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전환기술에 대한 전략적 ICT R&D 투자
이승환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기술전략연구본부장
매년 다양한 기관에서 문헌 조사, 데이터 분석, 전문가 자문 등 연구방법론을 기반으로 미래 유망기술(emerging technology)을 선정해 발표하고 있다. 미국 메사추세츠공과대학교(MIT)는 향후 10년 이내에 실현되어 사회 경제적 파급효과가 클 것으로 예상되는 10대 유망기술을, 세계경제포럼 (WEF)은 향후 5년 내에 사회 및 산업을 변화시킬 10대 유망기술을 선정한다. 시장조사기업 가트너는 3~5년 내에 급부상할 것으로 예상되는 정보통신(IT) 분야의 유망기술이나 트렌드를 선정한다. 우리나라에서는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과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이 각각 향후 10년 내 R&D가 마무리되어 민간기업이 상용화를 시작할 수 있는 유망기술과 미래 신시장·신산업 창출을 위한 유망기술을 발표하고 있다.
이 유망기술들은 각기 다른 실현 시점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모두 미래의 변화를 예측하는 공통점이 있다. 그러나 이 변화가 언제 어떻게 산업적 기회를 제공할지에 대해서는 명확히 언급되지 않는다. 미래 기술 발전의 불확실성 때문에 그 경제적 영향을 정확히 예측하기 어렵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산업적 측면에서 이러한 변화는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거나 기존 시장에서 경쟁우위를 확보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따라서 기술전략의 방향성은 이러한 기회를 최대한 살릴 수 있는 혁신기술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혁신은 기존의 방식이나 생각을 넘어서 새로운 흐름을 만들 수 있는 변화이며, 이는 새로운 기회 창출의 가능성을 높인다. 한편, 정부출연연구기관의 R&D 결과가 적시에 산업발전에 기여하기 위해서는 변화의 시기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한정된 자원을 고려할 때 R&D가 너무 앞서거나 늦어서는 안 된다. 기술전략의 자원 배분은 미래 유망기술이 새로운 시장 기회를 형성하는 급변점(tipping point)에 맞추어 선제적으로 집중되는 것이 효율적이다.
이러한 변화와 기회의 관점에서,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ICT전략연구소에서는 메가 트렌드와 유망기술 연계를 통해 미래 변화와 동인을 분석하고, 이를 바탕으로 기술 발전이 만드는 변화 속에서 새로운 기회를 극대화할 수 있는 미래전환기술(Future Transformation Technology)을 도출했다. 미래전환기술은 지속적인 환경 변화와 기술적 발전에 대응해 새로운 패러다임을 창출하고, 이를 통해 미래의 기회를 선점하는 혁신적 접근의 기술을 의미한다. 이 기술은 새로운 기회를 창출하며 경쟁우위를 확보하는 데 기여할 수 있으므로, 미래의 지속가능한 성장과 발전을 위한 중요한 동력으로 활용될 수 있다. 이 글에서는 이러한 기술의 개념과 변화 전후의 모습을 중심으로 간략하게 소개하도록 한다.
1. 초실감 공간 컴퓨팅
‘스크린 중심’에서 ‘공간 중심’으로 변화
초실감 공간 컴퓨팅은 스크린 기반의 한계를 넘어 실제와 가상 공간에서의 컴퓨팅을 가능하게 하는 기술이다. 과거에 인류는 모니터, 키보드, 마우스를 활용한 소형 컴퓨터로 개인 컴퓨팅의 시대를 맞이했으나, 이후 터치 인터페이스의 등장으로 모바일 컴퓨팅이 발전하며 스마트폰 사용이 일상화되었다. 하지만 컴퓨터와의 상호작용이 여전히 불편하고 스크린 크기의 한계가 존재한다. 초실감 공간 컴퓨팅은 특별한 컨트롤러 없이도 자연스러운 상호작용을 가능하게 하며, 다양한 확장현실(XR) 장치를 활용해 보다 실감나는 컴퓨팅 환경을 제공할 전망이다. 애플의 비전프로 제품 출시는 삼성, LG, 구글, 메타, 퀄컴 등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의 경쟁 및 투자를 촉진하고 있으며, 게임, 영상 등 엔터테인먼트뿐만 아니라 업무용, 일상용으로도 활용이 확산되고 있어 해당 분야의 변화를 가속하고 있다.
2. 범용 로봇 지능
‘특수목적’에서 ‘다목적’으로 변화
범용 로봇 지능은 특정 작업이나 환경에 제한되지 않고, 다양한 조건에서 유연하게 적응하며 효과적으로 작동할 수 있는 로봇의 지능을 말한다. 현재의 특수목적 로봇은 특화된 작업이나 응용 분야에 맞춰 설계·제작되지만, 미래지향적인 다목적 로봇은 기존의 한계를 넘어서 다양한 환경에서 여러 작업을 수행할 수 있도록 유연한 하드웨어 구조와 프로그래밍을 갖출 것이다. 이러한 진화를 가능하게 하는 핵심 요소가 바로 범용 로봇 지능이다. 범용 로봇 지능의 주요 특징은 로봇이 단순한 단기 작업뿐만 아니라 복잡한 장기 작업까지 수행할 수 있는 범용 작업 지능과 제한된 실내 환경을 넘어 다양한 실내외 환경에서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는 범용 이동 지능이다. 이 분야의 발전은 테슬라, 엔비디아, 아마존과 같은 주요 기업들이 휴머노이드 로봇 개발에 투자하면서 더욱 가속화하고 있으며, 로봇 수요 증가는 리쇼어링과 노동력 부족 문제에 대응하는 동시에 로봇 기술의 혁신을 촉진하고 있다.
