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시 ; 2023. 6. 4(주일) - 성령강림절 후 첫째 주일, 삼위일체주일- (2023년 23주)
제목; “태초부터 창조자와 함께한 지혜”
성경; 잠 8:1-4, 22-31 (p.918) (잠 9:9-10, 380<424>, 510<276>, 5)
<예배의 부름>(잠 9:9-10) “지혜 있는 자에게 교훈을 더하라 그가 더욱 지혜로워질 것이요 의로운 사람을 가르치라 그의 학식이 더하리라,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
I.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호국보훈의 달 6월 첫째 주일에 우리 주님의 은혜와 평강이 충만하시길 기원합니다.
오늘은 ‘성령강림절 후 첫째 주일’인 동시에 ‘삼위일체주일’로 지키는 주일입니다. 하나님의 인류 구원을 위한 계획과 섭리 가운데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주시고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게 하심으로 인류 구원을 완성하시고, 40일 동안 이 땅에 계시다가 승천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대로 오순절 날 성령님께서 강림하시므로 성령의 시대를 열어주셨습니다. 이렇게 성령님께서 이 땅에 임하시므로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함께 역사하시는 것을 기념해서 독일 교회력에서는 오늘을 ‘삼위일체주일’로 지키는 것입니다.
특별히 독일교회에서는 이 성령강림주일과 삼위일체주일을 ‘에큐메니칼(ecumenical) 주일’ 즉 ‘교회일치주일’로 지키면서 교회 일치와 선교에 초점을 맞추어 특별 프로그램을 갖습니다. 독일교회는 이 기간 동안 매 2년마다 ‘교회의 날’(Kirchentag) 행사를 치르면서, 교회가 이 역사와 사회 속에서 행하고 있는 모든 선교활동을 나타내 보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한 창조주 하나님, 한 구원자 예수님, 한 보혜사 성령님을 한 입으로 고백하는 그리스도인과 교회로써, 교회 일치와 선교에 초점을 맞추는 성령강림절과 삼위일체주일을 보내며, 수많은 교단으로 분열된 한국 교회의 현실을 바라봅니다. 분열로 점철된 한국 교회의 역사를 바라보며, 우리부터 주인 되신 주님의 뜻을 따라 우리 사이의 모든 벽과 담을 허물어버리고 일치와 화해를 이뤄가며, 더 나아가 교회와 교단의 일치를 위해서 노력하고, 또 이 땅의 파괴되고 무너져가는 가정과 가족들을 화해시키고 화합시키며 통일시키는 일치와 화해, 통일의 역군들이 다 되실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II.
오늘 우리의 본문 말씀(잠 8:1-31)은 지혜의 보고인 잠언서의 주제 그대로 지혜에 관해서 교훈으로, 지혜의 소개(1-3)와 창조 원리로서의 지혜(22-31)를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인 8장을 두 부분으로 나누면, 1-21절에서 ‘지혜의 초청과 이 세상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지혜의 우월성과 높은 가치’를, 22-36절에서 ‘지혜의 기원과 창조 사역에서의 역할, 지혜 추구의 권면’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오늘 본문(잠언 대부분)에서 지혜가 여성으로 ‘의인화’되어 모든 영역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 지혜(智慧. 知慧)의 사전적 의미 :
“지혜”를 사전에 찾아보면,‘①사물의 이치를 빨리 깨닫고 사물을 정확하게 처리하는 정신적 능력(삶의 지혜). ②제법(諸法)에 환하여 잃고 얻음과 옳고 그름을 가려내는 마음의 작용으로서, 미혹을 소멸하고 보리(菩提)를 성취함. ③하나님의 속성 가운데 하나. 히브리 사상에서는 지혜의 특성을 근면, 정직, 절제, 순결, 좋은 평판에 대한 관심과 같은 덕행이라고 본다.’라고 말합니다. 영어로 “위즈덤”(wisdom) 역시 ‘지혜, 슬기, 현명함’ 등이라고 말합니다. 지혜는 한 마디로 인간이 인생을 살아가는데 가장 필요한, 가장 기초적인 능력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 성경, 특히 잠언에서 말하는 지혜(호크마, חָכְמָה) :
성경에서도 인간이 인생을 잘 살아가기 위해서 반드시 갖추어야 할 것이 지혜라고 말합니다. 특별히 잠언은 인간이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이 지혜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구약 성서에는 지혜라는 단어가 280회 이상등장하는데, 그중에서도 잠언에 30%에 해당하는 101회나 사용되므로, 잠언은 그야말로 ‘지혜의 책’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잠언은 무엇을 지혜라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잠언은 지혜에 관해‘여호와를 경외함’(1:7,9:10), ‘어리석음의 반대’(7:7), ‘악을 미워하는 것’(8:13), ‘겸손’(11:2) 등 여러 가지로 말씀하지만, 특별히 오늘 본문 잠언 8장은 지혜의 정체성을 ‘창조’와 관련하여 밝히고 있습니다.
