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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말레이시아 사상 최악의 홍수 27명 사망 이재민 7만명
2021년 덴마크, 코소보 교도소 10년 동안 2828억원 주고 빌려 쓰기로
죄수는 넘쳐나는데 교도소 간수는 갈수록 줄어 골치를 앓는 덴마크에게 코소보가 놀리는 감방을 빌려주는 데 합의했다
덴마크 정부 대표들은 코소보 동부 질란 교도소의 300개 감방을 우선 5년 동안 빌리기로 하고 해마다 1500만 유로(약 202억원)를 지급하며 코소보에 녹색에너지 설치 비용 일부를 떠맡는 내용을 골자로 한 양해각서에 전날 서명했다. 질란 교도소에 수감될 죄수들은 유럽연합(EU) 출신이 아닌 기결수로 한정할 계획이라고 했다. 임대된 감방에 수감되는 죄수들에게는 덴마크 법률이 적용된다.
덴마크 죄수는 2015년 3400명에서 현재 4200명으로 급증했는데 교도소 간수는 2500명에서 2000명으로 오히려 줄었다. 닉 하엑케룹 덴마크 법무장관은 2025년이 되면 감방이 1000개 모자라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코소보는 사용하지 않는 감방이 700~800개에 이르러 이같은 임대가 가능하다. 2008년 세르비아로부터 일방적으로 독립을 선포한 코소보는 2023년부터 10년 동안 감방을 임차하면 2억 1000만 유로(약 2828억원)를 받게 된다. 지난해 기준 코소보 국내총생산(GDP) 68억 4000만 유로)의 3%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2017년 제천 체육시설 화재 29명 사망
2017년 12월 21일 15시 53분 충청북도 제천시 하소동 9층짜리 스포츠센터 주차장에 있는 차량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제천소방서 소속 출동대가 16시에 도착했으나, 1층의 차량과 LP가스통의 폭발 위험성 때문에 접근하지 못하다가 16시 30분에 내부로 진입하였다. 이 사고로 29명이 사망하고, 36명이 부상을 입어 치료를 받았다.
화재의 원인은 1층 주차장의 배관에 열선을 설치하는 작업을 하던 도중 천장 구조물에 불이 옮겨붙었고 불이 옮겨붙은 천장 구조물이 차량으로 떨어져 연소가 확대되었다. 또한 2층 여성용 목욕탕에는 비상구가 창고처럼 활용되었으며, 대피를 유도한 직원도 없었으며, 주 출입구도 고장나 피해가 증가하였다
2011년 시리아보안군 반정부시위대 250여명 학살 3월 첫 시위 이후 사망자 5천여명
2011년 3·4共 핵심 실세… 길전식 前 의원 별세
길전식(吉典植·87) 전 의원은 연희대학(현 연세대)을 졸업하고 육사(8기)에 들어가 방첩부대 정보처장 시절 5·16혁명에 참여, 중앙정보부 3국장, 공화당 원내부총무, 국회 상공위원장을 역임했다.
고향인 전남 장흥에서 내리 5선(6~10대)을 기록한 고인은 1971년 구(舊) 주류가 대거 퇴진한 '10·2 항명 파동'을 기점으로 당 운영의 전면에 등장했다. 당시 공화당은 백남억·길재호·김성곤·김진만의 '4인 체제'가 권력을 독점했고 박정희 대통령은 이들을 견제하려 했다. 4인방은 김종필 총리와도 경쟁 관계였다. 10월 2일 국회 본회의에서 이들과 동조 의원 주도로, 4인방 견제에 앞장섰던 오치성 내무장관 해임안이 전격 통과되자 정국에 파장이 일었다. 여당 의원 최소 20명 이상이 해임 찬성표를 던졌다. 주도자로 지목된 길재호·김성곤 의원은 중앙정보부로 끌려가 고문을 받고 정계를 떠났다.
고인은 이 사태 4개월 전 당 사무총장에 임명됐다.
