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하루 서니의 멘트는 쉬었습니다. 외삼촌을 멀리 떠나 보냈거든요...
불행을 모르면 행복도 모른다고 합니다. 운명이나 절망을 주시하지 않고는 희망의 본질도 광채도 이해할 수 없는 것이죠. 삶에 만족해하면서도 생기를 잃고 나약해짐은 아마도 절망이나 불행에 대한 인식과 공부가 부족하기 때문 아닐까요? 발걸음을 한 계단만 더 높여 보세요. 어제까지의 불행이 행복으로 보입니다. 시선의 높이를 한 뼘만 낮춰 다시 보세요. 무거운 절망의 시간 속에 희망이 숨어 있습니다. 시선을 바꾸세요. 불행이 아닌 행복 쪽으로 몸을 트세요. 절망이 아닌 희망을 향하여...
세계경제포럼(WEF)과 유럽경영대학원(INSEAD)이 공동 발표하는 지수로, 개인ㆍ정부ㆍ기업의 정보기술 발전도와 경쟁력을 종합 측정한 평가지표를 말합니다. 해당 국가가 정보통신기술을 효과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얼마나 준비가 되어 있는지를 보여 주는 지표죠. 지표에는 정보통신뿐만 아니라 각국의 행정적 규제, 비즈니스 환경과 인프라 및 디지털콘텐츠ㆍ가격적정도ㆍ기술 관련 준비도, 경제와 사회에 미치는 영향 등이 포괄되어 있습니다. 공개된 자료 외에 1만 5,000명 이상되는 경영인이 참여하는 경제인 설문조사(executive opinion survey) 결과도 지수에 반영됩니다. 한편, 세계경제포럼(WEF)이 2012년 발표한 '세계 정보통신 보고서 2012'에 따르면 ICT 분야 경쟁력 지수인 네트워크준비지수(NRI) 평가에서 우리나라는 지난해보다 두 계단 떨어진 12위를 기록하였는데요. 2011년에 이어 2012년에도 스웨덴(5.94점)과 싱가포르(5.86점), 핀란드(5.81점)가 나란히 1ㆍ2ㆍ3위를 차지하였습니다.
누구나 자기 안에 다이아몬드가 있습니다. 채 발견하지 못했거나 가공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직도 빛을 내지 못하고 있을 따름입니다. 스스로 돌멩이라 여기면 내 안에 숨겨진 보석도 끝내 빛을 보지 못합니다.
충고는 멀리하고 칭찬을 가까이 하고 싶은 게 보통 심리입니다. 그러나 달디단 말만 듣고 싶어 하는 귀에는 좋아하는 말만 해주는 게 일반적 상황입니다. 그리하여 귀가 막히게 되고 세상물정 모르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열린 귀는 열린 마음에서 비롯되는 것, 남의 말에 귀 기울이고 쓴말도 새겨듣는 마음가짐이 필요합니다. 그래야 잘못된 점을 개선할 수 있습니다. 맛있는 음식이 사실은 입맛에 맞는 양념 맛이어서 건강과는 좀 먼 것이라는 점을 생각한다면, 칭찬도 그런 것. 당장의 충고가 쓰지만 훗날 내게 도움이 되는 말이라는 걸 명심할 일입니다.
미얀마(버마)는 베일에 싸인 땅입니다. 낙후된 불교 국가, 군사 독재국 등의 편견으로 가로막힌 나라죠. 오랜 기간 폐쇄돼 있던 미얀마는 동남아의 새로운 여행지를 찾는 젊은 여행자들에게도 선뜻 넘어서기 어려운 낯선 곳입니다 하지만 미얀마는 동남아 지역 중 안전도를 따져도 뒤처지지 않는데요. 양곤은 미얀마 최대의 상업도시인데요. 2005년 미얀마의 수도가 산악지대인 네피도로 갑자기 옮겨지기 전까지 양곤은 미얀마의 수도였죠. 양곤의 단상은 묘한 대비 속에서 빛을 발합니다. 도시의 70% 이상이 숲으로 뒤덮여 있지만 심각한 공해 때문에 도심도로에서 모터사이클의 운행은 금지돼 있습니다. 서울의 청담동 같은 골든 밸리와 양곤강 건너 낙후된 ‘달라’ 지역은 지독한 삶의 차이를 보여줍니다. 쉐다곤 파고다는 양곤의 상징이자 불교의 성지처럼 여겨지는 탑입니다. 옛 왕조의 여왕이 자신의 몸무게만큼 황금을 보시한 것을 시작으로 수많은 양의 황금이 기부돼 황금 무게만 수십 톤에 이른다고 합니다. 탑 꼭대기는 수천 개의 다이아몬드로 치장돼 있습니다.
