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유품정리사의 기록
50대 아들이 떠난뒤,매맞는 할머니 마지막 부탁
몇 년 전 청주에 있는 한 아파트 관리실로부터 의뢰를 받았다.
입주자 대부분 홀로 거주하는 곳이다. 고독사와 같은 일이 잦다. 사건이 생겨도 유가족이 뒤처리를 거부한다. 아예 가족을 못 찾는 경우도 많다. 그러면 무연고자 처리가 되기 때문에 결국 아파트 관리실 측에서 연락해 올 때가 많다.
더러 의뢰를 받는 현장이기 때문에 홀로 살던 어르신의 죽음으로 알았다. 막상 가 보니 고인은 50대 초반의 남성이었다.
집 안은 치우지 않은 음식물이 말라 비틀어져 있었고, 설거지 거리가 널부러져 있었다. 물론 그보다 더 많이 방 안에 뒹구는 건 술병들이었다.
간단히 묵념을 하고 유품정리를 시작했다. 먼저 사고가 발생한 장소의 흔적을 먼저 치우기 시작했다. 술병은 한 곳에만 쌓여 있는 것이 아니었다. 시신이 있던 자리에도 술병이 굴러다녔다.
‘술을 너무 많이 드셨네.’
내가 가는 고독사 현장의 70% 이상은 술병이 가득했다. 내가 하는 일은 과도한 음주가 얼마나 건강을 해치는지 몸소 느낄 수 있는 직업이기도 하다.
이런 현장에 가 보면 술병만큼이나 굴러다니는 것이 동전이다. 왜 그럴까. 늘 보지만 아직도 납득할 만한 이유를 모르겠다. 나도 이유를 모르겠지만, 이상하게 동전을 보면 줍지 않고 견딜 수가 없다. 10원짜리는 그냥 지나칠 법도 한데, 장갑을 껴서 무뎌진 손으로 부패물에서 흘러나온 기름기가 잔뜩 묻은 동전을 줍는다. 나도 내가 왜 이걸 줍고 있는지 답답할 때가 많다.
이렇게 고인의 집 안 곳곳에서 주워담은 동전들은 깨끗이 씻고 말려 유가족에게 전달하지만 손도 대기 싫어하는 이들도 있다. 무연고자인 경우 전해줄 이들도 없다. 나는 그렇게 버려진 동전들을 모아놓았다가 연말 자선냄비에 한꺼번에 기부하곤 한다.
이번에도 한창 청소를 하며 동전을 줍고 있을 때였다. 웬 할머니 한 분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어…. 무슨 일이세요?”
고독사 현장은 굳이 막지 않아도 누구든지 들어오는 것을 꺼려 한다. 갑작스러운 노인의 등장에 나는 적잖이 당황했다.
“내가… 내가 이 집에 살아요….”
“네?… 네?”
고독사 현장이기 때문에 누군가 같이 살 것이라곤 생각을 하지 못했다. 관리실 직원이 출근하기 전에 일부터 시작했던 터라, 고인에 대한 아무런 이야기도 듣지 못한 상황이었다. 정말 당황스러웠다.
이런 임대아파트의 비밀이라고나 할까. 사실은 가족이 함께 사는 경우도 있지만 전입신고를 하지 않는다. 근로 능력이 있는 자식이나 형제가 함께 살게 되면 복지 혜택을 받을 수 없기 때문이라고들 한다. 암암리에 무단으로 자식들과 함께 사는 것이다.
“죽은 아이가 내 아들이에요….”
할머니는 눈가가 그렁그렁해졌다. 이내 눈물이 줄줄 흘렀다. 이어 할머니가 꺼낸 말에 더 놀랐다.
바닥에 떨어져 있던 동전이, 좀 있으면 달라고. 내가 정말 염치가 없는데…. 그거라도 없으면 너무 어려워서. 내가 너무 힘들어서…. 동전을 좀 달라고 부탁드리려고. 창피하지만 그거라도 필요해서. 미안해요, 힘들게 일하는데…. 그런데 필요해서….
할머니는 연신 눈물을 훔치면서 횡설수설 말을 이어갔다.
“아, 네. 물론입니다. 드려야죠.”
할머니가 걱정돼 생수를 한 병 건네드리고 다른 방에 있던 의자를 가져와 일단 앉으시게 했다.
“당연히 드려야죠. 죄송할 일이 아니에요. 일단 앉아서 진정하시는 게 좋겠어요. 연세도 있으신데, 이리 얼른 앉으세요.”
어지러운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나도 횡설수설했다.
물을 조금씩 목에 넘기던 할머니는 조용조용히 이야기를 시작했다. 물론 눈물은 쉴 새 없이 흘러내리는 채로 말이다.