대개 우리는 지혜를 우리가 원하는 바를 성취하는데 필요한 수단이나 방법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본문 말씀은 지혜를 보다 높은 차원의 창조 원리요, 실체(substance)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복을 주십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이 복을 소유하고 다루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복이 아브라함의 삶을 인도하고, 그로 하여금 세상에 복된 존재가 되도록 만들어 나갑니다. 요셉의 경우 요셉이 꿈을 꾸지만 그가 꾼 꿈이 요셉을 보디발 장군 아내의 유혹을 이기게 하고, 억울하게 갇힌 감옥에서도 소망을 잃지 않도록 하며, 형들과 화해를 이루는 신학적 원리로 작용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다니엘은 바벨론 포로 생활 가운데 뜻을 정하여 하나님 앞에 성결한 삶을 살지만, 사실 다니엘을 다니엘 되게 하는 것은 그가 세운 뜻입니다. 이처럼 구약 성서에는 복, 꿈, 뜻과 같은 실체가 등장하는데, 그러한 실체는 어떤 존재로 하여금 그 존재를 향하신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이 달성되도록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오늘 잠언 본문이 지혜를 창조와 관련해 그 성격을 드러내는 이유는 지혜가 지혜를 얻은 자들에게 그들을 향하신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이 달성되도록 인도해주기 때문입니다.이와같이 창조의 원리로서 인간사에 역사하는 지혜의 속성을 ‘지혜의 계시성’이라고 합니다. 오늘이 ‘삼위일체주일’인데, 우리는 우리의 삶에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이 이루어지도록 인도해주는 지혜를 어떻게 만날 수 있을까요?
1. 어떻게 지혜를 만날 수 있습니까? : 지혜의 공개성과 편재성
잠언 8장의 서론인1-3절은 “지혜가 부르지 아니하느냐 명철이 소리를 높이지 아니하느냐, 그가 길 가의 높은 곳과 네 거리에 서며, 성문 곁과 문 어귀와 여러 출입하는 문에서 불러 이르되”라고, ‘공공장소에서 소리치는 여성 지혜’를 소개합니다. 여기서 지혜는 여성으로 ‘의인화’되어 있고, 3인칭으로 소개됩니다. 지혜가 부르짖고 명철은 소리를 높이는데, 지혜와 명철은 동의어입니다. 그런데 지혜가 그렇게 소리를 높이고 부르짖는 장소는 사람들이 많이 왕래하고, 잘 듣고 볼 수 있는 길 가, 네거리, 성문 곁, 문 어귀, 여러 출입문입니다. 이것은 7장에 소개되는 음녀의 시간이나 장소와 강한 대조를 보입니다. 음녀는 어두운 밤에 으슥한 골목 모퉁이에서(8-9) 은밀하게 말하나, 지혜는 밝은 대낮에 공개적으로 모든 사람을 향하여 말합니다.
