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전 수지침 동료이자 친구에게 “ 이 지역에서 오직 복지관에서만 수지침을 가르치고 있는데 노인회관에서도 이제 강의를 시작한다고 하네. 이제 그만 두어도 미련은 없을때가 되었어” 했더니 친구는 “ 그 동안 열심히 해 왔으니 더 계속할수도 있을거야” “ 아니냐 사람의 심리란 자신들이 아쉬울때는 영원히 놓아주지 않을 것 같지만 실제는 그렇치가 않아. 금방 등 돌리고 새로운 곳으로 마음이 쏠린단다. 나는 인간의 그 얄팍한 심리를 잘알고 있어. 나부터 그러니까” 하자 친구는 웃었다. 서랍속에 넣어둔 2023년 강사계약서를 꺼내 보고 12월 31일 까지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다시한번 새겨 보았다. 한때 서울에서 야간에 학교를 다닌적이 있었다. 그 때는 목적이 있었다. 초등학교 선생님이 되는것이였다. 그러나 낮에 벌어서 밤에 학교에 다닌다는 것이 나에 신체의 건강하지 못함에 얼마지나지 않아서 한계에 도달했고, 그로인해 나는 심한 위장병으로 오랜세월 댓가를 지불해야 했다. 둘째아이 출산후에 나는 극도로 몸이 나빠져서 죽음을 여러번 생각했는데 실제로 위장병으로 고생한 것 빼고는 별로 드러나는 병도 없었다. 5년 동안 인하대학 병원에 많은 돈을 내고 검사도 하고, 뭔가 찾아내려고 애썼지만 ‘살 빼세요’ 하는 말 외엔 약 한봉지도 받지 못했다. 동네에서 위내경을 한 이후에 ‘위암확률 95%’ 라는 용지만 받아서 남편에게 전하니 남편은 동생에게 전화에다 대고 이제 ‘누나가 필요 없으니 데려가라’ 란 치욕스런 소리만 들었다. 그렇게 모질게 말하는 남편도 나는 버리지 않고 잘 데리고 살고 있다 ㅎㅎ! . 모든 것을 해결하는 것은 시간이다. 세월가는 것을 탓하는 노래도 많지만 시간이 흘러가지 않는다면 별로 해결할것들은 없을 것 같다.
전혀 낯설지도 않고 산수가 수려한 이곳! 속리산 자락의 사람으로 살아온지 20년 정도가 되어서 이제는 엄연한 여기 군민이다. 그리고 아직도 나에게 강의할 시간은 많이 남아있다.
수지요법사 자격증 취득이후에 바로 봉사단에 들어가서 5명정도를 이끄는 팀장으로 일주일이면 서너군데 봉사를 다니고, 학술위원이신 선생님을 도와 수강생을 모집하는데 우리는 크게 힘을 보탰다. 그야말로 대한민국은 수지침의 매력과 그 효능과 편리함에 푹 빠져있었던 시기라 항상 강의 스케줄이 바쁘신 선생님은 감히 우리와 함께 하지도 못했다. 얼마나 열심히 했는지 상당히 큰 금액이 인천광역시 에서 지원이 학회로 들어오곤했다. 그 때마다 학회장님은 우리에게 밥을 사면서 감사하다고 입에서 침이 흘릴지경이였다. 수지침을 배우기전 성당에서 성서를 가르친 경험을 쌓은 나는 어느 날 학회장이 제안해온 수지침 초급강의를 해달라는 요청에 동의를 했다. 그러나 한달 두달이 가도 뚜렸한 결정이 없어서 차마 왜 안해 주냐고 묻지도 못하고 속을 태우다가 수지침 강의요청을 해온 학교 이름을 메모해둔 것이 있어 그 학교로 전화를 해서 자세히 물어보니 이거 왠일~~~!!. 그 때 바로 취소가 됐는데요. 학부형들이 교제비를 학교에서 대라고 해서 무산이 되었다는 것이다. 작은 교회에 봉사를 갔는데 목사님이 나더러 수지침 강의를 해달라고 하셨다. 그러나 그것은 학술위원의 권한이므로 선생님의 동의가 있어야 했는데 어려운일이였다. 수지침을 배운 이후 2년만에 한약을 배우러 다녔는데 한의계와 수지계가 등을 돌린 탓인지 한약을 배우는 나는 수지계에서 비난을 받는 입장이 되었다. 그러나 어려운 한약을 배우기 위해 절치부심했다. 만약에 내가 한약과 체침을 배우지 않았다면 강의는 오랫동안 해 오지 못했을것이며 항상 선생님께서 내 뒤에 계시다는것은 든든한 울타리였다. 한약을 몰랐다면 오늘에 나는 없었을 것이다. 최상의 선택이였으며 그 기회를 주신 이정용 선생님께 진정으로 감사를 드린다. 남편마져도 너무 한약만 좋아하는것 아니냐고 하지만 위염약 환약으로 만들어 20년 먹고 있는데, 병원 며칠 다니다가 다시는 안먹을것 같이 하다가 다시 먹는것을 보면 그냥 웃지요 ㅎㅎ.