“애가, 술만 마시면 물건을 던지고 때리고 소리 지르고. 처음엔 참고 견뎠는데 이러다가 정말 죽겠다 싶어서…. 아침에 밥을 차려놓고 나갔다가 밤에 아들이 잠들면 조용히 들어와서 자고 그랬어요.”
“….”
“그러다가 잠이 깨면 갑자기 우르르 화가 나서 소리를 지르고. 눈만 마주쳐도 사납게 변하거든. 그럴 땐 며칠 아는 사람한테 신세를 지고 조용해질 때쯤 들어왔지.”
“…네.”
“자식이라곤 저거 하나라. 애가 어릴 때 아비를 잃고 내가 혼자 키웠거든. 내가 죄인이지, 내가 죄인이야. 오냐오냐 금이야 옥이야, 바람 불면 날아갈까, 아비 없이 자라는 게 불쌍해서 뭐든지 뜻대로 하라고 키웠어…. 내가 죄인이야.”
그래도 아들이 젊었을 땐 뭐라도 해본다고 열심히 살았다고 했다. 벌어놓은 돈 다 주기도 하고. 그런데 점점 일이 잘 안 풀렸던 모양이었다.
“밖에서 뭘 하는지 나는 모르지. 언제부턴가 술을 너무 많이 마시더라고. 그러더니 애가 변했어.”
옛일을 말하다 보니 할머니는 감정이 더 북받친 듯 보였다.
“내가 저를 어떻게 키웠는데…. 이번에도 또 맞을까 봐 며칠 도망가 있다 왔더니 이런 일이…. 이렇게 갈라고, 에미를 떼놓으려고 그렇게 사납게 굴었는가….”
겉으로 내색은 안 했지만 이미 내 속은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아무리 아비 없이 자라 불쌍해도 옳고 그른 건 알려주고 혼내고 키우셨어야지. 세상에 부모 없이 사는 사람도 많은데, 엄마 혼자 키웠다고 아들이 뭐 그리 불쌍했냐고. 애를 얼마나 오냐오냐 키웠으면 다 늙은 어미를 때리냐고.
머릿속에 떠도는 말들이 입 밖으로 나올까 봐 나는 생수만 벌컥벌컥 들이켰다.
“수급비 나오면 아들이 다 빼앗아서…. 내가 그 동전이라도 있어야 살 수 있어요.”
“당연히 할머니 드릴 거예요. 제가 깨끗이 닦아서 드릴게요. 집 안은 약도 많이 뿌려 공기가 좋지 않으니까 잠깐 밖에 좀 계세요.”
일단 밖으로 의자를 옮겨 할머니를 모신 뒤 나는 집 안으로 들어와 동전에 약을 뿌렸다.
‘키가 150㎝도 안 되시겠구만. 저 작은 노인을 때릴 곳이 어디 있다고….’
저 노인이, 자식의 죽음 앞에서 일면식도 없는 내게, 동전 좀 달라고 말하기까지 얼마나 감내를 했을까.
‘울컥’ 하고 화가 났다. 머리 위로 김이 새어나오는 듯했다.
이 동전. 아들이 엄마의 수급비를 빼앗아 술값에 탕진하고 거슬러 받았을 이 동전. 한두 번 닦아서 사라질 냄새가 아니었다. 게다가 할머니를 밖에서 기다리게 하고 나니 마음이 더 조급해졌다.
휴대전화 케이스 뒤에 끼워둔 5만원 지폐가 생각났다. 부랴부랴 종이컵에 담은 동전과 5만원을 챙겨 집 밖으로 나갔다. 할머니는 바깥 복도에 놓아드린 의자에 멍하니 앉아 계셨다.
“깨끗이 닦는다고 닦았는데, 냄새가 아직 남아있어요.”
종이컵을 쥐어드리며 5만원짜리도 슬쩍 끼워넣었다.
순간 할머니와 눈이 마주쳤다. 멋쩍었지만 눈길을 피할 수는 없었다. 할머니는 물끄러미 나를 쳐다보았다.
더는 드릴 말씀이 없어서 곧장 뒤돌아 집 안으로 들어왔다.
사정도 잘 몰랐고 워낙에 집 안이 엉망이라 처음엔 알아보지 못했는데, 가장 깨끗해 보이는 작은 방이 할머니의 방이었다.
아들이 광란을 쳐놓은 난장판에서 격리라도 시키듯 할머니의 방문을 닫아 드렸다.
다시 청소를 시작했다.
금이야, 옥이야.
자식은 금으로 된 흉기였고, 옥으로 된 무기였다.
할머니는 이제 맞지 않고 살아가실 것이다.
불행 중 다행이었다.
중앙일보 기재된 기사내용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