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론강단-557 시험과 시련을 이기는 믿음(야고보서1장1-4절)
성경말씀은 야고보서 1장 1절에서 4절까지 봉독합니다.
[야고보서 1장]
1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 야고보는 흩어져 있는 열 두 지파에게 문안하노라
2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3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4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오늘 저녁부터 야고보서를 공부하게 될텐데, 지금쯤 와서 우리가 야고보서를 공부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신약과 구약을 제대로 공부하지 않은 사람들이 야고보서를 덜렁 열어보거나, 아니면 좀 치우친 복음주의 ‘오직 믿음 오직 믿음’ 이런 말만 하던 복음주의에 젖어서 살아온 사람들은 야고보서를 아예 외면해버리거나 아니면 야고보서를 참 납득할 수 없다. 그런 입장을 취합니다.
유명한 마르틴 루터가 이 야고보서를 혹평해서 말하기를 ‘야고보서는 지푸라기 서신이다.’ 이런 말을 했어요.
왜 지푸라기 서신이라고 말했느냐 하면, ‘구원받는 것은 오직 믿음으로만 구원받는 것인데, 왜 행함을 강조하고 율법적인 이야기를 하느냐?’ 해서 아주 납득할 수 없는 서신이라고 혹평을 했습니다. 잘못본 거죠.
우리가 야고보서를 바르게 볼려고 하면 구약과 신약을 원만하게 봐야 되고, 다른 모든 책을 거의 원만하게 알아야 야고보서를 오해 없이 볼 수 있다는 겁니다.
우리는 지난 시간 네번에 걸쳐서 히브리서를 봤습니다.
히브리서를 보면 거기에 네로황제 박해의 바람이 불어왔을 때, 옛날 유대교를 신봉하던 사람들이 예수님을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고 그냥 군중심리에 휩쓸려서 우르르 기독교로 왔다가 기독교 박해가 몰려오니까 우르르 다시 옛날 유대교로 돌아가는 이런 갈팡질팡하는 것을 봤다는 거죠.
그래서 이 야고보서는 믿음 중에서도 거짓 믿음이 있다. 가짜 믿음이 있다는 거예요.
참 믿음이 아니라는 거예요.
그래서 야고보가 행함만 강조한 게 아니라, 참 믿음을 말하다보니까 참 믿음이 어떤 믿음이냐? 행함이 있어야 돼요.
그래서 그 행함이라는 것은 옆사람 쥐어박는 것도 행함이죠.
그런 행함 말고 사랑의 실천, 긍휼을 행하는 믿음이다. 이렇게 되어 있어요.
야고보가 말하는 행함이라는 것은 긍휼을 실천하는 그런 참된 경건이다.
그래서 여러 가지로 참 믿음은 어떤 믿음이냐? 이런 얘기를 이어가는데,
첫째 야고보가 우리에게 말하는 참 믿음은 시험과 시련을 이기는 믿음이예요.
오늘 첫 번째 시간에 살펴볼 믿음이죠.
그 다음에 사랑의 실천, 긍휼의 행함이 있는 믿음.
그리고 인내로서 결실하는 믿음.
인내가 없는 믿음은 어려움 닥칠 때마다 넘어지는 믿음이니까 그래가지고는 생명의 면류관을 받지 못합니다.
그 다음에 선한 열매가 가득한 믿음..
선한 열매가 있어야 돼요.
만약에 오늘 믿고 오늘 그만 선을 행할 어떤 시간적 여유도 없이 돌아가신다면 열매를 기대할 수 없겠지만, 10년을 신앙생활하고 20년 하고 30년 했는데, 아무 선한 열매가 없다면 가짜 믿음이예요.
괜히 한 종교인으로 교회 왔다갔다 하는 거예요. 종교인으로..
이런 믿음은 하나님앞에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이것은 구원 안된다는 거예요.
그 다음에 편벽과 거짓이 없는 믿음..
어떤 사람은 어느 쪽으로 편벽되게 기울어지고, 어떤 사람은 거짓 믿음이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편벽과 거짓이 없는 믿음..
여섯 번째 세상과 벗하지 않는 믿음..
어떤 사람은 세상도 즐기고 천국도 가고 싶고 그래가지고 아주 완전히 세속적인 그런 세상을 사랑하는 마음이 아주 충만한 그런 사람들이 있는데, 이것은 하나님의 원수인 것이다.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되게 하는 것이다.
그 다음에 마지막으로 사랑과 긍휼이 있는 믿음이다.
그래서 일곱가지 정도로 요약할 수 있는데, 야고보가 말하는 참 믿음이라는 것은 첫째가 시험의 바람이 불어왔을 때 시련과 시험과 유혹과 테스트와 여러 가지입니다.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할 때 여러 가지 시험이 ‘페이라조’라고 되어있는데, 페이라조라는 말의 정확한 해석은 상당히 어렵습니다.
그래서 여러 가지 시험을 합해서 페이라조라고 하는데, 어떤 때에는 이 페이라조를 트라이얼(trial;시련)이라고 번역된 곳이 있고, 어떤 데에는 탬테이션(temptation;유혹)이라고 번역된 데가 있어요. 어떤 데에는 테스트(test;시험)라고 되어 있어요.
그래서 유혹이나 시련이나 검증이나 이런 전체를 다 합해서 페이라조 이렇게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신앙생활 하는 가운데 유혹도 있을 수 있고,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는가 보자 하고 검증도 해 볼 수 있고, 그리고 연단할려고 하는 시련의 고통도 있고 여러 가지가 있는데, 이것을 다 이겨야 돼요.
시련도 이겨야 되고 유혹도 이겨야 되고 테스트도 통과해야 돼요.
그래서 그런 것이 아무 것도 없기를 바라는 신앙은 안돼요.
제가 어디가서 이야기 하면 ‘목사님 시험 좀 없는 것 어떻게 안 됩니까?’
안 됩니다. 시험 안 되고 갈 수 있으면 좋겠는데, 그런 것은 없어요.
아브라함도 시험하고 이삭도 시험하고 야곱도 시험하고 요셉도 시험하고 다윗도 시험하고, 심지어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님도 시험하는데, 어떻게 우리가 시험을 면하겠어요?
무시험으로 갈 수 있는 곳 딱 한군데 있습니다. 지옥이예요.
거기는 시험칠 필요도 없고 면접도 필요 없고 이미 지은 죄만 가지고도 충분히 갈 수 있어요. 아무나 갈 수 있어요.
그런데 각종 좋은 곳으로 갈 사람은 반드시 시험을 통과해야 되는 거예요.
그래서 그 시험이 시련도 있고 어떤 것은 겪어보면 시련이야.
여러분 시련은 우리를 강하게 하는 겁니다.
그 다음에 우리를 순수하게 해요.
시련과 고난을 겪어야 강해지고 순수해지고, 우리가 그것을 단련이라고 하고 연단이라고 하죠.
제가 진주에 경상대학 안에서 사범대학 수학교육과 교실을 빌려가지고 청년 대학생들에게 성경을 가르친 적이 있었어요.
건너편에 단조공장이 있었어요. 단조..
단조가 뭐냐 하면, 쇠를 달구어서 두들겨 패는 겁니다.
이리 때리고 저리 때리고 계속 때리는데 쇠가 쇠를 때리는 소리가 굉장히 크게 나니까, 대학에 굉장히 불편을 줬을 거야.
정식으로 허가 난 공장이었는데 대학이 뒤에 들어왔거든요.
그러니까 뒤에 들어온 대학이 와서 앞에 있던 단조공장을 철거하라고 못하잖아요.
저야 일주일에 한번 가서 가르치는데 굉장히 귀에 거슬렸어요.
