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신용 시인의 시집 “진흙 쿠키를 굽는 시간“이 지난 년말 '백조'에서 출간되었다.
시집을 인사동 ‘유목민’에 맡겨 놓았다는 연락은 진즉 받았으나, 미루고 미루다 한참 지나버렸다.
인사동을 자주 들락거리던 예전 같으면 쉽게 찾아올 수 있었는데,
2박3일 동안 전라도 장터를 다녀오고 부터 마음이 조급해졌다.
지난 17일에서야 나갈 작정을 했는데, 자고 일어나니 백설이 휘날렸다.
'서울역쪽방상담소'에서 마련한 주민복지 좌담회에 갔다오니,
공원 입구에서 도시락을 나누어 주고 있었다.
먹고 살기위해 눈 맞아가며 줄 선 빈민들의 모습이 측은하기 그지없었다.
동자동과 서울역 주변을 살피고 다녔으나, 극성적인 선교 활동 외에는 별다른 일이 없었다.
오후 네 시 무렵에서야 모처럼 인사동 나들이에 나섰는데,
인사동도 눈 내린 것 외는 달라진 게 없었다.
'부산식당'으로 가는 인사동11길 초입 건물 벽에 처음 보는 설치물이 보였다.
산타로 보이는 인형이 벽을 기어올라 창틀에 아슬아슬하게 매달려있었다.
누구 작품인지 모르나, 살아남으려고 발버둥 치는 인사동 풍류처럼 느껴졌다.
‘유목민’에서 전활철씨를 만나 시집을 전해 받았는데, 진흙 쿠키란 제목부터 가난을 떠올리게 했다.
먹을 것이 없어 진흙을 구워 먹었던 먼 나라에서 비롯된 말이지만,
36년 전 그가 쓴 양동시편 ‘뼉다귀집’이 연상되어서다.
비판적이면서도 생명력이 가득한 새로 나온 시를 읽으며, 김신용 시작의 확장성을 재확인했다.
김신용은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의 전설적 시인인데, 시를 쓰기 위해 사는 환경을 자주 바꾼다.
충주 도장골에서 도장골 시편을 펴내 듯, 시흥 소래로 옮겨서는 ‘섬말(섬마을) 시편’을 썼다.
이사를 많이 다닌 것은 사는 주변 환경에서 삶에 대한 성찰을 끌어내는,
그만의 갈증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얼마 전 홍제동에서 용인으로 이사 갈 때부터 짐작은 했지만, 아니나 다를까 새로운 시집을 펴낸 것이다.
해방둥이인 김신용 시인은 나보다 두 살 위지만 오랜 친구다.
80년대 중반 인사동에서 처음 만났을 때의 일은 아직까지 생생하다.
허름한 야전잠바를 걸치고 실비대학으로 불렸던 ‘실비집’에 나타났는데,
주머니 속에서 꼬깃꼬깃 접은 종이를 꺼냈다
「뼉다귀집」이란 또박또박 쓴 시가 적혀 있었는데, 한마디로 충격이었다.
개기름 번지르 한 통속적 시가 아니라 온몸으로 부딪치며 쓴 야생의 시였다.
그 무렵은 양동 쪽방에 살며 노가다 판에 전전할 때였는데,
마침 김선유시인이 ‘양동 시편’을 본 것이 계기가 되어
시 전문지 ‘현대시사상’에 「뼉다귀집」 외 6편을 발표하며 세상에 알려진 것이다.
그는 부산에서 태어나 열여섯살 부터 부랑을 시작하여 서울역 지하도와 대합실은 놀이터였다고 한다.
구걸은 물론 살아남기 위해서는 매혈이나 소소한 범죄를 밥 먹듯이 해야 했다.
양동 쪽방과 감방을 드나들며 다양한 책을 읽을 수 있었는데,
그 독서를 밑거름으로 시를 쓰기 시작한 것이다.
감방을 학교라고 부르는 이유가 바로 이런 것이 아니겠는가?
