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을 연고로 하는 kt wiz가 KBO리그에 가세, 2015시즌부터 프로야구는 10개 구단 체제로 펼친다.
2007시즌을 끝으로 역사 속으로 사라진 현대 유니콘스의 뒤를 이어 8년 만에 수원 연고 프로팀이 재탄생 했다는 점은 반가운 일이다. 수원시내 중고교 야구팀도 희망에 부풀어 있다. 제대로 지원을 받을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 때문이다. 유신고도 그 중 하나다.
올해로 개교 41년째를 맞는 유신고의 야구부가 창단된 건 1984년. 햇수로 30년이 넘었다. 가히 수원 야구의 맥을 이어온 터줏대감 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창단 4년 만에 봉황대기 8강 합류를 시작으로 서서히 존재감을 드러냈지만 90년대엔 광주. 경상권 지방 팀의 기세가 거셌고 2000년대 들어선 서울권의 약진 속에 이렇다 할 성적을 내지 못하는 변방에 머물렀다.
유신고가 전국대회 패권 꿰찬 건 2005년 봉황대기 단 한 차례 뿐 이다.
하지만 지난해 유신고의 행보는 달랐다. 황금사자기-청룡기 두 대회 연거푸 4강에 올랐고 그 기세를 몰아 제42회 봉황대기 대회 결승까지 직행하는 저력을 발휘했다. 비록 휘문고에게 우승기를 내줬지만 9년 만에 결승진출을 해냈다는 점은 기억될 만 하다. 당시 주축 멤버들이 저학년으로 구성되어 있었던 터라 올해도 탄탄한 전력을 갖춘 팀으로 평가받고 있다.
꽃샘추위가 누그러진 지난 6일 수원시 팔달구 우만동에 위치한 유신고를 방문했다. 널찍한 교정을 지나 아늑하게 자릴 잡은 야구장이 보였다. 한창 자체 연습경기 중이었다.
선수들의 상의 유니폼 가슴에 박힌 裕信高校이라는 글자가 한 눈에 들어왔다. 시즌이 시작될 무렵 유니폼을 바꾸는 팀도 있지만 유신고는 20년째 변함없다.
최정도 정수빈도 아닌 감독 이·성·열
21년 째 유신 이끌어 ,고교야구 최장수 사령탑
이성열 감독은 kt 모자를 애용한다.연고 구단 홍보 차원이라고. |
“멀리까지 찾아오시느라 고생 많았수다.”
이성열(60)감독은 목청 높여 인사말을 건넸다. 투박한 말투는 그대로였지만 표정은 반가움이 넘쳐났다.
“뭐 볼 게 있다고 오시나. 야구도 못하는데(웃음).”
서두는 그렇게 달았지만 인터뷰 내내 학교에 대한 자긍심, 선수 개개인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거침없이 피력했다. 그럴 만 하다.
이성열 감독은 유신고에서 보낸 세월이 무려 20년. 올해 21년째 접어든다. 국내 고교야구 최장수 감독일 뿐 만 아니라 야구 아니 다른 스포츠를 통틀어 이 정도의 장기집권(?) 지도자는 없지 싶다.
“난 여기 출신 아니에요. 배문 나왔어요. 지금은 해체된 팀이지만 김인식 감독님 후배지. 80년대 초에 팀이 해체됐는데 요즘 재창단 움직임이 있어. 반가운 일이지.”
모교도 아닌 팀을 무려 20년 넘게 이끌고 있다는 점도 놀랐지만 별 무리 없이 버티고(?)있다는 것 자체도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성열 감독은 고교야구계를 넘어 아마야구계에서 괴짜로 통한다. 자신의 의견을 관철시키는데 주저 하지 않는 불같은 성격의 소유자로 판정에 강하게 어필하는 모습은 그의 트레이드마크가 될 정도다. 가끔 상대 덕아웃 기를 꺾기 위한 고도의 심리전술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치고 빠지는 타이밍도 절묘하다.
이 현장에서 30년 가까이 몸담았으니 흐름을 끊고 살리고 정도는 땅 짚고 헤엄치기가 아닐까?
“어린 나이에 감독 자리를 맡고 보니 얕보이기 싫은 마음에 독하게 행동했지. 그런데 그게 어느 순간부터 몸에 배어버렸어. 솔직히 요즘엔 나이로 들이미는 것도 있지(웃음). 못돼서 그런 걸 어쩌겠어!”
