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가랴 강해 - 9
선민 부흥을 예언하심
2019. 12. 13. 금요기도회 슥 9 : 1~17
본문을 읽으시면 "선민 부흥을 예언하심"으로 이해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선민을 부흥시키시는 이유는 하나님의 선택적 사랑과(사 41:9~10) 구원 언약(창17:1~9)의 실천 때문입니다. 그런 중에 선민이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면 벌주신다는 약속도 하셨습니다(신 28:15~68). 그 약속대로 상당한 벌도 주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기의 남은 백성에 대하여 긍휼을 베푸셨고, 구원 언약도 이루셔야 합니다. 먼저 선민을 멸망에서 건지시고 평안케 하시려면 과거에 선민을 괴롭힌 열국의 대적들을 누르셔야 하고(망하게 하시는 뜻) 그 가운데서 고난 받는 백성들을 건지셔야 하며 보호하시고 평화와 공급의 은혜를 주셔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① 본문 1~2절은 "적대국들을 멸망시키심"이요, ② 8~17절은 "선민을 부흥케 하시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과정이 그 당시에는 맛보기처럼 현실적 회복(유대인 귀환, 성전 재건 등)으로 나타내 주십니다. 그러나 그것은 일시적 회복과 계시의 방편으로 이해하셔야 합니다. 그 이유는 현실적 구원과 형통이 영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선민의 진정한 부흥은 메시야를 통한 구원과 천국 운동의 확장으로 귀결된다는 것을 이해하셔야 합니다.
2. 적대국을 멸망시키심(1~7절)에 대하여
"여호와의 말씀이 하드락 땅에 내리며"라는 뜻은 팔레스틴 북쪽의 대적들을 망하게 하신다는 뜻입니다.
"말씀이 내리며"라는 뜻은 하나님의 통치의 능력이 그 지역에 나타날 것을 말씀하신 것이고, "사람들과 이스라엘 모든 지파의 눈이 여호와를 우러러봄이니라"는 하나님 앞에 인정받을 만한 회개와 신앙의 자세를 취한 뜻입니다.
그런 이유로 하나님은 이웃의 대적과 위험 요소를 제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2절에 보면 두로와 시돈을 향해 그들에게 "매우 지혜가 있다"는 것은 인본주의적 지혜를 의미합니다.
그래서 -4절을 보시면 "두로는 자기를 위하여 요새를 건축하며 은을 티끌 같이, 금을 거리의 진흙 같이 쌓았도다 주께서 그를 정복하시며 그의 권세를 바다에 쳐넣으시리니 그가 불에 삼켜질지라"고 하셨습니다. 멸망시키겠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또 5~7절에서는 블레셋 지역의 족속들이 망하고 변화될 것을 예언하셨습니다. 그 예언의 말씀은 그들이 결국은 하나님께로 돌아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본문에 나타난 지명들은 암 1:8, 습 2:4, 7에서 설명하였습니다. 유다 서남방의 지역들입니다.
2. 선민을 부흥케 하시는 과정(8~17절)에 대하여
1) 선민을 보호하신다고 하셨습니다.(8절)
"이는 내가 친히 눈으로 봄이라" 하심은 하나님이 천사에게 시키시지 않고 스스로 감찰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보호하시면 악한 자들을 가까이 오지 못하게 하셔서 지켜주시는 것이요(시 121:4~8),
2) 선한 왕, 공의로운 정치가, 겸손한 구원자를 보내셔서 선민 부흥을 일으키시는 것입니다.(9절)
스룹바벨의 선한 정치와 이를 예표로 한 실상이신 예수님이 평화의 왕으로 나귀 새끼를 타시고 입성하실 것을 예언하셨습니다. 이 사실은 스룹바벨의 통치와(4:9) 예수님의 출현으로 성취되었습니다(마 21:1~9). 예수님의 구원 사역이 선민의 영원한 부흥을 이루시는 것입니다.
3) 화평의 은혜를 베푸신다고 하셨습니다(10절).