항상 가진 것이 배짱뿐인 나는 동료들이 모이면 모두 한약이름을 부쳐주면서 약이름을 외우곤했다. 감초라고 이름을 부쳐준이가 나에게 항의를 했다. 비싼 인삼이나 녹용을 해주지 왜 하필이면 값싼 감초냐고...!!. “ 감초가 없으면 약은 조화로움이 없는데... 그래도 싫어” 했더니 아 그렇구나 하고 좋아했던 그 친구의 얼굴도 오늘 그립다. 그리고 별로 정들지 않았던 인천을 떠나게 될 줄이야. 그건 분명 ‘신의 한수’ 였다. 완전 대박난 것이다. 사람도 걸리적거리지 않는 아름다운 산천에서 나는 무려 4개월씩이나 동으로 서로 때론 북으로 작은딸과 강아지 방울이랑 미친것처럼 싸돌아 다녔다. 그리고 자전거를 배우기로 결심을 하고 실천에 옮겼다. 아! 그 때 남편에게 욕 많이 먹어서 아직도 살아 있나! 뒤에서 자전거를 잡아주면서 바보 . 멍청이 별의별 말을 다 들었다. 허긴 3일씩 자건거를 배운 사람은 아마도 흔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사를 오자 우리집 건물도 새로 지어놓고 분양중이고, 바로 앞에 복지관도 개관전이였다. 그야말로 적막강산이라 고요 하기만 했다.
복지관이 개관을 하자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는데 그것은 전혀 나하고는 상관 없는 일인줄 알았는데 밥 얻어 먹으러 한번 간 것이 계기가 되었는데 ‘ 스스로 침을 사서 보은군내 봉사를 해달라는 요청이였다’ 딱 1년 복지사님이랑 열심히 이동네 저동네 다 다녔다. 별의별일이 다 생겼다. 100세가 다 되신 할머니께서 진맥을 요청하셔서 맥을 잡고 있는데 할머니 왈 “ 나 언제 죽을 것 같애” 하신다. 나는 놀라지도 않고 맥을 계속 잡고 있다가 “ 그 걸 제가 어떻게 알겠습니까? 하느님께서 아실일이죠” 했다가 팔을 세차게 뿌리치는 할머니 曰 “ 난 또 뭣좀 안다고. 쥐뿔 아는것도 없네” 하하하하 그 때 생각하면 지금도 나오는 것은 웃음뿐이다. 할머니는 아마도 하늘나라에 잘 계시겠지. 그렇게 봉사한지 딱 1년 어느 날 오후에 전화가 왔다. 같이 다녔던 복지사가 때뜸 한다는 말 “ 수지침반을 만들었으니 바로 강의를 시작해 주세요”
바로 네~~~!!! 했다. 전날 밤 생각했다. 시작을 목소리만 크게 하자로 정하고 출강을 시작했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50대에 시작한일이 70대에도 하고 있으니 그래 너 최공숙 잘했다. 잘했어. 장해. 스스로에게 상을 주고 싶다. 아 참 7년 봉사하고 군수님께서 봉사상을 주셨습니다. 복지관 추천으로 주식회사 환화에서 강의하기로 구두 계약을 했는데 반대하는 남편때문에 그만 두었던것은 아마 오랫동안 잊지 못할것 같다.
나만의 책자도 하나 만들었다. 조금 서운할 때 헤어지는 것이 덜 미워하게 될 조건이 될것으로 생각이 든다. 조금 서운할 때 그 때가 바로 지금이란 생각으로 계약마감일을 기다리고 있다.
수지침반이란 명칭이 손사랑반으로 나하고 의논도 없이 바뀌었을때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이론만 가르치고 지압봉으로 혈자리를 가르치라는 정말 웃기지도 않는 사태가 벌어졌을 때 자존심 팍 구겼는데 그만 두려고 하니, 어떤 사람이 그냥 해 너 말고도 그런 사람은 또 오게 마련이야 했다. 그래 까짖것 누가 이기나 한번 해보자. 매년 서류 제출하고 면접 볼 때면 난 침을 안할 수는 없다는 것을 강조했다. “ 죄가 있으면 제가 책임 질테니 넘 걱정 마세요” 하고 여지껏 버텨왔는데 이웃 단체에서도 이침도 알맹이 부쳐 주는걸로 하고 있고 이미 노인회관에서 시작한 수지침은 사람이 없어서 시작을 못하고 있다고 한다. 난 요새 너무 편하고 좋다. 이곳에 와서 최선을 다해서 살았고 건강도 회복 되었다. 난 농사짖는 것이 너무너무 행복하다. 오늘도 양파를 한바탕 심고 뭐든 비싸서 시금치 . 유채씨를 뿌리고 검은포장으로 이쁘게 덮어두고 왔다. 젊은시절 난 방황하고 때로는 방탕한 생활로 엉망이 되기도 했지만, 이곳에 와서 인생 한번 잘 살았다. 추석이라 놀러온 8살 손주녀석이 개다리춤을 어찌나 잘 추던지 동영상에 담아두고 심심하면 한번씩 들여다보며 웃고 있다. 올해는 3녀석들이 모두 모여 청담대로 세조길로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법주사의 팔상전은 왜 그리도 부드러운지 아름답기 그지 없다. 이 나이되어 생각하니 별거 아닌걸로 울고 웃으면서 살았는데 다 별거 아니였다. “ 그 때 그렇게 열심히 하길 잘했어 ” 그러면 되는 것 같다. 내년에 이스라엘 성지순례를 가려고 하는데 전쟁이 나서 천상 다른 순례길을 찾아 보아야겠다. 예수님께서 신발도 신지 않으시고 사마리아로 가셨다. 우물가에서 다섯 남편을 가진 여자의 복잡미묘한 문제를 별 요란스럽지도 않는 말로 치유해주신 여자도 잘 꼬드기는 그 분이나 믿으며 나는 오늘도 햇살을 받으며 걸으려 축구장에 간다. 이어폰에서 들려오는 발라드는 감미롭고 마음속으로 파고들어 심장을 뛰게 한다. 이 가수는 참 노래를 잘 하는구나~~~~~~~~~~~~~~*****