고인은 이후 8년간 공화당 사무총장으로 재직하면서 당무·자금·공천을 주무르는 핵심 실세로 부상했다. 치밀하면서도 구김 없는 성품으로 야당과 두루 교류했으며, 군(軍) 색채가 적은 인사로 평가됐다. 1979년 10·26 이후 정치에 관여하지 않았으며, 최근까지 구 여권 모임인 민족중흥회 회장을 맡아 박정희 전 대통령의 성과를 조명했다.
2010년 박정환(2006년 13살 입단) 최연소(만17살11개월) 입신(9단).
2010년 경춘선 복선전철 개통
2007년 파키스탄에 자살폭탄테러 50여명 목숨 잃음
2006년 투르크메니스탄 21년 독재자 니야조프 대통령 심장마비로 갑자기 죽음
2005년 박지성 선수 영국 프리미어 리그 진출 25경기 133일 만에 첫 골.
2001년 언론인 송건호씨 별세
언론인 송건호(75) 씨는 서울대 법대 재학중이던 1953년 대한통신 외신부 기자를 시작으로 조선일보 동아일보 한국일보 경향신문 한겨레신문 자유신문 민국일보 세계일보 등에서 기자, 논설위원, 편집국장, 대표이사 사장, 회장을 지냈다.
조선일보 논설위원으로 재직하던 1968년에는 파리와 베를린에 파견돼, 68혁명이 진행중인 대학 풍경과 베트남 문제를 다룬 평화협상을 국내에 보도했다. 신문기자에서 야인(野人)으로 돌아간 것은 1975년 동아일보 자유언론수호투쟁이 계기가 됐다. 당시 편집국장이던 그는 동아일보 광고사태 및 기자 해임에 항의하여 국장직을 사임하고, 민주화운동에 뛰어들었다. 1984년 해직언론인이 중심이 된 민주언론운동협의회 초대의장을 맡아 `말`지를 발행했고, 1988년 한겨레신문을 창간, 초대 사장으로 신문사를 이끌면서 언론계에 복귀했다.
송 회장은 현대사 연구에서도 주목할 만한 저작을 남긴 연구자였다. 1980년대 대학생들의 필독서였던 `해방 전후사의 인식`(공저) 이외에 `한국현대인물사론` `서재필과 이승만` `한국현대언론사` 등 20여종의 저서를 펴냈다. 일평생 언론운동에 종사한 공로를 인정받아 금관문화훈장(1999년)과 호암언론상(1994년) 등을 받았다.
2001년 투안쿠 사예드 시라주딘, 말레이시아 국왕으로 선출
말레이시아의 신임 국왕에 페를리스주 통치자인 `라자` 투안쿠 사예드 시라주딘이 선출됐다고 마하티르 말레이시아 총리가 2001년 12월 21일 발표했다. 말레이시아 9개 주 최고통치자들의 비밀 투표를 통해 선출된 투안쿠 사예드 시라주딘 새 국왕은 2001년 11월 21일 사망한 살라후딘 압둘 아지즈 샤 전 국왕의 뒤를 이어 13일 제12대 국왕에 즉위했다. 1957년 영국에서 독립한 이후 국왕자리는 5년마다 9개주의 최고통치자들이 돌아가면서 맡아왔다. 국왕은 명목상 군통수권자와 3부 수반으로 법령 서명, 장관·판사·대사 임명권을 갖고 있으나, 법률에 대한 거부권은 1983년 상실했다.
2001년 서해안 고속도로 완전 개통
공사기간 11년, 총사업비 4초 7천여억원이 들어간 서해안고속도로가 무안-군산구간 개통으로 인천에서 목포까지 전 구간의 공사를 끝내고 2001년 12월 21일 준공식을 가졌다
21일 오후 서남권의 새 역사(歷史)를 여는 2가지 행사가 잇달아 열렸다. 전남도청이 옮겨갈 무안군 삼향면 남악리에선 새청사 기공식이, 도로공사 서김제영업소광장에선 서해안고속도로 완전개통식이 이어졌다.
한국도로공사는 서해안고속도로(인천~목포·353㎞)의 최종 구간인 군산~무안(114㎞·왕복 4차로) 구간을 21일 오후 5시 개통한다고 밝혔다. 서해안고속도로는 이에 따라 총 4조7857억원을 들인 11년 공사의 대장정을 마무리하게 됐다.
