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도 기준중위소득 논하는 중앙생활보장위원회 열려
예산 탓하며 기준중위소득 현실화 막는 기재부
“우리 삶을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계산기만 두드리고 있다”
중생보위, 29일 회의 열어 논의 이어갈 듯
25일 오후 1시 기초생활보장법바로세우기공동행동·장애인과가난한사람들의3대적폐폐지공동행동은 정부세종청사 밖 거리에서 ‘장애인과 가난한 사람들의 민중생활보장위원회’를 열었다. 사진 이슬하
가난한 사람들이 당사자를 배제한 정부의 탁상공론식 밀실행정을 규탄하며 인간다운 삶을 보장할 것을 촉구했다.
25일 정부세종청사에서는 내년도 기준중위소득을 결정하는 중앙생활보장위원회(아래 중생보위) 회의가 있었다. 중생보위는 가난한 사람들의 한 해를 결정하는 중요한 기구지만, 이들을 대표하는 위원은 한 명도 없다.
회의록과 속기록도 공개하지 않아, 가난한 사람들은 자신의 삶이 논의된 과정조차 알 수 없다.
이에 기초생활보장법바로세우기공동행동·장애인과가난한사람들의3대적폐폐지공동행동(아래 공동행동)은 이날 오후 1시 청사 밖 거리에서 ‘장애인과 가난한 사람들의 민중생활보장위원회(아래 민생보위)’를 열었다.
폭염특보가 내려진 날씨에 에어컨도 없는 길바닥에서 신문지를 깔고 앉은 ‘민생보위 위원들’은 담장 너머로 “우리의 목소리를 들어라”고 힘껏 외쳤다.
청사 담장 앞 길가에 앉아 있는 활동가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한 활동가는 “낮은 기준중위소득, 선정기준 기만이다! 기준중위소득 대폭 인상하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 이슬하
- “기준중위소득 현실화는 수급비 현실화의 전제조건”
이날 공동행동은 ‘민생보위 공개 요구안’을 발표했다. 공동행동은 △2023년 기준중위소득 대폭 인상 △부양의무자기준 완전 폐지 △중생보위 정보공개 및 면담을 보건복지부(아래 복지부)에 요구했다.
복지부 산하 중생보위가 매년 심의·의결해 공표하는 기준중위소득은 사회안전망의 선정기준이 되는 중요한 지표다.
기준중위소득은 전체 가구를 소득순으로 줄 세웠을 때 중간에 해당하는 소득으로, 기초생활보장제도를 포함한 70여 개 사회보장제도의 선정기준으로 활용되고 있다.
문제는 이런 기준중위소득이 너무 낮게 책정돼 있다는 것이다. 2015년 7월 기준중위소득이 도입된 이후 평균 인상률은 2.8%에 불과하며, 지난해 중생보위가 공표한 2022년 1인 가구 기준중위소득은 194만 4812원이다.
이는 2019년 통계청 가계금융복지조사에 나타난 1인 가구소득의 중윗값 254만 원보다 60만 원이나 적은 금액이다.
책상 두 개를 놓고 일렬로 앉아 있는 ‘민중생활보장위원회 위원들’의 옆모습이 보인다. 사진 이슬하
공동행동은 “기준중위소득은 단 한 번도 현실의 경제수준이 반영된 적 없이 사실상 예산 맞춤형으로 산출됐다”고 지적한다.
기준중위소득은 국민기초생활보장법에 따라 최근 3개년 통계청 자료에서 나타나는 가구소득 중앙값의 평균 증가율을 반영해야 한다.
그러나 중생보위는 2021년 기준중위소득을 정할 당시 코로나로 인한 경제위기를 이유로 3개년도 평균 증가율 4.6%를 1%로 축소해 반영했다.
또한 기준중위소득 산출에 사용되는 통계자료가 가계동향조사에서 가계금융복지조사로 바뀜에 따라 적용해야 할 인상률 12.49%를 6년에 걸쳐 나눠 반영하기로 했다.
이로 인해 17% 이상 인상됐어야 할 2021년 기준중위소득은 2.68% 인상되는 데 그쳤다.
현실과 동떨어진 기준중위소득은 기초생활수급자 선정기준과 최저보장수준을 결정하는 데 쓰인다. 기초생활수급자가 되려면 소득인정액이 기준중위소득의 일정 수준 이하여야 한다.
올해 기준으로 생계급여는 30%, 의료급여는 40%, 주거급여는 46%, 교육급여는 50% 이하여야 한다. 이에 따라 생계급여 수급자는 기준중위소득의 30%에 해당하는 58만 3444원을 한 달 생활비로 받는다.
김유현 두리장애인자립생활센터 소장이 AAC(보완대체의사소통)로 발언하고 있다. 사진 이슬하
수급 당사자인 김유현 두리장애인자립생활센터 소장은 “처음 수급자가 된 15년 전이나 지금이나 수급비가 별반 차이가 없다”면서 중생보위 위원들을 향해 “58만 원으로 한 달을 살아봐라”고 말했다.
김 소장은 “장을 볼 때 고기는 엄두도 못 내고, 채소도 가격이 걷잡을 수 없이 올라 무서울 정도”라며 수급비의 현실화를 촉구했다.