이와 같이 여성 지혜가 활동하는 공간은, 사람을 미혹하는 음녀의 길과(7:26) 달리, 공개적인 곳이며 공공의 영역입니다. 특별히 공개적인 장소 중에서도 많은 사람이 출입하는 문(門)이 강조되고 있는데, 자세히 보면 잠언 8장은 문으로 시작해서(3) 문으로 마치는(34) 수미상관(首尾相關)의 구조로 짜여 있습니다. 그만큼 지혜가 사람들이 쉽게 들을 수 있도록 누구나 왕래하는 문에서 부르짖고 있음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지혜의 특성을 ‘지혜의 공개성’ 또는 ‘편재성’이라고 합니다.
잠언 8장에서 소개된 여성 지혜의 말을 따르면 지혜는 창조 세계 곳곳에 스며 있습니다(22-31).이것을 지혜의 ‘편재성’이라고 말합니다. 창조 때에 보여준 지혜의 모습은 지혜가 기쁨의 ‘주체’가 되기도 하지만, 지혜는 기쁨의 ‘대상’이 되기도 합니다. 지혜가 창조 세계를 보고 기뻐하지만, 반대로 창조 세계에 속한 모든 것이 지혜를 보고 기뻐합니다. 이러한 ‘공개성’을 가진 지혜이기 때문에 여성 지혜는 사람들이 가장 잘 볼 수 있고 잘 들을 수 있는 ‘공개된 공적’ 장소에서 외쳐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지혜의 특성에 기반하여 신약 성서는 본문의 의도와 의미를 최대한 확장하여 이 지혜를 그리스도와 연결합니다(요 1:1-3, 골 1:15). 이는 마치 근본 하나님의 본체이신 예수님이 세상에 인간의 육신을 입고 오신 것과 같은 ‘지혜의 성육신’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타난 지혜의 활동이 그리스도의 사역이 됩니다. 바울은 이렇게 단언합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고전 1:24)
삼위일체주일에 우리는 오늘 본문의 여성 지혜의 목소리를 통해, 성육신하신 그리스도의 음성을 듣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이요 지혜이신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신명기 30:11 이하에 보면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어려운 것도 아니요 하늘에 있는 것도 아니어서 하늘에 올라가 그 명령을 가져와야 하는 것도 아니고, 바다 밖에 있어서 누가 바다를 건너가 가져와야 하는 것도 아니라고, 오직 그 말씀이 매우 가까워 네 입에 있고 네 마음에 있은즉 네가 이를 행할 수 있다.’(신 30:11-14)라고 말씀합니다. 마찬가지로 지혜 역시 우리에게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삶의 모든 길목과 관문마다 우리를 기다리며 외치고 있어 지혜가 필요한 그 누구도 지혜를 만나고 싶은데 만나지 못하는 일은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때때로 시험에 들거나 죄된 유혹에 빠지면 다음과 같은 변명을 하곤 합니다. “그땐 어쩔 수 없었어. 누구라도 그 상황에서는 나같이 실수했을 거야. 도저히 그때 그 유혹에서 이겨낼 힘이 없었어.”그러나 그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지혜는 자신을 우리에게 드러내는 공개성과 편재성을 가지고 언제 어디서나 우리에게 외치고 있기 때문에 그 누구도 자신의 지혜 없음과 어리석음을 정당화할 수는 없습니다. 실제로 우리는 언제 어디서나 손만 뻗으면 유튜브에 넘쳐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떤 어려운 상황에서도 우리에게 마지막으로 이길 힘을 남겨두신다고 합니다. 우리가 지혜의 공개성과 편재성을 인정하는 순간 우리를 향해 손짓하며 부르는 지혜를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본문에서 의인화된 지혜는 많은 사람들에게 노출된 공공 장소에서 모든 사람을 청하고 있다는 사실을 극명하게 대조하며 부각시키고 있습니다. 지혜가 이처럼 사람들이 많이 왕래하는 공공장소에서 오고가는 모든 사람들을 향해 외쳤다는 사실은 지혜의 말씀이 어느 한 사람에게도 예외 없이 모두에게 적용되어야 하는 진리이며, 모두가 반드시 알아야 하는 필수적인 지식이라는 사실을 의미합니다. 또한 그것은 어디에 내놓아도 부끄러울 것 없는 존귀하고 고귀한 것이라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누가 지혜자와 같으며 누가 사물의 이치를 아는 자이냐 사람의 지혜는 그의 얼굴에 광채가 나게 하나니 그의 얼굴의 사나운 것이 변하느니라”(전 8:1)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시키며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를 지혜롭게 하며,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시도다”(시 19:7-8)