지도자로 첫 발을 디딘 건 서른이 채 되지 않아서였다. 덕수상고(현.덕수고)에서 3년간 코치로 있다 1986년 감독 보직을 맡아 그 해 청룡기 우승을 이끌었고 이후 광주 진흥고 감독으로도 2년간 재직했다. 잠깐 심판으로 활동하다 1995년. 그의 나이 39살 때 유신학원재단의 부름을 받아 현재에 이르고 있다.
유신고 3학년 선수들 |
학부모도 쩔쩔
하물며 선수들은 오죽하랴
감독이 하늘이던 시대는 갔다. 운동부를 유지하기 위해선 학보모의 부담이 어쩔 수 없는 현실. 그런 환경 속에서 감독의 권위는 땅바닥으로 떨어진지 오래다. 그러나 예외도 있다. 바로 이감독이다.
“우리학교는 학교나 동문에서 지원이 많은 편이죠. 그래서 다들 오고 싶어 하고. 그래도 기본으로 내는 돈은 정해져 있어요. 코치 급여나 동계훈련비 또 차량 유지비 그런 건 학부모들이 십시일반 모아서 줘야 운영이 되거든. 감독 중엔 학부모랑 연령대가 비슷한 경우도 많더군. 그렇다 편하다 보니 감독을 감독으로 보지 않는 경우도 생기고 이런저런 뒷말도 나오고 잡음이 생기는 거지. 감독이 질질 끌려 다니면 그 순간 끝장이야.”
가끔 불만을 터트리거나 의견이 맞지 않는 학부모도 나오곤 한다. 그럴 땐 가차 없이 ‘내 훈련방식이나 규율이 맘에 들지 않으면 전학 가라’고 으름장 놓기 일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전학생 비율은 극히 낮은 편이다.
이 감독은 껄끄럽고 민감한 부분에 대해서도 허심탄회하게 털어 놓는 편이다.
“물론 유혹의 손길 많죠. 돈 싫은 사람 있나? 까짓것 죽을 때 지고 갈 것도 아닌데 난 선수들 키우고 가르치는 일이 좋아. 내가 하고 싶은 일, 그나마 잘할 수 있는 일을 계속하는 것이 훨씬 더 이득이잖아. 그걸 포기하고 욕심내는 건 멍청한 짓이지."
불미스러운 사건에 휘말려 이 바닥을 떠나야 하는 지도자, 학부모와 동문 혹은 학교의 강압에 의해 감독직을 내려놓아야 했던 이들에 대해 그는 스스럼없이 비판하며 앞가림을 제대로 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잘라 말했다.
철두철미하게 스스로 투명해야 하고 공정해야 한다는 것을 거듭 강조했다. 20년 넘는 세월을 오롯이 한 학교 지도자로 버틸 수 있었던 것도 끊임없이 자신을 추스르고 단속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모교 사랑 각별한 제자 수두룩
흐뭇하고 든든
이성열 감독은 제자에 대한 평가에 인색한 편이다. 칭찬보다는 꾸지람의 횟수가 몇 배 더 많다. 야구 좀 한다 싶은 선수에게는 더 혹독하고 단호하다.
“제아무리 야구 잘 하면 뭐합니까? 선수이기 전에 학생의 본분을 잊어선 곤란하지. 기본적인 예의범절은 갖춰야죠. 요즘 새 학기가 시작돼서 오전 수업을 정상적으로 받은 뒤 오후부터 훈련을 해요. 팀 성적 그것도 중요하죠. 하지만 진로나 미래를 고려하면 공부도 어느 정도는 해야 하지 않겠어요?”
가끔 프로나 대학에서 뛰고 있는 유신 출신 선수들을 만나면 과거 이감독에 대한 이야기를 화제로 삼는다. 그럼 십중팔구 ‘무섭고 단호했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혹자는 졸업이 목표였을 정도라며 몸서리치도 했다. 하지만 마지막엔 ‘지금의 나를 있게 해 준 고마운 분’ 이라는 말을 잊지 않는다.
유신의 대표적인 졸업생을 꼽자면 최정(SK.내야수)이다. 이성열 감독은 그에 대해 야구 외적으로도 나무랄 것이 없는 최고라고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운다. 모교를 위한 마음 씀씀이 때문이다.
“(최)정이는 프로간 이후 단 한 해도 거르지 않고 모교에 지원금을 냈어. 천만 원씩 꼬박꼬박. 그게 어디 쉽나? 필요한 용품이나 기구도 사서 보내고 참 한결 같아.”
류한준(넥센.외야수)도 자주 학교를 방문하는 졸업생 중 한 명. 재학선수들 사이에선 닮고 싶은 선배로 통한다.