탑의 면면을 가만히 살펴보면 종교 이상의 의미가 담겨 있는데요. 쉐다곤 파고다는 종교이자 삶터이고 휴식처이기도 합니다. 탑 내부에서는 승려들이 수행을 하고 연인들은 경내에서 데이트를 즐기며, 가족들은 불전 안에서 도시락도 먹고 낮잠도 잡니다. 미얀마에서 불교와 삶이 깊숙하게 밀착돼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쉐다곤 파고다는 미얀마인들이 평생 소원으로 꿈꾸는, 생전에 한번은 방문해야 할 메카와 같은 대상이기도 합니다. 쉐다곤 옆에는 인공호수인 깐도지 호수가 들어서 있는데요. 깐도지에 고급 레스토랑들이 즐비하다면 양곤대학교 옆 인야 호수는 신세대들의 아지트죠. 인야 호수 옆 골든 밸리 지역은 집도 으리으리하고 명품 숍도 들어서 있는 낯선 분위기죠. 미얀마 제2도시인 만달레이는 양곤과는 모습이 또 다릅니다. 분위기는 좀 더 숙연한데요. 만달레이는 미얀마의 마지막 왕조인 꽁바웅 왕조의 도읍지로 승가대학 등이 있어 미얀마 스님의 절반 이상이 이곳에 머물고 있습니다. 길에 나서면 온통 승려들의 세상입니다. 상점마다 아침 공양을 하고, 미니 트럭에 매달려 가는 승려들과 흔하게 마주치게 되죠. 미얀마의 도시는 이렇듯 어제와 오늘, 승려와 중생이 가지런하게 공존하는 모습입니다. 베일에 쌓인 땅, 양곤으로 떠나 보면 어떨까요?
1830-40년대 미국 대중신문의 저질성을 놓고 뜨거운 논쟁이 벌어지던 때에 신문의 운명을 송두리째 바꿔줄 놀라운 일이 일어나고 있었으니, 그건 바로 전신(電信)의 출현이었습니다. 프랑스 혁명의 와중인 1794년 클로드 샤프(Claude Chappe, 1763-1805)에 의해 발명된 전신기는 파리에서 1천킬로미터 떨어진 툴롱까지 전보 송신을 단 20분만에 가능케 했는데요. 영국에선 1820년대에 철도 운용의 보조 수단으로 전신이 이용되었습니다. 미국의 새무얼 모스(Samuel Morse, 1791-1872)는 1837년 ‘모스 부호’를 사용한 전신기를 완성해, 1844년 미국 의회의 도움을 받아 워싱턴과 볼티모어 사이의 통신을 성공시켰습니다. 이 때에 전달된 첫 번 째 메시지는 “신이 무엇을 이룩했는가?”라는 짧은 문장이었는데요. 모든 책에 그렇게 쓰여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이 아니라는 주장도 있죠.
모스가 독자적으로 발명한 것은 그의 이름이 들어간 간단한 암호였습니다. 그 중의 하나인 SOS는 1906년에 열린 국제회의에서 조난신호로 채택됩니다. 9개의 부호(점 세 개, 줄 세 개, 점 세 개)가 전송하기 쉽다는 이유 때문입니다. 미국에서 전신의 진짜 발명자는 모스가 아니라 프린스턴 대학의 교수인 조셉 헨리(Joseph Henry, 1797-1878)였습니다. 그는 1831년에 발명을 끝내놓고도 완벽을 기하겠다는 생각에서였는지 특허를 신청할 생각을 하지 않았는데요. 헨리의 논문을 대부분 표절했을 뿐만 아니라 여의치 않을 때는 그를 직접 찾아가 조언을 구하기도 했던 사람이 있었으니 그가 바로 모스였죠. 헨리는 수년 동안 모스를 격려하고 도왔지만, 모스는 성공해 엄청난 부자가 된 뒤에 헨리의 도움을 전혀 인정하지 않았는데요. 세상은 헨리의 억울함엔 별 관심이 없었습니다. 워싱턴과 볼티모어 사이의 통신이 성공하자, 사람들은 이제 곧 다가올 변화를 염두에 두고 “바야흐로 동쪽의 메인과 서쪽의 플로리다 두 주가 서로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다”는 데에 열광했습니다. 1848년 미국 내 전신선은 1만2천마일에 이르렀으며, 계속 빠른 속도로 늘어나면서 경제발전의 중심적 역할을 하게 됩니다.