그 단조공장에서 뭘하느냐? 쇠를 때리는 겁니다.
여러분 쇠가 보기에는 우리 눈으로 볼 때에는 눈이 하도 시원찮으니까 단단해 보여도, 아주 고배율의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면 쇠에 구멍이 숭숭 나 있어요. 찐빵처럼..
찐빵 같이 쇠 속에 거품이 들어 있어요.
그래서 달구어서 쇠를 줘패면 거품에서 바람이 빠져요.
빠져서 거품이 없으면 밀도가 높은 쇠가 되는 거예요.
거기다가 차가운 물이나 기름속에 담그면 쇠가 굳어지고 단단해지고 안에 잔잔한 미세한 공극이 사라지면서 현미경으로 보면 거의 그런 구멍이 안 보이게 됩니다.
그런 쇠로 만드는 게 단조공장에서 하는 건데, 때리는 겁니다.
쇠는 불속에 들어갔다가 나오면 얻어맞아요.
얻어맞는 게 끝나면 또 불속에 들어가요. 불에서 나오면 또 얻어맞아야 돼.
얻어맞고 불속에 들어가고 얻어맞고 불속에 들어가고..
그러는 가운데 쇠가 순수해지고 단단해지는 겁니다.
이렇게 말하는 저도 그런 것 닥치면 힘들어요.
얻어맞는 것도 힘들고 불속에 들어가는 것도 힘드는데, 그럴 때 순수해지는 겁니다.
그래서 그런 여러 가지 시험과 시련과 검증과 유혹과 여러 가지가 있는데, 다 통과해야 돼요.
지금 오늘날 보통 이른바 번영신학이라고 하는 성공주의 신학에는 이런 것은 언급도 하지 않습니다.
무조건 잘 된다는 거야. 잘 된다..
잘 안 될 수도 있어요.
예수 믿고도 잘 안 될 수도 있고, 잘 안 되어도 실패한 게 아닐 수 있어요.
제가 가끔 그런 얘기 하죠.
여러분 나사로와 마리아 마르다 뭐가 잘 된 겁니까?
예수 믿는 것 외에는 잘 된 게 없어요.
그래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버린 것도 아니고, 여러분 하는 것마다 잘 안 된다.. 잘 안 된다고 우리가 인생 실패한 것과 신앙 실패한 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제가 볼 때 어떤 사람은 하는 것마다 안 되는 거야.
남이 할 때는 잘 되는데, 그 사람이 손대면 안 되는 수가 있어요.
그렇다고 그 사람을 하나님이 버린 거냐?
그럴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거야.
여기 초대교회때에는 예수 믿으면 범사에 손해보고 범사에 불이익 당하는 거야.
하는 것 마다 안 되고, 못하게 하고 그냥 죽여버리는데..
그래도 믿음을 포기하지 않는 그런 사람들이 이긴 자 승리한 사람이라고 이렇게 되는 거예요.
요즈음 예수 믿고도 아무런 불이익도 없고 고난도 없고 불에 들어갈 일도 없고 얻어맞을 일도 없고 하니까 지금 여러분 까딱하면 우리가 우리 스스로를 속이기 딱 좋은, 조금 되니까 하나님께 복 받은 줄 알고.. 그런 것은 세상에 이런 사업이나 이런 것은 복받은 것 아니라도 잘 되는 사람 많이 있습니다.
여러분 정주영 보세요.
하나님 믿은 것도 아닌데, 소 한마리 팔아가지고 엄청나게 현대라는 기업 한 것 보세요.
삼성 보세요. 하나님 믿기는 뭘 믿어?
그리고 일본에 8백만 귀신이 있어도 물질적으로 엄청나게 잘 될 수 있어요.
독일이 신앙 다 팔아먹어도 지금도 유럽에서는 독일이 최고입니다.
그런 것과 신앙은 딴 문제예요.
여기 야고보서를 쓴 야고보가 누구냐 하면, 예수님의 친동생이었던 야고보예요.
대개 학자들이 그렇게 봅니다.
여기 다른 야고보가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었던 사람 중에 예수님을 따르던 사람 중에 야고보가 여럿이 있는데, 첫째는 예수님의 친동생 야고보, 그리고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 작은 야고보라는 야고보가 있어요.
알패오의 아들 되는 야고보.. 이렇게 여러 야고보가 있는데,
여기있는 야고보는 적어도 야고보서를 쓸 수 있을 정도의 권위와 실력을 가진 사람이라면 예수님의 친동생 야고보 외에는 다른 사람을 생각할 수 없다.
이것이 학자들의 견해입니다.
그런데 이 야고보가 사도가 아니죠.
어찌해서 이런 야고보서 같은 내용을 쓰게 되었느냐?
그것은 두가지 세가지 측면에서 살펴 볼 수 있는데,
첫째는 아까 말씀드린 대로 옛날 유대교를 믿었던 사람들이 너무 경솔하게 군중심리에 이끌려서 예수님께 우르르 왔다가, 박해가 일어나고 어려움이 닥치고 시험의 바람이 부니까 그냥 쉽게 포기하고 옛날 유대교로 우르르 돌아갔던 이런 가짜 믿음을 볼 때, 참 믿음은 그런 게 아니다. 하는 것을 말씀하시고 싶은 그런 것도 있고,
또 한 가지는 사도바울의 복음을 들은 사람들이 까딱하면 율법의 실천과 율법의 행함에 대해서 예사로 무시할 수 있는 우려가 있다는 거야.
그래서 바울이 하도 너무 믿음만 강조하니까 ‘믿음만이 아니라 행함이 있는 믿음이라야 된다.’ 하는 것을 보완할, 사도바울의 말씀을 자칫하면 오해해서 아무 행함도 의도 실천도 없는 입술로만 믿습니다, 믿습니다 하는 거짓믿음이 남발 될 수 있다.
이런 우려를 가지고 야고보서를 썼다고 볼 수 있겠는데, 그런 측면에서 보면 굉장히 중요한 책입니다.
특히 우리 한국교회가 오늘날 세상 모든 사람들로부터 지탄을 받습니다.
그리고 지금 모든 언론들이 눈에 불을 켜고 기독교의 모든 헛점 잡을게 없는가 그런 것만 찾아내어가지고 꼭 신문 머릿기사로 씁니다.
어제와 그제 이틀동안 ‘우리는 목사님의 노예였다.’ 그러면서 어렵게 어렵게 살아가는 어떤 아이 둘이 무슨 기도원 목사의 집에 그렇게 양자로 갔는지 모르겠는데, 어떻든 노예취급을 당했다는 거야.
그래서 정부로부터 나오는 생활보조비 전부 다 빼앗기고 그야말로 동물취급을 받았다..
곰팡이 나고 썩은 냄새나는 그런 음식을 먹으면서 살았다 그런 이야기를 하는데,
이게 신문에 나서 온 전국에 퍼졌어요.
한편은 이런 말 들을 때 쭉정이는 그냥 다 신앙 다 때려치우고 목사들도 다 도둑놈들이구나 이러면서 그런 게 전국에 1년에 10건만 나오면 전도길 다 막습니다.
그런데 우리 한국에 그런 목사가 10명만 있겠어요?
그러니까 이런 바람이 불어올 때 쭉정이는 다 날아가게 되어 있어요.
자기가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난 체험이 없는 사람은 그런 심판의 바람이 불 때 다 날아갑니다.
그래서 우리가 정신을 바짝 차려야 됩니다.
그래서 여기,
[야고보서 1장]
1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 야고보는,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는 이렇게 하지 않고,
.. 예수 그리스도의 종 야고보는 흩어져 있는 열 두 지파에게 문안하노라
‘흩어져 있는’ 이라는 말이 ‘디아스포’라죠. 디아스포라.