2016년 가을, 내가 동자동 쪽방촌에 처음 입주했을 때, 맨 먼저 방문한 사람도 김신용 시인이었다.
쪽방촌 선배로서 각별한 관심을 보여주었는데, 오래전 자기가 살았던 양동 쪽방촌도 찾아 보았다.
많은 세월이 흘렀으나 가난의 자취는 변하지 않았다.
양동 시편에서 비롯된 ‘버려진 사람들’, '개 같은 날들의 기록', '몽유 속을 걷다',
‘환상통’ 등을 통해 이른바 '부랑의 미학'을 보여주었다.
"한때, / 지게는, 내 등에 접골된 / 뼈였다
木質의 단단한 이질감으로, 내 몸의 일부가 된등뼈. / 언젠가
그 지게를 부수어버렸을 때, 다시는 지지 않겠다고 돌로 내리치고 뒤돌아섰을 때 /
내 등은, 텅 빈 공터처럼 변해 있었다 / 그 공터에서는 쉬임없이 바람이 불어왔다"며
끊임없이 되살아나는 통증의 기억을 '환상통(幻想痛)'으로 형상화했다.
그러나 충주 산골로 들어가 살기 시작한 '도장골 시편'에서부터 그의 시에 일대 변화가 일어난다.
도시빈민들의 아픔이 담긴 강한 호소력에서 벗어나, 사색적 삶의 서정이 부드럽게 다가왔다.
시에 자연의 숨결이 배어들기 시작한 것이다.
넝쿨처럼 마냥 뻗어 가는, 스스로의 삶을 닮은 ‘넝쿨의 힘’은
2007년 ‘문인들이 뽑은 가장 좋은 시’로 선정되기도 했다.
"넝쿨의 힘"
집 앞, 언덕배기에 서 있는 감나무에 호박 한 덩이가 열렸다
언덕 밑 밭 둔덕에 심어놓았던 호박의 넝쿨이, 여름 내내 기어올라 가지에 매달아놓은 것
잎이 무성할 때는 눈에 잘 띄지도 않더니
잎 지고 나니, 등걸에 끈질기게 뻗어 오른 넝쿨의 궤적이 힘줄처럼 도드라져 보인다
무거운 짐 지고 飛階를 오르느라 힘겨웠겠다. 저 넝쿨
늦가을 서리가 내렸는데도 공중에 커다랗게 떠 있는 것을 보면
한여름 내내 모래 자갈 져 날라 골조공사를 한 것 같다. 호박의 넝쿨
땅바닥을 기면 편안히 열매 맺을 수도 있을 텐데
밭 둔덕의 부드러운 풀 위에 얹어놓을 수도 있을 텐데
하필이면 가파른 언덕 위의 가지에 아슬아슬 매달아놓았을까? 저 호박의 넝쿨
그것을 보며 얼마나 공중정원을 짓고 싶었으면―, 하고 비웃을 수도 있는 일
허공에 덩그라니 매달린 그 사상누각을 보며, 혀를 찰 수도 있는 일
그러나 넝쿨은 그곳에 길이 있었기에 걸어갔을 것이다
낭떠러지든 허구렁이든 다만 길이 있었기에 뻗어갔을 것이다
모랫바람 불어, 모래 무덤이 생겼다 스러지고 스러졌다 생기는 사막을 걸어간 발자국들이
비단길을 만들었듯이
그 길이, 누란을 건설했듯이
다만 길이 있었기에 뻗어가, 저렇게 허공중에 열매를 매달아놓았을 것이다. 저 넝쿨
가을이 와, 자신은 마른 새끼줄처럼 쇠잔해져 가면서도
그 끈질긴 집념의 집요한 포복으로, 불가능이라는 것의 등짝에
마치 달인 듯, 둥그렇게 호박 한 덩이를 떠올려놓았을 것이다
오늘, 조심스레 사다리 놓고 올라가, 저 호박을 따리
오래도록 옹기그릇에 받쳐 방에 장식해두리, 저 기어가는 것들의 힘.
김신용의 시에 대한 집념은 무섭다.