이번 전구간 개통으로 과거 8시간 걸리던 인천~목포 간 주행이 4시간으로 줄어드는 등 서해안권 교통이 크게 편리해졌다. 이날 두 현장에선 “서남권시대가 열렸다”, “서남해지도가 바뀐다”는 말들이 머뭇거림 없이 쏟아져나왔다. 그동안 ‘낙후’와 ‘소외’의 대명사로 불려졌던 목포를 중심으로 한 서남권의 발전을 기약하는 현장이었다.
인천과 목포를 연결하는 353km의 서해안고속도로 개통에 거는 서남권의 기대는 매우 크다. 물류비용의 절감으로 인한 기업들의 투자유치가 활발해지고, 그에 따라 이미 조성된 대불산업단지 등이 제기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전남도는 대불산단을 자유무역지역으로 지정할 계획.
이와 함께 관광객유발효과와 농·수산물 공산품의 유통폭이 커져 경제활성화에 도움이 예상된다.
2001년 박찬호, 텍사스 레인저스와 5년간 계약
2001년 12월 21일 박찬호 선수가 메이저리그 텍사스 레인저스로 이적을 결정했다. 2001년 12월 21일 미국의 주요 언론들은 박찬호 선수가 아메리칸리그의 레인저스와 5년간 옵션 포함, 7100만 달러(한화 약 923억원)의 조건으로 입단에 합의했다고 보도했다. 박찬호는 12월 23일 텍사스주 알링턴시의 레인저스 구장에서 입단식을 갖고 레인저스 유니폼을 입었다. 등번호는 다저스 시절과 똑같은 61번. 박찬호의 계약 조건은 공식적으로 5년간 6500만달러로 발표됐지만 박의 에이전트 스콧 보라스에 따르면 600만달러의 옵션이 있어 실질적인 총 연봉은 5년간 7100만달러, 평균 1420만달러로 밝혀졌다.
1999년 통일농구 북한 방문단, 서울도착
1999년 유럽연합, 중국에 인권개선과 사형제도 폐지 촉구
1995년 5.18민중항쟁특별법 제정
1991년 벨로루시 독립
1991년 아르메니아 독립
1991년 우즈베키스탄, 소련으로부터 독립
1991년 소련 11개공화국, 독립국가연합(CIS) 창설. 소련 공식 소멸
소련을 구성해 온 러시아, 우크라이나, 벨로루시, 몰도바,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타지키스탄, 키르기스스탄,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 공화국 등 11개 공화국 지도자들이 1991년 12월 21일 카자흐공화국 수도 알마아타에서 독립국가연합(CIS) 창설 협정에 서명하고 새로운 국가 형태를 공식 탄생시킴으로써 74년동안 이어져 온 소련이 공식 소멸됐다.
CIS 공동 창설자라는 동등한 자격으로 참가한 각국의 지도자들은 CIS 창설 협정의 부속 의정서, 가맹국간의 국경 불가침과 민족 자결을 규정한 알마아타 선언, 핵무기의 통일 관리에 관한 협정, 러시아를 UN에서의 소련의 계승자로 하는 성명 등 6개 문서에 조인했다.
독립국가연합은 1993년 10월 그루지야가 가입함으로써 12개 공화국으로 확대됐으나, 2005년 투르크메니스탄이 탈퇴하고, 2008년 그루지야가 탈퇴하여 2010년 현재 회원국은 10개국(러시아·몰도바·벨라루스·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우즈베키스탄·우크라이나·카자흐스탄·키르기스스탄·타지키스탄)이다. 몇 차례의 정상회담을 거치면서 1995년 2월 10일의 알마아타 정상회담에서는 집단안보체제의 구축에 합의하고, 상호협력 협정을 채택했다. 1996년 1월 19일의 모스크바 정상회담에서는, 러시아 공산당이 제기한 소련 부활에 반대하는 입장을 명확히 함과 동시에 경제통합에서는 군사·정치 통합의 흐름을 강조했다.
