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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최초의 사찰, 태조산 도리사
2015. 11. 4.
2015. 11. 3. "한국불교대학 大관음사 포항도량" 의 '10기' (기장 김영숙 보살)에서 15명이 가까운 구미시에 있는 도리사와 군위군의 인각사. 제2석굴암 그리고 대구시의 동화사로 단합할겸 가을 나들이 기도를 출발한다.
07:00 출발하여 고즈넉한 풍경이 마음을 편안하게 다스리는 신라 최초의 사찰, 태조산 도리로...
해동최초가람성지태조산도리사 일주문
신라시대 최초의 사찰, 도리사...
도리사는 440년(신라 눌지왕 24) 고구려의 아도(阿道, ?~?) 화상이 창건한 신라 최초의 가람으로 알려져 있다.
신라 19대 눌지왕 14년, 417년 경에 아도화상이 서라벌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이곳에 이르러 겨울인데도 복숭아꽃과 오얏꽃이 만발해 있는 것을 보고 절을 짓고 도리사라고 했다고 한다.
도리사 초입 느티나무 가로수길, 이 길이 산림청 지정 '아름다운 한국 가로수 62선'에 선정된 곳이기도 하다.
해동최초가람성지태조산도리사(海東最初伽藍聖地太祖山桃李寺)일주문을 지나고도 거의 4.7km정도를 더 들어가야 한다.
도리사의 불교 및 역사적 의의
신라에서 불교를 공인한 것이 514년(법흥왕 14)의 일이므로 도리사의 창건은 이보다 70여 년이 앞선다. 즉 신라 불교는 국가적으로 공인되기 이전에 이미 사회에 뿌리를 내리고 있었던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창건 사실은 워낙 오래된 일이고, 또 공식적 과정이 아니었기 때문에 정확한 기록으로 전하는 것은 아니다.
창건 이후의 변천 과정도 전혀 알려진 바가 없다. 다만 어느 시기인지 모르나 창건 당시의 가람이 있었던 태조산(太祖山) 기슭에서 지금의 자리로 이전하였다. 한편 1977년 경내에 있는 세존사리탑에서 8세기에 조성한 금동 육각사리함과 부처님 사리 등이 발견되어 세상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이로써 신라시대 도리사의 번성과 사격을 짐작할 수 있다.
절 아래에서 주차장 올라가는 길, 아름드리 소나무와 단풍나무가 일품이다.
잠시 뒤 코끝에 스치는 솔향기에 시선을 옮겨 바라보니 온 산천을 휘어 감고 있는 소나무의 향연이 펼쳐진다.
차창 밖으로 불어오는 가을바람과 진항 솔향기 그리고 하늘 높이 솟구쳐 오른 소나무 풍경... 시선을 압도하는 소나무....
그야말로 시선을 압도하는 풍경이 도리사로 가는 길목 운치를 더해준다.
도리사는 선산과 구미의 남북을 꿰뚫고 흐르는 낙동강의 동쪽, 구미시 해평면 송곡동 태조산에 자리잡고 있는 사찰로 신라19대 눌지왕(417년)에 고구려의 승려 아도화상이 불교가 없었던 신라에 포교를 위해 처음 세운 해동불교의 발상지이다.
우리 차가 제1주차장을 지나고, 우측으로 제2주차장을 지나면서 아름다운 만추의 진입도로를 거침없이 올라간다.
언젠가 도리사 올라오는 길도 이렇게 시원스레 되어 있다. 예전에는 절 바로 아래 주차장에 모두 차를 두고 와야 했는데 이젠 절까지 거뜬히 올라간다.
절 맨 마지막 주차장에서 바라본 전망
도리사 올라가는 길목에 인체의 한 부분(?)과 닮은 나무가 있다.
절 맨 마지막 주차장에서 도리사 입구 안내도로 올라가는 계단이다.
도리사 입구 풍경이다.
도리사 안내도
도리사 입구 정자 누각이다.
도리사 경내로 올라가는 돌계단이다.
설선당(說禪堂)
돌계단을 오르자 법회나 의식이 있을 때 사용하는 강당인 설선당(說禪堂)이 7칸 2층으로 다가선다.
설선당 현판 밑에는 보은전(報恩殿)이라는 현판이 또 있다. 보은전은 영구위패를 모시고 선망부모의 은덕을 기리는 곳이라고 한다.
가람을 향해 내려온 입수룡의 용맥이 아주 힘이 넘친다.....
