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유월)에 관한 시모음 46)
6월의 들꽃 이야기 /최하정
청초한 들꽃 야생화
개미취 개망초들
아우르며 여럿이 모여 조잘거린다.
싱긋이 웃음 머금더니
이슬방울의 간질거림으로
활짝 피어 웃는다
갓난아기들의 발버둥처럼
여리디여린 꽃대를 하늘거린다
옹기종기 모여 앉아
웃비 맞은 꽃잎들의
재잘거리는 모습은
아기들의 옹알이인 양
참 귀엽기도 하다.
6월 /정연석
태양은
이른 아침부터 뜨겁고
사랑이
농염하게 익어가는 6월
오늘은
무더위와 싸울지라도
당신은
짙은 신록을 선물하니
우리는
사랑하는 영원한 파트너
당신을
기다리던 마음 헤아려
그대여 !
서둘러 떠나가지 말고
우리와
아름다운 추억 만들자
새벽에
밝은 별을 보고싶은 6월
그 유월 /정의태
죽음도 변한다 하였다 하늘이라지만
구름 흘러가듯 닿는 곳
야무진 항쟁도 서럽던 핍박도
이제는 뒷전이다
정쟁의 장에서는 애국도 재개발이다
충성도 폐기물이다
비에 젖는 태극기, 변절하는 무궁화
암기 테스트용 문구가 되어버린
애국가 다섯 절
부친인지 장인인지
동서인지 친형인지
구청장 부인을 영부인이라 칭해대는
구분 없는 이천 년 대여 명색뿐인 유월이여
유월 /박성준
건물 외벽에다 벽걸이 시계를 수십 개나 걸어놓은 철물점 남자에 관해 이야기를 하고 싶다. 그러나
나는 그를 모르고
그 또한 나를 몰라
대화를 나눈 적도 없는 사이였으니 무슨 이야기를 더 할 수 있나, 말을 잃은 사이
그가 모자를 벗자 그의 휑한 민머리가 드러나고, 그 위로 수리할 수도꼭지를 겨드랑이 사이 끼고 집에
들어온 적도 있었던 것 같은 낯빛이었던가, 저 햇빛은
어느 날인가 철문점 한길에 욕실 의자 같은 것에 쪼그려 앉아 성경을 읽고 있는 그를 가만히 훔쳐본 적
이 있었지만, 끝내
그는 나를 보지 못했다.
뻐꾸기가 울어서 슬픈 날보다 슬퍼서 우는 뻐꾸기를 기억하는 날들이 많았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왜 인간이 우는 이유가 꼭 슬퍼서라고 말하고 싶은지, 건물 외벽에 멈춘 시계를 보면서 끄덕이게 되었다.
안타까운 유월아 /황영칠
꽃과 신록으로 찬란하던 오월 앞에
미사여구로 붓 놀림에 바쁘던 시인들
오월이 떠나고 네가 온 날부터
찬사에 침이 마른 붓대도 내려놓고
청춘 남녀의 만남도 발길을 돌리더구나
화려한 외모에만 눈이 먼 민심에
시들어버린 장미의 시체만 받아 들고
눈물로써 호국 영령들의 영혼을 달래며
피비린내 나는 민족 상잔의 총 칼을
맨 가슴으로 막아낸 안타까운 유월아
슬픈 시인들을 위하여
산 자락에 밤꽃도 피워 놓고
접시꽃 오솔길도 다정하게 꾸며 놓고
담장 위에 올라선 능소화도 피워준
너의 눈물겨운 사랑이 애처롭구나
아픔이 얼마나 컸기에
38도의 열병도 앓았고
서러움이 얼마나 깊었기에
참지 못한 눈물을 쏟아 놓고 떠난 유월아
눈물 많고 속 깊은 너의 아픔을
유월아
나는 알고 있단다
잘 가거라 유월아
다시 보자 유월아
유월의 기다림 /정심 김덕성
경원선 백마고지 역에 가면
철마는 달리고 싶다고 쓴 구조물이
지금도 철길을 가로막고 있다
오랜 된 녹슨 철길은
유월이 낳은 아픔을 떠 올린다
철마는 달리고 싶다고 호소해도
눈 깜짝하지 않는
달리려고 해도 달릴 수 없는
지난 날 달리던 북행열차
지금은 시대가 낳은
아픈 역사를 보여준다
인생의 애환이 담은
만남과 이별의 사연이 묻힌
북으로 가는 기차는
달리고 싶은 마음뿐인데
오늘도 기다림 속에
행여나
저무는 유월 /이원문
오 뉴월이라
이 유월도 흐지부지 그렇게 저물고
아이들의 열매도 한 철을 잃었다
꽃은 안 그럴까 무엇이 봄 꽃이고 여름 꽃일까
며칠 후 칠월이라 하니
칠월의 문밖에 무엇이 놓일런지
그렇게 지난 반년
옥수수 잎이 젓는 세월에 뜸북새 울어 대고
빨래 줄의 제비 식구도 어미와 함께 짖어 대겠지
그렇게 가는 유월 그렇게 오는 칠월
알기라도 아는 듯 지붕 너머로 오는 구름 산 넘을 것이고
인생도 그렇지 인생은 무엇 찾아 어디로 가고 있나
유월을 보내며 /우심 안국훈
짧다면 짧은 삶
외롭지 않으려고 몸부림칠수록
마치 눈덩이처럼
왜 자꾸만 속박되는 게 늘어나는 걸까
홀로 산다는 게 뭔지
자유로워지고 싶어 뛰쳐나가면
마치 오르막길처럼
사는 게 점차 힘들어진다
생각보다 오래 살더라도
해야 할 일은 너무나 많은 탓에
빠르기만 한 세월 앞에서
욕심을 절반 줄여야 비로소 행복해진다
비명 없이 죽어가는 유월
촛불의 심지 길어질수록 그을음 더 까맣고
흐르던 촛농 단단해질 때까지
수많은 상념의 조각은 달빛에 반짝인다
유월 /최석균
아카시아꽃 하얀 향기 떨어져
산자락 따라 찔레꽃으로 핀다 싶더니
산허리 곳곳 폭포 부서지듯 밤꽃이 녹아 내린다
산에 힘이 넘친다
나뭇잎에 닿은 햇빛은 더 빛나고
꽃잎을 누르는 바람은 더 무겁다
그 빛과 무게가 물에 녹아
마을에까지 이른다.