CIS의 조직은 최고협의기구인 국가원수평의회(정상회담)와 그 산하에 총리협의체 그리고 가맹국의 해당 장관들로 구성되어 실무를 담당하는 각료위원회로 구성돼 있다. 정상회담은 연 2회 이상 개최하고, 협력체제의 효율적 확립을 위하여 6개월 임기의 순회의장제를 도입했다. 총리협의체는 연 2회, 각료위원회는 연 4회 이상 열도록 돼 있다.
1991년 그루지야, 소련으로부터 독립
1991년 우크라이나, 소련으로부터 독립
1991년 몰도바 독립
1991년 카자흐스탄, 소련으로부터 독립
1991년 투르크메니스탄, 소련으로부터 독립
1991년 아제르바이잔 독립
1990년 한국전기연구소 국내 최초로 자기부상열차 개발
1988년 팬암기 영국 상공에서 폭발. 269명 사망
독일 프랑크푸르트를 출발해 뉴욕으로 향하던 팬암 103편 보잉기가 1988년 12월 21일 스코틀랜드 상공 10Km 지점에서 폭발했다. 이 폭발로 승무원과 승객 258명 전원과 폭발지점에 있는 마을 주민 11명이 사망했다. 폭발원인은 플라스틱 폭탄에 의한 것으로 밝혀졌지만 범인의 윤곽이 드러나지 않았다.
비행전에 헬싱키주재 미대사관에 익명의 협박전화가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졌지만 일상적인 협박으로 무시되었고 사건후에도 자신들의 범행이라고 주장하는 두곳의 범행성명이 있었다. 1988년 7월의 미군함에 의한 이란 여객기 추락에 대한 보복이라는 성명과 1986년 미국의 리비아 폭격에 대한 보복이라는 성명이었다. 1990년에 미국은 2명의 리비아인를 범인으로 지목, 리비아에 범인 인도를 요청했지만 리비아는 이를 거부했다
1983년 일본, 보이지않는 미사일 개발에 착수
1983년 문교부, 학원사태 제적생 복교허용
1981년 중국, 광개토대왕비를 1급 보물로 선정
1980년 미국 극작가 마르크스 코널리 사망
1979년 최규하 10대 대통령 취임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의 서거로 헌법 제48조 규정에 따라 최규하 국무총리가 대통령권한대행으로 취임해 10월 27일 새벽4시를 기해 비상계엄령을 선포했다.
1979년 12월 6일 통일주체국민회의가 실시한 대통령 선거에서 전국의 대의원 2천5백60명중 2천5백49명이 참석한 가운데 대의원 8백27명의 추천을 받은 최규하 대통령권한대행이 대통령으로 선출되면서 비상계엄령을 해제했다.
단독으로 입후보한 최규하 대통령권한대행은 찬성 2천4백 65표, 무효 84표로 대통령에 당선, 1979년 12월 21일 제10대 대통령에 취임했다
1977년 소련, 에너지광선무기 개발
1975년 아랍게릴라, 빈 소재 석유수출국기구(OPEC) 본부를 습격, 각국 대표 수십명 인질 난동
1975년 12월 21일 오전 11시40분, 오스트리아 빈에서 정례 각료회의를 개최하던 석유수출국기구(OPEC) 본부가 6명의 게릴라에게 습격받았다. 게릴라들은 3명의 경찰을 살해하고 사우디아라비아 석유상 등 각국 대표를 포함 수십명을 인질로 하고 본부를 점거했다. 게릴라들은 TV, 라디오를 통해 이스라엘과의 평화를 선택한 아랍제국을 비난했다. 이튿날 아침 게릴라들은 빈에 살고 있는 인질을 석방하고 알제리 공항에서 아랍제국 이외의 인질을 석방했다. 이들은 각국에서 입국을 거부하자 12월 23일 투항했다
1974년 중앙일보와 TBC 합병(주식회사 중앙일보 동양방송으로 상호변경)
1972년 동-서독 관계정상화 기본조약 조인
1971년 유엔 사무총장에 쿠르트 발트하임 선출
1970년 백두진 제19대 국무총리 취임
1968년 미국 아폴로8호 발사
1968년 경인고속도로 - 경수고속도로 개통
길이 29.5km, 넓이 4차선 20.4m(1993년 6차선 확장) 인터체인지 6개, 인천항을 통한 수출입 화물량이 늘어나고 1969년 준공예정인 인천 제2독이 완공되면 급격히 늘어날 화물수송량에 대비하여 1967년 5월에 기공하여 1년6개월만에 완공된 경인고속국도는 1시간 거리를 18분으로 단축시켰다.
