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마을과 경주의 석굴암보다 100여년 앞서 조성된 최초의 석굴사원, 제2 석굴암
2015. 11. 6.
2015. 11. 3. "한국불교대학 大관음사 포항도량" 의 '10기' (기장 김영숙 보살)에서 15명이 가까운 구미시에 있는 도리사와 군위군의 인각사 . 제2석굴암 그리고 대구시의 동화사로 단합할겸 가을 나들이 기도를 출발한다.
07:00 출발하여 09:00 에 시작하는 사시예불 기도 시간을 마추어 고즈넉한 풍경이 마음을 편안하게 다스리는 신라 최초의 사찰, 태조산 도리사와 경북 군위군의 인각사. 군위댐을 보고 같은 군위군 부계면 남산리 302번지에 위치한 제2석굴암으로 향한다...
대구와 칠곡 동명에서 팔공산을 넘어도, 중앙고속도로 가산 나들목에서 효령를 거쳐 부계에 들어와도 한 시간이면 족한 군위군 부계면 팔공산 자락.
대구·경북사람이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오래전부터 팔공산은 시·도민들의 최대 휴식처로 자리잡았다.
특히 지난 여름 열대야로 한달여 동안 잠못이루는 밤을 보낸 많은 시·도민들이 제일 먼저 찾은 곳도 팔공산이다. 어느덧 11월 초입에 선 지 늦은 가을. 과수원의 사과는 이미 붉은 빛으로 물들어 있으니 가을을 앞두고 팔공산 구석구석을 돌아보며 자연의 정취를 만끽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싶다.
점심 식사 후 들러본 군위 한밤 마을이다.. 군위군 제2석굴암 삼존석굴로 가기전 한밤마을을 지나 간다.
내륙의 제주도인 한밤 전통마을이 있다는데 가을 자연의 정취를 만끽하며 한바퀴 돌아나 볼까나?
한밤마을 초입에는 오래된 솔숲이 있다.
대구와 3, 40분대에 위치하고 있는 한밤마을은 일제가 행정구역 이름을 한자로 정비하기 오래 전부터 정겹게 써 온 예스런 마을 이름이 있었으나 일제의 행정구역 개편에 의해 큰 대(大)자에 밤 율(栗)자를 쓰는 대율리(大栗里)로 바뀌었다.
한밤마을. 집집이 오래된 돌담으로 둘러싸인 동네다. 고샅이 거미줄처럼 엮어져 있어 한번 들어가면 출구를 찾기 힘든 미로와 같다.
어귀에 들어서는 순간 마음이 ‘무장해제’되는 우리네 고향 옛 마을. 이제는 거의 사라지다시피한 이런 풍경이 아직 남아 있는 한밤마을에 발을 들인다.
대율리는 '육지의 제주도'라 불리는 한밤전통마을이 자리하고 있는데 이 곳은 집집마다 돌로 담장을 쌓아 마치 제주도에 온듯한 착각을 일으킬 정도.
한밤전통마을의 명물로 알려진 높이 1.5m, 폭 50cm의 돌담은 담쟁이 넝쿨 등이 뒤덮고 있어 가을의 운치를 더해주고 있다.
한밤마을은 경북 군위군 부계면에 자리한 전통마을이다. 팔공산에서 흘러온 물줄기가 한밤마을의 동쪽과 서쪽 양편에서 지나다가 북쪽에서 만나 남천을 이룬다.
이 마을은 950년경 남양 홍씨에서 갈려 나온 부림 홍씨의 시조 홍란이란 선비가 입향하면서 촌락을 형성했다. 그 무렵 의홍 예씨, 신천 강씨 등도 마을로 들어왔으나 모두 떠나고 현재는 여양 진씨, 전주 이씨, 예천 임씨, 영천 최씨, 고성 이씨 등이 부림 홍씨 일족과 어울려 살고 있다.
경북 군위 한밤마을의 돌담길. 한밤마을은 미로처럼 엮인 돌담과 고샅길이 농촌의 맛을 더욱 나게 한다. 이 돌담들은 전문 장인이 아니라 마을 주민들 스스로가 세대를 이어가며 쌓은 것으로, 우리 민족의 미적 감각과 향토적 서정성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문화유산이다.
돌담은 마을의 최고 가치 주민들도 이를 최고의 상품으로 여기고 있다.
주민들은 문화재청에서 돌담을 문화재로 지정하려고 하자 “주민생활과 지역 개발에 불편이 따를 수밖에 없다” 며 “등록되지 않더라도 주민들이 돌담길은 잘 보존할 것”이라며 문화재 등록을 반대해 더 이상 진전이 없다.
돌담은 이 오래된 마을을 살다간 백성들의 애환을 침묵으로 증언하는 이 마을의 역사라 해도 지나치지 않으리라. 주민들 말대로 문화재로 등록되지 않더라도 그동안 조상의 문화유산을 잘 지키고 보존해왔던 것처럼 보전되리라 본다.
한밤마을의 돌담길은 두 유형으로 분리된다. 좁은 길과 넓은 길. 사실 대부분이 좁은 길이었다.
