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가을의 아이들과 나
회룡초 노미화
아침에 흐르는 맑은 개울물 따라 자전거를 타고 학교가는 길. 즐거운 길.
하지만 오늘 아침엔 조금 망설였다. 바이올린을 실어야 하고. 저녁엔 금새 날이 어두워 렛슨 끝나고 일심교회에서 돌아오는 길은 깜깜할텐데. 어쩌지? 하는 사이에 남편은 애들만 태우고 가버렸다. 할 수 없이 자전거 뒤에 보조가방과 내 가방. 그 위에 바이올린까지 얹어서 단단히 묶고서 서둘러 페달을 밟았다. 대청봉에서부터 둔전계곡을 흘러내려 석교리 회룡리를 돌아 물치앞 바다로 흘러가는 맑은 물치천은 날마다 보아도 반갑고 즐겁다. 어느새 논에는 황금빛으로 가득했던 논에는 벼들이 다 베어져 나락들만 줄지어 누워있네. 길섶엔 코스모스, 노란 꽃무더기와 바윗돌 옆에 간간이 연보랏빛 들국화. 그리고 이슬에 젖은 풀들의 축축한 냄새- - . 음 역시 자전거타길 잘했어. 차를 났으면 이 꽃들과 냄새도 모른 채 쌩 지나갔을거잖아. 내심 나를 격려하며 이 아까운 길을 나혼자 달리네 하며 회룡리 길에 들어서니 저 앞에 아이들이 한무더기 걸어간다. 맨 앞에 재호는 야구공을 머리위로 던지고 받으면서 가고. 옆에 찬우 손에도 검은 글러브. 여자애들은 뭉쳐서 재잘재잘. 며칠 전부터 석교리애들이 걸어다니기로 작정을 한 모양이다.
“멋진 석교리 소년소녀들 안녕!” 말하는 사이에 애들이 뒤로 가고 앞에 상우가 자전거를 유유히 타고간다.
“상우야, 넌 왜 안 걷고 맨손이니?”
“남석이랑 약속한 거에요. 가방은 교실에 있어요.”
그러고보니 교실에 가방 놓고 되돌아 마중 나온길인가보다. 동생 상연이가 맞은편에서 자전거를 타고 온다.
“상연아. 넌 집에 가니?”
“아니오, 그냥.”
남석이가 저기 교문앞으로 쌩 달려나오더니 우리 앞에서 다시 획 돌아 묘기를 뽐내며 교문으로 들어간다. 아침에 교문앞으로 향하던 승용차들이 정말 한대도 없다. 길엔 오직 우리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재잘거리는 소리, 새소리. 그리고 자전거 바퀴 소리. 뒤에선 아직도 애들 한무더기가 재잘재잘. 운동장 너머에 설악산 위로 파란 하늘. 새들의 노래. 시원한 바람. 아마도 이 길을 걷는 기쁨을 놓쳐버리기엔 너무나 아깝다는 생각을 엄마들이 모두 했나보다. 학교 앞 왼쪽 길에서 할머니랑 오는 1학년 주연이를 보고 자연스레 인사가 나온다.
“안녕 노빵꾸!”
“안녕 김빵꾸야!”
함께 동네길을 걸어서 학교에 온 아이들은 활기차게 아침을 시작한다. 시끌한 복도에서 재윤이랑 마주쳤다.
“재운아, 너는 오늘 어떻게 왔니?”
“엄마가 중간에 내려주셨어요.”
오늘은 모든 엄마들이 내편인 듯. 우쭐한 기분으로 가슴을 펴고 교실에 들어선다. 교실 앞에 작은 정리책상 위엔 소미가 주워다 놓은 예쁜 잎들이 가지런히 샛노란 골찬지 위에 놓여있다. 노랗고 빨갛고 흙빛깔에 진녹색까지. 한나무에서 떨어졌건만. 하나도 같은 색이나 모양이 없다. 어쩜 빛깔이 이리 고울까. 멀리서 바라보아도 좋지만 이렇게 가까이서 하나하나 나뭇잎을 보면 정말 곱고 예쁘다. 피아노 위엔 하얀 별꽃 한줌이 연두 잎사귀와 함께 투명한 물컵에 담겨있다. 우리반 수빈이의 손길이다. 어제까진 하얀 개망초였는데- -. 교실 뒤엔 며칠 전에 지층 관찰하러 학교 뒷문을 지나 호섭이네 목가팬션 가는 길에 개울 위로 솟아오른 커다란 바위 층 둘레에서 주워온 돌들이다. 희안하게도 검은 회색에 굵은 흰줄 무늬가 새겨진 돌이 아리스토팬션 앞에 놓인 커다란 섬돌하고 똑같이 생겼다. 또 노랗게 이암같이 생긴 가느단 실줄무늬의 돌들도 있고 하얀바탕에 검은 점이 박힌 납작한 돌들. 이렇게 세가지다. 틀림없는 퇴적층이라고 우린 단정짓고 지층을 그리고 돌들을 그리고 교실로 가져온거다. 이런 자잘한 것들이 참 사랑스럽다.
애들은 모두 딱지치기하러 나간 빈교실에 앉아 음악을 틀고 아이들을 기다린다. 백창우 노래 시디가 들어있던 두꺼운 상자들은 모두 우리반 사내애들 딱지통이 되었다. 요즘 우리반 유행하는 노래중에 백창우 아저씨 노래 임길택시 ‘정숙이네 논둑 도랑가’가 흘러나온다.
사랑스러운 교실. 사랑스러운 아이들과 하루를 지내는 이 호사스러운 생활. 아. 내게 이런 날이 오다니. 나이 오십에 이무슨 호사인가. 아마도 설악의 하늘 아래 살아서 되는거겠지. 작은 시골학교에서 맞이하는 가을을 한껏 맛보면서 요즘만 같으면 선생노릇 오래오래 할 수 있겠다. (2010.10.20)
첫댓글 설악신문(작은 지역신문)에 원고청탁 받아서 교단일기 썼어요.
멋진 수채화일쎄. 감탄 연발~
아 노미
노미 팬이 엄청 많네...
아이들과 선생님 구분이 없네요. 그대로 어우러진 한폭의 그림. 학교오는 길과 교실풍경. 설악의 하늘아래 산다는 게 이런거였구나.
6개월 쉰 덕분에. 자전거도 배우고, 몸도 좋아지고. 마음도 편해지고. 다 엄마덕분이지. 간병휴직을 핑계로.
틀린 글자가 몇개 있네요. '아, 내게 이런 날이 오다니. 나이 오십 넘어 이 무슨 호사인가.'였는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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