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용찬 원주 신림 장학회 이사장 엷은 구름 뒤로 달 가듯 세월도 흐르고 있다. 치악산 남쪽 끝 남 대봉 아래에서 시작된 조그마한 산골마을 신림은 우리들의 고향이다. 신림은 다른 산골마을이 다 그렇듯 사시사철이 한결같고 정겨운 이웃들이 부지런히 삶에 충실한 그런 따뜻한 고장이다. 그러나 6․25전쟁 직후, 교실이 없어 강변에서 청솔가지나 군인 천막으로 움집을 만들어 놓고 돌멩이 위에서 공부하던 기억들은 너무나 마음 아프고 소중한 추억들이다. 이에 지난 68년 4월, 신림초교를 졸업하고 상급학교에 진학하지 못하는 학생들을 위해 지역 유지 분들이 힘을 모아 '신림중학교'를 설립하고 장학회를 설립하자는 인재 양성사업이 제안됐다. 돈보다 쌀이 더 귀중했던 그시절, 당시 신림초등학교 교사이시던 이승환 선생과 신림 양조장 조능윤 사장이 쌀 30두, 최창규 용소막 성당 주임신부님이 50두, 김용호 국회의원이 30두, 신림 재향군인회에서 50두 등 190여두의 쌀이 장학자금으로 모여 들었다. 또 초대 신림면장을 역임한 김영일 전 도의원이 몸담고 있는 성림회가 20만원, 김홍기, 김태운 전 면장, 손병록씨 등이 각각 10만원, 최돈현 씨가 5만원 등 주민들의 힘으로 55만원의 지원금이 추가로 모였다. 73년 4월 원리금 289만원이 모여 신림농협에 예치됐다. 이는 당시 쌀 한가마(80kg)가 2만5000원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상당한 액수다. 또 84년에도 신림면의 각 사회 지도층 16명의 인사들이 680만원의 지원금을 출연해 모두 1000만원이라는 큰 액수의 장학금을 조성했다. 이어 초대 행자부 장관 치안정책관과 경북․ 강원지방 경찰청장을 역임한 본인의 부친 전상진님의 뜻에 따라 김규동 신림면 단위 농협 조합장과 김우진 전 원주시의원이 8․15해방 55주년 기념탑을 마지공원에 세우면서 모은 1000여만원을 기증했다. 본인도 부친의 부의금 3000만원을 장학금으로 희사했다. 이후 신림면 각 마을 이장 14명을 신림면 장학회 이사로 구성하고 본인을 장학회 이사장으로 선출한 뒤 장학사업을 보다 활성화 하면서 2005년 11월 현재 1억원의 장학금이 조성됐다. 내년 말이면 2억원의 장학금 조성도 가능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제는 매년 신림과 황둔 중학교에 장학금을 주고 있으며 앞으로 초등학교 학생들에게도 장학금을 지원하는 등의 방안도 모색중이다. 이처럼 지역 인재양성에 앞장서 온 신림면은 더없이 미래가 돋보이는 고장이다. 신림은 희귀한 전씨 열녀각이 오랜 역사를 증명하고 있으며 구한말 우리나라를 구하기 위해 의병들이 숨어 활동해 황사영 백서로 유명한 배른 성지 용소막 성당도 있다. 우리나라 최초 인터넷 민박과 IT농산물 상거래가 시작됐으며 최근에는 허약한 사람에게 원기를 불어넣는 기밥의 원산지로 유명세를 타고 있다. 이 모든 것들이 장학금과는 직접적인 연관은 없더라도 인재 양성을 위한 장학사업에서 싹 트기 시작했으며 희망이 샘솟는 고장으로 발전하는 원동력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굳게 믿는다. 신림면 장학회는 앞으로 지역민들과 함께 더욱 적극적인 장학사업을 전개해 이를 밑바탕으로 미래 원주, 나아가 한국을 이끌 인재를 양성해 나갈 것이다. 다음 세대 후배들도 이같은 정신을 되새기며 앞으로 장학회를 보다 효율적으로 운영해 우리지역 출신들에게 더 많은 혜택을 제공해 우리고장을 위해 일 할 수 있도록 기초를 마련해 주길 바란다. 강원도민일보 기사 : 2005-11-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