템플스테이의 묘미인 발우공양을 체험할 수 있는 설선당 아래의 1층 보은전이 보인다.
좌측으로 도리사의 찻집...반야쉼터
반야쉼터에서는 은은한 녹차맛을 즐길 수 있다.
우측으로 수선료(修善寮)가 보인다. 아랫층은 공양간이고 윗층은 종무소로 사용되는데, 앞에서 보면 2층이지만 뒤에서 보면 단층구조다.
'부처님 마음처럼 흐르는 물' 이라 한다....
탐플스테이 한 분들의 흔적들....
수선료(修善寮)를 오른쪽으로 끼고 돌계단을 오른다.
수선료(修善寮)는 앞에서 보면 2층이고 뒷편에서 보면 단층구조로
아래층은 공양간, 윗층은 종무소로 사용하고 있다.
수선료를 뒤로 돌자 '동국최초가람(東國最初伽藍)' 현판과 그 좌측으로 '태조산도리사(太祖山桃李寺)' 현판이 걸린 단층구조이다.
적멸보궁으로 이동하면서 바라본 설선당의 모습이다.
도리사 경내 처마 밑에 걸어 둔 곶감이 익어가고 있다.
적멸보궁 108계단 오르기전 계단 밑에는 공덕비가...
적멸보궁으로 오르는 계단 앞에 해맑게 웃고 있는 천진동자불
도리사 적멸보궁은 108계단을 올라야 한다...
적멸보궁(寂滅寶宮)
불사리 예배소인 적멸보궁은 1982년에 주지 법등화상(法燈和尙)에 의하여 건립 되었으며,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에 총 19평이다.
1977년 도리사 중수중에 발견된 부처님 진신사리를 모셔 적멸보궁을 정립하였다 한다.
적멸보궁의 꽃무늬 문살이 곱다.
선방의 문고리 한번만 잡아도 삼악도행은 면한다고 하였는데...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모셔진 적멸보궁의 문살을 그림으로 새겨 보면서 팔정도를 생각한다.....
법당에서 바로 보이는 진신사리탑이다.
석가모니불의 진신사리(眞身舍利)를 봉안한 사찰 당우(堂宇) 가운데 하나이며 이 불전에는 따로 불상을 봉안하지 않고 불단(佛壇)만 있는 것이 특징이다.
적멸보궁 안의 장엄한 연등
적멸보궁의 인등이 너무나 이쁜 연등으로 꾸며져 있었다.
적멸보궁 안에서 바라본 문살
세존사리가 모셔져 있는 탑에 들어가는 출입문
석가여래 사리탑
석가여래사리탑은 높이 560cm에 폭 390cm로 형태는 고려시대 팔각부도(八角浮屠)를 본따 1987년 건립하였다.
팔정도(八正道)
깨달음과 열반으로 이끄는수행의 올바른 여덟 가지 길.
정견(正見), 정어(正語), 정업(正業), 정명(正命), 정념(正念), 정정(正定), 정사유(正思惟), 정정진(正精進)로 팔성도(八聖道)를 이른다.
세존사리가 모셔져 있는 탑, 출입문을 나선다...
적멸보궁에서 바라본 전망
적멸보궁 아래로는 설선당과 종무소가 있다.
도리사를 창건한 아도화상 동상을 지나 도리사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한 적멸보궁으로 올랐다. 도리사 사찰 내 아름다운 풍경을 조망할 수 있는 곳 중 적멸보궁을 빼놓을 수 없다.
설선당 지붕을 너머 굽이굽이 펼쳐지는 태조산 자락과 구미 시내를 한눈에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짙푸른 녹색의 푸른 산세를 바라보며 상처받은 마음의 짐을 내려놓기도 하며, 끝도 없이 펼쳐지는 산자락을 바라보며 세상만사 우리의 삶과 다름이 없음을 깨우치기에 이만한 장소가 있을까?
우리 일행들은 한 동안 넋을 놓고 바라보았다.
반야쉼터, 누구나 부담없이 쉬라는 곳...
범종각 앞의 현대조각물은 어쩐지 언밸런스한 분위기 ?
'아도스님 법음의 대종'이라 새겨져 있다.
범종에 비천상이 그려져 있다.....
범종각 아랫단에 조성해 놓은 화엄일승법계도 이런 조형물은 찾아 보기 힘든것....
"원융한 법의성품 두모습이 아니로다. 모든법은 변함없이 본래가 고요한데, 이름없고 모습없어 일체가 끊어지니, 깨닫는 지혜일뿐 지식으론 알수없네....................."