여기서 "에브라임"은 북왕국의 초대 왕 여러보암이 에브라임 지파이기 때문에(왕상 11:26, 12:25) 누누이 북왕국 선민을 대표하는 용어로 사용한 것이고, 예루살렘은 남방 유다의 수도이므로 정통적 선민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이 두 용어를 합치면 전체의 선민이란 뜻이 되고, 신약시대로 말하면 교회와 성도의 단체를 예표하는 뜻이 됩니다.
예수님이 평화를 위하여 오신 것처럼(눅 2:14) 성도들도 은혜를 받으면 모든 불신자들에게 복음과 화평을 전하게 될 것입니다. "바다에서 바다까지"란 온 세상을 뜻합니다(행 1:8). 그 당시에는 땅 끝의 넓이를 몰랐은즉 지중해 바다 건너나 유프라데 강을 아주 먼 세계로 알았을 것입니다.
4) 구원의 은혜를 주십니다(11~12절).
11절의 "갇힌 자"는 바벨론 포로 또는 영적 사망과 같은 죄악의 입장을 뜻합니다. "물 없는 구덩이"는 일시 갇히기는 하나 건져내면 살 수 있는 곳으로 하나님이 선민을 일시적 수난에서 보호하시다가 구원하신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12절의 말씀은 현실적 보장도 하시지만 더 확실한 구원의 성취는 메시야의 구속을 통한 영원한 축복으로 갚아주실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5) 그리고 승리의 은혜를 주십니다(13~15절).
선민이 대적을 치고 이기려면 강해져야 합니다. 이때에 강해지고 이기게 하시는 은혜가 하나님으로 말미암는다고 하셨습니다.
"유다로 당긴 활로 삼고 에브라임으로 끼운 화살로 삼음"은 선민이 강하게 싸울 수 있는 의지와 능력을 주시는 뜻이고,
또 "내가 네 자식들을 일으켜 헬라 자식들을 치게 하며 너를 용사의 칼과 같게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전쟁에 이기고 지게 하시는 뜻이 하나님께 달렸다는 겁니다(삼상 17:47).
"헬라 자식을 치게 함"에 대하여는 마카비 왕조 시대에 헬라의 실루시대(Seleucidae) 왕조를 이긴 일이 있었다는 기록을 보았습니다.
14~15절은 하나님이 전쟁을 승리로 이끄실 때 나타나는 용맹에 대하여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살생이 이루어진 전쟁터를 "피가 가득한 동이와도 같고 피 묻은 제단 모퉁이와도 같을 것이라" 함은 유혈이 낭자한 승리의 전쟁터를 묘사한 말씀입니다. 전쟁터는 어느 곳이나 치열합니다. 죽이고 이겨야 하기 때문이지요. 마귀와 싸우는 성도의 신앙적 전쟁도 그만큼 치열한 것을 알고 마귀와의 싸움에 용맹스러워야 할 것을 교훈하시는 의미가 있는 줄 압니다. 하나님은 독생자의 희생의 피를 통하여 성도에게 속죄의 은혜와 승리를 주셨음을 기억하셔야 할 것입니다. 성도는 믿음을 무기로 죄를 물리치는 싸움에 승리하셔야 합니다.
6) 이상과 같은 절차를 통하여 하나님께 영광 돌리게 될 것을 말씀하십니다.(16~17절)
"양떼같이 구원하심"은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신 선한 목자를 생각하시면서(요 10:11, 14~15) 하나님의 목자적 사랑(시 23:1~6)을 깨달으셔야 하며,
또 "그들이 왕관의 보석 같이 여호와의 땅에 빛나리로다"는 뜻은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영광의 대상을 삼으신다는 뜻입니다.
또 17절 말씀은 영광을 받으시는 하나님이 자기 백성들에게 주신 승리의 은혜 외에 물질의 복도 풍성하게 주실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곡식과 포도주로 형통함은 물질의 풍요를 뜻하고, 소년과 처녀가 그것으로 강건해짐은 양식(은혜)이 넉넉하지 않았을 때 노인 어른들만 봉양하던 곡식과 포도주였으나 그것이 풍성한즉 소년들과 아이들까지 풍족하게 누리게 된다는 뜻입니다. 이상 여섯 가지 단계로 은혜를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이는 또 신약시대의 성도들이 풍성하게 누릴 것을 예언하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