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 최훈 |
1968년 밥 깁슨은 라이브볼 시대 최고기록인 1.12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했다. 그럼에도 깁슨은 9번(22승)이나 패했다. 패한 경기의 평균자책점은 2.14였다.
페드로 마르티네스는 체인지업을 완성한 1997년 1.90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했다. 하지만 마르티네스 역시 8패(17승)나 떠안았다. 그 8경기에서 몬트리올이 뽑아낸 점수는 모두 합쳐 10점에 불과했다.
프로야구 역사에서 에이스의 가장 불운했던 시즌을 꼽으라면 1986년 최동원을 빼놓을 수 없다. 그 해 최동원은 역대 8위에 해당되는 평균자책점 1.55를 기록했고 267이닝을 던졌다. 역대 1위부터 7위까지의 기록 중 또 다른 200+ 이닝은 선동열이 같은 해 기록한 3위 기록(262⅔이닝 0.99)뿐이다. 그럼에도 최동원은 14패(19승)를 떠안았다. 패한 경기의 평균자책점은 2.52였다.
깁슨이 1.12를 기록한 1968년은 메이저리그 역사상 최고의 투고타저 해였다. 그 해 내셔널리그의 평균자책점 평균은 2.99에 불과했다. 프로야구의 1986년 역시 역대 최고의 투고타저 해였다. 6명의 1점대 이하 투수가 나온 그 해, 프로야구의 평균자책점 평균은 3.08로 역사상 가장 낮았다.
선동열 : 24승 6패 0.99
최동원 : 19승14패 1.55
최일언 : 19승 4패 1.58
김용수 : 9승9패 26세이브 1.67
김건우 : 18승 6패 1.81
장호연 : 13승 9패 1.90
하지만 이는 선동열과 최동원이라는 두 '괴물' 때문이기도 했다. 그 해 투수들의 전체 성적에서 선동열과 최동원을 빼면 평균자책점은 3.08에서 3.23으로 0.15나 증가한다. 3.23은 프로야구 초창기와 크게 다르지 않은 수준이다.
39경기(21선발) 17완투(4완봉) 19승14패 1.55, 267이닝 208K
1986년 최동원은 21경기에 선발로 나서 17번 완투했다. 그 중 11이닝 완투가 2번, 10이닝 완투가 3번이었다. 최동원은 경기당 8.62이닝을 2.04의 평균자책점으로 막았다. 하지만 그가 선발 21경기에서 얻은 성적은 고작 10승10패. 완투가 아니면 승리를 따내지 못했으며, 완투하고도 7번을 패했다. 2번의 10이닝 완투패를 포함해 7번의 완투패 중 4번은 팀으로부터 1점도 지원받지 못했다. 선발로 나서 패한 10경기에서 최동원은 평균 8.4이닝 2.4자책점을 기록했다.
최동원은 19승 중 9승을 구원으로 나서 챙겼다. 하지만 그 역시 쉽게 얻은 승리들은 아니었다. 구원 등판한 18경기에서 평균 4.72이닝을 던졌으며, 승리를 얻은 9경기는 평균 5이닝이었다. 8이닝 무실점과 6⅔이닝 무실점 구원승을 따내기도 했으며, 9⅓이닝 무실점과 6⅔이닝 무실점으로 끝까지 버틴 경기가 무승부가 되기도 했다(구원 평균자책점 0.53). 1986년 최동원의 패전을 돌아본다.
4월19일 해태전(선발) : 9이닝 1실점
개막 후 5연승, 1985시즌부터 12연승을 질주하고 있던 최동원의 승리 행진에 제동을 건 것은 선동열이었다. 29세 최동원과 24세 선동열의 사상 첫 번째 선발 맞대결에서, 선동열은 개인 통산 첫 완봉승을 따내며 최동원에게 1실점 완투패를 안겼다. 최동원이 내준 1점은 3회 송일섭에게 맞은 솔로홈런이었다.
둘은 8월19일 다시 격돌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최동원이 2-0 완봉승을 따냈다. 선동열은 비자책 2실점 완투패. 이 완봉승으로 최동원은 하기룡(9완봉)보다 한 발 먼저 프로야구 최초의 10완봉 고지에 올랐다.
5월14일 삼성전(구원) : 4⅓이닝 0자책
3-2로 앞선 9회말. 4회부터 나와 던지기 시작한 최동원은 1사 만루 위기에 몰렸다. 3루수로 향한 배대웅의 강습 타구. 하지만 3루수 한영준이 가랑이 사이로 빠뜨리는 실책을 범하면서 경기가 끝났고 최동원은 무자책 패전을 안았다.
5월18일 청보전(선발) : 9이닝 3자책
삼성전 패배 후 하루 쉬고 나선 MBC전에서 3⅔이닝 구원승을 따낸 최동원은, 다시 하루를 쉬고 청보전에 나섰다. 그리고 8회까지 팀의 3-2 리드를 지켰다. 하지만 마지막 9회초를 버티지 못하고 2실점, 결국 완투패를 안았다.
6월18일 OB전(구원) : 6⅔이닝 1실점
4회 1사에서 선발 양상문에 이어 등판한 최동원은 9회까지 무실점으로 버텼다. 하지만 0-0으로 맞선 10회초, 대타 유지훤에게 결승 적시타를 맞았다. 이 해 마지막 날까지 계속된 OB전 악몽의 시작이었다.