1967년 박정희 대통령 호주방문, 존슨 미국 대통령과 정상회담
1965년 백범 김구 암살범 안두희, 29세의 청년 곽태영으로부터 피습
1963년 광원 123명 서독에 첫 파견
서독 루르탄광지대에서 일할 우리나라 광부 123명이 1963년 12월 21일 에어프랑스 전세기편으로 김포공항을 떠났다. 광부들 얼굴에는 낯선 땅에 대한 두려움과 설렘이 교차했다. 약속한 월급은 162달러50센트(기본급). 1인당 GNP가 87달러(62년)에 불과하던 시절이었다.
당시 우리 경제는 실업률이 8.1%(63년)에 달하고, 200명 이상의 종업원을 둔 기업이 54개(61년)밖에 안 돼 변변한 일자리 하나 찾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광원파견은 국가적으로도, 개인적으로도 분명 돌파구였다. 중졸 이상의 학력과 20세 이상 30세 미만 그리고 탄광근무경험이 있어야 한다는 자격조건이었는데, 몰려든 지원자가 2874명이었다. 8대1의 경쟁률을 뚫고 최종합격한 사람은 367명. 대학물을 먹은 사람이 20%나 됐다. 합격자는 20일간의 탄광훈련, 20일간의 독일어강습을 거친 후 다시 서독 현지에서 3개월의 적응훈련을 받아야 했다.
힘들게 작업장을 배정받았지만 작업도 간단치 않았다. 지하 1000미터에서 뿜어나오는 30도의 지열과 50킬로그램이나 되는 작업도구로 3년 뒤 고국으로 돌아올 때는 대부분 한번 이상 골절상을 경험했다. 우려했던 탄광사고도 이듬해 11월부터 발생하기 시작, 돌에 깔려 죽거나 탄차에 부딪혀 현장에서 죽는 사고들이 일어났다.
1964년 12월 차관을 구하기 위해 서독을 방문한 박정희 대통령이 한국인 광원과 1964년 11월부터 파견된 간호사를 찾아 위로의 말을 하다가 “조국이 가난해서…”라는 대목에서 목이 메어 말을 잇지 못할 때는 장내가 온통 울음바다로 변하기도 했다. 이렇게 파견된 광부는 1978년 서독정부가 광부수입을 중단할 때까지 줄잡아 7800명이나 됐다.
1962년 미국-영국, NATO 핵군 창설 합의
1961년 조용수 민족일보 사장 사형
민족일보 조용수 사장이 북한의 대남통일전략을 옹호하는 사설 등을 발간한 혐의로 1961년 12월 21일 사형됐다. 1961년 ‘반공이 국시’임을 내세운 5·16군사쿠데타 세력은, 통일과 혁신을 기치로 내걸고 언론활동을 벌이던 민족일보를 ‘특수범죄처벌에 관한 특별법’을 소급적용해 민족일보에는 폐간을, 조용수 사장에게는 사형을 선고했다.
민족일보는 4·19혁명의 기운속에서 ‘부정부패를 고발하고 조국통일을 절규하며 근로대중의 권익을 옹호’한다는 기치아래 1961년 2월 창간됐었다.
조씨의 사형선고에 국제신문인협회와 국제펜클럽, 국내 언론인, 문인 등이 나서 구명운동을 펼쳤지만 결국 조씨는 이날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민족일보 사건은 지금까지도 조작에 대한 논란이 끊임없이 일고 있는 대표적 사건가운데 하나이다.
