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
| 와서 보라 말씀/ 요한복음 1:35-51 요절/ 요한복음 1:39 | 2024. 6. 28 |
개회 메세지 |
“예수께서 이르시되 와서 보라 그러므로 그들이 가서 계신 데를 보고 그 날 함께 거하니
때가 열 시쯤 되었더라”
오늘 말씀은 요한과 안드레, 시몬, 빌립과 나다나엘이 예수님을 체험하는 말씀입니다. 저 또한 최근에 초청을 받고 시작하게 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운동입니다. 처음 운동을 시작했을 때는 아주 힘들었습니다. 봉을 들어올리는 운동을 하고 근육통을 경험했습니다. 그렇지만 운동을 꾸준히 하며 체계적으로 건강을 증진할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도 “와서 보라”말씀으로 제자들을 초청하셨고 우리를 초청하고 계십니다. 단순한 초청에 응했을 때 생각지도 못한 은혜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양들은 수양회가 낯설어서, 목자들은 이미 많이 경험해서 기대감이 떨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를 말씀의 세계로 초청하시는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께 나아갈 때 수양회 가운데 예수님을 체험하는 풍성한 은혜가 있을 줄을 믿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예수님을 만난 감격으로 캠퍼스 양들을 초청하는 예수님의 증인들이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세례 요한이 두 제자와 함께 있다가 예수님을 보고 말하였습니다. 36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거니심을 보고 말하되 보라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세례 요한은 구약과 신약을 연결하는 선지자입니다. 그는 메시야 예수님을 앞서 증거하는 사명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 그가 예수님을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 칭한 의미는 무엇입니까? 어린 양은 구약 시대의 제사와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구약 시대 제사에서는 죄 없는 어린 양의 피를 흘림으로서 인간의 죄를 대속하였습니다. 세례 요한은 제사장 사가랴의 아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제사에서 어린 양의 역할을 잘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또한 출애굽기의 유월절 어린 양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유월절 어린 양의 피를 문에 바르면 심판이 임하지 않고 지나갔습니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이 우리의 모든 죄를 대속하시는 메시야이심을 나타내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어린 양으로 증거했습니다. 세례 요한의 두 제자들은 그 말을 듣고 예수님을 따르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님은 따르는 두 제자들을 보시고 “무엇을 구하느냐” 물으셨습니다. 이는 예수님을 따르는 목적이 무엇인지 묻는 질문입니다. 제자들은 반대로 예수님께 질문합니다. 그들은 “랍비여 어디 계시오니이까” 하였습니다. 이 질문은 예수님의 위치를 묻는 질문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이는 “무엇을 구하느냐” 하시는 예수님의 질문에 대한 대답이었습니다. 그들이 구하는 것은 예수님 그 자체였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이 예수님을 구하는 것을 아시고 “와서 보라” 말씀으로 그들을 초청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과 함께 거하며 열 시까지 거했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 무엇이 필요했습니까? 예수님이 누구신지 배우고자 하는 마음 말고는 다른 것이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세상에서는 누군가를 만나려면 조건이 필요하지만 예수님은 아무 조건 없이 제자들을 초청하셨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제자들을 초청하실 때 “와서 보라” 말씀으로 단순하게 초청했습니다. 초청에도 많은 것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어떤 설명도 직접 체험하는 것만 못합니다. 예수님을 직접 체험하는 것이 예수님을 배우는 가장 좋은 방법이기 때문에 예수님은 “와서 보라” 말씀으로 단순하게 초청하셨습니다.
두 제자 중 하나인 안드레는 예수님을 만난 감격으로 즉시 시몬에게 전도했습니다. 길게 말하지 않고 “우리가 메시야를 만났다” 라고 전했습니다. 메시야는 기름 부음 받은 자를 의미합니다. 기름 부음 받는 자는 셋으로 나뉩니다. 왕, 선지자, 그리고 제사장입니다. 왕은 정의와 공의로 통치합니다.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전합니다. 제사장은 백성들의 죄를 하나님께 들고 나아가며 중보기도합니다. 왕도 선지자도 제사장도 여러 명이 있지만 왕이자 선지자이자 제사장인 메시야는 예수 그리스도 한 분 뿐입니다.
안드레는 예수님께 시몬을 데리고 왔습니다. 시몬은 겁이 많고 잘 흔들리는 자였으나 예수님은 그에게 장차 게바라 하리라 말씀하셨습니다. 게바는 반석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현재 모습이 아니라 미래 비전을 보시고 제자로 부르시는 분이십니다. 지금의 베드로를 생각하면 반석이라는 이름은 그와 어울리지 않고 어색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베드로의 지금 모습이 아니라 앞으로의 모습을 보십니다. 예수님은 그분의 뜻대로 변화된 베드로를 반석으로 사용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분의 뜻대로 우리를 부르시고 빚으시고 사용하십니다. 모난 부분을 다듬어 가시고 타고난 성질을 바꾸어 가시면서 예수님이 쓰시기에 합당한 자로 우리를 회복시키고 계십니다. 지금 나의 모습은 완성된 모습이 아닙니다. 주님 안에서 우리는 변할 수 있기에 변화되어 가야하고 변화를 추구해야 합니다. 어떻게 그렇게 될 수 있습니까? 예수님과의 만남으로 가능합니다. 우리가 그분의 부르심에 응답하여 그분을 만나고 그분을 보고 들으며 그분을 배우고 그분을 경험할 때, 우리도 변화될 수 있습니다. 내가 만난 예수님을 너도 와서 보라고 이야기 할 수 있습니다. 지금은 비록 눈으로 직접 그분을 볼 수 없지만, 믿음의 눈을 열어서 그분을 만날 수 있고 그분으로 만족할 수 있습니다. 인생에서 우리가 반드시 찾아야 하는 것, 그래서 우리가 만나야 하는 것은 예수님입니다.