‘디아’ 하는 것은 ‘~에 대하여’, ‘스포라’는 ‘스페이로’라는 데에서 ‘스프레이’가 나왔어요.
‘뿌린다. 흩어져버린다.’ 그런 뜻이죠.
여러분 물을 뿌리는 것을 스프레이라고 하죠.
그래서 디아스포라라는 말은 ‘흩어져 있는, 흩어짐을 당한, 분산되어버린’ 이런 유대인들 열두 지파에게 문안하노라.
그러니까 예수님을 믿는 이방인들과는 다르죠.
예수님을 믿는 이방인들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니고, 유대인 중에서 열두 지파, 흩어져 있는 스프레이 된 온 세상에 흩어져버린 열두 지파 중에서 예수님을 믿었다가 말았다가, 혹은 율법을 지켰다가 말았다가 이렇게 입술로만 신자고 행함은 전혀 신자가 아닌 그런 자기 믿음이 진짜 믿음인지 가짜 믿음인지 그런 것도 분간도 못하는 그런 사람에게 문안하노라 하고 시작합니다.
2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거기 여러 가지 줄을 그으세요.
우리가 신앙의 시험이 한가지만 있으면 얼마나 좋겠어요?
한가지만 전공을 하게 그 시험만 통과하면 되니까..
그런데 여러 가지예요. 사람마다..
여러분에게는 어떤 시험이 있습니까? 지금..
한 교회에 나오지만 시험이 다 다를 겁니다.
여러 가지 시험이 있어요.
..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것은 또 무슨 얘기입니까?
시험이 닥치면 근심하고 기도하고 금식하고 철야하고 해야 되는데, 어떻게 기쁘게 여기라는 거예요. 기쁘게..
때로는 우리가 성경 말씀을 건성으로 그냥 감각없이 읽어나갈 수 있는데, 좀 생각하면 목에 탁 걸리는 말이 많아요.
시험을 만났는데 어떻게 기쁘게 여깁니까?
혹시 여러분 중에 ‘다음주에 시험이다. 할렐루야!’ 그런 사람 있습니까?
우리 학생들 중에 ‘야 다음주에 시험을 친다. 할렐루야!’ 그런 사람 있으면 복있는 사람이예요.
사실은 제가 그랬거든요.
저는 학교다닐 때 범사에 뒤떨어져. 싸움을 잘 하는 것도 아니고, 달리기 하면 항상 4등 이하고, 그리고 옷도 반에서 제일 후줄근하게 입어가지고 내가 봐도 폼이 안 나요.
그런데 별로 공부를 하거나 말았거나 시험을 치면 다른 애들보다 점수가 대체로 잘 나오는 거예요.
그러니까 5학년때 선생님이 가만히 지켜보더니 쟤가 학교 근방에 사는 것도 아니고 집에 가면 일하는 모양인데, 성적이 저렇게 잘 나오느냐? 그래서 공부를 하면 잘 할 애가 있는데, 그게 누구관대? 이렇게 물어본 거예요.
예사로 하는 말이 아닙니다. 성적이 잘 나오거든. 누가 봐도..
그래서 시험이 다가오면 진짜 다른 것으로는 내가 도저히 다른 학생을 따라갈 수 없고 앞설 수가 없는데, 시험을 치면 내가 그래도 조금 앞설 수 있다. 이런 생각이 의식중에 있었어요.
그래서 한번도 시험을 겁내본 적이 없었어요.
조금 걱정이 되지만, 그 때가 내가 나를 나타낼 수는 있는 때가 오지 않았나 그런 의식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나이가 들어갈수록 점점 그런 생각은 줄어들고, 나중에 시험칠 때 떨리더라고..
제일 떨리던 게 신학교 입학시험이야.
내가 신학교 입학시험을 치는데 얼마나 떨리던지..
성서학원에서 공부하는 사람이 25명 되는데, 내가 약속을 했어요.
‘내가 신학교 입학시험에 합격하면 내가 한턱 내겠다.’
그렇게 약속했는데, 내가 한턱 냈는지 기억이 안 나요. 지금도..
안 냈으면 회개해야 되는데..
얼마나 겁이 나던지 그런 말을 했어요.
그런데 입학시험을 쳤는데 너끈히 합격을 한 거야. 아주 우스운거야. 믿거나 말거나.
합격을 해가지고 시험 성적이 좋으면 성서학원에서 수석으로 졸업했으니까 내신성적과 입학시험 잘 쳤으니까 그대로 3학년에 편입될 수 있습니다. 충분히..
그 정도로 성적이 나왔다는 거예요.
그래도 이왕 늦은 것 기초부터 1학년부터 하겠다 해서 다시 1학년에 갔죠.
그 학교다닐 때에도 시험을 거의 겁내본 적이 없는데, 나중에 장신대에 목회 연구원 신학대학원 연구원 과정에서 시험을 쳤는데 겁이 나더라고..
그래도 거기도 너끈히 합격을 했어요.
합격을 했는데, 나중에 떨어졌다는 통보가 오더라고.
세상이 이게 무슨 날벼락이냐?
가서 알아보니까 폐에 활동성 결핵이 있는 것 같다..
무슨 소리냐고 내가 결핵 완치된지가 언젠데 해서 다시 완치된 치유 경력과 건강진단서를 첨부해서 학장을 찾아갔어요.
이렇게 사진만 보고 판정할 수가 있느냐고 했더니, 그러면 잘못됐다고 해서 그 당시에 박창환 교수가 되게 깐깐한 분이었는데, 그분은 손톱도 안 들어가는 분이야.
그런데 제가 증거자료를 제출해서 다시 합격이 회복 되어서 합격을 했죠.
그 다음에 또 시험이 세상에 목사고시가 남았더라고..
목사고시에도 제가 한번 떨어졌어요.
제가 떨어진 관록이 있습니다.
평생에 시험 안 떨어졌는데, 목사고시에 헌법 과목 하나 떨어졌어요. 다른 것은 다 합격이고 그것은 달달달 외워야 되는데 떨어졌어요.
물론 과목이니까 또다시 시험쳐서 합격 했죠.
목사고시에 합격하니까 이제는 내 평생에 시험 없겠다 해서 합격증 찾아오니까 얼마나 기분이 좋은지..
집에 오니까 운전면허시험이 또 남았더라고..
운전면허시험에 운전대 잡아보지도 않고 덜렁 시험 쳤어.
보나마나 또 떨어졌어요.
코스에 한번 떨어지고 장거리에 떨어지고, 필기고사에는 안 떨어졌죠.
운전면허증 따서 가져오니까 이제는 진짜 시험 면했다 하고 집에 오니까 그 날 밤에 내 마음 속에 들리는 하나님의 음성 같은데, ‘얘야 그것은 시험이 아니다.. 그런 것은 장난밖에 아니야. 진짜 시험이 있어. 무슨 시험이냐?’
‘날마다 네 앞에 전개되는 일이 네 시험이다.’
종이에 쓰는 것은 시험이 아니라는 거예요. 그것은..
그것은 틀려도 그만이고 맞으면 좋고, 틀려도 다시 칠 수 있는데, 나의 하루하루의 삶으로 치는 시험은 재시가 안 돼요.
그게 끝이야.
오늘의 삶은 오늘 한번으로 끝납니다.
매 순간 순간 선택하며 살아야 돼요. 매 순간..
그래서 어려운 시험은 대비도 하고 준비도 하는데, 매일 매일 같이 내 앞에 펼쳐지는 삶이라는 것이 내신성적을 체크하는 시험이예요.
얼마나 어려워요?
하루도 소홀히 할 수 없어요.