법성계(法性戒)
신라의 고승인 의상조사께서 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을 요약(要約)해서 그 진수(眞數)만을 모아 칠언절구(七言絶句)로 30구절(句節)총 210자로 지은 경구(經句)이다. 해인도라고도 한다.
범종각에서 바라본 적멸보궁
묵호자(아도화상)상 이다.
아도화상은 중국에서 현창화상에게 선도를 배워 19세에 자명을 받아 선산 도개부에 있는 모례의 집에서 굴실을 지어 거처하다가 시봉자가 늘어나게 되어 진기승지를 찻아 결암봉불 하던중 이곳에 오색도화가 설중에 만개하여 사호를 도리사라 하니 해동 최초 가람으로 신라불법의 초전법륜지인 것이다.
신라 불교 초전 법륜지로 성지화된 이곳은 1976년 아도화상이 신라에 불교를 전하려 올 때 모셔온 세존 진신사리가 세존사리탑 보수 공사중 금동육각사리함(金銅六角舍利函)에 봉안되어 발견되었다.
금동육각사리함은 8세기 중엽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이 되며 국보 제208호로 지정되어 현재 직지사 성보 박물관에 위탁 소장되어 있다.
아도는 중국 위나라 아굴마의 아들로 일명 묵호자라고도 한다.
신라 19대 눌지왕때 19세의 나이로 어머니 고씨도령의 명에 따라 고구려로 부터 신라에 불교를 전하기 위해 몰래 들어왔다.
당시 고구려와 백제는 이미 불교가 전파된지 오래이나 오직 신라만은 고유의 신앙과 왜래 문물에 배타적이어서 불교 포교에 대한 박해가 심했던 까닭이다.
그는 묵호자란 이름으로 지금의 선산군 도개면 도개동에 와서 모례의 집에 숨어서 낮에는 우곡에서 소와 양을 기르는 목동이 되고 밤에는 많은 사람을 모아 불법의 자비로운 진리를 강론하기를 3년이나 계속하였다. 그때 중국 양나라에서 사신으로 하여금 신라에 향을 예물로 보내왔으나 그 사용 방법을 아는 사람이 없어 걱정 해오던 중 모례가 아도에게 물으니 '그것을 불에 태우면 향기가 그윽하여 신성 하기가 이를데 없고 소원을 말하면 반드시 영혐이 있는 법이다. 신성이란 참에 지나는 것이 없다. 삼보란 불타, 달마, 승가 즉 부처님의 가르침이시라고 일러 주었다.'
그때 나라에서는 성곡 공주가 큰 병이 들어 여러 의원을 불러 온갖 약을 써 보았으나 효험이 없고 날이 갈수록 병은 더해갔다. 마지막으로 아도에게 치료를 청하니 아도는 향을 피우고 불공을 들였다. 그러자 신통하게도 공주는 병이 완쾌 되었다.
왕은 크게 기뻐하여 아도에게 큰 상을 내리고 흥륜사 등 일곱개의 절을 지어 주었다 한다.
그러나 왕이 승하한 후 불교에 대한 박해가 심해 아도는 금수굴(金水窟)이라는 곳에 들어가 숨었다. 이 굴은 사람들이 들어갈 수 없는 굴이었으나 아도가 들어간 후 불가에서 불공을 드리는 날이면 등이 환하게 밝혀져 있었다고 한다. 비록 아도의 포교는 성공하지 못했으나 그 공적은 크다.
경전의 내용은 진지하고....
설법당과 수선료 사이로 오르면 극락전 마당으로 이어지며 소나무를 병풍삼아 스님들의 선방인 태조선원(太祖禪院), 극락전, 삼층석탑 등이 한 눈에 들어온다.
그 중에서도 선지식인 전강 영신 큰 스님을 비롯하여 성철 큰스님이 이곳 도리사 태조선원에서 정진하였다고 하니 더욱더 눈여겨보게 된다.
나옹선사 선시비와 아도화상 동상
나옹선사 선시 "청산"
성안내는 그 얼굴이 참다운 공양구요
부드러운 말한마디 미묘한 향이로다
깨끗하여 티가 없는 진실한 그 마음이
언제나 한결 같은 부처님의 마음일세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하고
창공은 나를 보고 티 없이 살라하네
성냄도 벗어 놓고 탐욕도 벗어놓고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하네
태조선원(太祖禪院)은 정면 7칸, 측면 8칸의 ㄷ자형 건물로서, 크기는 총 50평이다. 내부에는 후불탱(1931년)을 봉안하였다.