2. 지혜는 어떤 존재입니까? : 지혜의 계시성과 영원성
오늘 본문 22-23절에서, “여호와께서 그 조화의 시작 곧 태초에 일하시기 전에 나를 가지셨으며, 만세 전부터, 태초부터, 땅이 생기기 전부터 내가 세움을 받았나니”(22-23)라고 말하므로, 지혜의 존재가 ‘만세 전, 태초’ 곧 창조 전부터 존재했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22절에서‘가지셨다’(카나, קנה)라는 동사는 ‘사다’, ‘소유하다’, ‘획득하다’, ‘낳다’, ‘얻다’, ‘창조하다’등 다양한 의미를 지니는데, ‘무엇을 소유하거나 창조하는 행위’를 의미하는 동사입니다. 그래서 “여호와께서 … 나를 가지셨으며”를 영어 성경(KJV, NIV)에서는 ‘여호와께서 나를 소유하셨다’(The LORD possessed me.)라고 번역합니다. 이는 이어지는 25절에서 ‘났다’(출산했다)라는 말과 연결되어, 하나님께서 잉태와 출산을 통해서 지혜를 소유하셨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이렇게 22-31절 말씀은 지혜가 창조 이전부터 존재했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지혜는 만세 전, 태초에, 땅과 하늘, 바다와 물 등 모든 것이 생기기 전, 모든 물질세계가 만들어지기 이전에 하나님께 지음을 받았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지혜는 하나님께서 창조 사역을 하실 때 마치 건축가의 조수처럼 하나님을 도와 우주 창조에 참여한 것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잠언기자는 이같은 사실을 통해, 지혜는 인간의 경험과 지식을 뛰어넘어 하나님께로부터 기원한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지혜의 ‘영원성’이요, ‘초월성’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지혜가 인간적 경험이나 지식에 기반한 처세술과 같은 것이 아니라는 점을 인지하고, 지혜를 보다 높은 차원의 신적 기원을 가진 신령한 것임을 겸손히 인정하며 지혜를 귀히 여길 때 우리는 비로소 지혜와 동행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지혜는 이렇게 하나님의 창조 역사에 자신을 보여주는데, 이를 ‘지혜의 계시성’이라고 말합니다. 지혜는 단순히 창조 이전에 존재하던 것으로 자신의 의미를 다 보여주지 않습니다. 지혜는 하나님의 창조 활동에도 참여한 ‘창조의 원리’임을 보여줍니다. 30절“창조자”의 히브리어 원어 ‘아몬’(אמון)은 ‘숙련공’, ‘장인’이란 뜻으로,지혜가 하나님 곁에서 장인으로서 하나님의 창조 사역을 도왔다고 말합니다. 이는 27절에서 지혜가 “내가 거기 있었고”라고 말한 것과 일치합니다. 이러한 지혜에는 하나님의 법칙과 원리가 담겨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보여주는 ‘계시의 출처’가 됩니다. 이러한 의미를 생각하면, 지혜의 음성을 듣는 것은 곧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이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혜는 그 기원이 창조 이전에 있는, 세계 창조 이전부터 존재해 왔습니다. 그리고 지혜는 하나님의 창조 역사와 함께 자신을 계시하였습니다. 이와같이 지혜는 인간의 경험과 지식을 뛰어넘는 존재이며, 따라서 지혜는 인간적 경험이나 지식에 기반한 처세술이나 삶의 지혜와는 다르며, 시공간의 제약 속에 있는 인간은 신적 기원을 가진 지혜에 대해 함부로 말하거나 거부하면 안 된다는 사실을 분명히 가르쳐 줍니다. 이렇게 창조의 역사와 함께 계시된 지혜는 하나님과 함께 영원히 존재한다는 기억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며 창조주 하나님을 찬양하고,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주시는 은혜와 복을 풍성히 받고, 나눠주는 지혜로운 성도님들 다 되시길 기원합니다.
