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준영의 사이-코노믹스] ② 로봇이 온다! 클래스가 남다른 로봇 등장
3D 바이오프린팅 각막 재건, 모종 심는 로봇 등 다양한 기술 선보여
사람보다 말귀 잘 알아듣는 산업용 로봇 등장, 실시간 소통 가능
기술 노하우 단절의 시대에 로봇 대체로 노동생산성과 산업경쟁력 지속
곤충은 알→애벌레→번데기→성충 단계를 거치며 성장합니다. 비즈니스 모델도 비슷해서 기초·응용 연구개발→시제품 개발→기술 검증→상용화 순으로 커나갑니다. ‘류준영의 사이-코노믹스’는 ‘잘 나가는’ 딥테크(첨단기술) 스타트업을 분석합니다. 하나의 기술이 탈피 과정을 거쳐 생활에 쓰이는 제품·서비스로 바뀌는 과정을 보여드릴게요. 두번째는 여러 로봇 기술들을 소개합니다. 마징가류 로봇은 여전히 멀지만 여기 소개하는 로봇들은 곧 우리들의 삶을 바꾸어놓을 생활밀착형 첨단기술입니다. 이제 로봇이 옵니다. [편집자 주]
65세 남성이 한국과학기술연구원 이종원 박사팀이 개발한 웨어러블 로봇(MOONWALK)을 입고 등산하는 모습. / 사진=한국과학기술연구원
웨어러블 로봇 상용화에 주가 들썩?
2월 14일, 산업용 로봇 생산‧개발업체 삼익THK가 지난 7거래일 연속 상승세를 보이며 증권가 이목을 끌었다. 삼익THK는 삼성과 다관절로봇을 공동 개발하는 등 레퍼런스가 화려했지만 로봇 업종 평균 성적표보다 저평가를 받던 곳이다.
실제로 상당수 상장 로봇 기업들의 PBR(주가순자산비율)이 10, PER(주가수익비율)은 100을 넘는데 삼익THK의 PBR과 PER은 각각 1.18, 14에 불과하다. 로봇 대장주인 레인보우로보틱스의 경우 PBR과 PER이 46.15, 491.31 수준이다.
삼익THK가 이전에 없던 관심을 받았던 이유는 ‘웨어러블(착용형) 고관절 복합체 근력 보조 로봇’ 상용화에 본격 나선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다. “이르면 2026년부터 본격 제품양산도 가능하다”, “주변 아웃도어매장에서도 쉽게 구매할 수 있다”는 ‘핑크빛 전망’이 전해지면서 주가 상승을 이끌었다.
도대체 어떤 기술이기에 이렇게 큰 반응을 이끌어냈을까. 출처는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의 일상 보조 웨어러블 로봇 기술이다. 노화나 근골격계 질환으로 보행 기능이 저하된 고령자를 보조한다. 여기까지는 전에도 개발 소식이 간간이 전해진 무난한 설명이다.
로봇 입고 북한산 챌린지
새로 접한 소식들을 종합하면 전에 알려진 것과는 완전히 결이 다른 기술임을 알 수 있다. 이 로봇의 특징은 착용자의 보행상태를 AI(인공지능)로 실시간 분석한다는 것. 이를테면 계단, 평지, 경사로를 걸을 때 AI가 보행환경을 간파해 착용자 체형에 맞춰 알아서 지지해준다. 구체적으로 얘기하면 골반 양측에 장착된 4개의 초경량-고출력 구동기가 보행시 균형을 맞출 수 있도록 보조, 착용자 다리 근력을 최대 30%까지 강화한다.
연구팀은 실제로 65세 고령자가 이를 착용하고 북한산 영봉 정상(해발 604미터)에 오르는 북한산 챌린지를 시도해, 일상 환경에서 착용했을 때 애초 목적한 대로 성능이 잘 발휘되고 만족감도 크다는 점을 확인했다.
