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고쳐지지 않고 있는 중명전의 잘못된 한자표기 '重眀殿'
지난 2015년 8월 22일에 이곳 게시판을 통해 덕수궁 중명전의 안내판에 표시된 한자표기가 잘못된 것임을 지적하는 내용의 글을 올린 적이 있다. 어떤 근거로 그러한 것인지에 대한 세부적인 설명은 당시에 이미 나름 소상히 적어놓은 바가 있으므로 다시 재론할 필요는 없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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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오랜만에 정동 일대를 탐방하고 보니 이곳 중명전의 입구 안내표지판을 물론이고 뜰앞의 문화재 설명안내판에도 역시 - 이제는 이를 기정사실화한 것인지 - '重眀殿'이라는 잘못된 표기가 여전히 고쳐지질 않은 채 사라지지 않고 있다. 본디 '중명(重明)'이란 것은 "일월(日月)이 함께 하늘에 있어 광명이 겹친다"는 뜻으로 "임금과 신하가 각각 제자리에 나란히 서서 직분을 다한다"는 것을 일컫는 표현이다.
『주역(周易)』에 "日月麗乎天 百穀草木麗乎土 重明以麗乎正(해와 달은 하늘에 걸려 있고 온갖 곡식과 초목은 땅에 걸려 있으며, 중명으로 정에 걸려 있다."이라는 구절이 나오는데, 여기에서 알 수 있듯이 이는 "임금과 신하 즉, 위 아래가 모두 밝은 덕이 있으면 천하는 변화시키고 문명한 풍속을 이룰 수 있다(言君臣上下, 皆有明德, 則可以化成天下文明之俗)"는 뜻과 통하는 말이다.
따라서 '중명'은 어원으로 보나 당시의 실제 표기로 보나 '重明'인 것은 지극히 상식적이다. 그런데도 이를 '重眀'으로 표기하는 것은 참으로 얼토당토않은 일이 아닐 수 없다. 편액의 글씨가 그렇기 때문에 그렇게 표기한다는 것은 결코 합당한 근거가 되지 못하며, 이와 가장 흡사한 용례로 '준명당'의 편액에도 이를 '浚眀堂'으로 표기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한 바도 있다. '明'이 '眀'이 된 것은 편액의 휘호 방식에 있어서 이른바 '이체자(異體字)'의 사용이 두루 용인되기도 하고 그러한 관행이 있는 탓에 그러한 것이지 원래 이것이 '眀'이라는 것을 입증하는 근거가 될 수는 없는 일이다.
중명전 편액의 휘호자인 하소기(何紹基, 1799~1873)의 생몰연대에 비춰보더라도 대한제국 정부의 요청에 따라 이 글자를 직접 쓴 것이라고 보기도 어려우며, 또한 실상 이 편액 자체가 건물 입구에 걸린 것이 고종황제가 이곳을 사용하던 시기에 걸린 것인지 조차 불분명하다는 점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아무튼 중명전 주변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안내판에 표기된 '重眀殿'이라는 글자는 하루 빨리 '重明殿'으로 되돌려 놓아야 할 것이며, 다만 편액의 글자가 '이체자'를 사용하는 방식에 따라 원래와는 다르게 '明'이 아닐 '眀'으로 표기되었으며 이것과 흡사한 사례로 '浚眀堂'과 같은 경우도 있다는 정도의 설명문안을 첨부하여 달아놓을 필요는 있을 것이다.
(정리 : 이순우, 2023.6.11, https://cafe.daum.net/distorted/)
[추가; 2023.6.21]
▲ 공조판서 유진동 신도비명 (국립중앙도서관 소장자료)
여기에 보듯이 대개 '유명조선국(有明朝鮮國)'으로 시작되는 신도비명 또는 묘비명을 살펴보면 명(明)을 명(眀)으로 바꿔 표기한 사례들이 다수 확인되며, 또한 중국 쪽의 경우에도 대표적으로 명나라 태조 주원장의 능에 "차산명태조지묘(此山眀太祖之墓)"라고 새겨놓은 것으로 드러난다.
첫댓글 중국 쪽에서도 가령 '明'나라를 '眀'으로 바꿔 표기한 편액들의 사례가 꽤 많이 있다고 합니다. 이 역시 그 이유를 해석하는 여러 견해가 있지만, 그 가운데서도 '이체자(異體字)'로 표기한 결과물이라고 보는 것이 가장 합당하다고 하겠습니다.
신도비명 등 비석류에 명(眀; 유명조선국)으로 표기된 사례도 비일비재하게 확인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