유월의 관능 /유현숙
늘 그랬다. 선착장은 멀고, 먼 바다 저편에는 먼 섬이 있었다. 신 도는 저기.
시도 거쳐 모도까지 섬에서 섬은 저만큼 떨어져 있고
떨어져 앉은 저만큼 먼 물길 건너서 닿은 섬
섬에서는 늘 그랬다.
바람이 붉고 해당화가 적적한 햇볕이 더운 땅에
좁고 가파른 오르막과 햇살이 미끄러지는 경사와 불쑥 내민 모퉁이와
수상하게 조용한 한나절과 한가한 거기에
늘 그렇듯 노르메기*가 있었다.
또 그랬다. 가리지도 않고 쪼그리고 앉은 여자의 깊은 곳에
물빛 푸른 바다가 고이기도
여자와 남자는 겹쳐져 있기도
슬픈 남자가 슬픈 여자를 뒤에서 끌어안고 있기도
했다.
여자 위에 얹힌 남자의 등허리 위에 한낮의 태양이 얹혀 있었다.
탕. 뫼르소**의 총소리가 들리고
바다는 또 그랬다. 남자와 여자는 늘 그랬다.
외설과 관능과 미학의 상관관계와 대낮의 햇볕과 더운 대기 사
속속들이 들여다보이는 여자와 완벽하게 벗은 남자의 사이에서
바다는 입 다물고
짙푸르다.
하늘과 바람과 시간과 물빛이 제각각의 체위로 흔들리는
거기의 어디에
당신, 있었던가.
길은 바다로 떨어져 내리고 나는 벼랑 끝에서 돌아선다.
유월의 그림자가 길게 일어서는 섬의 끝
탕, 뫼르소의 마지막 총소리가 들린다.
* 배미꾸미조각공원이 있는 모도의 끝자락
*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
산책길에 만난 6월! /홍성기
오늘 아침 문득 앞산을 보니
짙푸른 옷으로 변장하고
밤꽃 향내음으로 날 유혹한다
산에 올라 보니
산딸기 어느새 빨갛게 익어
잃어진 동심 되찿아 주고
여기저기 떨어진 밤꽃들
하나 둘 주우며
추억에 잠긴다
들에는 온갖 채소 풍성하고
길섶 농장엔 천년초가
노오란 꽃 피워내니
곱게 핀 백합들
앞다투어 향기를 토해낸다
울타리 넘은 살구나무
주황색 예쁜 열매 떨구어
가는 길손 붙드는 6월!
6월은 꽃으로 열매로
호화롭고 풍성한 잔치벌려
세상을 아름답다 노래하네
유월의 독서 /박 준
그림자가
먼저 달려드는
산자락 아래 집에는
대낮에도
불을 끄지 못하는
여자가 살고
그 여자의 눈 밑에 난
작고 새카만 점에서
나도 한 일 년은 살았다
여럿이 같이 앉아
울 수도 있을
너른 마당이 있던 집
나는 그곳에서
유월이 오도록
꽃잎 같은 책장만 넘겼다
침략과 주름과 유목과 노을의
페이지마다 침을 묻혔다
저녁이 되면
그 집의 불빛은
여자의 눈 밑 점처럼 돋아나고
새로 자란 명아주 잎들 위로
웃비가 내리다 가기도 했다
먼 능선 위를 나는 새들도
제 눈 속에 가득 찬 물기들을
그 빛을 보며 말려갔겠다
책장을 덮어도
눈이 자꾸 부시던
유월이었다
유월酒 /최도선
유월이 오면
산청 마을로 가
청매실을 따겠네
야산 자락에 아무렇게나 자란
조금은 솜털이 포슬거리는 개복숭아도
숭숭거리는 벌들과 함께 따다가
청주를 조금 넣고 유월酒를 담겠네
유월이 오면
바람 넌츨대는 남도 땅
보리 익는 마을로 찾아가
누런 보리 한 이랑 도지 내어
첫 이삭 손으로 싹싹 비벼 깜부기 털고
보리개떡 빚어
소담히 담아 보겠네
강물같이 흐르는 기쁨이 넘치는
햇빛 찬란한 금빛 물결 남실대는
섬진강도 따라가 보겠네
유월이 오는 마을로 가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