스님들이 참선하는 곳으로 성철스님도 이 곳에서 수양을 하셨단다.
태조선원. 도리사 글씨는 오세창이 썼다.
7칸 팔작지붕의 건물에 '태조선원(太祖禪院)'현판과 도리사 현판이 나란히 걸려있다. 처마끝이 날렵하게 들어 올려져있는 것이 산뜻하다.
태조선원 주련
靈鷲拈花示上機 (영취염화시상기) 영산에서 꽃을 듦은 상기에게 보임이라
肯同浮木接盲龜 (긍동부목접맹귀) 눈먼 거북 뜬 나무를 만난 것과 같으리오.
飮光不是微微笑 (음광불시미미소) 가섭존자 빙그레 미소 짓지 않았다면
無限淸風付與誰 (무한청풍부여수) 한없는 맑은 바람 누구에게 주었으랴.
昆尼秘笈白 (곤니비급백) 선배들이 전해 주신 비밀한 법 밝히더니
次復須彌燈 (차부수미등) 다음에는 수미세계 등불을 밝히누나.
秘妙華一宗 (비묘화일종) 비밀하고 미묘한 일종의 꽃이 피고
玄奧陀羅果 (현오다라과) 깊고 깊은 다라니의 열매가 열리도다.
태조선원과 그 뒤로 보이는 정상이다..
극락전(極樂殿,경북문화재 자료 제318호) 전각과 그 안에 봉안된 아미타여래상은 각각 경상북도 문화재자료로 등록 되었다.
신라에 불교를 전한 아도화상이 지었다는 원래의 도리사는 불에 타서 없어졌으나, “도리사 금당암 중창기(1807년)”와 “선산 도리사 법당 중수기(1876년)”에 따르면 도리사에는 금당암(극락전)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극락전은 1870년에 중건된 경복궁 근정전의 공포 구성 양식과 매우 근접한 형식을 갖춘 조선시대 후기말 건축의 특징을 잘 드러내 주고 있다.
극락전의 외부 벽화
극락전에는 17세기에 향나무로 만들어진 목조아미타여래좌상(桃李寺 木造阿彌陀如來坐像)이 주존으로 모셔져 있다.
극락전 목조 아미타여래좌상(경북문화재자료 제314호)
1600년에 만들어 개금(改金)한 것으로 높이129cm, 견폭61cm, 슬폭93cm이다.
몸에 비해 머리가 크며, 평면적이고 네모진 넓은 얼굴이 당시 불상 조각의 양식을 엿보게 한다. 머리에는 낮은 나발(螺髮)에 작은 육계를 갖추었다.
양미간(兩眉間) 중앙에는 작은 백호(白毫)가 있으며, 이목구비(耳目口鼻)가 정연하다. 양팔에 걸친 통견의(通肩衣)는 양무릎을 덮고 있으며, 가슴아래 군의(裙衣)는 띠매듭 대신 앙연문상(仰蓮文狀)의 옷자락을 새긴 것이 특징이다.
도리사 극락전의 장엄한 닫집
향나무로 만들어진 도리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의 높이는 129㎝이며, 몸에 비하여 머리가 크고, 앞으로 구부린 듯한 자세이다.
수인(手印)은 양손을 무릎 위에 얹고 오른쪽 손바닥은 위로, 왼쪽 손바닥은 아래로 향하게 했다 [下品中生印].
머리는 나발형(螺髮形)이고, 낮고 작은 육계를 갖추었다.
양 미간의 중앙에는 작은 백호(白豪)가, 굵은 목에는 삼도(三道)가 뚜렷하게 새겨져 있다.
풍만한 얼굴은 별다른 특징이 없어 보이나 표정에는 위엄과 자비를 잃지 않은 조선시대의 원만한 불상 양식을 그대로 반영하였다.
극락전 탱화
팔작지붕에 측면 3칸의 다포식 건물인 극락전의 옆 면
단청이 바래고, 또 보조기둥에 의지해야만 설 수 있는가? 극락전의 옆모습이 어쩐지 위태해 보인다.
보조기둥 네개가 건물을 지탱하고 섰다.
도리사 삼층석탑(보물 제470호)
화엄석탑이라 부르는 이 삼층석탑은 고려시대의 석탑으로 우리나라 석탑 가운데 같은 유형을 찿아 볼 수 없는 특이한 형태로 조성되었다.