그래서 그 때 어릴 때 아무 철 없을 때는 시험이 다가오면 기뻐했다니까.. 그 때는.. 야고보서 안 읽어보고..
그런데 조금씩 인생의 철이 들어가면서 종이에 놓고 치는 시험은 시험도 아니고, 진짜 시험이라는 것은 모든 이론 시험 다 끝나고 실천으로 들어가서 매일 매일 내 앞에 전개되는 삶이 나를 시험하는 거예요.
그리고 그 시험 성적에 따라서 나의 영원한 운명이 결정될테니까..
천국에서 영원한 운명이 결정되니까 이게 얼마나 무거운 시험입니까?
그렇다 할지라도 여러분 시험이 올 때 기쁨을 가지고 임해야 됩니다.
여러분 내일도 시험이고 모래도 시험이고 젠장..
계속 시험이고 날마다 1년 365일 시험이고 만나는 사람마다 시험이고 전부 시험문제예요.
오늘 여기 시험문제가 120문제가 있는 거야.
얼마나 짜증나겠어요?
그러면 시험 잘 못쳐요.
그러니까 하여튼 점수를 잘 받든지 못 받든지 즐거운 마음으로 온전히 기쁨으로 시험에 임해야 그래도 아이디어 뱅크 문이 열리지..
염려하고 근심하고 짜증내고 찡그리고 화내고 걱정하고 그러면 머리가 안 돌아가는 거야.
그래서 이왕 틀릴 때 틀리더라도 신나게 틀리라고..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 되는 모양이야. 보니까..
즐거워하면서 감사하면서 또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면서 시험당할 즈음에 하나님께서 피할길도 내신다 하는 믿음을 가지고 소망을 가지고 임하도록..
어떤 교사는 이런 말을 해요.
시험 문제를 내는 분이, 저도 출제를 몇번 해 봤습니다만, 시험 문제를 출제하는 사람이 빵점 안 나오게 할려고 점수 줄려고 의도적으로 내는 문제가 있답니다.
그런데 그것까지 틀리는 사람이 있다는 거예요.
일부러 점수 줄려고..
무슨 문제냐 하면, ‘이승만 대통령 다음 대통령 이름이 뭐냐?’
점수 줄려고 냈는데, 그것을 다 틀린다는 거야.
여러분 누구죠? 윤보선 대통령이죠.
여기도 나오면 40% 틀려요.
고등학생들에게 대학생 1,2학년 학생들에게 이승만 다음 대통령이 누구냐고 물으니까 40%가 틀렸대요.
그래서 역사과목을 선택과목으로 한 결과를 참담했다고 어제 신문에 나왔어요.
일간지에 다 나왔습니다. 그게..
그래서 우리가 당연하게 알줄 알지만 모르는 게 많다는 겁니다.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여러분 시험을 만날 때 기뻐하며 감사하며, 어떻든 나에게 응시자격을 주신 것만 해도 감사합니다. 그렇게 생각하고 시험에 임해야 돼요.
아직도 무슨 말인지 전혀 이해가 안 되는 것 같아..
이제는 알지 못하나 이후에는 알리라.
어차피 틀려도 웃으면서 틀리고 즐겁게 틀려야지, 짜증내고 근심할게 아니야.
3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여기 시험 중에 상당 부분은 시련이라는 거예요. 시련..
시련이라는 말은 아까 페이라조라고 하는 종합시험과는 다르게 여러 가지 시험과 다르게, 여기서 시련은 제일 많다는 거예요.
‘도키매’라는 헬라어는 이것은 진짜 시련이예요. 연단..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냅니다.
여러분 인내심이 있어야 세상에 이런 저런 어려움을 겪어나갈 수 있는데, 시련이 없이는 인내력이 안 나와요.
인내도 능력입니다. 인내력(忍耐力)..
그래서 인생을 살아가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저주를 내리는 고난이 아니라면 대부분은 시련입니다.
그 시련은 시험하고 연단하는 건데, 연단하고 단련하고, 강하게 하고 순수하게 하는데,
여러분 어려움을 닥치면 겪어보고 겪어보면 강해집니다.
그리고 어려움을 겪을 때마다 자기를 돌아보고 내가 뭐가 잘못된 게 없나 하고 나 자신을 살피면서 순수해진다는 겁니다.
여러분 자꾸 못된 짓 하고 있는데, 아무 어려움도 고난도 없으면 괜찮은 줄 알고 계속 못된 짓 한다는 거야.
조금 잘못되었을 때도 자주 자주 이런 어려움이 닥치니까 내가 나 자신을 돌아보면서 자기를 살피면서 순수해지고, 그런 것을 겪으면서 강해지는 겁니다.
순수해지고 강해지는 게 시련의 목적이고, 이것이 인내를 만들어서 강한 사람 일꾼들이 되는데, 제가 참 염려스러운 것 중에 하나가 지금 가정에서 시련이 없다는 거예요.
어려움이 없어요.
너무 편하게 그야말로 인큐베이터 안에 콩나물처럼 기르고 있는 거예요. 연단이 없어요.
우리 어릴 때에는 농사를 짓는 노동만 해도 충분히 연단이 될거라. 얼마나 힘들게 어렵게 살았는데,
그래서 저는 요즈음은 잘 못하는데, 전에 원지교회에 있을 때에는 학생들 청년들 데리고 길 없는 곳으로 가서 길 없는 곳으로 돌아오는 등산 코스를 만들고 했어요.
왜냐? 강하게 만들기 위해서.. 험한 코스로 가서 돌아오게..
너무 아이들을 무르게 기릅니다. 너무 약하게.. 너무 유약하게 길러요.
강하게 그렇게 기를 필요가 있다는 겁니다.
여러분 우리가 해병대 교육 같은 것 보면, 여기에 해병대 출신이 있는지 모르겠는데, 끔찍하게 합니다.
독하게 훈련합니다. 그야말로..
그래야 어려움이 닥쳤을 때 극복하는 힘이 있다는 겁니다. 인내력..
그래서,
..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4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그래서 이런 시련을 통해서 인내를 배우고 인내를 통해서 연단이 되는, 연단이 소망을 만들어낸다.
이게 사도바울의 이야기죠.
5절입니다.
5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우리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기도중에 약속하신 게 있어요.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는 제목이 있는데, 지혜를 구하라는 거예요.
돈을 구하지 말고 지혜를 구하라.
그게 하나님이 제일 기뻐한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기독교인들이 세상사람들 보기에 멍청해 보이면 안 돼요.
멍청한 사람이 믿는 종교를 누가 따라 믿겠어요?
그래서 기도 제목 중에 지혜를 주옵소서.
여러분 솔로몬이 다른 것을 구하다가 칭찬받은 게 아니라, 수도 부귀영화도 원수의 생명 멸하기도 구하지 아니하고, 사리를 옳게 분별할 수 있는 그런 지혜를 달라고 했어요.
그래서 하나님께서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한 거죠.
그리고 우리나라 기독교인들은 기도를 바꿔야 돼요.
기도에 대해서 언제 하루 특강을 해야 되겠는데, 성경은 기도를 뭐라고 하느냐?
여호와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다가 그 율법을 묵상하면 뭘 발견하느냐 하면 자기가 잘못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러면 자백을 해요.
율법을 묵상해봐야 내가 뭘 잘못했는지를 알게 되고 자백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또 이 잘못된 우리들이 하나님 앞에 용서받도록 간구할 수 있는 거예요.
그런데 우리는 율법 묵상은 전혀 하지 않고 그냥 앉으면서부터 끝날 때까지 뭘 주시고 주시고 주시고..
계속 그저 거머리 딸처럼 다고 다고 하는 그런 것만 하니까 미신적으로 가는 겁니다. 미신적으로..