지난 19일 서울 중구의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생계·자활급여소위원회 회의에서는 3개년도 평균 증가율 3.57%에, 통계자료 변경에 따라 1.83%를 추가로 반영해 내년도 기준중위소득을 5.47% 인상하는 안이 논의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기획재정부(아래 기재부)는 ‘5.47% 인상안’에 반대하며 ‘4.19% 인상안’을 주장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추가반영분 1.83%가 합의사항으로서 조정이 불가능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사실상 2.36%만 인상하자는 요구인 셈이다.
지속되는 코로나19 위기와 치솟는 물가로 인해 더욱 벼랑 끝에 내몰리고 있는 가난한 사람들의 삶은 반영되지 않고 있다.
박영아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는 “기재부는 그동안 비현실적으로 낮은 인상률을 제시하며, 예산 부처로서의 위상과 8월 1일이라는 중생보위 공표 기한을 무기 삼아 무리한 협상이 이뤄지도록 했다”면서 가난한 사람들의 삶을 옥죄는 기재부를 규탄했다.
문경희 세종장애인차별철폐연대 공동대표가 기자회견문을 낭독하고 있다.
그의 휠체어에 “중생보위 위원님들, 여러분은 한 달 58만 원으로 살 수 있나요?”라고 적힌 피켓이 보인다. 사진 이슬하
- 여전한 부양의무자기준, 당사자 외면하는 중생보위
장애인과 가난한 사람들은 소득과 재산이 없고 가족에게 경제적 부양을 받지 않는데도, 여전히 부양의무자기준에 의해 수급에서 탈락하거나 수급 신청을 스스로 포기한다.
‘부양의무자기준 폐지’를 공약으로 내건 문재인 정부는 지난해 9월 ‘생계급여에서 부양의무자기준이 60년 만에 폐지된다’고 대대적으로 홍보했지만, 부양의무자의 소득과 재산 기준을 완화했을 뿐이었다. 의료급여 부양의무자기준은 완화조차 하지 않았다.
꺽쇠 홈리스야학 학생은 부양의무자기준 때문에 수급에 탈락한 적이 있다. 그는 어렵게 생계급여를 받게 됐지만, 여전히 의료급여 부양의무자기준에 걸려 현재 건강보험료를 한 달에 만 원씩 내고 있다.
꺽쇠 학생은 “몸이 아파 엑스레이를 찍어보고 싶었지만, 돈이 많이 들 것 같아 병원조차 가지 못하고 있다”면서 “가끔 안부만 묻는 사이인 장모님이 우리 부부의 빈곤까지 책임지게 만드는 의료급여 부양의무자기준은 하루빨리 폐지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꺽쇠 홈리스야학 학생이 발언하고 있다. 사진 이슬하
중생보위의 폐쇄적인 운영에 대한 규탄도 이어졌다. 중생보위는 공무원과 전문가들로만 이뤄져, 빈곤층을 대표하는 위원이 한 명도 없다.
또한 회의 내용은 철저히 비밀에 부쳐져 있다. 회의 일시조차 공개하지 않는 중생보위는 속기록 한 장 남기지 않는다.
황성철 홈리스행동 상임활동가는 “지난 19일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중생보위 생계·자활급여소위원회 회의는 밀실행정 그 자체로 가관이었다”면서 “위원들은 현장에 찾아온 수급 당사자들의 목소리에 귀를 닫고 현실에 눈을 감았다”고 꼬집었다.
김호태 동자동사랑방 공동대표는 “우리 삶을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책상머리에 앉아서 계산기만 두드리고 있다”면서 중생보위에 수급 당사자를 대표하는 위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 활동가가 “속기록 한 장 없는 중앙생활보장위원회, 가난한 이들의 민주주의는 실종상태!”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 이슬하
그러나 이날 열린 중생보위 회의는 논의가 더 필요하다는 이유로 내년도 기준중위소득 등을 결정하지 못한 채 끝났다. 중생보위는 오는 29일 오전 10시 정부서울청사에서 논의를 이어갈 예정이다.
기준중위소득 결정 유보 소식이 전해지자, 공동행동은 즉시 성명을 내고 “언론 보도에 따르면 오늘 회의의 쟁점은 기본 산출식을 따를 것인지, 기재부의 주장에 따라 기준중위소득 인상률을 더 낮출 것인지에 관한 것이었다”면서 “기재부가 매번 말하는 경제성장률 전망과 재정부담이란 어떤 것인지 투명하게 공개하라”며 기준중위소득을 낮게 유지하려는 기재부를 규탄했다.
한편, 공동행동은 백진주 복지부 기초의료보장과장에게 요구안을 전달하며 중생보위가 가난한 사람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것을 촉구했다.
권달주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
첫댓글 목숨만 연명할, 딱 그정도의 삶!!
이런일은 윤통의 심기를 거슬려서 차단...ㅜㅜ
밀실회의로 결정해버린 일...
개탄할 일입니다 탁상행정의 표본!
부양의무자제 완전 폐지하고 중위소득 35% 올리는데 지지합니다.
운동가들 고생이 많으십니다. 복지를 할려면 복지답게 해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