얆은 지대석을 놓고 장대석을 세운 기단을 만든 위에 판석으로 갑석을 삼고 그 위에 모전 석탑처럼 작은 석재로 쌓아 탑신부를 구성 하였으며, 윗 부분은 노반 위에 연꽃이 조각된 보주를 얹어 놓았다.
도리사 석탑은 도리사 극락전의 앞뜰에 세워져 있는 고려시대의 석탑으로 높이 3.3m 이다. 석탑의 기본형은 방형으로서 방형의 지대석 위에 기단이 놓이고 그 위에 탑신부와 상륜 등이 중첩되었다.
청동 포대화상은 처음에 석탑 앞에 설치돼 있었지만 문화재청과 구미시에서 철거를 명령하여 이렇게 옆으로 옮겨졌다.
인자한 포대화상과 배불뚝을 만지고 있는 아기동자가 귀엽다.
포대화상(布袋和尙)은 당나라 명주 봉화현 사람으로 법명은 契此(계차)이다.
뚱뚱한 몸집에 얼굴은 항상 웃으며 배는 풍선 처럼 늘어져 괴상한 모습으로 지팡이 끝에다 커다란 자루를 걸러메고 다니는데, 그 자루 속에는 별별 것이 다 들어있어서 무엇이든 중생이 원하는대로 다 내어주어서 포대스님이라고 불렀다.
무엇이든 주는대로 받아먹고 땅을 방바닥으로 삼고 구름을 이불 삼고서 어느 곳에서든지 벌렁 누워 태평하게 코를 골며 이마을 저마을 돌아다니면서 세속사람들과 같이 차별없이 어울리면서 길을 가르치고 이끌었다.
연꽃과 같은 삶이었다. 그는 자연과 더불어 자고 깨었으며 자연과 더불어 행하였고 대자연으로 돌아간 걸림없는 대자유인이었다.
"천백억으로 몸을 나누어도 낱낱이 참 미륵일세 항상 세인에게 나뉘어 보이건만 아무도 미륵임을 아는 이 없네"
게송을 남기고 반석위에 단정히 앉은채로 입적하였다.
국보 제 208호 세존사리탑(世尊舍利塔)
도리사 세존사리탑은 원래 칠성각 동북쪽 담장 밖에 있었던 것으로, 1977년 칠성각 옆에 새로 기단석과 난간을 만들었고 앞면 좌우에 석등(石燈)을 세웠다.
도리사 세존사리탑은 석종형(石鐘型)의 부도(浮屠)로서 하대석 3단은 새로 만들어 올려 놓았다.
3단의 상부는 복판(複瓣)으로, 복련(伏蓮)을 조각하였고, 하부에는 안상(眼象)에 초문(草文)을 양각하였다.
원래 4각형의 상대석에는 4우(隅)에 각기 사자의 두상을 조각하였다.
탑신의 하부에는 단엽10판(單葉十瓣)의 앙련(仰蓮)을 조각하였고, 중앙에는 아무런 문양이 없으며 상부에는 복련을 돌렸다.
보주(寶珠)는 상촉(上促)의 연봉형(連峰型)으로 만들었고, 이 탑을 이건할 때 탑신 밑에서 금동육각사리함과 사리 1개가 나왔다.
높이는 1.62m, 지대석 길이 1.3m, 탑신 높이 1.02m이다.
도굴로 인해 계곡에 방치된 것을 경내로 옮겨 복원하던 중(1977년) 금동육각사리함과 세존진신사리1과가 발견되었다고 한다.
도리사 삼성각 전경이다.
삼성각의 산신탱
삼성각의 칠성탱
삼성각의 독성탱
삼성각은 정면 3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이며, 총 7평이다.
삼성각 뒤쪽의 요사
아도화상 좌선대 내려가는 곳이다. 50m도 안되는 거리니 한 번 내려가 보면 좋다..
몇 걸음 내려가면 좌선대가 보인다.
우측 큰 것이 '아도화상사적비'이고, 좌측 작은 것이 '도리사불량답시주질비'이다.
경상북도 유형 문화재 제291호로 지정된 아도화상 사적비와 불량탑 시주질비는 도리사 남쪽 비탈진 송림에 남향으로 나란히 세워져 있다.
아도화상 사적비는 1655년(효종6)에 세운 것으로 아도화상이 신라에 불교를 전한 사적을 적은 것이며 배면에는 자운비가 음각되어 있다.
아도화상사적비(阿道和尙事蹟碑)자연석으로 전면에는 쌍용, 후면에는 4룡을 조각하고 그 사이에 운용을 조각하여 독특한 모양을 하고 있다.