아무 보장도 없는 것을 하면서..
유대인들은 뭘 기도를 하느냐?
열심히 성경공부하고 열심히 지혜를 구하고, 열심히 공부하고 열심히 연구하는 것을 기도라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내노라 하는 학자는 전부 유대인입니다.
대단히 죄송한데 세계적으로 유명인사 100명을 뽑았는데 거기에 기독교인은 단 한 사람도 안 들어있습니다. 몽땅 유대인들이예요.
그 이름들을 홈페이지에 올려놨습니다.
에스라 하우스 홈페이지 칼럼방에 가면 전부 다 유대인들이예요.
한국의 지성인들이 숭배해마지 않는 모든 유명인사들은 몽땅 유대인들이예요.
왜냐하면 그 사람들은 공부하고 연구하는 것을 기도라고 생각해요.
기도하듯이 공부하고 공부하듯이 기도하니까 인물이 많이 나오는 거예요.
맨날 공부를 안 하고..
여러분 제가 신학교 다닐 때 시험이 다가오면 공부를 해야 될 것 아녜요.
공부를 할려면 기초가 있어야 돼요.
수업 시간에 하나도 제대로 들은 게 없는데, 기초가 없으니까 공부가 안 됩니다.
공부가 안 되니까 시험이 다가오는데 기도실로 가는 거야.
주여 내일 점수를 주시옵소서.
점수가 나옵니까?
그러니까 하나님께 기도하다가 시험을 쳤는데 점수 안 나오거든요.
그러면 담당 교수에게 기도하러 가요.
무릎꿇고 비나이다 점수를 주시옵소서.
그러니까 어떻게 되겠어요?
목회자가 그런데 성도는 오죽 하겠어요?
그 다음에 카톨릭 수사들은 노동을 기도라고 생각해요. 노동을..
노동과 봉사를 기도로 생각합니다.
노동하고 봉사하는 것을 기도라고 생각해요. 카톨릭 수사들이..
좀 낫잖아요.
불교는 경전을 암송하는 것을 기도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하루 종일 염불하고 아니면 부처님 이름이나 외우고 앉았고 그것을 기도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불교 신자들은 맨 욕심 가지고 하겠지만, 스님들의 기도는 염불(念佛)이예요. 부처님을 생각하는 거예요. 생각할 염(念)자예요.
부처의 가르침을 암송하는 거죠.
그런 것을 보면 제일 타락한 기도가 제일 이기적인 기도가 기독교 기도예요.
뭘 달라 달라 주시고 주시고 주시고.. 자기는 아무 것도 한 것이 없이..
그런 식으로 가니까 인물이 안 나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기도를 가르칠 때 뭘 달라 달라 하지 말라고 했어요.
하나님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기 위해서, 그리고 우리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저 일용할 양식만 주시고, 그것도 염려하지 말라고..
일용할 양식을 주실 줄 믿고 감사하고 그저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그것 밖에 없어요.
그래서 여기 우리가 지혜가 부족해서 멍청하게 보이는 것은 하나님께 영광이 안 돼요.
지혜롭게 의롭게 공평하게 정직하게 살기 위해서는 끝없이 우리가 잠언을 봐야 되고, 성경 전체를 읽어봐야 돼요.
여호와를 경외하고 그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는 사람이 복이 있다는 거죠.
6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7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8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
항상 이리저리 휘둘리고 흔들리는 사람은 아무 것도 얻지 못한다는 거죠.
그리고 9절은 어려운 말인데,
9 낮은 형제는 자기의 높음을 자랑하고
‘낮은 형제’라는 말은 당시에 비천한 노예신분에 있는 사람인데, ‘타페인’이라는 것은 비천한 신분, 노예 신분 이런 사람들이예요.
이런 사람들도 교회에 나오면 한 영혼으로서는 부자나 상전과 다 동격으로 대우를 받았어요. 교회에서..
그래서 인격을 가장 일찍 발견한 종교가 기독교입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노예와 상전이 똑같은 한 영혼이예요.
그래서 그런 의미에서 비천한 신분에 있는 그런 사람들은 자기가 영적으로는 얼마나 높아진 것을 놓고 감사하라.
그 외에는 부자가 안 되어도 좋고 자유인이 안 되어도 좋고, 노예로 부르심을 받았으면 그대로 그 상태에서도 교회에서 받은 은혜만으로도 감사해야 된다.
그리고,
초대교회에서 부자는 좋지 않은 사람으로 인식되었어요. 항상..
야고보는 더합니다.
아주 부자들에 대해서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그러면서 아주 책망을 해요
10 부한 형제는 자기의 낮아짐을 자랑할지니 이는 풀의 꽃과 같이 지나감이라
부한 형제가 교회에 오면 아무 것도 아니거든요. 사실은..
노예들이 먼저 믿어가지고 교회에서 직분을 가지고 있는 거예요.
자기는 아무 것도 아니예요. 사실은..
그래도 낮아지는 데에서도 겸손히 은혜를 사모하는 앉아 있으면 정말 그 사람은 낮아진 것 때문에 복을 받는 거예요.
그래서 겸손히 가서 자기 자신을 낮출 수 있는, 세상 어디에서도 없고 교회에서만 자기 자신이 낮아질 수 있는 거죠.
.. 이는 풀의 꽃과 같이 지나감이라
부한 자도 영화로운 자도 다 오래가지 않습니다.
11절,
11 해가 돋고 뜨거운 바람이 불어 풀을 말리우면 꽃이 떨어져 그 모양의 아름다움이 없어지나니 부한 자도 그 행하는 일에 이와 같이 쇠잔하리라
여러분 제가 아는 꽤 잘 나가던 사람이 그냥 부도 몇번 얻어맞고 그 길로 완전히 집 한칸도 없이 그런 경우도 많이 봅니다.
특히 빠르게 발전하는 곳에는 더해요.
아주 빠른 속도로 발전하면, 어렵게 어렵게 제품 하나 개발했는데, 큰 재벌이 대기업에서 그것보다 더 좋은 개발해버리면, 여태까지 있는 힘을 다 떨어부어서 만든 상품이 하루아침에 그냥 휴지통으로 가 버립니다.
그냥 부도 나버리는 거죠.
그러니까 부한 자도 그런 데에 정함이 없는 재물에 그것을 가지고 자기를 으시대고 해서는 안 된다는 거죠.
그 다음에, 12절은 또 다른 시험입니다.
12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 시험이라는 것은 역시 여기서도 페이라조예요. 여러 가지 입니다.
여러 가지 시험을 잘 참고 이기는 자는 복이 있도다.
.. 이것에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임이니라
여기서도 시험을 참는 자 시험을 이기는 자는 복이 있다.
그리고,
13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지니,
대부분은 시험은 왜 시험 받느냐?
욕심에 이끌려서 시험받는 거예요.
물론 하나님이 그것을 허락합니다.
마귀가 시험할려고 할 때, 혹은 자기가 욕심에 끌려서 시험받을 때 그렇게 해보지 않으면 남도 자기도 자기를 모릅니다.
여러분 우리가 어려움을 안 겪어보면 나도 나 자신을 모르고 남도 나를 몰라요.
그런데 어려움을 겪어보면 그때사 나도 나를 알고 남도 나를 아는 거야.
욥이라는 사람이 엄청난 시련을 겪습니다.
그것은 시련도 되고 시험도 되는 거야.
또 어떤 마귀나 친구들이나 이런 것들은 어떻게 타락시킬려고 유혹도 되고 협박도 되고..
하여튼 욥이 겪은 것은 그 욥이 겪은 페이라조라는 종합시험이예요.
그런데 몰랐어. 욥이 그 시험 겪기 전에는 자기가 그렇게 교만한 줄 몰랐다니까..