6월26일 MBC전(선발) : 9이닝 4실점
MBC는 최동원이 가장 강했던 팀. 5월27일 완봉승으로 10연승을 달성, 자신(해태전)과 장명부(MBC전)가 가지고 있던 9연승의 특정팀 최다연승 기록을 경신했다. 하지만 최동원의 기록은 이날 막을 내렸다.
1-0으로 앞선 2회 4점(김재박 역전 결승타, 김상훈 추가 2타점)을 내주며 1-4 역전을 허용한 최동원은 이후 경기가 끝날 때까지 무실점으로 버텼다. 하지만 롯데는 끝내 2-4로 패했다. MBC로서는 최동원을 상대로 1년17일 만에 거둔 승리였다.
7월13일 청보전(선발) : 10이닝 2실점
최동원은 8회 1사까지 청보 타선을 퍼펙트로 막는 등 9회까지 1피안타 1볼넷 무실점으로 버텼다. 하지만 롯데 역시 재일교포 투수 김신부로부터 1점도 뽑지 못했다. 8회 최동원의 퍼펙트를 깼던 청보의 신인 김동기는, 10회초 무사 1,3루에서 다시 결승타를 날렸고, 최동원은 10이닝 완투패를 떠안았다.
첫 18경기에서 12승(4패)을 따냈던 최동원은 6월1일 삼성전부터 이날까지 7경기 4연패의 늪에 빠졌다. 구원으로 9⅓이닝 무실점과 4이닝 무실점을 기록한 경기가 무승부로 끝났으며, 4패 중 2패는 완투패였다.
8월2일 빙그레전(선발) : 7⅓이닝 5실점
최동원이 1986년에 당한 가장 확실한 패배. 7회까지 1실점으로 버티다 8회 4실점으로 무너졌다. 반면 15연패 늪에 빠져 있던 장명부는 9이닝 동안 12안타를 맞으면서도 1실점으로 버텨 한국에서의 마지막 승리를 완투승으로 장식했다. 결국 장명부는 22경기 1승18패 4.98를 마지막으로 유니폼을 벗었다.
이 해 최동원은 신생팀 빙그레전에 2경기밖에 나서지 않았다. 하지만 18⅓이닝에서 10점을 내줬다. 빙그레전을 제외하면 평균자책점은 1.55에서 1.30으로 떨어진다. 해태 0.65(3승2패) MBC 0.76(6승2패) 삼성 1.74(4승2패) OB 1.74(3승4패) 청보 1.86(2승3패 2세이브)으로 나머지 팀은 모두 2.00 미만이었다.
8월6일 해태전(구원) : 5⅔이닝 2실점
3-3으로 맞선 연장 11회말. 6회부터 나와 던진 최동원은 2사 만루 위기에 몰렸다. 6회말에 동점타를 허용했던 한대화에게 선두타자 안타를 맞은 것이 화근이었다. 결국 최동원은 조충열에게 끝내기안타를 맞고 말았다.
8월14일 청보전(선발) : 7⅔이닝 1자책
배탈에도 마운드에 오른 최동원은 7회까지 1실점으로 호투했다. 1-1로 맞선 8회, 최동원은 2사 1,2루에서 김바위를 1루 땅볼로 유도하고 베이스 커버를 들어갔다. 하지만 1루수 김민호가 던져준 공을 놓쳐 통한의 결승점을 허용했다.
8월24일 MBC전(선발) : 8이닝 1실점
최동원은 2회 박흥식에게 적시타를 맞은 후 더 이상 점수를 내주지 않았다. 하지만 롯데는 1점도 뽑지 못했고 경기는 1-0으로 끝났다.
9월4일 OB전(선발) : 10이닝 3실점
최동원은 9회까지 무실점으로 버텼다. 하지만 롯데도 최일언에게서 1점도 내지 못했다. 결국 6일 동안 22이닝을 던진 최동원이 먼저 무너졌다. 최동원은 10회초 2사 2루에서 김형석-이승희-유지훤에게 3연속 적시타를 맞았다.
9월17일 OB전(선발) : 8이닝 2실점
이 패배가 아니라면 1986년 최동원은 불운하지 않을 수도 있었다. 20승을 거둬 3년 연속 20승을 달성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8회까지 1실점으로 버틴 최동원은 완투승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하지만 3-1로 앞선 9회말 일이 벌어졌다. 무사 1루에서 등장한 선수는 김형석. 9월4일 경기에서 자신으로부터 결승타를 뽑아낸 타자였다. 복수심에 불타던 최동원은 볼카운트 2-0에서 바로 승부에 들어갔다. 하지만 공은 가운데로 몰렸고 담장을 넘어가는 동점 투런이 됐다.
허탈해진 최동원은 신경식에게 3루타를 허용했다. 신경식이 실책을 틈타 홈을 밟으며 경기 종료. 최동원의 20승이 날아나고 OB의 포스트시즌 진출이 확정된 순간이었다. 이 해 최동원은 가장 많은 4패를 OB에게 당했다. 그리고 3패가 쓰디 쓴 패배였다. 1986년 최동원에게 가장 큰 아픔을 안겨준 팀은 바로 OB였다.
첫댓글 기록을 보니...대단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