소개한 시집 외에도 '잉어', ‘너를 아는 것, 그곳에 또 하나의 생이 있었다‘를 비롯하여
장편소설 '달은 어디에 있나' '기계 앵무새' 와 여타 산문집들을 펴내며
천상병시상, 노작문학상 등을 연 이어 수상한 것이다.
이번에 펴낸 “진흙 쿠키를 굽는 시간“역시,
자신을 둘러싼 모든 환경을 세세히 관찰하여 시로 승화시켰다.
현실 비판적이면서도 생명력이 가득한 시편들은 삶에 찌든 우리에게 한 줄기 빛처럼 내려꽂힌다.
위태롭게 고층 빌딩에 매달려 유리를 닦다 자신의 발아래 피어 있는 꽃 또한
한 가닥 밧줄에 매달린 생의 얼굴이라는...
”저기 봐! 절벽 바위틈에 뿌리를 내린 나무도 있지만, 그 나무의 가지에 뿌리를 내려 잎을 피우는 나무도 있네. 세상에! 하필이면 아슬아슬 절벽 바위틈에 뿌리를 내린 나무의 가지에 뿌리를 내려, 그 수분을 분양받아 살아가는 나무라니! 누구는 집세 한 푼 안 내고 무전취식을 하듯 살아가는 나무를 보며, 이제는 막장에 다다른 생의 또 다른 출구 전략처럼 쳐다보기도 하지만, 그래, 눈 뜨면 언제나 추운 겨울 숲이어서 나무들, 모두 옷을 벗는 나목의 세계여서 가만히 타인의 세계에 제 몸을 심는 기생奇生-, 혹은, 기생畸生-.
그 순간부터 다른 나무의 수분을 분양받아야 겨우 살아남는, 겨우 살아가는 듯한, 저 겨우살이들의 얼굴을 보고 있노라면, 내가 너고 네가 나일 것 같을 때
겨우살이, 다른 나무의 잎이 져야 자신의 존재가 드러나는
그렇게 슬픔까지 분양받아야 지상의 방 한 칸, 푸르게 빛날 때“
(시집 ”진흙쿠키를 굽는 시간“11-12쪽 ”거처 1“에서)
”시인은 선인장의 ‘가시’가 “삶의 전략이자 생존 방법”이라는 사실에 주목한다. “뾰족하게 찌르거나 뒷걸음질 치게 하는 것”인 ‘가시’는 외부의 공격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방어 전략이다. 또한 그것은 “수분을 뺏어 가는 메마른 사막의 열기”라는 현실적 조건에서 생존하기 위해 선택한 진화의 산물이기도 하다. 하지만 ‘선인장’이라는 대상에서 시인이 보는 것은 뾰족한 가시로 뒤덮인 겉모습이 아니라 “몸속에 차오르는 새로운 생의 의지”를 연상시키는 내부이다. 이 새로운 해석 속에서 ‘선인장’의 가시는 “슬픔의 의지”로 재해석된다. 그것은 외부의 열악한 현실에 둘러싸여 있는 운명이라는 점에서 ‘슬픔’의 존재이지만, 자신의 “몸속에 차오르는 새로운 생의 의지”를 품고 있다는 점에서 ‘의지’의 존재이다. 이처럼 시인은 고통스러운 현실에서 힘겹게 살아가는 존재들에게서 궁핍함 이상의 의미를 찾아내고자 한다. 이런 점에서 시집의 마지막 페이지에 등장하는 진술은 시인이 이 가난한 존재들에게 바치는 연대의 헌사일 것이다. “제발, 그 끈질긴 생의 마지막이 끓이는 무념만이라도 따뜻하기를/ 생의 천변에 고인, 지나간 시간의 한순간만이라도 아름답기를”
(문학평론가 고봉준의 발문 ‘가시의 시학’에서..)
이제 김신용 시인도 80대에 접어들어 원로다.
노시인의 시집출간을 축하하며, 더 좋은 시 많이 남기길 기원한다.
사진, 글 / 조문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