사용자 움직임을 예측하고 부족한 다리 근력을 지원하는 주기능과 함께 2kg대 무게로 가벼워서 휴대가 용이하다는 점, 타인의 도움 없이 10초 이내에 착용할 수 있는 디자인이라는 점 등이 상품성을 배가시켰다. 현재 기술 수준에 향후 2년간 추가적인 보완 연구와 상품·마케팅 전략 등이 이뤄지면 무난하게 시제품 생산에 이를 것이란 관측이 많다.
연구책임자인 이종원 KIST 박사는 “기존에도 다양한 형태의 웨어러블 로봇이 개발됐지만 무겁고 큰 부피로 인해 병원과 같은 실내 환경에서 환자의 재활 과정에 제한적으로 활용되는 수준이었다.”고 말했다.
'인간 증강' 시대… 거듭하는 진화
초고령화 사회에 접어들며, 업계는 기술 진화가 ‘기술과 인간의 융합’ 시대로 접어들었다고 말한다. 질병이나 장애, 노화로 인한 손상을 기술로 보완하는 것으로 흔히 ‘인간 증강’으로 표현한다. 3차원(D) 바이오프린팅과 바이오 인공장기를 대표적인 예로 꼽을 수 있는데, AI, 나노기술, 유전공학, 합성생물학 등 기술융합 범위가 넓어지면서 더 가속화되는 분위기다.
3D 바이오프린팅은 3D 프린팅 기술을 생체 재료에 접목한 적층 제조공정으로 생체재료, 살아있는 세포, 활성 생체분자 등을 원하는 형상이나 패턴으로 가공해 조직이나 장기를 제작하는 것이다.
포스텍(옛 포항공대) 교원창업기업인 바이오브릭스는 바이오잉크 소재와 바이오프린팅 장비 등 바이오 인공장기 기술 구현을 위한 원천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이곳은 여러 신체 기관 중 각막 기술에 특화됐다. 각막 손상 환자의 경우 현재는 안약이나 안연고 정도로 염증을 완화하는 약물밖에 없는 실정이다. 심해지면 각막 이식을 받아야 한다. 바이오브릭스는 3D 바이오프린팅 기술을 기반으로 각막을 재건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했다. 각막이 보유한 특이한 세포외기질의 조합을 보유해 매우 투명하고 체내 생리학적 기질 환경을 제공한다.
섬세한 근육 필요한데… 모 심는 로봇도 등장
인간과 기술 간 결합과 함께 로봇 제어 장치의 눈부신 발전도 고령화 시대 두드러진 R&D(연구개발) 트렌드 중 하나다. 이 또한 AI와 같은 첨단기술의 융합이 있었기에 진화에 진화를 거듭 중이다.
로봇 전문업체 코보시스는 전동특수차 전문업체 화인특장, 한국생산기술연구원과 '무인 자동화 스마트팜 정식* 로봇'을 개발했다. 이 로봇은 한쪽 로봇 팔이 모판에서 모종을 뽑아내고, 다른 팔로는 재배용 배지(培地)를 파낸 후 모종을 옮겨 심는 작업을 할 수 있다.
*정식: 定植, 온상에서 기른 모종을 밭에 내어다 제대로 심는 일.
로봇 전문업체 코보시스는 전동특수차 전문업체 화인특장, 한국생산기술연구원과 '무인 자동화 스마트팜 정식로봇'을 개발했다. 사진은 두 개의 로봇 팔로 모종을 이식하고 있는 정식로봇. / 사진=한국생산기술연구원
농가에선 평균 4~5개월에 한 번꼴, 2~3일 정도 모종을 심는 작업을 하는데 저출생과 고령화로 사람 구하기가 점점 어려워지면서 이 같은 로봇 제작이 구체화됐다고 한다.
무엇보다 여린 모종을 단단한 배지에 옮겨 심는 작업은 얼핏 단순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고난도의 기술이 요구된다. 모종이 다치지 않도록 쥐고 옮길 수 있기 위해서는 섬세한 근력이 요구된다. 그런 탓에 지금까지 사람의 손길 외에 기계화가 어려운 영역으로 인식돼 왔다.