43절에서 예수님은 갈릴리로 나가려는 도중 빌립을 만나 제자 삼으셨습니다. 예수님은 빌립에게 “나를 따르라”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얼마나 큰 은혜입니까? 세리 레위 또한 “나를 따르라” 말씀으로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그는 후에 마태가 되어 마태복음에서 예수님의 긍휼과 은혜를 드러냅니다. 빌립 또한 예수님의 긍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빌립은 예수님의 긍휼을 경험하고 그 은혜를 전하고자 하였습니다.
빌립은 나다나엘에게 전도하였습니다. 빌립은 예수님을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이” 라고 전했습니다. 빌립은 구약 성경에 해박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나다나엘은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냐며 부정적으로 반응했습니다. 빌립은 “와서 보라”하며 나다나엘이 직접 예수님을 체험하도록 초청했습니다. 예수님은 초청에 응한 나다나엘을 보시고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며 속에 간사한 것이 없다고 칭찬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나다나엘이 누구이며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다 알고 계셨습니다. 그러자 나다나엘은 예수님을 체험하고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요 이스라엘의 임금으로 고백했습니다. 예수님은 편견과 선입견을 깨고 예수님을 체험한 나다나엘에게 더 큰 비전을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요한과 안드레와 빌립을 초청하셨습니다. 안드레는 시몬을, 빌립은 나다나엘을 초청했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는 비전을 주셨고 나다나엘에게는 내면을 보시고 칭찬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각 사람에 맞게 인격적으로 관계를 맺으시고 초청하십니다. 그러나 제자들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들은 모두 예수님을 와서 보았습니다.
저는 예수님의 초청에 응하기까지 예수님의 많은 도우심을 받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편견과 선입견으로 인해 예수님께 나아오지 못하는데 저는 교회에 대해 좋은 인식을 가지도록 인도받았습니다. 저는 초등학교 시절 교회를 다니며 많은 섬김을 받고 즐거운 경험을 하였습니다. 그 덕분에 대학 신입생 3월에 황사무엘 목자님이 저를 초청하셨을 때 편견에 가로막히지 않고 예수님께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제가 와서 본 예수님은 긍휼과 사랑의 주님이었습니다. 저는 예수님을 만나고 변화되었고 이제는 캠퍼스 양들을 초청하고 있습니다. 저에게 “와서 보라” 하시는 예수님의 초청에 응하여 예수님을 체험한 바를 말해보려고 합니다. 처음 교회에 가서 1:1로 배운 말씀은 창세기 말씀이었습니다. 창세기 말씀을 배우면서 인간이 창조된 목적이자 인간이 살아가는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특별한 인생 목적 없이 살아왔던 저에게 창세기 말씀은 분명한 인생 목적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분명한 목적 가운데 희망을 가지고 대학생활을 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1:1말씀공부와 주일예배, 수요소감모임에 시간과 마음을 들여 예수님을 배웠습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택하신 곳 춘천으로 인도하셨으므로 저는 본가인 용인에서 가족이나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기보다 춘천에서 예배드리기를 택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제가 예수님 배우기를 원하여 먼저 시간과 노력, 물질을 드렸을 때 저를 영적으로 성장시켜 주셨습니다.
여름방학 기간 동안 세례를 준비하고 세례를 받게 되었습니다. 세례를 받는 가운데 성령님의 임하심을 느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로 죄를 씻고 그리스도의 지체로 다시 태어난 저를 따뜻하게 환영해 주는 영적인 가족들에게 감사했습니다. 얼마 후 여름수양회를 준비하며 처음으로 인생소감을 쓰게 되었습니다. 인생소감을 쓰는 것은 고된 일이었지만 인생을 돌아보는 가운데 요나서 4:10,11 말씀으로 하나님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죄사함을 모르는 죄인인 제가 타인을 정죄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음을 보게 되었습니다. 박넝쿨을 아끼면서 니느웨 백성들을 사랑하지 않던 요나의 모습이 저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요나를 사랑하시고 저를 사랑하신 사랑의 하나님을 만나고 그 은혜를 여름수양회에서 고백했습니다. 또한 여름방학 때부터 일용할 양식을 시작했습니다. 글쓰기를 어려워하는 저는 양식 소감을 매일 쓴다는 것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사무엘목자님은 양식 소감을 잘 감당하도록 섬세히 도우셨고 저는 그 덕분에 일용할 양식을 먹는 것에 적응할 수 있었습니다. 매일 공급되는 양식 말씀은 저의 영적 성장의 좋은 양분이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지금도 우리 각 사람을 부르고 계십니다. 우리에게 "와서 보라" 말씀하심으로 초청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오늘 말씀에 나오는 예수님의 제자들처럼 주님의 음성에 순종하여 적극적으로 주님을 따르는 제자의 인생을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각자의 인생 가운데 두신 뜻대로 인생을 이끌어가시고 변화시켜 나가실 것입니다. 2박3일 믿음 생명 여름수양회에 적극 참여함으로 나를 부르시는 예수님의 초청의 음성에 아멘으로 순종하여 예수님의 위대한 능력을 체험하는 복된 우리가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