그런데 그것을 겪으면서 자기가 교만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거야.
하나님은 물론 아셨겠죠.
그래서 항상 마귀가 시험하거나 항상 자기 욕심에 끌려서 미혹되거나. 그 두가지예요.
하나님은 아무나 직접 시험하지 않습니다.
한다손 쳐도 위탁시험이야. 마귀에게 위탁해서..
그래서,
13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
14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15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16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속지 말라
‘속지 말라’는 말이 다른 말로는 ‘방황하지 말라’라고 할 수 있습니다.
‘플라나오’라는 말 자체가 방황하다 하는 말이 제일 많이 번역되는 말이예요.
그러니까 이리 저리 헷갈리지 말라는 거죠.
17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서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
18 그가 그 조물 중에 우리로 한 첫 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자기의 뜻을 좇아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느니라
19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너희가 알거니와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하며 성내기도 더디하라
여러분 성경에는 급히 분내는 사람 급히 화를 내는 사람 급히 성내는 사람 그런 사람에게는 아무 것도 기대할게 없다..
너무 생각없이 그냥 화를 버럭버럭 낸다든지 그런 사람은 절대로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해요.
그런 사람은 큰일도 못합니다.
그래서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하며 성내는 것도 더디하라.
20 사람의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함이니라
이것은 번역이 좀 잘못되었어요.
‘사람의 성내는 것이’를 ‘성내는 사람은’ 이렇게 해야 돼요. ‘사람의 성내는 것’이 아니라 ‘성을 내는 화를 내는 사람은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한다.’
21 그러므로 모든 더러운 것과 넘치는 악을 내어버리고 능히 너희 영혼을 구원할 바 마음에 심긴 도를 온유함으로 받으라
하나님의 도는 말씀이죠. 로고스를 받을 때 온유한 마음으로 아주 부드러운 마음으로 옥토와 같은 마음으로 하나님 말씀을 잘 받아들여야 돼요.
여러분 제가 에스라 하우스에서 성경강좌 하다보면 교회에서 하도 엉터리를 많이 가르쳐서 삐딱하게 하고 자세가 아주 되먹지 않았어요.
그래서 첫 번째 시간에 날려보내버립니다. 끝까지 애먹일 테니까..
몇마디 하면서 틸틸하면서 그냥 갑니다.
그리고 우리 에스라 하우스는 시설 자체가 시험이야.
딱 와서 보면 시험되죠.
그래서 그렇게 너무 고급스럽고 교만한 것들은 다 날아가게 겸손한 자만 끝까지 듣게..
그래서 화를 더럭같이 내면서 틸틸거리면서 간다는 거야.
그런 사람은 천국 갖다놔도 반드시 불평할 것 찾습니다. 뭐 이렇게 심심하냐?
악이 없으면 무슨 재미로 사느냐 하면서 별별 것을 불평거리를 찾아낼거야.
여러분 우리가 언제부터 그렇게 잘 살았다고, 얼마전까지만 해도 10년 전만 해도 우리가 별로 잘 사는 게 아니잖아요.
30년 전만해도 우리는 국제거지였어요.
그새 좀 산다고 어떻게 고급을 떠는지 좀 시설 개선할 마음이 있어도 화가 나서 그만 둘까 말까 그런 생각이 나는 거예요.
22 너희는 도를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
23 누구든지 도를 듣고 행하지 아니하면 그는 거울로 자기의 생긴 얼굴을 보는 사람과 같으니
24 제 자신을 보고 가서 그 모양이 어떠한 것을 곧 잊어버리거니와
이 말씀을 놓고 얼마나 탄복을 했는지 몰라요.
여러분 어떻습니까?
거울을 보고 자기 모습 기억합니까?
나는 그것 기억하면 천재라고 해요. 천재..
내 일평생 거울을 봤는데 아무리 내 머리 속으로 내 모습을 떠올릴려고 해도 떠오르지 않습니다.
여러분 집에 가서 시험해봐요.
매일 거울을 봤는데 왜 그것을 못 떠올리느냐?
이상하게 못 떠올려요. 딱 보고 잊어버려요.
여러분 정말 속으로 떠올려봐요. 내가 어떻게 생겼더라?
율법이라는 것도 듣고 실천하지 않으면 잊어버립니다.
듣고 실천해야 돼요.
여러분 말도 영어를 배웠으면 떠들어 봐야돼요. 틀리거나 맞거나 계속 떠들어 봐야 됩니다.
아무리 철저하게 배워도 안 써먹으면 금방 잊어버립니다.
저도 배운 것 다 떠들었으면 저도 영어도 알고 히브리어 헬라어도 알텐데, 안 떠드니까 다 잊어버려요.
25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 보고 있는 자는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요 실행하는 자니 이 사람이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으리라
여러분 복을 언제 받느냐?
율법의 말씀을 듣고 ‘아 이렇게 살아야 되겠구나’ 하고 그렇게 살고 행할 때 하나님께서 복을 주신다는 거예요.
아무 것도 행하지 않고 읽어보고 잊어버린 사람은 하나님께서 복 주실 이유가 없죠.
반드시 우리가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되, 즐거움으로 즐거워하여 주야로 묵상하고 그래 이렇게 살아야 되겠다 하고 그렇게 살 때 행할 때 행하는 일에 하나님께서 복을 주신다..
이게 성경의 변함없는 진리예요.
우리가 왜 복을 못 받느냐?
배우고도 실천 안 하니까.. 실천하지 않는 곳에는 복이 임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만약에 아이들에게 ‘얘야 이것을 해라.’ 했는데, ‘예’ 해 놓고 또 안 해요.
‘얘야 이것을 해라.’ 했는데 또 안해요.
번번이 말은 비단같이 예 했는데, 안 하고 안 하고 해봐요.
그 아이에게 복 줄 마음이 생기겠어요?
저도 제가 하는 말귀를 잘 알아듣는 사람을 보면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어요. 그렇게 사랑스러울 수가 없어요.
알아듣고 실천하는 것을 보면 얼마나 제가 기쁜지..
오늘도 오후에 위대한 분이 한분 다녀갔어요.
성경강좌에 참여해서 성경강좌를 몇번 듣고, 또 CD나 테이프를 듣고 제가 강의한 것을 다 듣고 정리했는데, A4용지로 이만한 책으로 세권에 정리를 했어요.
신약성경을 한권 정리하고, 요한계시록을 별권으로 한권 정리하고, 그리고 신구약 전체를 요약을 해서 또 한권을 정리하고..
그렇게 해서 제가 강의한 것을 계시록까지 완전히 정리했는데, 20년 걸렸답니다.
그것을 가지고 오늘 목사님께 보고드릴겸 찾아왔다 갔는데, 제가 그것을 보고 질려버렸어요.
하여튼 저보다 공부를 열배나 더 한 것 같아요.
그래서 지금 자기 교회에서 장로님들 앉혀놓고 42살 먹은 교사가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2년에 걸쳐서 수료시킨다고 합니다.
제가 복사비만 6만원 들었답니다. 6권이나 되는데..
대단한 인물입니다.
그래서 오늘이 결혼기념일인데, 목사님께 보고도 드리고 인사도 드리고, 또 이정도 되었으면 신학을 하면 되겠는지 말겠는지 물어보러 왔다는 거예요.
되고 말고 나이가 젊나?
그래서 염려가 된다는 거야.
무슨 염려냐? 목사님을 말씀 들어보면 신학교 교수들이 엉뚱한 소리 자꾸 한다는데 내가 어떻게 그것을 참을 수 있을 것인가..
그게 걱정이 되어서 갈까 말까 한다는 거야.
그것을 참는 게 바로 신학이다..