“여호와의 말씀으로 하늘이 지음이 되었으며 그 만상을 그의 입 기운으로 이루었도다, 그가 바닷물을 모아 무더기 같이 쌓으시며 깊은 물을 곳간에 두시도다, 온 땅은 여호와를 두려워하며 세상의 모든 거민들은 그를 경외할지어다”(시 33:6-8)
“여호와여 주께서 하신 일이 어찌 그리 많은지요 주께서 지혜로 그들을 다 지으셨으니 주께서 지으신 것들이 땅에 가득하니이다"(시 104:24)
3. 지혜는 어떻게 성취됩니까? : 예수 그리스도
그런데 오늘 본문은 한 가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시사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지혜의 인격화와 신격화입니다. 우리는 공공장소에서 외치는 지혜의 공개성과 편재성에서 인격화된 지혜의 모습을 만날 수 있습니다. 동시에 만세 전, 태초에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실 때 함께 있었던 지혜의 영원성을 통해 신격화된 지혜와 동행하게 됩니다.
이러한 지혜의 특성을 기반으로 신약 성서는 본문의 의미를 최대한 확장하여 지혜를 그리스도와 연결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다음과 같이 단언합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고전 1:24)우리에게 성육신하셔서 인격화되신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동행한다면 우리는 인생에서 방황하지 않고 지혜의 길로 인도받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지혜를 얻은 결과는 무엇일까요? 본문 30절과 31절은 지혜가 창조주 하나님과 함께할 때의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내가 그 곁에 있어서 창조자가 되어 날마다 그의 기뻐하신 바가 되었으며, 항상 그 앞에서 즐거워하였으며, 사람이 거처할 땅에서 즐거워하며 인자들을 기뻐하였느니라.” 이것이 바로 로고스요, 지혜요, 생명이요, 말씀이신 예수님이십니다. 사도 요한은 이 사실을 이렇게 말합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요 1:1-3)이 말씀(로고스)이요 지혜이신 주님이 하나님과 함께 천지를 창조하시고, “좋았더라. 좋구나. 참 좋구나.” 하시며 기뻐하셨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생명을 창조하시고 가장 기뻐하셨던 하나님이십니다.
C.S. 루이스는 이 30-31절 말씀에 대해 “기쁨은 주관적 체험이 아니라, 실재에 뿌리박고 있는 체험이다.”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기쁨 자체를 기뻐하는 것이 아니라 기쁨이 지시하는 것을 기뻐하게 되는데, 기쁨은 하나님을 가리키며, 하나님이라는 실재를 경험했을 때 일어나는 정서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서 지혜는 하나님과 함께 기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도 지혜를 얻는 순간 기쁨을 얻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지혜를 얻을 때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신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말씀에서 기쁨뿐만 아니라 생명을 얻는다고 말합니다. “대저 나를 얻는 자는 생명을 얻고 여호와께 은총을 얻을 것임이니라, 그러나 나를 잃는 자는 자기의 영혼을 해하는 자라 나를 미워하는 자는 사망을 사랑하느니라”(35-36) “대저 나를 얻는 자는 생명을 얻고”, 다시 말하면 ‘나 지혜를 얻으면 생명을 얻는다.’는 말입니다. 반대로 “나를 잃는 자는 자기의 영혼을 해하는 자라 나를 미워하는 자는 사망을 사랑하느니라”, 다시 말하면 ‘나 지혜를 잃으면 생명을 잃는다.’는 말입니다.
