁)
편의점 진열대에 서서 물건을 고르고 있는 정혜.
그녀의 바구니에 참치 캔이 여러 개 담겨진다.
잠시 뭘 더 살까 살펴보던 정혜, 계산대로 가다가 반대쪽 냉동고 앞에 서있는 한 남자를 본다.
(씬 23에서 우편취급소에 왔던) 남자는 냉동고 문을 연 채 하얀 냉기를 맞으며 뭔가 고민하고 있다. 그의 모습은, 물건을 고르고 있다기 보다는 마치 더위를 식히기 위해 서있는 것처럼 보인다.
점원: 아저씨, 거기 너무 오래 문 열어놓으면 안됩니다.
남자: (나쁜 짓 하다 들킨 사람처럼 당황하며) 아……. (냉동 식품을 집어들고 급히 문을 닫는다)
그를 잠시 바라보다가 점원에게 물건 값을 치르고 나가는 정혜.
인서트 A-2. 거리 (저녁)
몇몇 작은 술집들이 간판을 밝히고 있는 도로변.
이십대 초반으로 보이는 두 남녀가 택시를 잡기 위해 서있다.
두 사람 모두 일치감치 술에 절어서 비틀거리는데, 남자가 여자 핸드백을 든 채
도로 변에 나와 택시를 잡고 여자는 인도 위에 서있다. 택시가 멈춰 선다.
남자가 문을 열지만 뭔가 화가 난 듯 한 여자가 움직임 없이 서서 보고만 있다.
남자가 여자에게 다가가 팔을 잡아끌자 여자가 강하게 뿌리친다. 택시가 가버리고 남겨진 두 남녀. 남자, 다시 여자의 팔을 잡아끌려고 하는데 여자가 남자의 뺨을 후려치고. 남자, 반사적으로 핸드백을 들어 여자를 내리치는 시늉을 하자 여자가 흠칫하며 뒤로 물러선다. 두 남녀, 말없이 서로 노려본다.
26. 정혜의 아파트 / 거실 (밤)
거실 바닥에 놓아둔 고양이 밥그릇을 보는 정혜.
전혀 건드리지 않은 그대로다.
정혜, 바닥에 엎드려 소파 밑을 들여다본다.
고양이가 눈을 반짝이며 움직임 없이 소파 밑에 웅크리고 있다.
가볍게 한숨을 내쉬는 정혜.
(점프)
편한 옷차림을 한 정혜, 거실 탁자 앞에 서서 사무용 봉투를 열어 책 한 권을 꺼낸다. (씬 1의) 베란다에서 찾아냈던 낡은 책과 같은 <숲으로 간 아이>.
책 중간을 펼치면 동화책에 흔히 있는 삽화가 보여진다.
27. 정혜의 아파트 / 엄마의 방 (밤)
책장에 가득히 꽂혀있는, 하지만 잘 정돈된 책들.
그 중 동화책들이 나란히 꽂혀있는 섹션 중간에 (씬 25의) 책을 꽂아두는 정혜.
(모두 ‘한복희’라는 작가 이름으로, 열 권 정도)
(점프)
무릎을 꿇고 앉아 책장 아래 부분에 꽂혀 있는 작은 스케치북을 꺼내본다.
스케치북에는 페이지마다 다양한 동화가 습작 형태로 그려져 있다.
인서트 B-2. 정혜의 아파트 / 엄마의 방 (낮) - 기억
베란다 창을 통해 보이는 엄마의 방 안.
스케치 북을 앞에 놓고 한 손에 연필과 담배를 동시에 든 채 고민 중인 엄마의 뒷모습.
담배 연기가 마치 그녀를 감싸는 듯 한 분위기인데...
인서트 A-3. 정혜의 아파트 / 거실 (새벽)
어둑어둑한 거실 안.
홈쇼핑 채널이 켜져 있는 TV 화면.
28. 정혜의 아파트 / 거실 (이른 아침)
방금 잠에서 깬 듯 한 얼굴로 소파에 앉아있는 정혜.
허리를 숙여 소파 밑을 본다.
아직 고양이는 나오지 않은 듯하다.
협탁 위의 알람이 울린다.
(점프)
출근복 차림의 정혜, 비닐 봉투에서 멸치를 몇 마리 꺼내 한 마리 한 마리씩 소파 앞에서부터 참치 캔을 놔둔 자리까지 줄을 세워 놓기 시작한다.
소파에서 보이지 않는 안방 쪽에 몸을 숨긴 채 살며시 고개를 내밀고 본다.
그래도 고양이는 반응이 없다.
29. 우편취급소 (낮)
영업시간이 끝난 토요일 오후.
출입문에는 샤시가 반쯤 내려져 있고 동료 2와 정혜만이 앉아있다.
정혜는 낡은 장갑을 낀 채 소인의 날짜를 바꾸고 있고, 동료 2는 휴대폰으로 통화를 하며 카운터를 정리한다.
건너편 학교에서 운동회 연습을 하는 듯 마이크로 구령 소리가 에코우 되어 들려온다.
정혜, 장갑을 벗고 물티슈를 꺼내 손을 닦다가 책상 위의 얼룩 같은 것을 닦아 내려하고 있다. 친구와 약속을 잡는 동료 2의 통화 내용이 들린다.
동료 2: 지금 막 나가는 길이야. ... 응. ... 알았다니까 그러네. (정혜에게 표를 들어 보이며) 혹시 생각있으면 언니가 써요. (다시 전화에) 이거, 어떤 남자가 준 건데, 보지도 않고 영화 봤다고 거짓 말 해야 되게 생겼어. (정혜에게 손 흔들며 나간다)
정혜, 물티슈를 버리고 막 자리에서 일어서려는데 휴대폰 벨이 울린다.
정혜: 네.
고모: (소리) 고모야.
정혜: 아. 안녕하세요.
고모: (소리) 잘 지내?
정혜: 예.
고모: (소리) 가끔 전화라도 좀 하지 그랬어. 뭐 어려운 거 없니.
정혜: 아뇨. 없어요. (창가 쪽으로 가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