이 밖에 최영필, 배영섭, 정수빈,정진호 등이 유신 출신 선수들. 매년 12월이면 졸업생들은 물론이고 재학생과 신입생, 학부모까지 함께하는 모임도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두고두고 아쉬움 남는 준우승의 미련
이번엔 우승? 방망이가 관건
작년 8월 포항과 군산에서 열린 봉황대기에서 유신고는 부산공고-설악-장충-충암-북일을 차례로 격파하고 대망의 결승 진출을 이뤄냈다. 전승의 중심엔 김한별- 최이경 두 2학년 투수가 있었다.
휘문고와의 결승전, 선발로 박재우(2학년.좌완)을 내세웠으나 조기강판 하고 물러났고 뒤이어 나선 원투펀치 역시 추가실점을 허용, 6-1로 무릎을 꿇었다. 타자들이 단 2안타의 빈타에 그친 것이 패인이었다.
2학년 선수들 |
“올해도 투수 쪽은 괜찮은데 방망이가 문제야. 3점만 내주면 승산 있는데...”
이성열 감독은 빠져나간 3학년의 공백이 크지 않다며 가슴을 쓸어내리면서도 전년과 마찬가지로 공격력이 살아나야 우승권을 바라볼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번 시즌 보다는 내년,내후년이 더 좋아 질 겁니다. 좋은 신입생이 많이 들어왔어요. 몇 몇은 선배 자리 빼앗지 않을까 싶어요(웃음). 올해요? 서울권이 강하던데 일단 우리는 8강으로 목표를 잡고 있어요.”
원투펀치 김한별-최이경 |
우완 김한별, 좌완 최이경이 선발과 마무리로 나서는 것이 기본이지만 좌완 박재우, 우완 김민재도 제 역할을 해줘야 한다. 1학년 우완 김민은 다크호스. 현재 페이스라면 선발 출격도 가능하다. 마운드는 비교적 풍부한 편이다.
이성열 감독이 마운드의 믿음을 보이는 근간엔 안방마님 박상언(3학년.포수)이 있기 때문이다. 이미 결승무대까지 경험한 박상언은 정확하고 빠른 송구 능력을 갖춘 유망주다.
포수 박상언 - 유격수 장웅정 |
지난해 3학년 중에는 3루수 김태훈(kt 5라운드)만이 프로 지명을 받았다. 체구는 크지 않지만 공수주에서 종횡무진 활약을 펼친 바 있다. 이 자리는 이제 김준성(2학년)-장준환(1학년)이 번갈아 맡을 예정이다. 2루는 이준우-이정훈 두 3학년이 주전 자리를 놓고 경쟁 중이다. 유격수는 지난해에 이어 장웅정(3학년)이 맡는다. 주장 장호현(3학년)이 좌익수로, 지난해 좌익수로 뛰었던 홍현빈(2학년)은 중견수로 자릴 옮긴다.
외야수 홍현빈 |
홍현빈은 톱타자로 나서며 팀 내 선배 김태훈(3할9푼)다음으로 3할 3푼6리를 기록한 외야수로 올해는 3번 타순에 배치 될 예정이다. 체구(172cm 67kg)는 작지만 발도 빠르고 수비 범위도 넓다. 무엇보다 야구센스를 타고 났다. 작년 스카우트들은 만약 3학년이었다면 당장 뽑았을 것이라며 입을 모았을 정도. 홍현빈은 올해 태극마크를 다는 것을 개인적인 목표로 삼고 있다.
유신고의 게임을 보면 막판 집중력이 와르르 무너지는 모습을 자주 연출했다. 이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선 체력 보강이 필수. 그래서 이성열 감독은 동계훈련 기간 거의 두 달 동안 뜀박질을 시키고 또 시켰다.
전반적으로 마운드는 어느 팀에게도 꿀리지 않는다. 대신 방망이는 중위권. 결국 실책을 얼마나 줄이느냐가 상위권 진입을 좌우할 것으로 보인다.
외야수 장호현 |
주장 장호현에게 학교 자랑을 요구하자 그는 단번에 이렇게 답했다.
“우리 팀은 정말 열심히 해요. 말도 잘 듣고 성실하고 그게 저희 컨셉인 거 같아요. 하고자 하는 의지도 넘치고 야구에만 집중 할 수 있는 좋은 환경도 갖추고 있어요. 작년에 우승을 눈앞에서 놓쳤던 걸 두고두고 떠올리곤 해요. 올해는 아쉬움의 눈물이 아닌 기쁨의 눈물을 흘릴 수 있도록 할래요.”
2005년 봉황대기 우승 이후 10년간 패권을 꿰차지 못한 유신고. 과연 ‘청춘을 다 바친 ’ 호랑이 감독에게 10년 만에 값진 선물을 안겨 줄지 지켜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