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인환" 시인의 회고담
명동 뒷골목 목로주점 <경상도집>에 시인 박인환(1926~1956), 작곡가 이진섭, 가수 겸 영화배우 나애심 등이 둘러앉아 막걸리 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6․25전쟁의 매캐한 상흔이 어지러이 남아 있었다. 노래 한 곡 불러보라고 지분거렸지만 나애심은 딴청만 부리고 있었다. 박인환은 주모에게서 받은 누런 종이에 무언가를 끄적이고 있었다.
이진섭이 두 눈을 번쩍 뜨더니 종이를 낚아챘다.
즉석에서 곡을 붙여 "나애심"에게 한 번 불러보기를 청했다. 성의 없이 노래를 한 번 불러보고는 이내 자리를 떴다.
왁자지껄 주점으로 들어섰다. 두 후래자後來者와 인사를 나누고 찌그러진 양은술잔에 거푸 막걸리 석 잔씩을 권한 뒤 "이진섭"이 "임만섭"에게 악보를 건네주었다.
우렁찬 테너로 「세월이 가면」을 열창했다. 우르르 <경상도집> 앞으로 몰려들었다.
다시 막걸리 한 잔을 쭉 들이켜더니 「세월이 가면」을 재창했다.
세인들에게는 -명동엘레지-로 널리 알려졌다. 「세월이 가면」으로 리바이벌하여 크게 히트시켰다.
10년 전에 타계한 첫사랑 여인의 기일을 맞아 망우리공동묘지를 다녀왔다. 마치 자신의 마지막 생을 예감이라도 한 듯..
애절한 추억을 한 올 한 올 반추한 정한(情恨)이었다.
젊은 시인의 적막한 심경이 시공을 건너와 가슴을 에인다.
사라질 리야 있겠는가. 수많은 이들의 심금을 울리고 있는 것을.
1956년 3월 29일, 자택에서 잠들었다가 영영 깨어나지 못했다.
열정적 시인이 만 30세의 너무나 아쉬운 나이로 세상을 등진 것이다.
언제나 깔끔한 정장에 넥타이 차림으로 명동을 누볐던 ‘명동신사’ "박인환"은 동료 문인들의 청을 받아들인 미망인(박인환의 부인)의 양해 아래 망우리공동묘지 옛 연인의 묘 옆에 묻혔다. 사랑도 시도 삶도 조용히 정리 하면서 순결한 꿈으로 부풀었던 그의 청년기에 아름다운 무지개 처럼 영원히 남아있는 첫 사랑 연인의 무덤에 작별을 고하면서 젊은 날의 추억은 아름다운 빛깔로 그의 가슴을 채웠으리라
낭독한 조시(弔詩)의 마지막 구절이다.
명동시민'의 한 사람이었다. "박인환"은 강원도 인제 출신으로 평양의전을 다녔으나 낙원동에 서점을 열어 생계를 꾸렸다.
시인으로 등단했으며, 詩동인지 *新詩論*을 발간하는 등 활발하게 창작활동을 펼쳐나갔다.
그가 남긴 육필집은-박인환 選詩集-이 유일하다 *** "박인환" 의-문학 예술사 -에서 발췌.***
**** 세월이 가면 **** 지금 그 사람은 이름은 잊었지만 그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네
바람이 불고 비가 올 때도 나는 저 유리창 밖 가로등 그늘의 밤을 잊지 못하지
사랑은 가고 옛날은 남는 것 여름날의 호숫가 가을의 공원 그 벤치 위에 나뭇잎은 떨어지고 나뭇잎은 흙이 되고 나뭇잎에 덮여서 우리들의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
지금 그 사람은 이름은 잊었지만 그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네 내 서늘한 가슴에 있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