3. 우주 인터넷
‘로컬 무선’에서 ‘글로벌 무선’로 변화
우주 인터넷은 위성기술을 이용해 전 세계적으로 종단간 초저지연 모바일 인터넷 제공이 가능한 통신 인프라이다. 기존 이동통신의 무선 커버리지는 지상에서 수 km 수준에 그쳐 초저지연 서비스에 한계가 있었지만, 위성통신과 결합해 통신 범위가 전 세계적이고 입체적으로 확장된다면 초저지연 이동통신 서비스의 글로벌 제공이 가능해질 것이다. 이러한 입체통신 인프라는 우주 데이터센터, 우주 엣지컴퓨팅 등과 연동되어 우주 시대의 통신 인프라로서 역할을 강화할 전망이다. 위성통신이 6G 규격에 포함되면서 성장의 계기를 마련했고, 주요 국가들이 안보 차원에서 우주 인터넷 구축을 추진하며 이 분야의 발전이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
4. 맞춤형 AI 컴퓨팅
‘일반’에서 ‘특화전문’으로 변화
맞춤형 AI 컴퓨팅은 특정 도메인, 애플리케이션, 데이터 또는 디바이스의 특성이나 목적에 맞추어 특화전문화된 설계로 만들어진 AI 컴퓨팅을 의미한다. 이 방식은 일반적인 AI 컴퓨팅과 달리, 특정한 요구사항과 목적에 따라 AI 기술을 적용함으로써 보다 효과적이고 정밀한 결과를 얻을 수 있게 만든다. 이에 따라 테슬라, 구글 등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은 자사 서비스에 맞는 맞춤형 AI 컴퓨팅 인프라를 확보하기 위해 전용 AI 반도체 개발을 포함한 대규모 투자를 진행하고 있다. 자율주행, 의료, XR 등 다양한 용도에 최적화된 고성능·고효율 AI 컴퓨팅에 대한 수요는 AI 컴퓨팅 분야의 변화를 촉진하는 주요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다.
5. 이종집적 패키징
‘단일칩 최적화’에서 ‘다수 이종칩 패키징’으로 변화
이종집적 패키징은 다기능 고집적 반도체를 위한 첨단 패키징 기술로, 단일 칩의 성능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 개발되었다. AI와 고성능 컴퓨팅의 발전으로 다기능, 고성능, 저전력이 요구되고 있는데, 기존의 시스템 온 칩(SoC) 방식은 이러한 반도체를 집적하는 데 기술적 난이도와 제조비용 증가라는 문제를 야기한다. 이에 대응해 메모리, 로직, 통신, 전력관리, 센서 등 다양한 기능을 분리해 작은 칩 조각(칩렛)으로 제작하고 이들을 후공정 기술을 통해 하나의 패키지로 통합하는 이종집적 패키징 기술이 주목받고 있다. 이 기술은 반도체 시장에서 중요한 경쟁력을 차지하며, 반도체 기술패권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발전 속도 역시 빨라지고 있다.
6. ICT 융합기술: 디지털 뉴로케어
‘진단 AI’에서 ‘질병·예후 예측 AI’로 변화
디지털 뉴로케어(neurocare)는 뇌 질환 정복을 위한 디지털 예측 의료 기술을 말한다. 이 기술은 치매뿐 아니라 우울증, 불안장애 등 정신건강 영역을 포함한다. 특히 치매와 같은 뇌 질환의 경우, 조기 진단과 개인 맞춤형 치료제의 사용이 매우 중요하다. 미래의 의료 AI는 뇌 질환의 발병 시기를 조기에 예측해 사전 예방 관리를 할 수 있다. 뇌 질환 진단 후에는 개인 맞춤형 치료제 사용과 예후 예측을 가능하게 발전할 것이다. 초거대 AI 기술이 의료 분야에 빠르게 침투하고 있다. 의료기기 승인, 보험수가 적용 등 주요 국가를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는 의료 AI에 대한 규제 완화와 정책 강화는 디지털 의료 기술의 발전을 가속할 것이다.
7. ICT 융합기술: 디지털 지구 트윈과 디지털 파밍
AI와 ICT의 융합이 미래의 다양한 문제 해결에 핵심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맥락에서, 앞서 소개한 디지털 뉴로케어 이외에 기후변화 및 이와 관련된 농업 분야의 예시를 추가해 소개한다. 극한 기후의 증가로 자연재해 빈도와 피해가 커지며, 이에 대응하기 위한 기후 감시 및 예측 기술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기존의 수치예보 모델은 한계를 가지고 있어, ‘디지털 지구트윈(Digital Earth Twin)’ 모델과 같이 지구의 복잡한 과정을 디지털로 모사하는 접근이 기대를 모으고 있다. 또한, 스마트팜과 수직농업의 한계를 극복하는 방안으로 ‘디지털 파밍’이 주목을 받고 있다. 이 방법은 데이터와 로봇을 활용해 생산과 관리 과정을 자동화하고 무인화해 기후변화에 적응하고 지속가능한 식량 생산을 가능하게 하는 새로운 경로를 제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