특히 또 어려운 요인 중 하나는 토마토나 파프리카 등 식물마다 모종의 형상이 다르고, 또 같은 품종이라도 각각의 형상이 조금씩 다르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연구팀은 AI 학습을 통해 잎이나 줄기의 모양과 숫자, 높이가 다른 각종 모종의 형태를 로봇 스스로 인식할 수 있게 했다. 코코피트 배지라 불리는 인공토양은 길이, 두께, 모종을 심을 구멍의 크기 등이 다양한데, 이런 개별 특성을 파악해 모종이 심어질 위치를 인식하고 로봇 팔이 해당 위치를 스스로 찾아 작동하며 자동으로 정식이 이뤄지는 구조다.
이처럼 ‘촉각’과 같은 감각이 기계화가 가능한 영역으로 들어오면서 우리 생활에 적잖은 변화가 기대된다. 스웨덴의 생체공학 및 통증연구센터(CBPR)는 지난해 11월 ‘감각까지 느끼는 바이오닉 핸드’를 개발했다고 밝혔다. 뼈에 의수를 심고 전극을 근육과 신경에 심어 의수와 연결하는 방식이다. 섬세한 손동작 교정을 위한 AI 기술도 개발 중이다.
세계 최초, 로봇 작업 AI 기술 개발도
인간의 말귀를 알아듣는 산업용 로봇도 개발돼 화제다. 일일이 로봇 프로그램을 짜야 하는 수고를 덜어 향후 로봇을 다양한 분야로 확대하는 촉진제 기능을 할 것이란 전망이다.
한국기계연구원 인공지능기계연구실은 최근 사용자 명령을 이해하고 작업을 능동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AI 로봇을 개발했다. 언어를 학습할 수 있도록 생성형 AI ‘챗GPT’에 적용되는 '대규모 언어 모델'(LLM)을 장착했다. LLM은 통상 수십억 개 이상 언어 자료를 학습할 수 있는 인공신경망이다. 챗GPT는 3천억 개 이상 자료를 학습하고 인간의 피드백을 적용해 재학습하는 강화학습 방식으로 인간과 실시간 소통할 수 있다.
기계연이 개발한 로봇은 작업자의 말이나 문자를 로봇 언어로 번역한다. 예를 들어 “배터리 조립 작업 시작”이라고 하면 미리 알려둔 제조 라인에 서서 제품을 붙이고 옮겨 놓는 등의 일을 수행한다. 로봇 작업을 위한 특화된 인공지능을 개발해 실제 제조 현장에 적용한 것은 이번이 전 세계 처음이다. 현재 충북 청주 소재의 전기차 부품 생산업체 공정에 투입, 테스트 중이다.
집에 놓인 AI 스피커를 통해 커튼을 열고 보일러를 켜고 불을 끄듯, 언젠가 말로 공장, 가게, 학교, 공공기관 로봇의 모든 행동을 시키고 통제할 수 있는 시대가 곧 도래할 전망이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휴먼증강연구실 신형철 박사는 “농업, 어업, 제조업 등 산업 전반에서 중고령자의 기술적 노하우가 단절되고 있어 로봇 대체가 절실한 상황에서, AI와 같은 첨단기술을 접목해 노동생산성, 산업경쟁력을 지속하려는 시도 앞으로도 끊임없이 이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국기계연구원은 최근 제조업의 다양한 공정에 적용 가능한 로봇 작업 AI 기술을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 / 사진=한국기계연구원
글쓴이 류준영은
KAIST 과학저널리즘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고, 한양대학교 과학기술정책대학원 박사과정에 재학 중이다. 지디넷코리아, 이데일리를 거쳐 머니투데이에서 벤처·스터트업 분야를 취재하고 있다. 한국과학기자협회 선정 ‘2020년 대한민국과학기자상’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