1961년 모이세 촘베, 통일선언문에 서명함으로써 콩고 분열에 종지부
1961년 케네디, 맥밀란 버뮤다서 회담. 베를린전략 합의
1961년 최인규 곽영주 임화수 등 사형 집행
1958년 드골, 프랑스 대통령에 당선
1954년 미국의 테니스선수 크리스 에버트 출생
1951년 중국, UN 휴전안 거부
1946년 일본 남해도 시코쿠해역에서 진도 8.0의 진도 발생 1,400명 사망 실종, 가옥피해 13000여호
1940년 `위대한 개츠비`의 작가 피츠제럴드 사망
1937년 미국의 영화배우 제인 폰다 출생
1918년 유엔 사무총장 쿠르트 발트하임 출생
1917년 무용수 에글레프스키 출생
1917년 프랑스 모단느서 군용차 탈선, 550명 사망
1917년 독일 소설가 하인리히 뵐 출생
1913년 낱말맞추기(crossword puzzle) 뉴욕 월드지에 첫 등장
1906년 영국, 노동쟁의법 제정
1905년 일본,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초대 조선통감으로 임명
1892년 미국의 프로 골프선수 월터 헤이건 출생
1890년 미국의 유전학자 조셉 멀러 출생
1885년 한일, 부산구설해저전선 조관속약(條款續約) 체결
1880(조선 고종 17) 통리기무아문 설치(총리대신 이최응) 군국기밀과 일반외교 및 정치를 관장. 삼군부 폐지
1879년 스탈린 출생
1878년 그리스도전도회, 구세군으로 개칭
1872년 미국 소설가 알버트 터휸 출생
1860년 미국 여성 이온주의 조직 하다사의 창설자 햄머스 졸드 출생
1820년 흥선대원군 석파 이하응 출생
1795년 독일 역사학자 랑케 출생
1699년 프랑스 작가 라신느 세상 떠남
1620년 영국 청교도를 태운 메이플라워호 미국 도착
영국의 제임스 1세는 스페인과의 전쟁이 끝나자 국가부력을 늘리기 위한 정책의 일환으로 신대륙 식민지화에 힘써 1607년 1백 5명의 식민이 3척의 배에 나누어 타고 미대륙 제임스 강 어귀에 상륙, 최초의 식민지 버어지니아(제임스 타운)을 개척하였다. 한편 이때 영국국교인 성공회 이외의 다른 종교는 일절 엄금하는 한편, 전제정치를 자행하자, 이에 불만을 갖고 있던 청교도들이 그 속박에서 벗어나 자유를 찾고자 필그림 파아더즈 1백 2명이 메이플라워호(1백 80t)를 타고 대서양을 횡단, 1620년 오늘 미국 뉴우 잉글랜드 지방의 매사추세츠주 동남부에 있는 플리머드에 상륙하였다. 현재 플리머드 록이라 하여 고적으로 보호되고 있는 바위에다 그들은 <1620>이라는 글을 새겨 식민지 건설을 기념하는 사적을 남김으로써 신대륙에 제임스 타운 다음가는 두 번째의 식민지를 건설하였다.
1431년 유효통, 약용식물 정리한 `향약채집월령` 편찬
1375년 이탈리아 작가 조반니 보카치오 사망
단테, 페트라르카와 함께 3대 인문주의자로 일컬어지는 보카치오가 1375년 12월 21일 사망했다. 단테의 ‘신곡’에 비해 ‘인곡(人曲)’이라 불리는 ‘데카메론’의 저자 보카치오는 1313년에 이탈리아 피렌체 근처 체르탈도에서 태어났다. 그는 평생 단테를 존경해서 ‘단테전’을 집필하기도 했고, 성 스테파노 디 바디아 성당에서 단테의 ‘신곡’을 강의하기도 했다.
‘데카메론’은 1348년에서 1353년에 걸쳐 집필된 단편소설집이다. 1348년 피렌체에서 괴질 페스트가 만연하여 수만 명의 시민이 죽어가자, 이 참담한 광경을 배경으로 집필을 시작했다. 교외의 화려한 별장으로 피난해 10일 동안 계속 매일 열 명의 남녀가 서로 주고받는 이야기를 꾸며 ‘데카메론’을 썼다. 이 소설을 ‘10일 이야기’라고 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1313년 이탈리아 문학가 보카치오 세상 떠남
69년 제9대 로마제국 황제 베스파시아누스 즉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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