넓을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60~70년대 새마을운동의 열풍이 불면서 많은 길이 ‘초가지붕 없애고, 마을길도 넓힐 때’ 변화의 바람을 따랐다. 물지게를 지고 가면 서로가 피해주어야 지나가던 길인데, 이제는 거뜬히 차량이 통행한다.
그러나 아직까지 옛담 그대로가 남아 있는 구석구석이 있다. 정비를 하지 않았으니 담도 삐뚤빼뚤 쌓였고, 폭도 좁다. 하지만 거기에는 세월의 흔적과 무게가 고스란히 남아 있다. 푸른 이끼가 돌담을 덮고 있다. 호박덩굴이 그 담을 자연스럽게 타고 넘는다. 애써 가꾸지 않아도 아련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며 마음을 푸근하게 만드는 그런 길이다.
돌담길이 정겨운 한밤 마을을 나와서 제2 석굴암으로 향한다...
제2석굴암은 한밤마을에서 대구 방면으로 약 5분 거리에 있다.
제2 석굴암 입구 송림이 한밤마을 못지 않게 좋다.
제2석굴암 입구 솔밭인데 여러 각도에서 바라 본 풍경이 너무 아름다웠다.
신선들이 거닐었을 듯한 잘생긴 소나무숲길을 걸어서 들어 간다.
주차장에서 상가를 지나 약5분여를 걸어서 들어간다
해탈교를 지나니 팔공산 전통문화교육원이 있다.
제2석굴암 중창 공덕사적비 이다.
공덕비 뒤로 범종루가 보인다.
광명선원
새로 지은 건물이 스님들이 수행정진 하시는곳이다.
광명선원 마당 입구의 대나무림이 선원을 감싸고 있어 제2 석굴암을 들어 가면서는 선원이 보이질 않는다.
선원 바로 앞의 요사
요사 옆의 제2석굴암 사적비
제2석굴암 앞마당에는 석조비로자나불 좌상(경상북도 유형문화제 제 258호)이 있다.
본절인 비로전 이다.
비로전의 삼존불
비로전 영가단의 목각신중탱
비로전의 목각 칠성탱
비로전 내부 벽화
삼존석불 모전석탑(경상북고 문화재자료 제241호)
단층 기단부에 단층의 탑신부를 특이한 형태로서 통일신라시대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고 탑신부는 근세에 다시 축조되어 원형에서 변경 되었으나 탑신을 유지하고 있는 귀중한 유산이다.
1991년 경상북도 문화재 자료 제 241호로 지정 되었다.
통일시대에 건립 된것으로 추정하는데, 탑신부는 근래에 다시 축조되어 원형에서 변형되었으나 본래의 탑형을 유지하고 있다. 본래는 3층 탑이었으나 1949년에 現 모습대로 복원하였다.
절벽 아래 모전석탑 뒤로 참배할 수 있도록 노천법당을 마련해 두었다.
이곳이 삼존석불을 참배하는 재단으로 앞에 보이는 계단은 출입이 통제 되어 있다.
제2석굴암 삼존석불(국보 109호)
신라 불교의 초기때인 소지왕 15년(493) 극달화상이 창건했다고 전해오고 있다. 석굴은 화강암으로 구성돼 하나의 이상적인 자연석굴 사찰을 이루고 있다.
지상에서 약 20m의 높이에 동남쪽을 향해 팔공산 상상봉을 바라보며 자연암벽의 단애에 삼존석불이 안치돼 있다. 굴의 입구는 높이가 4.2m, 거의 둥근 모양을 하고 있는 굴속 길이는 4.3m로 평면바닥은 네모 반듯하며, 천장은 하늘형상이다.
석굴에는 본존인 아미타불이 중간에 자리하고 있으며 오른쪽에는 대세지보살, 왼쪽이 관세음보살로 두 보살의 호리가 본존쪽으로 약간 틀고 있어 모양새가 자연스럽고 큰 후광 둘레에는 불꽃무늬가 새겨져 있다. 특히 석굴에서 바라보는 팔공산은 아늑하다 못해 신라 사람들이 산이나 개울에도 신앙으로 인한 깊은 인연으로 맺어지기를 바랐던 마음씨를 읽을 수 있는 흔치않은 대목이다.
군위 제2석굴암 회주 법등 스님은 "군위 제2석굴암 삼존석불은 경주 토함산의 석굴암보다 1세기 정도 앞서 조성돼 세계 유네스코 문화재로 등록해도 손색없는 우리의 보물로 신라시대 원형이 그대로 보존된 세계적인 석불"이라고 말했다. 스님은 특히 "팔공산에는 한때 8만9 암자로 불성의 정도를 가늠케 해주고 있다"고 덧붙였다.
삼존석굴은 절벽 전체와 어울려 이국적인 풍광을 연출하고 있는데 오전이면 햇살이 삼존석굴 안으로 들어가고, 점심 무렵이면 굴을 떠나 다시 어둠에 잠기도록 경이로운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있다.
삼존불 아래의 다리를 건너 삼성각으로 오르는 길을 간다.
삼성각 가는길이 호젓하니 참 이쁜 오솔길이다...
