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산리에서
김선중
한가한 일요일 몇몇이 부부동반으로 가덕 계산리 친구집에 놀러갔다.
가덕면사무소를 지나 들녘 삼거리에서 조금 더 들어가면 나즈막한 야산이
있고 개울 건너 그 앞 산줄기의 자락에 십수채의 가옥이 있는 조그마한
동네다. 친구집은 마을안 끝쪽에 있다. 마을의 앞에는 조그만 동산이 있
고 멀리 동쪽으로는 피반령을 끼고 도는 산들이 펼쳐져 있다. 초봄이라
지나가는 바람이 그렇게 차갑지 않다. 얼었던 대지가 봄의 온기에 풀리
고 따스한 기운에 풋풋한 향기가 바람에 실려온다.
빗장이 없는 낮은 대문을 지나 넓은 울안에 들어서니 친구와 안주인이
반갑게 맞는다. 정원에는 조경수가 식재되어 있고 울타리 밑에는 장미나
무를 나란히 심어놓았다. 동쪽과 남쪽의 정원앞에는 잔디가 깔려있고 북
쪽에는 감나무가 섰고 경사진 뒷뜰의 가장자리를 꾸며 꽃나무를 심어놓았
다. 서양식의 싱글지붕에 바깥마감은 붉은 치장 벽돌인 아담한 전원주택
이다. 넓은 거실에 들어서니 여러 종류의 화분이 남측에 있어 화원을 방
불케 하고 영산홍, 진달래는 벌써 붉은 꽃이 피어 실내를 화사하게 꾸며
주고 있다. 실내에 드는 남향의 햇살이 따스하다. 향긋한 봄내음이 실내
에 감돈다. 뒷뜰에서 캐온 쑥튀김을 안주로 술 한잔을 들며 시인인 L교
수, 의사인 P, 회사 간부인 S의 청담에 모두들 명랑하게 웃었다. 거실의
넓은 창을 통해 마을을 바라보니 앞집은 낡은 초가집이고 옆은 쓰지 않고
방치되어 퇴락한 공회당, 마을앞의 밭과 동산이 한눈에 들어온다. 가끔
새끼를 찾는 소의 울음이 들리지 않는다면 거의 시간도 정지한 듯 정적인
풍경은 마치 다른 세계에 온 듯하다. 무엇을 하고자 나는 그렇게 허둥대
며 살고 있는가 하는 생각이 문득 솟는다.
여기에 집을 지은 친구는 이 동네가 고향이 아니나 청주에서 뒤늦게 건
축업을 하며 자기 집을 마련한 것이다. 그의 살아온 인생에 여러 번의
굴곡이 있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청주에서 건축업을 하기 전
에는 서울에서 음식점, 인테리어 사무실 등 여러 가지 사업을 하느라 고
생하다가 고향인 대전에 가까운 청주에서 사업을 하고 있는 터였다. 대
학에서 건축과를 졸업하고 깔끔하며 정직한 성품에, 하는 일마다 마무리
를 잘해서 일이 날로 번창하더니 결국 집도 여기에 이렇게 예쁘장하게 지
었나 보다. 마음속으로 그들의 지나온 역정을 생각하면서 새로 지은 집
에 들음을 축하해 주었다.
그 전 해의 여름 이곳을 방문했을 때 집짓기가 한창이었다. 친구는 여
름날 더위에 인부, 목수들과 함께 땀을 흘리며 일하였고 건물의 골조는
거의 완성되어 마감공사중이었다.