이렇게 본다면 오늘 본문 지혜 이야기는 생명의 이야기입니다. 지혜를 말하지만 그 지혜는 생명을 말하는 것입니다. “나는 태초에 하나님이 일하시기 전에 있었다.”(22)그것이 무엇입니까? ‘생명’입니다. 이어서만세 전, 세상이 지어지기 전, 땅이 생기기 전, 바다가 있기 전에 하나님과 있었던 그 지혜는 ‘생명’입니다. 하나님은 그 지혜로, 그 말씀으로, 그 생명으로, 세상을 창조하셨습니다. 그 지혜를 부으시고, 그 말씀을 채우시고, 그 생명으로 부으셨습니다. 그리고 나서 “보시기에 좋았더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은 삼위일체주일입니다. 하나님의 최고의 지혜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하며 지혜를 얻고 하나님의 기쁨과 생명에 동참하시는 은혜가 있으시길 기원합니다. “주께서 생명의 길을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충만한 기쁨이 있고 주의 오른쪽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시 16:11)
III.
언젠가 읽었던 “교장 선생님의 재치”라는 짧은 글이 생각나서 나누면서 말씀을 마무리하려고 합니다.
어느 한 학교에 교장 선생님이 새로 부임하는 선생님을 소개하기 위해 단상에 올라섰습니다. 학생들은 계속 떠들어대기 시작했습니다. 이 광경을 본 교장 선생님은 잠시 생각하는 듯하더니, “여기 새로 오신 선생님은 왼쪽 팔이 하나밖에 없습니다.”
순간 모든 학생들이 놀란 듯 갑자기 조용해졌습니다. 학생들의 눈과 귀가 모두 단상으로 모였습니다. 그때 교장 선생님께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 물론... 오른쪽 팔도 하나밖에 없습니다. 하하하”
그렇지요. 우리 모두는 팔이 두 개이지만, 왼쪽 팔은 하나뿐입니다. 물론 오른쪽 팔도 하나뿐입니다. 만약 둘 있다면 정말 심각한 장애인이겠지요...
오늘 본문과 잠언에서 말하는 지혜 역시 대단한 것 같지만 우리의 삶 속에서 실제적으로 적용되어지고 사용되는 지혜입니다. 물론 세상적 지혜와는 결이 다른 지혜이지만...
성경에서 가장 중요한 지혜의 정의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입니다(“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거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잠 1:7)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잠 9:10)).
그리고 성경에서 말하는 지혜(호크마)는 실제적인 지혜입니다. “브살렐과 오홀리압과 및 마음이 지혜로운 사람 곧 여호와께서 지혜와 총명을 부으사 성소에 쓸 모든 일을 할 줄 알게 하신 자들은 모두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대로 할 것이니라”(출 36:1)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은 삼위일체주일입니다. 지난 주 성령 강림을 통해 창조주이시고 천지의 대주재인 성부 하나님, 육신의 몸을 입으시고 성육신하셔서 우리에게 구원과 영생을 주신 성자 예수 그리스도, 지금도 살아계셔서 우리와 함께 동행하시고 감동과 은혜를 주시는 성령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하는 성도님들 다 되시길 기원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잠언 기자는 만세 전에 창조주 하나님의 역사에 함께한 지혜의 계시성과 영원성, 그리고 공개성과 편재성은 성육신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성취되었다고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주(主)로 고백하므로 구원과 영생을 얻고, 창조주 하나님의 지혜의 완성이신 성육신하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하므로 풍성한 지혜를 얻고, 하나님의 기쁨과 생명에 동참하시는 은혜가 충만하시길 기원합니다. 그리고 이 기쁨과 생명의 근원인 지혜, 삼위일체 하나님의 창조적 지혜를 나누면서 살아가는 성도가 됩시다. 아멘! 샬롬!!
첫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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