배면(背面)에는 자운비(慈雲碑)가 음각되어 있다.
불량탑 시주질비는 도리사에 불량탑을 시사한 시주와 전답량을 기록한 것으로 1712(숙종38)에 세웠다.
비의 전.후면에는 양각한 연봉과 줄기가 조각되어 있고, 좌. 우측면에는 2단의 운조대가 있다. 그리고 정상의 중앙에는 보주가 새겨져 있다.
이 비는 승통 능철의 주관하에 조성되었으며, 석수 김성원이 글씨를 새겼다.
아도화상이 좌선을 하고 앉았던 자리라고 하는데 마치 고인돌을 닮아 있다.
아도화상이 참선 수행하며 좌선한 바위
아도 화상 좌선대와 사적비를 나와 ....
적멸보궁 앞을 지나...
우선 낙동강 조망을 위하여 서대(西臺)를 찾아간다.
솔향 묵상 코스, 도리사 소나무 숲 풍경
구미 도리사는 솔향 그윽한 산사에서 세상의 티끌을 벗어 놓고 자연과 하나 되는 참다운 지혜를 발견하는 수행정신을 꼽으며 수행자들과 함께 마음을 쉬어가며 정진을 한다.
주요 프로그램으로는 예불, 공양, 운력, 차담, 솔 숲 명상 외에 독서, 기도 등 스스로 알아차리고 자아성찰의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도와준다.
도리사 숲속명상터
도리사에서 시선을 사로잡는 소나무 숲 아래 명상터가 무척이나 인상 깊다.
솔향기를 마음에 담아 산사의 온화함을 느끼며 ‘내가 자연이고 자연이 곧 나’ 임을 느낄 수 있는 수행자가 되어 앉아 있고 싶은 생각이 절로 들 정도였다.
도리사 전망대 가는 나무테크길
도리사는 솔숲이 유명하다. 솔향기 그윽한 산길을 포행하면 마음이 가벼워 진다.
소나무가 뿜어내는 그윽한 솔향기에 몸과 마음이 어느새 무장해제
숲 속 명상터 못지않게 전망대의 풍경은 실로 아름답다.
도리사 서쪽 산기슭에 자리한 전망대에서는 수려한 낙동강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다.
도리사를 창건한 아도화상은 전망대 바로 위쪽에 자리한 누각 서대에 올라 김천의 황학산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저 산 아래에도 절을 지을 길상지지(吉祥之地)가 있다고 하여 그 곳에 절을 짓고 직지사(直指寺)라고 하였다는 설화가 전해진다.
특히 서대에서 바라보는 수려한 낙동강에서 피어오르는 운해, 일출 그리고 낙조가 유난히 아름답다고 하니 도리사를 찾는다면 빼놓지 않고 봐야 한다.
유홍준은 도리사에서 바라본 낙동강은 수려하다 하였다고...
서대(西臺), 구미일대를 전망할 수 있는 곳이다...
도리사 전망대 서대에서 바라본 낙동강과 주위 전경
전망대에서 가을 하늘을 본다.
동네이름이 왜 송곡리(松谷里)인지 알 만하지 않는가?
도리사 주위는 소나무 숲이 많다
솔밭은 있는 그대로 사람들을 평온하게 만든다.
이제 주차장으로 내려 간다.
가을 햇살만큼 가을 단풍만큼 바람에 실려오는 가을 향기만큼 곱고 예쁜 풍요로운 오늘이다....
45도로 뻗어 간다. 보기에는 좋은 각도 45도.....
오늘이라는 선물을 받았다.
오늘이라는 하얀 도화지에 무엇을 그려 넣을까?
알록달록 고운 단풍 밝은 햇살 졸졸맑은 시냇물까지~^^
우리 도반님들 마음안에 일곱빛갈 고운 무지개빛 행복으로 가득 그리는 함께한 참으로 좋은날 이었네요. 함께여서 더 좋았던 가을 여행길....
자~ 다음은 함께 경북 군위군 인각사로 떠나 봅시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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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관세음보살
늘~
감사합니다
참 좋은 인연입니다...*~*
당신은 부처님.......!!!!!
원공법계제중생
자타일시성불도
금강반야바라밀
염불 염법 염승............()()()
대단한 10기들
대단한 길상정 보살님
최고입니다 짱입니다
이번 토요일 철야대법회가 있습니다
신심에 열정을 더해서
꼭참가해주세요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감사합니다()()()관세음보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