삼성각으로 가면서 바라본 비로전의 뒷 자태
가파른 절벽위에 삼성각이 자리하고 있다.
기도가 절로 될것만 같은 제2석굴암 삼성각이다...
삼성각 외부 벽화
삼성각 내부이다.
삼성각 내부 벽화
다시 삼성각을 내려 간다.
다시 비로전의 뒤태를 보며 다리를 건너 비로전 마당에 다시 선다...
만추의 고즈넉한 정취를 보여주는 경북 군위 제2 석굴암의 아름다운 풍경화
대한불교조계종 제2석굴암은 팔공산 비로봉에서 뻣어나온 군위군 부계면 남산리 쪽에서 거대한 바위산 절벽을 이루고 있고 절벽허리 20m 높이에 남쪽으로 향한 둥근 천연동굴에 삼존불상을 봉한 하였으니 제2석굴암 삼존불이다
이 석굴은 1550년 전 신라에 불교를 전한 고구려 승려 아도화상께서 수도전법하던 곳이며 그 후 원효대사께서 아미타불을 조성, 봉안하시고 해동제일의 석굴사원으로 신라불교의 근본도량이 되었다.
이 삼존석불 (국보제 109호)은 제2석굴암 이라는 이름 때문에 경주 토암산보다 뒤에 축조된 느낌을 주지만 실재로는 경주 토암산 석굴암 보다 약 100여년 정도 먼저 만들어 젔다고 한다.
거대한 절벽 바위벽 동굴에 대세지보살, 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삼존불이 봉안되어 있는 모습은 신기하기만 하다,
석굴의 발견과정은 1927년 11월 20일 이곳 한밤 마을에 최두환 이라는 사람이 마을 앞 돌산 꼭대기 소나무에 밧줄을 매고 수직으로 내려가다 절벽 50m쯤 내려갔을 때 이 굴을 발견 했다고 한다.
석굴은 깎아지른 화강암벽의 1/3쯤, 지상에서 6-7m 정도의 높이에 자리잡고 있다.
동그랗게 파인 자연암굴의 안쪽에는 한분의 부처님과 두분의 보살님이 모셔져 있었다고 한다
이 석굴은 재발견 후에도 40년간 묻혀 있다가 1962년이 되어서야 세상에 알려저 국보(제109호)로 지정 되었으며 , 1963년에는 박정희 대통령이 이곳을 찾아 당시 돈으로 3000만원을 시주하여 계단을 조성하고 주위 정비를 하였다고 한다.
계단을 만들어 놓고 난 다음부터 석굴암 앞에는 밤에 촛불을 켜 놓고 가는 사람이 많아 출입을 금지시키기 위해 계단 입구를 봉쇄하였다. 그리고 1985년 까지는 석굴 하나만 달랑 있었고 집도 절도 없는 황무지 였으나 여러 어려움 끝에 지금처럼 비로전과 선원과 교육원을 가지게 되었다.
또 제2석굴암에는 경상북도문화재자료 제241호인 군위 삼존석굴 모전석탑과 경북유형문화재 제258호인 군위 삼존석굴 석조비로자나불좌상이 자리해 있어 원래 이 곳이 신라시대 사찰터였음을 아울러 알려주고 있다.
전해오는 이야기로 5세기 경 신라에 불교를 전한 고구려 고승 아도화상이 수도 정진한 굴이 바로 군위 삼존석굴이라고 전하고 있어 삼존석굴의 유구한 역사를 짐작하게 한다.
현재의 사찰은 이곳에 1961년 임시법당을 세운 것을 모태로 지금까지 가람을 일구어 나갔으며 현재 군위 지역의 대표사찰로 알려지게 됐다.
극락교에서 바라본 전경이다.
극락교를 건너서 절 방향의 풍경이다.
이제 극락교를 지나 상가 입구로 나가면서 솔숲 사이로 바라본 팔공산전통불교교육원이다.
제2석굴암 바로 옆....솔밭이 인상깊게 눈에 들어 온다. 오랜 시간을 견디며 자란 소나무의 기상이 아우러져 멋있는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입구 상가에서 잘익은 가을 열매 몇알을 사서 79번 국도에 합류하는 길로 한티재를 넘어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에 뽑힐 정도로 운치가 있는 길을 넘어 간다.
길이 구불구불 이어져 한걸음에 내달리지 못 하게 만드는데, 그것은 비단 길이 그렇게 생겼기 때문만은 아니다. 주위로 우거진 숲이 아름다운 데다가, 가을을 물들이는 단풍이 자동차 바퀴를 매어 놓는 이유가 더 크다.
파란 가을하늘, 맑은 햇볕, 상쾌한 바람이 함께하는 가을은 참 좋은 계절인것 같다. 좋은계절 처럼 우리 도반들에게도 늘 좋은일만 가득 하였으면 좋겠다...
이제 또 길을 달려 대구 동화사로 향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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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감사합니다.
마하반야바라밀((()))
관세음보살()()()
참 좋은 인연입니다()()()감사합니다()()()관세음보살()()()
대구에서 먼거리가 아니라서![~](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28.gif)
가끔 한번씩 다녀옵니다
넘 아름다운곳이지요
관세음보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