“2014년 행복한 한 해 되세요” “기쁨 가득한 한 해 되세요” “갑오년 즐거운 새해 되세요”와 같은 새해 문자 메시지들이 오갑니다. 이처럼 새해 인사로 ‘~되세요’라는 표현이 많이 쓰인다. 설 등 명절에도 “사랑과 정이 넘치는 설날 되세요” “풍성한 한가위 되세요” 등과 같이 ‘~되세요’라는 표현을 많이 사용하곤 합니다. ‘~되세요’는 이처럼 인사 표현으로 두루 쓰이지만 좀 생각해볼 점이 있습니다. ‘되세요’는 ‘되다’를 명령형으로 바꾼 것입니다. ‘되다’는 ‘새로운 신분이나 지위를 가지다’는 의미로 “(나는) 최고의 배우가 되다”와 같이 씁니다. 이를 명령문으로 바꾸면 “(너는) 최고의 배우가 되어라” 가 되는데요. 이때 말을 하는 사람은 듣는 사람을 주어로 전제하고 이야기하는 것이죠. “행복한 한 해 되세요”는 “너는 행복한 한 해 되어라”의 높임 표현인 셈인데, 너에게 ‘최고의 배우가 되어라’(너=최고의 배우)고 이야기할 순 있어도 ‘행복한 한 해가 되어라’(너=행복한 한 해)고 말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습니다. “행복한 한 해 보내세요”라고 표현하는 것이 적절합니다.
한 사람의 상처를 치유하는 것이 전 인류의 상처를 치유하는 것과 같고, 한 사람의 영혼을 온전히 사랑하는 것이 전 인류를 사랑하는 것과 같습니다.
무슨 일이든 처음 시작할 때는 '어린 묘목'과 같습니다. '사랑'의 이름으로 '흉기'를 들이대면 제대로 자라기도 전에 꺾이거나 시들고 맙니다. 누군가가 어떤 일을 시작할 때는 깊이 있게, 그리고 오래 지켜보며, 용기와 희망의 물을 뿌려주는 것이 좋습니다.
오늘 한 편의 시는 신경림 시인의 <농무> 입니다.
농무 - 신경림
징이 울린다. 막이 내렸다. 오동나무에 전등이 매어달린 가설 무대 구경꾼이 돌아가고 난 텅빈 운동장 우리는 분이 얼룩진 얼굴로 학교 앞 소줏집에 몰려 술을 마신다. 답답하고 고달프게 사는 것이 원통하다. 꽹과리를 앞장세워 장거리로 나서면 따라붙어 악을 쓰는 건 쪼무래기들 뿐 처녀애들은 기름집 담벽에 붙어 서서 철없이 킬킬대는구나. 보름달은 밝아 어떤 녀석은 꺽정이처럼 울부짖고 또 어떤 녀석은 서림이처럼 해해대지만 이까짓 산구석에 처박혀 발버둥친들 무엇하랴. 비료값도 안 나오는 농사 따위야 아예 여편네에게나 맡겨 두고 쇠전을 거쳐 도수장 앞에 와 돌 때 우리는 점점 신명이 난다. 한 다리를 들고 날나리를 불거나나 고갯짓을 하고 어깨를 흔들꺼나.
우리에게 아쉬운 것이 '포옹 문화'입니다. 서로 포옹 한번 못하고 평생을 보내는 사람이 많습니다. 깊이 끌어안고 포옹해야 비로소 알 수 있습니다. 서로의 따뜻한 사랑과 포근한 가슴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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