방의 배치부터가 산뜻하다. 넓은 거실은 남측 전면을 차지하고 동측의
입구에 식당, 거실 북서측인 뒤쪽에는 안방과 화장실이 있고 거실의 한쪽
으로 2층의 고미다락에 올라가는 벽에서 튀어나온 목조계단이 아슬아슬하
다. 보통은 안방을 남측에 배치하고 부엌을 뒤에 배치하는데 뒤바뀐 구
조다. 집의 풍수인 가상학에 밝은 주인의 안목이 빛나는 부분이다. 난방
에 문제가 없는 한 주택은 아늑한 북서측에 주인 침실을 배치함이 이상적
이고 북서측은 마음이 안정되는 방향이다. 자연 남측의 거실폭이 넓어져
시원하다. 안방과 부엌, 대문과 안방, 부엌과 대문은 서로 상생의 관계,
서로 건너뛰는 것이 효율적이고 자연적이다. 가상에 의하면 그렇게 하면
집에 복을 불러온단다. 계획시에 그러한 요소를 미리 반영하고 재료까지
머리에 있는 것을 보고 적이 놀랐다. 주인이 건축과를 나오고 집을 많이
지었다고는 하지만 자기 집은 초라한 법인데 여기는 그렇지가 않았다.
동행한 충북대 건축과 K교수도 깜짝 놀라는 눈치다. 막상 설계시에 주
인에게 끌려 다니며 제대로 설계를 못하는 것이 현실인데 마음대로 구현
한 것을 보고 시원해 하며 이것이 전원주택, 농촌주택의 나아갈 방향이
아니냐며 칭찬한다. 내부 골조는 경량인 철골로 세우고 석고보드를 댄
후에 치장 벽돌로 마감하니 산뜻한 벽돌집이다. 경제적이고 멋진 집이다.
설계 신고 허가시에 도면을 도와주다가 현장을 보니 도면보다 훨씬 나아
보인다. 준공시에는 면장님을 비롯한 여러 사람이 다녀갔다고도 한다.
우리는 그 집에 가끔 들리곤 했다. 친구는 동네 사람들과 처음에는 서
먹하였으나 동네에 불이 났을 때 합심하여 불을 끄고 나서야 융화됐다고
한다. 친구와 환경이 좋아서인가. 그림을 잘 그리는 안주인의 상냥한 마
음이 그렇게 사람들을 받아들이는 것인가.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그런
곳이었다. 친구 부인이 준 그림 한 점이 표구를 한채 우리집 거실에 있
다. 달밝은 밤이면 뜰에서 불 피워 놓고 노래자랑도 하고 운동연습도 했
다. 부부가 같이 하는 사업이 확장되면서 빈집이었을 때 물건들이 몇 달
동안 그대로 있어도 도둑 한번 맞지 않는 그런 마을이었다. 아무때라도
그 집에 들려 별장같이 쓰라고 하면서 열쇠있는 곳을 일러주었는데 몇 년
이 지났다. 친구의 사업이 대전쪽으로 더욱 커지자 본집으로 이사를 하
고 이제는 그 집이 남에게 넘어간 것이다. 마치 우리집을 판 것같이 서
운하였다.
피반령을 넘다보면 그 마을이 보인다. 어느 날 속리산에서 돌아오는
길에 바라보니 마을은 황혼을 배경으로 어둠이 깔리고 있었고 산야에는
고요함이 흐르고 있었다. 나는 어느 때 번잡한 도시를 떠나 이런데서 단
순하게 살을 수 있을까 생각해 보았다. 이제는 그러한 단순함이 지루하
지 않을 것 같다. 누군가 전하는 소식은 준공식때의 면장님도 이미 고인
이라 한다. 마을 입구를 뒤로 하고 옛날의 일들을 회상하며 스치는 듯
지나갔다.
1998.
첫댓글 어느 날 속리산에서 돌아오는
길에 바라보니 마을은 황혼을 배경으로 어둠이 깔리고 있었고 산야에는
고요함이 흐르고 있었다. 나는 어느 때 번잡한 도시를 떠나 이런데서 단
순하게 살을 수 있을까 생각해 보았다. 이제는 그러한 단순함이 지루하
지 않을 것 같다. 누군가 전하는 소식은 준공식때의 면장님도 이미 고인
이라 한다. 마을 입구를 뒤로 하고 옛날의 일들을 회상하며 스치는 듯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