그래서 응답받고 갔습니다.
그것을 참는 게 바로 신학이야.
그것을 안 가보면 신학 비평을 못하니까 가서 아주 성실하게 시험을 만날 때 온전히 기쁜 마음으로 다 듣고 참아 가면서 웃어가면서 잘 들으라고..
여러분 제가 시원찮은 그런 강의도 그렇게 달게 듣고 제가 가르친 것 보다 열배나 더 증보해서 책을 만든거예요.
제가 보기로는, 대단히 죄송한 얘긴데, 그 교회 담임 목사님도 그 정도 실력 안 될 겁니다.
어떤 분이라 할지라도 안 돼. 그 정도의 실력이라면..
그러니까 제가 시원찮은 사람이라도 제가 한 말을 그렇게 달게 듣고 그것을 배워서 실천하고 하는 그런 사람을 보면 제가 그렇게 즐거운데, 하나님도 마찬가지죠.
하나님도 성경을 줬으면 이것을 가지고 씨름을 하고 이것을 가지고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그것 안 놓치고 가르치고 배워서 실천할려고 하는 그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복을 주신다는 거예요.
예수님도 ‘지극히 작은 계명 하나라도 빼고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 받을 것이고,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가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다.’
이게 예수님 말씀이예요.
잘 배워서 실천하는 일에 그 행하는 일에 복을 주신다.
야고보가 얼마나 위대한 말씀을 했는지 잘 들어야 돼요.
26절,
26 누구든지 스스로 경건하다 생각하며 자기 혀를 재갈 먹이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을 속이면 이 사람의 경건은 헛것이라
그러니까 보세요.
우리 신앙생활을 다른 말로 하면 경건생활이예요.
신앙생활이 바로 경건생활인데, 경건생활의 기초가 뭐냐 하면 말조심하는 것으로 시작한다는 거예요.
신앙생활의 경건훈련이라는 것은 말을 조심하는 것으로 시작해서, 그 다음에 긍휼을 베푸는 것으로 진행해서, 자기를 성결케 하는 것, 그리고 세속에 물들지 않게 하는 것. 이것이 참된 경건이라는 거예요.
첫째 말조심하는 게 경건의 기초예요.
둘째는 긍휼을 베푸는 거예요.
셋째는 세속에 물들지 않게 성결하게 깨끗하게 살아가는 것.
이것이 참된 경건이예요.
27절 함께 읽어봅시다.
27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아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이것이니라
아까 뭘로 시작했죠?
말조심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참된 경건은 말조심 하는 것부터 조심해서, 환난날에 객이나 고아나 과부를 돌아보고,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않게 하는 것. 세상 물들지 않게 하는 것이 경건이예요.
2장입니다.
[야고보서 2장]
1 내 형제들아 영광의 주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너희가 받았으니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말라
‘외모’는 외적인 조건이죠.
그 사람의 재산이 얼마인지 학벌이 어떻게 되는지 학위가 뭔가 자동차를 뭘 타고 다니는지 이런 것으로 평가하지 말라.
2 만일 너희 회당에 금가락지를 끼고 아름다운 옷을 입은 사람이 들어오고 또 더러운 옷을 입은 가난한 사람이 들어올 때에
3 너희가 아름다운 옷을 입은 자를 돌아보아 가로되 여기 좋은 자리에 앉으소서 하고 또 가난한 자에게 이르되 너는 거기 섰든지 내 발등상 아래 앉으라 하면
4 너희끼리 서로 구별하며 악한 생각으로 판단하는 자가 되는 것이 아니냐
5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들을지어다 하나님이 세상에 대하여는 가난한 자를 택하사 믿음에 부요하게 하시고,
여러분 가난한 사람들이 믿음에 부요한 겁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지극히 작은 것을 줘도 감사해요.
부자들은 여간 큰 것 줘봐야 감사가 안 돼요.
그래서 까딱하면 부자가 될 때 우리가 영적으로 황폐할 수 있어요.
반면에 부자이면서 믿음과 덕망이 좋은 사람은 진짜 좋은 사람이예요.
가난한 사람이야 믿음 좋죠. 가난한데 예수나 믿지 뭐하겠어요?
부자들은 할 일이 많아. 예수 안 믿어도 믿을 것도 많고..
그런데 부자인데 아브라함처럼 아리마대 요셉처럼 니고데모처럼 이런 사람들이 진짜 좋은 사람들이예요.
그래서,
.. 가난한 자를 택하사 믿음에 부요하게 하시고 또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나라를 유업으로 받게 아니하셨느냐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천국은 누구의 것이냐? 가난한 자의 것이라는 거예요.
부자들에게는 ‘얘 너는 세상에서 받을 것 다 받았어. 그냥..’ 그러면 끝납니다.
6 너희는 도리어 가난한 자를 괄시하였도다 부자는 너희를 압제하며 법정으로 끌고 가지 아니하느냐
여러분 지금도 제일 부자이면서 제일 악한 사람들이 있는데, 미국의 몬산토라는 회사예요. 몬산토..
몬산토가 못된 놈들이예요.
유전자 조작을 하는 특허를 90% 이상 갖고 있어요. 미국의 한 회사가..
그래서 모든 유전자 조작 농작물은 전부 그 회사가 특허를 갖고 있는데, 이 사람들은 그런 유전자 조작한 옥수수나 밀이나 목화씨나 이런 것을 싣고 가다가 알갱이가 떨어지는 땅에 거예요.
바람에 불려가서 어느 밭에서 나는 거예요.
나중에 그것이 섞여가지고 이것 저것 함께 나는데, 그 종자가 강세가 되어가지고 이것이 더 많이 퍼져가지고 ‘절반이 섞여있는 밭이 발견 되었다’ 고발하는 거예요.
왜 우리가 특허권을 갖고 있는 종자를 너희 밭에 뿌렸느냐?
그런데 재판에 가면 항상 이깁니다. 몬산토가..
서민들이 이길 수가 없어요.
면화나 밀이나 옥수수 농장 갖고 있는 사람들이 그 몬산토라는 대기업과 법정 투쟁에서 이길 수 있어요?
그래서 인도에서 몬산토 회사가 만든 목화 씨앗이 인도 목화밭에 자라는 바람에 소송이 걸렸는데, 줄줄이 다 지는 거예요. 몬산토 회사에..
그래서 인도에서 자살하는 사람이 부지기수예요.
그 ‘몬산토’에 관한 책이 있습니다.
제가 그것을 읽다가 입에서 욕이 나올까 싶어서 읽다가 그만 뒀어요.
악당들입니다. 이 부자들이..
그것은 절대로 그 회사 종자를 훔쳐서 심은 것이 뻔한데도 불구하고 그래가지고 농장을 다 빼앗는 거야.
여러분 가진 자의 횡포가 이런 겁니다.
지금도 대부분의 법정은 가진 자가 이기게 되어 있어요.
특별히 경우가 아니고는 대부분 가진 자가 이긴다는 거예요.
.. 부자는 너희를 압제하며 법정으로 끌고 가지 아니하느냐
가난한 사람은 부자를 법정으로 끌고 갈 수가 없어요.
7 저희는 너희에게 대하여 일컫는 바 그 아름다운 이름을 훼방하지 아니하느냐
여러분 예수님도 부자들에게 가진 자 기득권층에게 맞아 죽었습니다.
8 너희가 만일 경에 기록한 대로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 하신 최고한 법을 지키면 잘하는 것이거니와
9 만일 너희가 외모로 사람을 취하면 죄를 짓는 것이니 율법이 너희를 범죄자로 정하리라
여러분 우리가 외모를 안 취하는 것 같아도 우리도 모르게 자연히 외모로 취하게 됩니다. 자연히..
여러분 자신 있습니까?
나는 한번도 사람을 외모로 취한 적이 없다. 자신 있습니까?
이런 죄는 누구든지 범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살인 하겠습니까? 간음 하겠습니까?
그런 것 안 한다 할지라도 이런 죄는 아무나 범할 수 있어요.
사람의 외적인 조건을 이런 것을 가지고 그런 사람을 굉장히 극진히 대우하고, 가난한 사람이 오면 우습게 보고 이런 것 누구든지 범할 수 있다는 겁니다. 어느 교회든지 간에..
10절,
10 누구든지 온 율법을 지키다가 그 하나에 거치면 모두 범한 자가 되나니
11 간음하지 말라 하신 이가 또한 살인하지 말라 하셨은즉 네가 비록 간음하지 아니하여도 살인하면 율법을 범한 자가 되느니라
12 너희는 자유의 율법대로 심판받을 자처럼 말도 하고 행하기도 하라
13 긍휼을 행하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긍휼없는 심판이 있으리라 긍휼은 심판을 이기고 자랑하느니라
아까 제가 일곱가지 참 믿음 중에 긍휼이 있는 믿음, 사랑이 있는 믿음이 진짜 믿음이라고 했죠?
가난한 사람 어려운 사람 힘든 사람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전혀 그런 가난한 사람을 도와주지도 않으면서 덥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그런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거짓 믿음이고 가짜 믿음이예요.
14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기 때문에 가짜 믿음이기 때문에 자기를 구원하지 못한다는 거예요.
15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16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더웁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17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행함은 사랑의 실천 긍휼의 실천이예요.
사랑과 긍휼의 실천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믿음이예요.
그러면서 우리 주변에 가난한 사람이 있으면 내 책임이다 그렇게 생각해야 돼요.
여러분 제가 경주에 집회 갔다가, 제 딴에는 가서 성경을 가르친다고 갔었는데, 가서 크게 배운 게 있어요.
경주에 가면 경주 최씨의 종가집이 있습니다. 이른바 최부자집이라고..
최부자라고 하는 분이 남긴 유언이 있는데, ‘동서남북 사방 200리 안에 굶는 사람이 있으면 우리 집의 수치다.’ 그렇게 했다는 거예요.
동서남북 어느 쪽으로도 200리 안에..
보통 사람이 하루에 100리 걸어간다고 하면 동쪽으로 이틀 걸어갈 수 있는 거리 안에 굶는 사람이 있으면 안 돼.
서쪽 북쪽 남쪽으로 다..
그러면 이리 저리 양쪽으로 가면 400리예요. 400리..
그 안에 굶는 사람이 있으면 우리 가문의 수치다. 그렇게 하면서 항상 창고를 열어서 가난한 사람 돕도록 그렇게 했다는 거예요.
그리고 ‘땅을 얼마 이상은 사지 마라.’ 하는 것도 그 집의 원칙이고, 또 흉년이 들어서 살아가기 어려울 때 우리 부자의 힘을 가지고 토지를 사들이지 말아라.
그것은 악이다.
그래서 이것을 읽어보니까 구구절절 옳은 말이고 부자될 자격이 있는 거야.
그런 사람 같으면 하나님도 ‘네가 잘 관리하고 잘 나누는 것을 보니까 너는 정말 부자될 자격이 있다.’ 그렇게 하실 거예요.
그래서 경주에서는 그 가문은 명문 중에 명문이예요.
한반도 역사의 명문으로 소문이 나 있는 거예요.
그리고 경주 사람들도 그런 경주 최씨라는 그런 가문이 있다는 것이 경주의 자랑이라는 거예요.
우리 샤론교회도 혹시 누가 부자가 되거든 부자 다 되어갈 때 경주 최씨 집에 가서 그 집 가훈을 읽어보고 오세요.
얼마나 마음에 감동이 되는지..
그 집에 가서 차를 한잔 대접받고 다과를 대접을 받았는데, 낯선 사람이 왔는데 정성을 다하는 거예요.
시장에서 사온 게 아니고 과자 하나도 전부 다 집에서 손수 만든 거예요.
그것을 내놓는 거예요.
그래서 사랑과 긍휼이 있는 믿음이 진짜 믿음이고,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다.
18 혹이 가로되 너는 믿음이 있고 나는 행함이 있으니 행함이 없는 네 믿음을 내게 보이라 나는 행함으로 내 믿음을 네게 보이리라
19 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을 믿느냐 잘하는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
그런 것 가지고는 믿음이 아니라는 거예요.
여러분 예수님으로부터 독사의 새끼들아 그런 질책을 받은 사람들도 하나님이 한분인 것을 믿습니다. 하나님이 전능하신 것도 믿어요.
하나님이 창조주이신 것을 믿어요.
그런데 뭐가 없느냐?
‘너희 속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없는 줄을 알았노라.’ 그러면 끝장입니다.
아무 것도 아녜요. 그것은..
20 아아 허탄한 사람아 행함이 없는 믿음이 헛것인 줄 알고자 하느냐
21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제단에 드릴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22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케 되었느니라
23 이에 경에 이른바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이것을 의로 여기셨다는 말씀이 응하였고 그는 하나님의 벗이라 칭함을 받았나니
24 이로 보건대 사람이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믿음으로만 아니니라
25 또 이와 같이 기생 라합이 사자를 접대하여 다른 길로 나가게 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다시 한번 말씀드리는데,
26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거짓 믿음이 많다는 거예요.
아무 행함도 없으면서 그냥 성경책 들고 왔다리 갔다리 하는 거야.
그러니까 심판의 바람이 불거나 시련의 고통이 오면 다 날아간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네로황제 박해 때에 수도 없이 많은 사람들이 추풍낙엽처럼 다 떨어져서 옛날 유대교로 돌아가든지 흐지부지 되든지, 조금 어렵다고 그냥 포기하고 낙심하고 돌아서고 그런 믿음은 믿음도 아녜요.
시류에 따라서 왔다갔다 하는 거예요.
이승만 대통령이 장로님으로 대통령이 되니까 그 밑에 전부 가짜 신자가 줄줄이 줄을 서는 거야.
그런데 이승만 대통령 물러나고 나니까 다 교회 안 나가는 거야.
그런 것은 믿음도 아니고 가짜 믿음이야.
전부 다 예수님을 이용하고 기독교를 이용해서 뭘 해 보겠다는 사람들..
저는 정치인들 믿음은 잘 안 믿습니다.
절에 가면 합장 절하고..
어떤 집은 가족이 종교 하나씩 다 갖고 있어. 정치하는데..
남편은 교회 가고 부인은 카톨릭 가고 딸은 절에 가고..
누구라고 내가 말은 하지 않겠습니다.
그런 얼굴이 여러개인 사람은 곤란해요.
진짜 믿음이 아닙니다. 참 믿음은 그렇게 하는 게 아닙니다.
진리에 있어서 이중성을 갖고 그럴 수가 없어요.
바른 믿음을 가지고 그리고 말을 조심하고 환난날에 객이나 고아나 과부를 돌아보고 자기를 지켜서 세속에 물들지 않는 것이 경건의 시작이라는 거예요.
그렇게 해서 우리가 사랑과 긍휼을 배워서 선한 열매가 가득한 그리고 편벽과 거짓이 없는 세상과 벗하지 않는 참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설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오늘 밤에도 야고보가 우리에게 전하는 귀한 말씀을 새겨 들어 보았습니다.
여기 지적되는 모든 것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나 우리 자신을 살펴서 말씀 앞에서 참된 회개가 이루어지게 하옵시고, 우리가 순수함으로 연단을 받고 시련을 당할 때 강해지고 순수해지는 우리 영혼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